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텐트에서 꽃핀 10개국 우정

작성자 최종고
프랑스 CONC 159 · RENO 2013. 08 Liuevillers

LIEUVILLER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Lieuvillers(프랑스, 워크캠프)에서 보낸 3주간 캠프는 싱가포르(6개월, 교환학생)와 더블린(아일랜드, 5주, 어학연수)에서 보낸 시간보다 많은 문화교류를 이뤘다. 워크캠프가 교환학생, 어학연수 프로그램보다 더 많은 교류를 이끌 수 있었던 이유는 외국인 친구들과 24시간 함께했기 때문이다. 하나의 텐트에서 2-3인이 묶었고, 캠핑장은 마을의 축구경기장에 마련됐다. 경기장 탈의실에 짐을 놓고 샤워도하고 화장실을 썼다. 경기장에는 Bar같은 장소가 있는데 우리는 그곳을 부엌, 식당으로 이용했다. 이곳에서 밤낮으로 각자 언어에 대한 이야기, 유럽, 아시아 문화에 대해 각자 궁금했던 점, 음식이야기 등 사사로운 이야기들을 하곤 했다. 캠프원은 프랑스인 리더 둘(작업리더, 생활리더)을 포함하여, 스페인2, 터키2, 이탈리아2, 러시아2, 콩고2, 슬로바키아1, 영국1, 일본1, 대한민국1 이상 16명의 10개국인으로 구성되었다. 내게 낯설었던 몇 가지를 뽑아보자면,

1.유럽 애들이 대화중 가끔 입으로 내는 이상한 소리 (얘네들은 입을 닫고 입술사이에 혀를 내민 채 바람을 내는 소리를 자주하곤 한다. 굉장히 무례해 보이는데 어른들도 자주 하곤 한다.)
2.각종 손짓
3.더러운 테이블, 잔디 위에 음식들(가장 대표적인게 빵)을 턱턱 올려놓는 것
4.설거지를 대충하고, .내 눈에 더러워 보이는 수건으로 물기를 척척 닦아내는 것
5.모두가 큰 타월을 샤워 뒤 쓰는 것(수건 옷같은 것도 있다.)
6.우리나라 사람이 고추장 쓰듯 유럽에선 버터와 치즈를 쓴는 것
7.유럽 애들은 배려심이란 없고, 특히 같은 국가 사람끼리 뭉치면 수줍어하던 애들도 미친놈처럼 이상해진다는 것

그 친구들이 내게 물어봤던 것은 왜 한국인은 개를 먹냐, 산낙지를 먹냐, 넌 왜 헤어드라이어를 가져왔느냐, 왜 염색을 했느냐, 태권도 할 줄 아느냐, 양궁 할 줄 아느냐, 강남스타일 따라 부를 수 있느냐 등이었다. 가장 의외의 질문은 헤어드라이어와 염색에 관한 질문이었다. 헤어드라이어는 여성만이 쓰는 기기로 인식을 하고 여성조차 잘 안 쓰는 국가도 많았다. 이에 대한 증거가 16명의 캠프원 중에 나 혼자 헤어드라이어를 가져왔다. 그리고 염색에 대해서도 굉장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고 보면 해외 축구를 보든, 영화를 봐도 염색을 한 선수를 보거나 영화배우를 본 적이 없던 것 같다.
이런 저런 대화를 하면서 느낀 각 국가별 성향은 이랬다. (아일랜드에서의 친구들과 프랑스에서 만난 친구들을 바탕으로 생각함.) 이탈리아=생각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뱉고, 무례하다. 프랑스=보기에 좋지 않은 것은 먹지 않고, 프랑스가 최고라 생각한다. 영국=프랑스와 유사하다. 터키=유럽도 아시아도 아닌 자국은 유라시아라고 칭하는 자부심, 그리고 터키인의 사고는 동아시아문화랑 비슷한 편이다.(타인의 눈치를 살피고, 예의를 안다는 것) 바스크(스페인)=활발하고, 타 문화를 이해를 잘해주는 편이다. 스페인 아이들은 무턱대고 다른 문화를 거부하지 않는다. 노래를 좋아하고 일을 할 때 즐길 줄 안다. 전체적 분위기가 주위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주는 스타일. 일본=엄청 조심스럽게 행동한다. 외국 생활에 대한 큰 기대가 있다.

건축학을 전공하면서 학교 프로젝트 외에 설계사무소에서 인턴십도 해봤지만 건축현장경험은 전혀 없었다. 그러다 현장경험 기회를 잡았다. 국제워크캠프기구(International Workcamp Organization 이하 IWO)에 재건축 프로젝트를 신청한 것이 수락된 것이다. 이렇게 난 작은 건설현장 경험과 동시에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IWO와 협력된 ‘콩코디아’라는 단체는 전 세계에서 지역 재건축 봉사를 계획하는 곳이다. 콩코디아가 프랑스 Lieuvillers에서 계획한 것은 오래된 농장건물의 허물어진 한 쪽 벽면을 재건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비계가 5층으로 쌓여있었다. 그 위에서 정과 망치로 모르타르를 제거하고 흔들리는 벽돌을 제거 또는 부숴 진 벽돌을 제거하는 것이 첫 번째 임무였고, 두 번째는 다시 벽돌을 쌓아 벽을 완성하는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와 스페인 친구들로부터 일하는 요령, 기술 등을 보고 배웠다. 예를 들어, 모르타르 만드는 법, 모르타르를 쉽게 삽으로 퍼서 옮기는 법, 모르타르 만드는 기계에 모래를 퍼 넣는 법, 벽돌 깨는 법, 돌을 깎는 법, 안전장비 착용 법, 전기톱 이용방법 등이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손기술은 벽돌과 벽돌 좌우 사이에 모르타르를 바르는 방법이었다. 현장에서 일을 직접해보는 것은 중요하다. 나중에 사회에서 내가 건축가로서 일을 하거나 기업에서 일을 할 때 현장 근로자의 여건이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작업상 문제들, 그리고 설계상 문제들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건물 하나를 짓기 위해서 생각보다 많은 노동자가 필요함을 알았다. 규모가 큰 건물은 기계의 힘을 어느 정도 빌릴 수 있지만 작은 건물은 모두 사람의 힘으로 해야 한다. 도르레를 이용한 운반부터 모르타르 제작, 벽돌 쌓기 등을 수행한다. 중간 중간 휴식시간도 중요하고 작은 간식도 일률에 큰 영향을 미친다. 건축학을 공부하며 벽돌 공사를 가장 쉽게 생각했는데 생각만큼 대단한 기술이 필요한 작업은 아니였지만 정교한 작업이었음을 알았다. 현재 캠프를 마친 나는 다른 시공법이 궁금하다. 그래서 또다른 국내 해비타트와 해외 건축봉사를 알아보고 있다. 전공경험과 봉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인가. 비록 좋은 환경에서 이뤄지지는 않지만.

Lieuvillers: 내가 3주간 일하고 생활한 마을이다. 파리북역에서 한 시간 가량 기차를 타고 도착한 Saint Just en Chaussee역, 그리고 Lieuvillers 마을주민의 차를 타고 15분 이동해서 도착한 마을은 내가 여태 만나본 도시, 마을 중에서 가장 동화 속 마을 이미지에 가까웠다. 마을 중심에는 교회가 있고, 30분마다 그 교회종이 마을에 울려 퍼진다. 그리고 꽃이 가득한 거리, 마을을 둘러싸는 나무길, 고층빌딩 하나 없이 구름과 하늘을 한껏 받아들이는 마을이다. 이른 아침, 자전거를 타고 논에 나가면 내 소리에 놀라 밥 먹던 새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농작물을 갉아먹고 있던 토끼들은 전속력으로 도망친다. 토끼가 빠르다 빠르다 듣기만 했지 그렇게 빠른지는 처음 보았다. 3주라는 한정된 시간이 이 마을에서의 생활을 아름답게 포장해준 것이 있겠지만 그보다 더 살고 싶었던 마을이다.
Amiens: 리더 Clement와 Melaine은 항상 말했다. 파리의 노틀담이 프랑스에서 최고의 성당이 결코 아니라고, 자신들이 사는 Amiens에는 파리 노틀담보다 2배는 더 큰 노틀담이 있다고 자랑했다. 그러다 둘째 주말에 Amiens에 가게 되었다. Amiens는 수도 파리만큼 매우 크진 않았지만 꽤 발전된 도시였다. 어린 Glody는 내심 시골마을 Lieuvillers가 프랑스를 대표하는 마을로 우리마음 속에 기억될까봐 걱정했었나보다. Amiens을 둘러볼 때, 자신있게 ‘이것이 프랑스다.’라며 외쳐대던 것이 귀여웠다. 우습기도 했다. 내가 사는 수원시보다도 한참 덜 발전된 도시를 보고 감탄해주기를 바라다니. 그 친구가 조금 더 성숙해서 때론 Lieuvillers같은 예쁜 마을이 정작 프랑스의 자랑임을 알았으면 좋겠다. 각설하고, 정말로 Clement와 Melaine이 말한대로 아미앵의 노틀담은 정말 컸다. 그리고 노틀담 라이트쇼는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본래 성당들은 색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성당을 장식하는 각각의 장식이나 조각상들이 색을 지니고 있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물과 바람에 의해 마모되었단다. 과거 성당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알 수 있었다.
Compiegne: 나폴레옹과 잔다르크의 도시이다. 그 중 콤피엔느 성의 정원이 정말 거대하고 아름답다. 흡사 우리나라 남이섬의 나무길과 흡사한 길이 어마어마하게 길게 있다. 그 길들 사이사이에는 거대 잔디밭이 있다. 나폴레옹의 권위를 보는 듯 했다. 콤피엔느엔 유네스코에 등록된 성당도 있고, 앞으로 규모있는 관광도시로 발전하고 싶은 의지가 담긴 다양한 전시관들이 있었다. 프랑스 역사를 볼 수 있는 피규어 박물관과 갤러리, 박물관, 수도원 역사관 등이 있었다. 이 모든 관광지는 도보로 구경할 수 있었는데 흐름있는 관광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 프랑스는 도시 속에 역사가 있어서 좋은 듯 하다. 굳이 도시 외곽으로 가서 문화를 만나기보다 도보로 수시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강점으로 보였다. 언제든 도시를 계획할 때 이 점을 고려하며 설계할 것 같다. 역사가 주는 그 도시의 정체성과 자부심은 위대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유럽인들의 성문화, 일본인과 나눈 한국과 일본의 문제들을 쓰고자 한다. 8월 26일, 러시아 애들이 자국으로 돌아갔다. 그 당시 나는 캠프에서 피로함을 느끼고 있었다. 피로를 느끼게 하는 요소중 하나가 섹스였다. 러시아 여자 애들은 계속해서 남자와 섹스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왜냐하면 이 워크캠프에 온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른 유럽인들에게도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이탈리아애와 영국애는 사귀기 시작했고, 이에 부러움을 느낀 러시아애들은 마구 작업을 해대기 시작했다. 내게도 유혹을 했고, 뒤이어 터키 애들한테 작업을 걸었다. 이 작업은 성공하는 듯 보였으나, 터키 애들도 큰 유혹은 아니였는지 거부했다. 결국에 돌아가기 전날 8월 25일 러시아 친구들은 안드레아와 사비라는 의외의 인물들과 섹스를 했다. 결국엔 모두가 아닌 듯 하며 눈치를 보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 친구들에겐 굉장히 쉬워보인다. 영화에서 보던 것이 특별한 것이 아닌 이들의 일상이었다. 내게 특별한 인연같아 보이던 영화 속에서 여행지의 원나잇이 그저 평범한 유러피안 라이프였던 것이다. 떠나기 전날, 앞으로 다시는 볼일 없는 두 사람간의 섹스, 얼마나 쉽고 깔끔한다. 이것이 이들의 문화였다.
8월 24일, 나는 치아키와 한국과 일본에 대해 이야기 했다. 정치적, 역사적, 경제적 문제를 나름 최선을 다해 대화했다. 물론 그것엔 독도 문제도 있었고, 현재와 과거의 대통령 문제, 역사인물 안중근에 대해서, 한일 역사교육에 대해서, 엔화저가 정책에 대해서, 왜 이명박 전 대통령은 퇴임식에서 일본에 대해 안좋게 표현했는가 등에 관해 이야기 했었다. 그리고 치아키가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유럽문화에 대해 조금 더 쉽고 가볍게 적응하도록 조언도 해주었다. ‘너는 미안하다는 표현을 너무 자주하고, 다른 캠프원의 눈치를 너무 본다. 그리고 너무 이타적이다’라는 등의 조언을 해줬다. 대화를 유연하게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내가 한국에서 배운 바로는’ 따위의 가정을 먼저 이야기 하고 의견을 이야기 했다. 일본의 자위권문제, 위안부 문제, 왜 한국이 독도 문제에 관해 국제법정에 서는 것을 회피하는지에 대한 이유, 무엇이 불공정하고 무엇이 왜곡되고 폐기 되었는지에 관해 내가 아는 범위 내에서 전해주었다. 다행스럽게도, 나 역시 크게 관심있는 분야였고, 치아키 역시 알고 싶어하는 주제였기에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워크캠프는 24시간 외국 친구들과 함께함으로써 몸소 익힌 유럽문화와 건축 현장 일을 직접 경험을 내게 자산으로 주었다. 이 경험들을 바탕으로 자신감 있게 외국인을 만날 때 대화해 나갈 수 있을 것 같고, 현장 기술자 분들과 대화를 나눌 때도 그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학을 위해 만난 친구들이 아닌 봉사를 위해 모인 지원자들이기에 조금 더 따뜻한 감정을 나눴다고 생각한다. 내가 현 20대를 살아가면서 큰 영향을 미친 것들이 있다. 첫 번째는 대한적십자사에서 일한 것이고, 두 번째는 싱가폴국립대학에서 교환학생을 한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한 워크캠프가 내 20대 때의 세 번째로 영향력 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 반드시 워크캠프를 하는 데 한 번의 기회가 더 내게 주어질 것이라 믿고 그 때 결코 망설임 없이 참가를 선택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