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고성에서 만난 다국적 인연

작성자 이정은
프랑스 REMPART11 · RENO/HERI 2013. 08 midi-pyrenee

Château de Camarè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방학에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던차 여행을 하고싶은 생각은 있었지만 유명한 관광지를 보고 오는 단순한 여행은 싫었다. 그러던 중 다른 나라의 학생들과 만나 같은 공간에서 지내며 봉사활동도 하고 더불어 우리나라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는 워크캠프에 참가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워크캠프였지만 국제워크캠프인 만큼 다국적 친구들을 생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간 워크캠프 첫째날, 나와 함께 했던 동기와 나는 절망할 수 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에서 온 남자와 우리 둘을 빼고는 모두가 불어를 사용하였으며 과반수 이상이 프랑스출신이었기 때문에 기가 눌릴 수 밖에 없었다. 불어가 편하긴 하지만 영어로도 의사소통정도는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다수였기 때문에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가 지내는 곳은 10세기에 지어진 성이었는데 현대식으로 보수공사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1000여년의 세월이 묻어나는 성이었다. 첫날은 성 주변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내고, 내일부터 시작되는 활동에 대한 지시를 듣고 다같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것으로 끝이났다. 둘째날부터는 그야말로 노동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힘이 드는 일이었다. 허물어진 돌담을 완전히 부수고 다시 쌓고 계단을 다시 짓고 지붕의 기왓장을 닦아내고 다시 올리는 일은 생애 처음이자 아마 마지막이 될 일이었다. 기기의 힘은 빌리지 않은채 양동이를 이용해 흙을 옮기고 모래를 옮기고 삽을 이용해 땅을 파고 쟁이로 잡초를 뜯어가면서 점점 그곳에서의 활동에 익숙해져갔다. 솔직히 포크레인을 이용한다면 한사람이 간단히 끝낼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불만을 가진적도 있었다. 하지만 바로 이 방법으로 환경을 최대한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보수공사를 진행해간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하루의 일이 끝나면 보통 성으로 돌아와 자유시간을 가졌는데 이 때에는 주로 모여 이야기를 하거나 카드게임을 하였다. 이 시간을 통해 이스라엘이나 모로코의 생활방식이나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북한과 우리나라와의 문제에 대해서도 토론해볼 수 있었다. 저녁식사는 주로 프랑스식으로 먹었는데 가끔은 이스라엘이나 모로코의 전통음식, 그리고 우리나라의 전통음식도 맛볼 기회가 있었다. 우리나라 음식은 당연히 나와 동기가 만들었는데 소갈비 양념과 호떡 믹스의 덕을 엄청 봤다. 만약 우리가 직접 양념을 해 불고기를 만들었다면 그렇게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내진 못했을 것이다. 또한 디저트로 선보인 호떡 14개는 그야말로 게 눈 감추듯 사라져버렸다. 파리에서 온 줄리는 파리에 돌아가 마트에서 반드시 찾아본다며 쓰레기통에서 호떡믹스 봉지를 주워 사진으로 찍어갔다. 모로코에서 온 사미아는 요리법을 적어두고 가라며 몇 번 당부했다. 뿌듯하고 기분좋은 저녁식사였다.
그날의 왁자지껄한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리가 살고 있던 성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던 마리암이 잠들기 전에 자신과 카리마의 방에 들러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우리는 설거지를 마치고 찾아가 차를 대접받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카리마는 한국 드라마 광팬이다. 드라마 풀하우스 노래를 다운받아 따라 부르고 내게 자신의 이름을 한국어로 적어달라고 하고, 반크에서 받은 한국엽서를 선물로 주자 자신의 팔찌를 선물로 주었다. 우리는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사진도 찍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나는 비교적 조용한 성격을 가진 이스라엘의 tal과 진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스라엘에서는 여자도 반드시 군대를 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도 2년이나. 군대를 마치고 무엇을 해야할지 잘 판단이 서지 않은 그녀는 파리에 와 샤를드골 국제공항에서 2년동안 일을 한 적도 있다. 지금은 건축을 전공하는데 힘들지만 재미있다고 한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비롯된 불안감은 세계 어디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로코에서 온 사미앙은 무슬림인데 그녀는 하루에 5번 기도를 하고 술과 담배를 하지 않으며 자신의 나라에서 동거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 했다. 사람들이 건강에 좋지 않은 술을 왜 마시는지 모르겠다며 자신은 콜라도 먹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종교적인 이유로 고기도 먹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사미앙과 힌디를 위해 언제나 고기를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따로 마련해야 했다. 이것은 비록 다소 귀찮은 일이기도 했지만 그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으며 서로가 서로의 문화를 이해해 주었다.
프랑스 몬토노에서 온 바리는 힙합을 좋아해 영어까지 잘하게 되었다. 그래서 영어를 말할때 항상 랩을 하듯이 말을 한다. 그는 그 곳에서 일을 하면서 랩 가사를 적어나가고 곡을 하나 완성하기에 이르렀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꼭 노동요같아서 우리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주말에는 하이킹을 갔다가 길을 잃는 바람에 무려 네시간 가량을 산속을 헤매이다 돌아왔다. 힘들었지만 웃음이 났다. 영어를 잘 못해 이야기를 많이 하지 못해서 아쉬운 vinnie의 네살짜리 아이같은 해맑은 웃음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