생생후기
버몬트, 9시간 버스 여행의 설렘과 당황
SUSTAINABLE LIVING, VERMON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결정한 뒤, 미국에서 할 수 있는 여러가지 활동에 대해 알아보던 중 국제워크캠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국제 워크캠프라고 해서, 처음에는 막연하게 여러 외국인들을 만날 수 있고, 영어 연습도 할 수 있고,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해야할 일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상태였다. 단지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에 대한 기대감만을 가지고 워크캠프 장소로 향했다. 내가 어학연수를 하던 뉴욕에서 워크캠프 장소인 Vermont 주의 Montpelier 까지 버스를 타고 거의 9시간을 가야했다.
오후 2시쯤에 워크캠프 집결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워크캠프 관계자를 찾지 못했다. 나를 찾는 사람도 없었다. 처음엔 너무 당황했다. 낯선 곳이었고, 촌동네 였기 때문에 익숙한 프랜차이즈 카페나 레스토랑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슈퍼마켓이나 조그마한 옷가게들 뿐이었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주위에 와이파이를 쓸수 있는 곳을 찾아헤맸다. 그러다가 한 레스토랑을 찾아, 가장 싼 메뉴인 커피를 시키고,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어보고, 와이파이를 이용해 호스트인 Mary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내 이름을 보고 남자라 생각해서, 남자를 찾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Mary와 만났다. 제일 처음 만난 워크캠프 친구는 스페인에서 온 디에고라는 아저씨? 였다. (29살이라서 우리 워크캠프에서는 최고령자였고, 얼굴이 조금 아저씨 필이 나서 그냥 아저씨로...) 그리고 내가 버스 내린 곳에서 한명의 친구를 더 기다렸다. 스페인에서 온 베르타라는 여자 아이였다. 베르타는 이 워크캠프 오기전에 캐나다에서 다른 워크캠프에 이미 참여하고 바로 이 곳으로 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명의 스페인 친구와 호스트인 Mary 와 함께 차를 타고 워크캠프 장소로 이동했다. 처음 그 곳에 도착했을 때,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잠을 텐트에서 자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곳은 완전히 숲속이었다. 숲속에 오두막 집 하나가 있었고, 간이 화장실과 간이 샤워실, 그 주위에 우리가 머물 텐트들이 있었다. 처음에 화장실과 샤워실을 보고, 사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갔았다. '내가 이 곳에서 생활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하지만 그곳에 이미 워크캠프에 참가할 친구들이 도착해 있었다. 안치와 데이지라는 2명의 중국인 여자친구와 애드리언과 필립이라는 2명의 독일 남자친구와 캠프리더인 시드니가 있었다. 그 친구들은 이미 이곳에 적응한 듯 보였다. 그래서 나도 '정말 3일만 참아보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우선 나의 룸메이트는 처음에 만난 베르타라는 스페인 여자였다. 베르타는 이 워크캠프 전에도 캐나다 워크캠프와 여러 워크캠프들을 경험해서 그런지, 일을 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능숙했다.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별로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고, 열심히 했다. 그리고 룸메이트여서 잠들기 전에 매일 한국어와 스페인어 하나씩 교환했다. 나는 '잘자' '괜찮아' '고마워' '사랑해' 등의 한국어를 가르쳐주었다. 서로 자기나라의 욕설도 가르쳐주고, 한국의 미남, 미녀 연예인도 보여 주며, 의견을 묻기도 했다. 그리고 베르타는 자기 친구들을 보여주면서 '이쁜지 잘생긴지'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독일인 친구들도 장작떼기나 장작나무 패기 등 궂은 일은 마다 않고 열심히 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집을 짓는 일이었기 때문에 남자들이 힘쓰는 일들이 많았다. 시멘트, 돌, 클레이 나르기 등 무거운 짐들을 나를 때 힘든 내색 전혀 안내고, 열심히 했다. 특히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서 항상 장작불을 떼야 했는데, 독일인 친구인 애드리언은 항상 장작불 떼는 것을 마다않고 했다. 그리고 이틀 정도 늦게온 스페인 남자인 시사라는 친구는 처음에는 친해지기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굉장히 장난끼가 많고, 수다스러운 친구였다. 가장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진 친구이기도 했다. 이번에 한국 부산에서 하는 워크캠프에 참가하고 싶었다며, 다음에 꼭 한국에 오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또 스페인에서 온 디에고 아저씨는 햄토리를 닮아 정말 귀여웠다. 내가 햄스터 닮았다고 하니 처음에는 기분 나빠 하더니, 햄스터 캐릭터인 햄토리를 보여주니 '귀엽다' 며 좋아했다. 그렇지만 사실 남자 참가자들 중에 가장 힘들어한 내색을 많이 낸 분이기도 하다. 그럴때마다 나이는 제일 많지만 귀엽게 보이고 어린애 처럼 보였다. 그리고 중국인 친구인 안치와는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드라마, 연예인 이야기등 공통적인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가장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다른 중국인 친구인 데이지와는 많이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 친구도 그전에 워크캠프 경험을 해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능숙했다. 또 나이는 나보다 어렸지만 굉장히 어른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캠프리더인 시드니는 정말 좋은 리더였다. 비록 나보다는 어렸지만, 배울점이 굉장히 많았다. 리더라고 해서 어떤 일을 하라고 시키기 보다는 궂은일은 자기가 먼저 하려고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리더라는 지위를 이용하기 보다는 같은 캠프 참가자와 같이 편안하게 대해 줬다. 그러면서도 모든 친구들이 잘 어울리도록 캠프를 잘 이끌어 가고, 각각의 참가자들에 대한 배려심이 굉장했다.
이렇게 국제적인 친구들과 만나고, 워크캠프에서 일을 하면서 굉장히 많은 걸 느끼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처음에도 말했듯이, 처음에 워크캠프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생각하던 워크캠프가 아니었다. 처음에 굉장히 절망적이었다. 그리고 첫날 일을 시작하자마자 내가 생각한 일들이 아니었다. 정말로 집을 짓는 일이었다. 겨울은 잘 나기 위해서 벽틈에 솜들을 집어넣고, 그 위에 클레이를 덧바르는 작업을 했다. 또한 집 안에 난로를 만들기 위해 초석을 만드는 일, 뚫린 주방을 짚들로 막은 뒤 또다시 클레이를 바르는 일 등을 했다. 그런데 클레이를 만드는 것에서 부터, 짚을 옮기는 작업, 나무를 옮기는 작업 등 모두 순수 노동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다보니, 2주라는 기간이 긴 시간이 아니었다. 클레이를 만들기 위해서, 소똥, 말똥, 모래 등을 섞어서 수동 제작을 해야 했다. 그 작업이 가장 하기 싫었지만 해야했다. 일을 하면서 '내가 공사장에서 노동을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만만치 않은 작업들이었다. 또한 2주일 동안 살기 위해서, 데일리 일이 각자에게 주어졌다. 물 탱크에 물받기, 설거지 하기, 쓰레기 버리기, 냉장박스에 얼음 넣기, 불 뗄 장작 만들기 등이었다. 이런 일들을 하면서 그동안 얼마나 편안하고,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생활에 익숙해 있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모든것이 원시적으로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밤이되면 불이 없어서, 모두들 장작불 앞에 모여있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장작불 앞에서 매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더욱 가까워 질 수 있었다. 장작불 앞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 하던것, 함께 게임하던 기억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추억 중에 하나로 남을 것 같다. 또 매일매일 장작을 떼서 저녁 식사를 준비했던 것, 3시 반 정도에 하루 작업이 끝나면 매일 주변 호수를 수영을 하러 가던 것, 하나의 간이 샤워실을 쓰기 위해 서로 순서를 정해서 샤워를 하던 것, 밤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손전등 하나를 들고 함께 갔던 것, 매일 아침 8시 쯤에 일어나서 아침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던 것, 오전 일을 끝내고, 점심 샌드위치를 함께 만들어 먹었던 것 등 워크캠프를 통해서 평소에는 절대로 경험할 수 없었던 값진 경험과 소중한 추억들을 가질 수 있었다. 호스트인 Mary 와 David 에게 정말 감사한 것은 보다 미국에 대한 문화를 보여 주기위해 많은 이벤트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웃집 바베큐 파티에 초대 받아 가기도 하고, 비오는 날 돌산에도 올라가 보고, 재즈바에도 가고, Mary 부부의 친구들을 초대해 보다 다양한 미국인들을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워크캠프 2주동안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경험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또한 나 스스로에 대해 반성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하게 살았으며, 어른답지 못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워크캠프에서 힘든일을 하면서, 그동안 한번도 하지 못했던 일이라 처음에는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가끔씩 너무 힘들어서 하기 싫은 티를 낸적도 있었다. 그런데 워크캠프 친구들을 보면, 그 친구들은 아무 불평없이 정말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어린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른답지 못한지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더구나 워크캠프 참가자 친구들이 나보다 어리거나 거의 나와 나이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더욱더 보다 어른답게 행동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또 이번 프로젝트가 집짓기이다 보니 이번에 지은 아빠 집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아빠가 이번에 한옥집을 지었을 때,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전혀 도와주지도 않고,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렇게 집을 짓는 경험을 통해, 집 짓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빠가 얼마나 힘들었을지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어딜가든 어른답게 주어진 일에 불평없이 열심히 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뉴욕에 와서도 느낀 것이지만, 무슨일이든 그것에 대한 열정이 나이가 많거나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한국에서는 나이를 굉장히 많이 따지고, 나이가 많은 사람이 조금더 현명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즉 한국에서는 그만큼 나이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여기서 일을 하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나이가 적다고, 어른스럽지 못한다거나, 어려운일을 하는데 몸사리고, 불평하는 경우가 없었다. 나이가 무슨 일을 하는데 있어서 큰 걸림돌이가 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서로 처음 만났을 때 나이를 묻지도 않았다. 나이로서 사람을 평가한다기 보다는 그냥 있는 그자체로 보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나이, 서열 문화에 익숙했던 나에게는 이런 미국의 문화가 굉장히 신선하면서도, 너무나 좋았다.
또한 이번 활동을 하면서 좋았던 것은 뉴욕에서 3개월 어학연수를 했던 것 보다 이곳에서의 2주 생활이 영어를 늘리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고 느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부터 잠들때 까지 영어를 계속 써야 했고, 영어를 쓰지 않으면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생활영어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동안 뉴욕에 있으면서는 학원에서만 영어를 쓰고, 영어로 대화하는 상대가 학원 친구들이다 보니, 한정적인 경우가 많았다. 또학원에 한국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굳이 영어를 쓰지 않아도, 그리 답답한 부분이 많이 없었다.그런데 이 곳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인이 나 혼자 뿐이여서 영어를 쓰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해서든 영어로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체감적으로 영어가 조금 트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크캠프 2주 동안의 경험은 미국에서 7개월동안 어학연수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을 추억이 될 것 같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고, '내가 이것을 왜 신청했을까' 라고 후회도 좀 했지만, 삼일, 사일이 지나면서 워크캠프 생활에 익숙해 졌다. 그러면서 친구들과도 친해지고 매일매일이 재미있었다. 워크캠프 막바지가 되면서 이 곳을 떠나기 싫다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그만큼 워크캠프 친구들, 워크캠프 호스트 부부인 Mary와 David와 정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겨우 2주 밖에 함께 하지 않았는데도, 매일 같이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 놀러다니다 보니 정이 엄청 들었던 것 같다. 요즘에도 워크캠프에서의 추억을 가끔씩 생각하면 굉장히 그립다.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는데, 그 힘들었던 기억은 하나도 생각이 안나고, 단지 그 때로 돌아가서 다시 워크캠프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고, 함께 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오후 2시쯤에 워크캠프 집결지에 도착했다. 그런데 워크캠프 관계자를 찾지 못했다. 나를 찾는 사람도 없었다. 처음엔 너무 당황했다. 낯선 곳이었고, 촌동네 였기 때문에 익숙한 프랜차이즈 카페나 레스토랑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이라곤 슈퍼마켓이나 조그마한 옷가게들 뿐이었다. 그래도 정신을 차리고, 주위에 와이파이를 쓸수 있는 곳을 찾아헤맸다. 그러다가 한 레스토랑을 찾아, 가장 싼 메뉴인 커피를 시키고,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물어보고, 와이파이를 이용해 호스트인 Mary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는 내 이름을 보고 남자라 생각해서, 남자를 찾고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Mary와 만났다. 제일 처음 만난 워크캠프 친구는 스페인에서 온 디에고라는 아저씨? 였다. (29살이라서 우리 워크캠프에서는 최고령자였고, 얼굴이 조금 아저씨 필이 나서 그냥 아저씨로...) 그리고 내가 버스 내린 곳에서 한명의 친구를 더 기다렸다. 스페인에서 온 베르타라는 여자 아이였다. 베르타는 이 워크캠프 오기전에 캐나다에서 다른 워크캠프에 이미 참여하고 바로 이 곳으로 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두명의 스페인 친구와 호스트인 Mary 와 함께 차를 타고 워크캠프 장소로 이동했다. 처음 그 곳에 도착했을 때,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잠을 텐트에서 자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곳은 완전히 숲속이었다. 숲속에 오두막 집 하나가 있었고, 간이 화장실과 간이 샤워실, 그 주위에 우리가 머물 텐트들이 있었다. 처음에 화장실과 샤워실을 보고, 사실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갔았다. '내가 이 곳에서 생활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과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지'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하지만 그곳에 이미 워크캠프에 참가할 친구들이 도착해 있었다. 안치와 데이지라는 2명의 중국인 여자친구와 애드리언과 필립이라는 2명의 독일 남자친구와 캠프리더인 시드니가 있었다. 그 친구들은 이미 이곳에 적응한 듯 보였다. 그래서 나도 '정말 3일만 참아보자' 라는 생각을 가지고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우선 나의 룸메이트는 처음에 만난 베르타라는 스페인 여자였다. 베르타는 이 워크캠프 전에도 캐나다 워크캠프와 여러 워크캠프들을 경험해서 그런지, 일을 하는데 있어서 굉장히 능숙했다.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별로 힘든 내색을 보이지 않고, 열심히 했다. 그리고 룸메이트여서 잠들기 전에 매일 한국어와 스페인어 하나씩 교환했다. 나는 '잘자' '괜찮아' '고마워' '사랑해' 등의 한국어를 가르쳐주었다. 서로 자기나라의 욕설도 가르쳐주고, 한국의 미남, 미녀 연예인도 보여 주며, 의견을 묻기도 했다. 그리고 베르타는 자기 친구들을 보여주면서 '이쁜지 잘생긴지'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도 했다. 독일인 친구들도 장작떼기나 장작나무 패기 등 궂은 일은 마다 않고 열심히 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집을 짓는 일이었기 때문에 남자들이 힘쓰는 일들이 많았다. 시멘트, 돌, 클레이 나르기 등 무거운 짐들을 나를 때 힘든 내색 전혀 안내고, 열심히 했다. 특히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서 항상 장작불을 떼야 했는데, 독일인 친구인 애드리언은 항상 장작불 떼는 것을 마다않고 했다. 그리고 이틀 정도 늦게온 스페인 남자인 시사라는 친구는 처음에는 친해지기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굉장히 장난끼가 많고, 수다스러운 친구였다. 가장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진 친구이기도 했다. 이번에 한국 부산에서 하는 워크캠프에 참가하고 싶었다며, 다음에 꼭 한국에 오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또 스페인에서 온 디에고 아저씨는 햄토리를 닮아 정말 귀여웠다. 내가 햄스터 닮았다고 하니 처음에는 기분 나빠 하더니, 햄스터 캐릭터인 햄토리를 보여주니 '귀엽다' 며 좋아했다. 그렇지만 사실 남자 참가자들 중에 가장 힘들어한 내색을 많이 낸 분이기도 하다. 그럴때마다 나이는 제일 많지만 귀엽게 보이고 어린애 처럼 보였다. 그리고 중국인 친구인 안치와는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드라마, 연예인 이야기등 공통적인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가장 많이 친해질 수 있었다. 다른 중국인 친구인 데이지와는 많이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 친구도 그전에 워크캠프 경험을 해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능숙했다. 또 나이는 나보다 어렸지만 굉장히 어른스러웠다. 마지막으로 캠프리더인 시드니는 정말 좋은 리더였다. 비록 나보다는 어렸지만, 배울점이 굉장히 많았다. 리더라고 해서 어떤 일을 하라고 시키기 보다는 궂은일은 자기가 먼저 하려고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리고 리더라는 지위를 이용하기 보다는 같은 캠프 참가자와 같이 편안하게 대해 줬다. 그러면서도 모든 친구들이 잘 어울리도록 캠프를 잘 이끌어 가고, 각각의 참가자들에 대한 배려심이 굉장했다.
이렇게 국제적인 친구들과 만나고, 워크캠프에서 일을 하면서 굉장히 많은 걸 느끼고,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처음에도 말했듯이, 처음에 워크캠프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생각하던 워크캠프가 아니었다. 처음에 굉장히 절망적이었다. 그리고 첫날 일을 시작하자마자 내가 생각한 일들이 아니었다. 정말로 집을 짓는 일이었다. 겨울은 잘 나기 위해서 벽틈에 솜들을 집어넣고, 그 위에 클레이를 덧바르는 작업을 했다. 또한 집 안에 난로를 만들기 위해 초석을 만드는 일, 뚫린 주방을 짚들로 막은 뒤 또다시 클레이를 바르는 일 등을 했다. 그런데 클레이를 만드는 것에서 부터, 짚을 옮기는 작업, 나무를 옮기는 작업 등 모두 순수 노동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다보니, 2주라는 기간이 긴 시간이 아니었다. 클레이를 만들기 위해서, 소똥, 말똥, 모래 등을 섞어서 수동 제작을 해야 했다. 그 작업이 가장 하기 싫었지만 해야했다. 일을 하면서 '내가 공사장에서 노동을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들정도로 만만치 않은 작업들이었다. 또한 2주일 동안 살기 위해서, 데일리 일이 각자에게 주어졌다. 물 탱크에 물받기, 설거지 하기, 쓰레기 버리기, 냉장박스에 얼음 넣기, 불 뗄 장작 만들기 등이었다. 이런 일들을 하면서 그동안 얼마나 편안하고, 기술에 의해 만들어진 생활에 익숙해 있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모든것이 원시적으로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밤이되면 불이 없어서, 모두들 장작불 앞에 모여있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장작불 앞에서 매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더욱 가까워 질 수 있었다. 장작불 앞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 하던것, 함께 게임하던 기억은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추억 중에 하나로 남을 것 같다. 또 매일매일 장작을 떼서 저녁 식사를 준비했던 것, 3시 반 정도에 하루 작업이 끝나면 매일 주변 호수를 수영을 하러 가던 것, 하나의 간이 샤워실을 쓰기 위해 서로 순서를 정해서 샤워를 하던 것, 밤에 화장실을 가기 위해 손전등 하나를 들고 함께 갔던 것, 매일 아침 8시 쯤에 일어나서 아침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던 것, 오전 일을 끝내고, 점심 샌드위치를 함께 만들어 먹었던 것 등 워크캠프를 통해서 평소에는 절대로 경험할 수 없었던 값진 경험과 소중한 추억들을 가질 수 있었다. 호스트인 Mary 와 David 에게 정말 감사한 것은 보다 미국에 대한 문화를 보여 주기위해 많은 이벤트를 만들어 주었다는 것이다. 이웃집 바베큐 파티에 초대 받아 가기도 하고, 비오는 날 돌산에도 올라가 보고, 재즈바에도 가고, Mary 부부의 친구들을 초대해 보다 다양한 미국인들을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워크캠프 2주동안 절대로 잊을 수 없는 경험들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또한 나 스스로에 대해 반성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편하게 살았으며, 어른답지 못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워크캠프에서 힘든일을 하면서, 그동안 한번도 하지 못했던 일이라 처음에는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했다. 가끔씩 너무 힘들어서 하기 싫은 티를 낸적도 있었다. 그런데 워크캠프 친구들을 보면, 그 친구들은 아무 불평없이 정말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친구들을 보면서 내가 얼마나 어린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른답지 못한지에 대해 반성하게 되었다. 더구나 워크캠프 참가자 친구들이 나보다 어리거나 거의 나와 나이가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더욱더 보다 어른답게 행동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또 이번 프로젝트가 집짓기이다 보니 이번에 지은 아빠 집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아빠가 이번에 한옥집을 지었을 때,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전혀 도와주지도 않고, 많은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이렇게 집을 짓는 경험을 통해, 집 짓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빠가 얼마나 힘들었을지에 대해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어딜가든 어른답게 주어진 일에 불평없이 열심히 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뉴욕에 와서도 느낀 것이지만, 무슨일이든 그것에 대한 열정이 나이가 많거나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라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한국에서는 나이를 굉장히 많이 따지고, 나이가 많은 사람이 조금더 현명하고, 어른스럽게 행동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즉 한국에서는 그만큼 나이가 중요하게 여겨진다. 그런데 여기서 일을 하면서도 느낀 것이지만, 나이가 적다고, 어른스럽지 못한다거나, 어려운일을 하는데 몸사리고, 불평하는 경우가 없었다. 나이가 무슨 일을 하는데 있어서 큰 걸림돌이가 되지는 않는 것 같았다. 서로 처음 만났을 때 나이를 묻지도 않았다. 나이로서 사람을 평가한다기 보다는 그냥 있는 그자체로 보고, 사람을 대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나이, 서열 문화에 익숙했던 나에게는 이런 미국의 문화가 굉장히 신선하면서도, 너무나 좋았다.
또한 이번 활동을 하면서 좋았던 것은 뉴욕에서 3개월 어학연수를 했던 것 보다 이곳에서의 2주 생활이 영어를 늘리는 데 굉장히 도움이 되었다고 느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부터 잠들때 까지 영어를 계속 써야 했고, 영어를 쓰지 않으면 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생활영어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다. 그동안 뉴욕에 있으면서는 학원에서만 영어를 쓰고, 영어로 대화하는 상대가 학원 친구들이다 보니, 한정적인 경우가 많았다. 또학원에 한국인들이 많았기 때문에, 굳이 영어를 쓰지 않아도, 그리 답답한 부분이 많이 없었다.그런데 이 곳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인이 나 혼자 뿐이여서 영어를 쓰지 않으면 대화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해서든 영어로 이야기를 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체감적으로 영어가 조금 트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크캠프 2주 동안의 경험은 미국에서 7개월동안 어학연수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을 추억이 될 것 같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고, '내가 이것을 왜 신청했을까' 라고 후회도 좀 했지만, 삼일, 사일이 지나면서 워크캠프 생활에 익숙해 졌다. 그러면서 친구들과도 친해지고 매일매일이 재미있었다. 워크캠프 막바지가 되면서 이 곳을 떠나기 싫다는 생각을 잠깐 하기도 했다. 그만큼 워크캠프 친구들, 워크캠프 호스트 부부인 Mary와 David와 정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겨우 2주 밖에 함께 하지 않았는데도, 매일 같이 아침, 점심, 저녁을 먹고, 놀러다니다 보니 정이 엄청 들었던 것 같다. 요즘에도 워크캠프에서의 추억을 가끔씩 생각하면 굉장히 그립다. 그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는데, 그 힘들었던 기억은 하나도 생각이 안나고, 단지 그 때로 돌아가서 다시 워크캠프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고, 함께 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