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낯선 아침, 그리운 워크캠프 친구들

작성자 이휘복
일본 NICE-13-82 · AGRI/CONS 2013. 08 Wazuka

Wazuka (Kyoto)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프롤로그(Prologue) ; 아침에 눈을 뜨면 우선은 기분이 낯설다. 나는 우리 집, 내 방, 내 침대 위에 누워 있지만 주변을 둘러보아도 얼마 전 까지 같이 웃고, 떠들며 함께 있던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만 이해하고, 우리만 알고 있던 이런저런 이야기들과 농담들을 더 이상 함께 할 친구들이 내 곁에 더 이상 같이 있지 않은 것이다. 깊은 허전함에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가 않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아직은 생생한 기억들에 빠져 생각에 잠기는 것이 좋다. 시간이 더 지나가면 바래질테니, 아직 기억이 생생할 때 조금만 더 이 생각 속에 잠겨있고 싶다. 미쳐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잊은 것이 있을까, 친구들은 아직 기억을 할까. 친구들은 지금즈음 어디에서 걷고 있을까? 요즘 나는 그런 생각에 잠겨 시간을 보내고는 한다.

내 나이 23. 아직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은 나이이다. 얼마나 더 많은 곳으로 가게 될 것인지,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인지, 이제는 짐작조차 나는 할 수가 없다. 다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지금 내가 간직하고 있는 이런 소중한 기억들만은 우직하게 붙잡고 있을 듯 싶다. 너무 보고싶다. 너무 보고싶다.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고 싶은데, 너무 그리운 마음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며 생각에 잠기고는 한다.





(1) 여행을 마치며.

5월 즈음에 일본 와주카에서 개최되는 워크캠프에 참가한다는 것이 확정되었고, 8월 14일에 출국을 하였으니 그 사이에 기다림은 오랜 기다림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작 떠나던 날과 돌아오는 날에는 아무것도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오히려 당사자인 나보다, 나를 배웅하던 가족들과, 워크 캠프 마지막 날 이별 파티에서 눈물을 흘리던 친구들에게 그것은 더 생생한 느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2) 일본의 첫 풍경.

짧든, 길든 비행기를 타고 어딘가로 날아가 낯선 공항에 서게 되면 불가피하게 일단은 피곤하다. 그러나 누구하나 마중 나온 이 하나 없이 평생 한 번도 닿아본 적 없는 어딘가를 찾아 떠나야 하는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크 캠프에 용감히 지원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범상치 않은 사람들이다.
길을 잃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더 멀리 갈 수 없는 법. 가볍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이 낯선 나라로 천천히 걸어들어 가는 것이다. 8월 14일 점심 시간즈음에 나는 일본에 도착했다. 몸이 피곤하니까 북적거리는 공항이 불편했다. 나는 곧바로 간사이 공항을 떠나 오사카, 그 도심 속으로 걸어갔다.

아직은 한국말이 주위에서 간간이 들려왔다. 아직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었으리라. 주위를 둘러보아도 온통 일본말 뿐인 표지판들, 간혹 한국어와 영어가 있기는 하지만 모두 지명을 표기한 표지판들이라 낯설기는 마찬가지 였다. 내가 아는 지명은 오로지 '오사카'뿐이었다. 그 외에 마을, 정거장 역 이름들을 내가 무슨 수로 숙지하고 있을 수 있었을까? 우선은 다른 여행자들을 쫓아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를 타고 달리는 동안 내 시선은 오직 창 밖의 풍경속에 잠겨 있었다. 기차가 멀리 나아갈 수록 무심히 스쳐져가는 창 밖의 풍경들 속에서, 나는 일본에서만 볼 수 있는, 무언가 일본만의 풍경을 찾고 있었던 것 같다.
오후 2시 즈음엔 오사카 어느 도심 속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사카의 여름 날씨는 30도를 우습게 넘겨 버리는 고온 다습이었고, 그것은 본래 더위를 잘 타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반가운 일은 못 되었다.
오랫 동안 기대했던 오사카였지만, 해가 지고 더위가 조금 흐려질 때까지는 아주 잠깐 동안만 쉬고 싶었다. 미리 예약했던 호텔에 도착해서 가볍게 짐을 풀고 침대 위에 몸을 던졌더니, 책상 위에 놓아둔 아직 베터리가 빵빵한 카메라가 후딱 일어나라며 투정을 부렸다.

나의 시선 속에 오사카는 쇼핑의 도시였다. 개인적으로 쇼핑을 별로 즐겨하지 않는 나에게는 오사카의 그런 모습이 크게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밤에 어느 거리를 쏘아 다녀도 무언가 내가 먼저 기대했던 일본적인 풍경은 보이지 않았고, 오직 일본의 살인적인 물가만 나를 자꾸 가난하게 만들었다. 가계 종업원들은 친근하게 미소짓는 얼굴로 나의 엔화를 쓸어갔다. 한 번 외출을 하고 돌아오면 나의 지갑 속은 선명하게 공허해져갔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가져온 돈은 모두 1만 8천엔.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20만원 정도 되는 적지 않은 거금이다(적어도 나같은 서민에게는 그러하다). 그런데 오사카에서 1만 8천엔은 한여름의 아이스크림이다. 가만히 두면 순식간에 녹아 사라져버린다. 냉동실에 안전하게 숨겨 놓아야만 한다. 워크 캠프 미팅 포인트까지 찾아 가려면 또 따로 교통비도 아껴두어야 했다. 오사카에서 보냈던 3일은 이 아이스크림을 사수하기 위한 긴장의 연속이었다.



(3) 사람들.

어찌어찌하다보니, 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미팅 포인트에 일찍 도착하고 말았다. 나와 같이 일찍 도착한 참가자들과 먼저 인사를 하고 얘기를 나누며 기다리다보면 뒤이어 다른 참가자들이 하나 둘씩 도착했고 그렇게 우리들은 처음 만나게 되었다. 그 때 만난 사람들이 바로 앞으로의 2주 동안 그 숱한 우여곡절과 희로애락을 함께 공유할 친구들이었다.

한국인은 없었다. 사실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다. 오래 공부한 탓에 개인적으로 나는 영어가 친근하게 느껴졌다. 영어로 의사 소통 하는 것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다양한 나라에서 찾아온 친구들. 아직은 서로 낯설게만, 그리고 다르게만 보이는 친구들이였기에 그 순간 우리에게는 서로에게 대한 많은 호기심과 이야깃거리가 있었다.

스폐인에서 날아온 펠릭스(나의 무슬림(?) 형제, 우리는 잦게 서로 무슬림 흉내를 내며 사람들을 당혹시키는 것을 즐겼다)와 자토(닉네임; 본래 이름은 아르한도르 뭐시기인데 매우 어렵다). 타이완에서 날아온 나의 bro, 췬린. 나와 가장 먼저 만난, 워크 캠프동안 나의 '잔소리 꾼 엄마'역할을 맡아준 슬로바키아에서 온 올가(내가 음식을 남기거나 시무룩하게 앉아있으면 어김 없이 나타나 "음식 남기지 말아라", "웃어라"라며 잔소리를 했다). 그리고 일본인 친구들(모두 여자), 시케(나의 고민 상담가), 미쿠(굉장히 조용한 친구이다), 아즈(나의 음악적 동료), 와카나(나의 고민).
그리고 미팅 포인트를 떠난 뒤 만난 친구들, 루이스(첫 주를 우리와 함께 보내고 떠난 나의 게이(?) 파트너), 눈(일본인 여자 아이, 첫 주 동안 우리의 리더이자 지역 사람들과 대화를 위해 통역가 일을 맡았다), 그리고 그 날 밤 가장 늦게 도착한 독일에서 날아온 나의 (워크 캠프 동안의) 여동생, 필리즈.
그리고 첫 주를 우리와 함께 보내고 떠난 우리의 리더 눈의 뒤를 이어 찾아온 우리의 새 리더, 나의 Best friend, 마루(본명은 히로키인데 사람들은 닉네임을 선호하여 마루라고 불렀다. 나는 히로키라고 불렀다). 마지막으로 가장 늦게 우리 팀과 합류한, 타이완에서 날아온 티니(나는 종종 티나라고 이름을 잘 못 기억해서 그녀를 당혹시키고는 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local people). 쉽게 말하면 시골 농부들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에게는 질박함이 있었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짙은 사람 냄새가 있었다. 그리운 사람들이다. 정말 그리운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내가 더 그곳이 그리운 것일 것이다.

한 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 나의 워크 캠프 개최지는 일본의 와주카(Wazuka)라는 작은 시골 마을 이었는데, 이 마을은 '차(Tea, 茶)'로 유명한 곳 이다. 마을 사람들 집집마다 자기 차 밭을 소유하고 있다.
어느 날에는 내가 사람들에게 "이 곳에서 생산되는 차의 수량은 어느 정도입니까?"하고 물었더니 다들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어떤 아저씨가 장난 스럽게 "two ton"이라고 대답했다.
"그것을 현금으로 환산하면 얼마입니까?"라고 내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그저 웃으며 잘 모른다고 했다.
진심인지 쑥스러웠던 것인지, 혹은 내가 실례였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때 그 사람들의 모습에 나는 깊은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4) 일.

어렸을 때는 아주 짧게 농부가 되는 꿈을 꾼 적도 있었던 것 같다. 이번 워크 캠프에서 나는 그 꿈을 부분적으로 실현했다.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완전한 실현이었으면 외려 낭패를 볼 뻔 했다. 정말 너무 힘들었다. 너무 고된 일이었다.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어렸을 때 이런 말을 하는 친구를 보면 "저,저런 쳐 죽일..."하며 이를 갈았는데 농사일 하면서 다시 생각해보니 일리가 있는 말인 듯 싶었다.

우리의 미션(mission)은 차(tea) 밭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것이었는데, 주로 잡초 뽑기, 거름 주기 등 이었다. 여기 조용히 앉아 써놓고 보니 별 것 아닌 것 처럼 보이지만, 정말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한 번은 지역 주민들을 괴롭히는 야생 원숭이(일본에는 정말 야생 원숭이가 있다. 밭에서 이런저런 야채, 과일들을 훔쳐가거나, 이런저런 시설들을 망가뜨리는 주범이었다. 한 마리를 잡으면 상금 7,000엔은 획득할 수 있다)를 쫓는 일을 맡기도 하였다. 임무를 위해 지급 받은 굵직한 방망이를 붙잡으니 괸한 설렘임에 빠져들어 미친듯이 숲속을 헤집고 다니다가 깊은 산 속에서 길을 잃기도 하였었다.

원숭이들은 영리했다. 몽둥이를 들고 쫓아오는 나를 깊은 산 속으로 유인한뒤 적당한 곳에서 소리없이 나만 놔두고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사람들이 나를 찾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질러 주어 길을 찾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5) 약속.

여행을 하다보면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낯선 곳으로 가게 된다. 나도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수 많은 곳에 다녀왔고, 수 많은 사람들과 만나왔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을 어쩌면 나는 평생 다시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것은 너무 슬픈 일이다. 늘 떠날 때마다 진심으로 다시 돌아오겠다며 약속을 했었는데 아직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또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그 약속을 언제 지킬 수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다음에는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더 능숙한 일본어를 구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까지 했는데, 어깨가 많이 무겁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워크 캠프 동안 너무 좋은 기억들을 갖게 된 몇몇 친구들은 몇 차례 다시 돌아오기도 하였다고 한다. 내 친구 루이스도 그 케이스인데, 이 친구는 나와 만났을 때가 벌써 세 번째 시간이었다고 했다(이 기록은 현재까지 깨지지 않은 최고 기록이다). 어째 나도 이 친구를 따라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6) 다음 여행을 준비하며.

내가 어렸을 때는, 시간은 늘 나를 앞서가기만 했다. 심술 난 소녀처럼, 가만히 앉아 쉬고 싶은 나를 내버려두고 먼저 걸어가기만 했다. 이제서야 나도 시간을 쫓아 나란히 걸어가고 있다. 이리저리 부딪히고 길을 잃어보며 나는 지금 내 젊은 날을 살고 있다.

몇년 전, 내가 우연히 워크 캠프 공고지를 처음 발견하고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워크 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배낭을 들고 길을 떠났을 때, 처음으로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하였다. 내 앞으로의 꿈과 미래에 대한 구상도 달라졌고, 내가 사는 오늘도 달라졌다. 모든 것이 정말 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서야 나는 실감이 난다. 이번 워크 캠프동안, 내가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었고, 또 그곳이 어떤 곳이었는지 이제서야 실감이 난다.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과, 이제 그곳을 떠났다는 사실이, 나는 이제서야 실감이 나기 시작한다.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너무 그리운 시간이다. 너무 고마운 시간이었다.





에필로그(Epilogue) ; 모든 이야기를 다 기록하고 싶었는데 쉽지가 않다. 어떻게 나의 느낌과 기분을 있는 그대로 서술할지 알 수가 없다. 문자는 텅 비어있고, 나는 가득 차 있다. 나의 생각과 느낌은 언어 건너편에 있고, 언어는 그 표면만 비출 뿐이다. 다만 너무 좋았다고, 행복했다는 얘기만 길게 늘어놓고 있다.

모든 친구들이 나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내 친구들을 봐도 알 수 있다. 어떤 친구들은 이런 일에 전혀 관심이 없고, 어떤 친구들은 관심은 있지만 행동은 없으며, 어떤 친구는 가고 싶지만 갈 수가 없다. 나는 조금 무리해서 다녀올 수 있는 친구이다. 나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인 것이다. 나는 언제나 또다른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다.

모두 떠나오고 나서 보니 미처 내가 하지 못했던 일들과 얘기들이 너무 많은 것 처럼 보인다. 조금 더 잘했으면 좋았을 것을, 이 때는 이렇게 얘기했으면 더 좋았을 것을. 아직은 그런 생각들이 놓아지지가 않는다. 아직은 놓아지지가 않는다.
The end.


P.S. 그런 곳에서 그런 사람들과 만날 수 있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