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러시아, 소통과 고립 사이에서 찾은 가능성
HOP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러시아,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 처음 러시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충동적이지만 '러브 오브 시베리아'라는 영화를 통해서였다. 눈이 펑펑오는 제정 러시아와 침엽수들이 펼쳐진 시베리아의 풍광은 나를 러시아라는 나라로 이끌었다. 사람들이 러시아에 대해 가지고 있는 폐쇄적인 이미지만큼이나 러시아는 외국인에게 친절한 나라가 아니다. 러시아를 여행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격는 가장 큰 문제는 러시아인들 대부분이 러시아어 외의 언어를 전혀 못한다는 점이다. 나 역시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여행을 계획하며 어떻게 하면 러시아어를 전혀 못하는 내가 러시아인들의 삶을 느끼고 그들과 진지하게 소통을 할 기회를 가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선택하게 된 것이 2주간의 워크캠프였다. 영어로 소통하는 워크캠프라면 나의 부족한 영어실력 외에는 의사소통에 크게 문제되는 것이 없을 것이고, 2주간 러시아 캠퍼와 다른 나라 캠퍼들과 함께 생활하며 봉사활동을 하면 러시아에 대해 보다 가까이에서 알아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일단 러시아로 워크캠프를 가기전 한국에서 준비해야하는 것들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자였는데,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현지 초청장이 필요했다. 캠프에서 초청장을 보내주는 것도 가능했지만 나는 앞뒤로 1주일씩 여행을 하기로 되어있어서 메일로 상담을 한 뒤에 1달간 머물기 위해서는 여행사에서 따로 초청장을 받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 이 캠프는 아픈 어린이를 위한 시설이어서 그런지 의료기관에서 발급한 질병 진단 확인서 같은 것이 필요했는데, 현지에서도 할 수 있는지 현지 캠퍼와 상의해서 나는 그쪽에 도착한 후 검사를 받기로 했다. 아이들을 위한 선물은 제기와 공기를 준비했는데 나중에 국기나 다른 것을 좀 더 준비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조금 후회가 되었다. 숲속으로 캠핑을 갈 수 있으니 침낭을 가져오라는 지시사항이 있어 침낭과 다른 기본적인 비상약 여행용품을 챙겨 러시아로 떠나게 되었다.
캠프가 열리는 스몰렌스크는 모스크바에서 기차로 5시간 정도 걸리는 소도시로 모스크바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매일 기차가 있고 모스크바의 벨랏루스까야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니 정확히 예정된 시간에 스몰렌스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스몰렌스크에서는 캠프 리더인 싸샤가 역으로 마중을 나와 주었기 때문에 캠프까지 가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캠프 내에는 캠퍼들을 위한 방이 있었고 나는 6명이 함께 쓰는 방을 사용하였다. 우리방에는 침대와 물건들을 넣을 수 있는 서랍과 책상등이 있었기 때문에 지내는 데에는 크게 불편이 없었다. 식사는 항상 식당에서 아주머니들이 해주신 음식을 먹었는데 러시아 식으로 빵과 감자 등이 나오고 점심때에는 주식 외에도 수프와 간단한 후식도 항상 나왔기 때문에 식사 역시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캠프에서의 여러 일정들은 대부분 잘 짜여있어서 크게 불만 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 캠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언어였다. 처음 한국에서 캠프를 지원 할 때 보통 프랑스나 다른 나라의 경우 현지 언어가 영어보다 중요시될 경우 그에 대해 사전에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영어'를 사용한다고 표기한 이 캠프에 지원을 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다른 캠퍼들을 만나보니 러시아어를 못하는 캠퍼는 나와 이탈리아인 발렌티나 둘 뿐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 러시아어를 모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러시아어로 소통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중 반 이상이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기 때문에 캠프의 모든 일과 행사들은 다 러시아어로 진행 되었다.
이 점이 다른 무엇보다 나를 괴롭게 했는데, 회의를 하거나 행사를 진행할 때 무슨일 일어나는지도 전혀 알 수가 없었고 내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다. 어떤 일이 결정되거나 일정이 바뀌거나 하면 영어를 할 수 있는 캠퍼들이 통역을 해주는 정도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참기가 어려웠던 것은 다른 캠퍼들끼리 농담을 할 때였다. 밤마다 같이 모여 대화를 하고 서로 러시아어로 농담을 하며 웃을 때에는 왜 웃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 때마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이 크게 잘 못된 결정처럼 느껴졌고 같은 캠퍼지만 나만 캠프의 일원이 아닌것 처럼 느껴졌다. 어떤 때에는 내가 바보처럼 느겨지고 어떤 때에는 영어를 쓰는 줄 알고 온 것이 사기당한 것처럼 화가 나기도 해서 그냥 돌아가서 혼자 여행이나 더 하는게 나은 것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갈등과 외로움 속에서도 캠프에 남아 2주를 보냈던 것은 HOPE 캠프의 사람들 때문이었다. 내가 언어문제로 힘들어 한는데 대해 다른 캠퍼들이 언어가 통하지는 않았지만 나와 소통하려 노력해주는 모습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캠프 안의 아이들 역시 말이 통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조그만 노력 하나에도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미소를 보고 있자니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처음 2~3일간은 말없이 사는데 적응이 되지 않아 아이들과도 다른 캠퍼들과도 소통하기가 힘들고 섬에 있는 듯이 외로웠지만 다른 방법으로 소통하려고 노력하니 점점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이후에도 여러모로 힘든 순간들이 많이 있었다. 소심하고 낯가림이 심한 나는 다른 사람들이 러시아어로 이야기 하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벙어리처럼 입다물고 있을 때가 많았는데 말이 안통해도 아무렇게나 친근하게 농담을 던져대던 이탈리아인 발렌티나를 보며 나의 이런 모습들에 대해 크게 반성했다.
캠프에서의 일과는 보통 일어나 아침운동을 한 후에 아침식사를 하고 점심 먹기 전까지 정원을 돌보거나 청소를 하는 등의 간단한 일을 하였다. 점심 식사 후에는 보통 3시나 4시정도 까지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이 시간에는 근처 상점에 가서 군것질 거리를 사오거나 낮잠을 자거나 빨래, 방청소를 하곤 했다. 오후 일정은 대개 불규칙해서 간단히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교육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어떤 날은 시내에 있는 관광지들을 둘러보고 어떤 날은 행사나 역할극을 하는 등 그날 그날 다르게 진행이 되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조금 큰 아이들과배구나 탁구등 운동을 하거나 캠프파이어를 한다던지 바베큐를 먹기도 하며 자유시간처럼 쓰였다. 9시에서 10시 정도에는 다같이 창고에 모여 다과를 먹으며 다음날 할 일에 대해 논의하거나 농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캠프에 도착한 다음날에는 각자 자신의 나라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나는 태극기를 가져가지 않아서 넷북으로 태극기를 띄워놓고 프레젠테이션을 한 것이 몹시 아쉬웠다. 다음 날은 아이들에게 한국 전통춤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강강술래를 가르쳐 주었는데 낯설어 하면서도 러시아에도 비슷한 놀이가 있는지 잘 따라하는 것이 신기했다. 이 캠프에는 동양인이 나 뿐이었고 지금까지도 거의 온적이 없었는지 한국 문화에 대해 아이들은 물론 캠퍼들도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한국어와 한글이 있다는 것 조차도 모르는 캠퍼들에게 한글을 보여주고 한국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싸이와 김정은 밖에 없는 캠퍼들을 보며 아직 우리나라가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프게 와닿기도 했다. 혹시 한국 요리를 만들 기회가 있을까해서 한국에서 감자전도 연습해보고 고기 양념도 조금 사갔는데 그럴 기회는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토요일에는 시내에 나가 맛있는 것도 먹고 난생처음 볼링도 해봤는데, 처음엔 전혀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거터로만 공을 보내던 나를 다른 친구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쳐준 덕에 나중에는 그냥 저냥 할 수 있게 되었다. 일요일에는 숲으로 캠핑을 가게 되었는데 인포싯에는 나도 침낭을 가져와야 한다고 했지만 이미 캠프에 구비된 침낭이 있어서 나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숲에서 캠핑에 대해 조금 배웠는데, 나침반 보는 법을 설명해주시던 Mr.Kind라는 할아버지분의 친절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이날은 러시아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 하며 다른 캠퍼들과 장난도 치고 정말 증겁게 보냈던 하루중 하나였다. 두번째 주에는 평일날 오전 오후에 잠깐씩 시간을 내서 근교에 있는 메모리얼 파크도 가고 시내에 있는 성당과 공원에도 갔다. 소련의 폴란드인과 자국민에 대한 학살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든 메모리얼 파크는 아직도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 때문인지 정말 인상적이었다. 스몰렌스크 시내의 성당은 상트에서 봤던 성당들 못지않게 아름다워 스몰렌스크 사람들의 신앙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HOPE 캠프에서의 2주는 생각해 보면 항상 즐겁지만은 않았다. 말이 안통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못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함부로 추천 할 수도 없는 캠프였다. 다 포기하고 싶을만큼 외롭고 힘들었던 시간들도 있었고 모든것을 잊을 수 있을만큼 행복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정말 이 시간들이 스페인 캠퍼 로자의 말처럼 나를 좀 더 강하게 만들어 주었을까? 알수없다. 하지만 몇번이나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던 캠프였는데도 막상 안녕이라고 말하고 나니 눈물이 쏟아졌다. 이 캠프를 통해서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 할 얼굴들이 마음속에 생겨났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언어가 안통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먼저 눈빛으로 미소로 다가와준 캠퍼들과 아이들의 얼굴들을 나는 평생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러시아어를 배워야 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것도 이들 때문이었다. 만약 한번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무 고마웠다고.
일단 러시아로 워크캠프를 가기전 한국에서 준비해야하는 것들은 여러가지가 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비자였는데, 비자를 받기 위해서는 현지 초청장이 필요했다. 캠프에서 초청장을 보내주는 것도 가능했지만 나는 앞뒤로 1주일씩 여행을 하기로 되어있어서 메일로 상담을 한 뒤에 1달간 머물기 위해서는 여행사에서 따로 초청장을 받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또 이 캠프는 아픈 어린이를 위한 시설이어서 그런지 의료기관에서 발급한 질병 진단 확인서 같은 것이 필요했는데, 현지에서도 할 수 있는지 현지 캠퍼와 상의해서 나는 그쪽에 도착한 후 검사를 받기로 했다. 아이들을 위한 선물은 제기와 공기를 준비했는데 나중에 국기나 다른 것을 좀 더 준비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조금 후회가 되었다. 숲속으로 캠핑을 갈 수 있으니 침낭을 가져오라는 지시사항이 있어 침낭과 다른 기본적인 비상약 여행용품을 챙겨 러시아로 떠나게 되었다.
캠프가 열리는 스몰렌스크는 모스크바에서 기차로 5시간 정도 걸리는 소도시로 모스크바에서는 아침 저녁으로 매일 기차가 있고 모스크바의 벨랏루스까야에서 출발하는 기차를 타니 정확히 예정된 시간에 스몰렌스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스몰렌스크에서는 캠프 리더인 싸샤가 역으로 마중을 나와 주었기 때문에 캠프까지 가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캠프 내에는 캠퍼들을 위한 방이 있었고 나는 6명이 함께 쓰는 방을 사용하였다. 우리방에는 침대와 물건들을 넣을 수 있는 서랍과 책상등이 있었기 때문에 지내는 데에는 크게 불편이 없었다. 식사는 항상 식당에서 아주머니들이 해주신 음식을 먹었는데 러시아 식으로 빵과 감자 등이 나오고 점심때에는 주식 외에도 수프와 간단한 후식도 항상 나왔기 때문에 식사 역시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캠프에서의 여러 일정들은 대부분 잘 짜여있어서 크게 불만 될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 캠프의 가장 큰 문제점은 언어였다. 처음 한국에서 캠프를 지원 할 때 보통 프랑스나 다른 나라의 경우 현지 언어가 영어보다 중요시될 경우 그에 대해 사전에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당하게 '영어'를 사용한다고 표기한 이 캠프에 지원을 했다. 그런데 막상 가서 다른 캠퍼들을 만나보니 러시아어를 못하는 캠퍼는 나와 이탈리아인 발렌티나 둘 뿐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 러시아어를 모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사용하는 나라에서 왔기 때문에 러시아어로 소통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중 반 이상이 영어를 한마디도 못했기 때문에 캠프의 모든 일과 행사들은 다 러시아어로 진행 되었다.
이 점이 다른 무엇보다 나를 괴롭게 했는데, 회의를 하거나 행사를 진행할 때 무슨일 일어나는지도 전혀 알 수가 없었고 내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 했다. 어떤 일이 결정되거나 일정이 바뀌거나 하면 영어를 할 수 있는 캠퍼들이 통역을 해주는 정도였다. 다른 무엇보다도 참기가 어려웠던 것은 다른 캠퍼들끼리 농담을 할 때였다. 밤마다 같이 모여 대화를 하고 서로 러시아어로 농담을 하며 웃을 때에는 왜 웃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그 때마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이 크게 잘 못된 결정처럼 느껴졌고 같은 캠퍼지만 나만 캠프의 일원이 아닌것 처럼 느껴졌다. 어떤 때에는 내가 바보처럼 느겨지고 어떤 때에는 영어를 쓰는 줄 알고 온 것이 사기당한 것처럼 화가 나기도 해서 그냥 돌아가서 혼자 여행이나 더 하는게 나은 것 아닌가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갈등과 외로움 속에서도 캠프에 남아 2주를 보냈던 것은 HOPE 캠프의 사람들 때문이었다. 내가 언어문제로 힘들어 한는데 대해 다른 캠퍼들이 언어가 통하지는 않았지만 나와 소통하려 노력해주는 모습들이 너무나 고마웠다. 캠프 안의 아이들 역시 말이 통하지는 않았지만 나의 조그만 노력 하나에도 환하게 웃는 아이들의 미소를 보고 있자니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처음 2~3일간은 말없이 사는데 적응이 되지 않아 아이들과도 다른 캠퍼들과도 소통하기가 힘들고 섬에 있는 듯이 외로웠지만 다른 방법으로 소통하려고 노력하니 점점 나아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이후에도 여러모로 힘든 순간들이 많이 있었다. 소심하고 낯가림이 심한 나는 다른 사람들이 러시아어로 이야기 하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벙어리처럼 입다물고 있을 때가 많았는데 말이 안통해도 아무렇게나 친근하게 농담을 던져대던 이탈리아인 발렌티나를 보며 나의 이런 모습들에 대해 크게 반성했다.
캠프에서의 일과는 보통 일어나 아침운동을 한 후에 아침식사를 하고 점심 먹기 전까지 정원을 돌보거나 청소를 하는 등의 간단한 일을 하였다. 점심 식사 후에는 보통 3시나 4시정도 까지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이 시간에는 근처 상점에 가서 군것질 거리를 사오거나 낮잠을 자거나 빨래, 방청소를 하곤 했다. 오후 일정은 대개 불규칙해서 간단히 아이들과 놀아주거나 교육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고 어떤 날은 시내에 있는 관광지들을 둘러보고 어떤 날은 행사나 역할극을 하는 등 그날 그날 다르게 진행이 되었다. 저녁을 먹은 후에는 조금 큰 아이들과배구나 탁구등 운동을 하거나 캠프파이어를 한다던지 바베큐를 먹기도 하며 자유시간처럼 쓰였다. 9시에서 10시 정도에는 다같이 창고에 모여 다과를 먹으며 다음날 할 일에 대해 논의하거나 농담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캠프에 도착한 다음날에는 각자 자신의 나라에 대해 프레젠테이션을 했는데, 나는 태극기를 가져가지 않아서 넷북으로 태극기를 띄워놓고 프레젠테이션을 한 것이 몹시 아쉬웠다. 다음 날은 아이들에게 한국 전통춤을 가르쳐 달라고 해서 강강술래를 가르쳐 주었는데 낯설어 하면서도 러시아에도 비슷한 놀이가 있는지 잘 따라하는 것이 신기했다. 이 캠프에는 동양인이 나 뿐이었고 지금까지도 거의 온적이 없었는지 한국 문화에 대해 아이들은 물론 캠퍼들도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한국어와 한글이 있다는 것 조차도 모르는 캠퍼들에게 한글을 보여주고 한국에 대해 이야기 해주는 것은 새로운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싸이와 김정은 밖에 없는 캠퍼들을 보며 아직 우리나라가 많이 알려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프게 와닿기도 했다. 혹시 한국 요리를 만들 기회가 있을까해서 한국에서 감자전도 연습해보고 고기 양념도 조금 사갔는데 그럴 기회는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토요일에는 시내에 나가 맛있는 것도 먹고 난생처음 볼링도 해봤는데, 처음엔 전혀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거터로만 공을 보내던 나를 다른 친구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가르쳐준 덕에 나중에는 그냥 저냥 할 수 있게 되었다. 일요일에는 숲으로 캠핑을 가게 되었는데 인포싯에는 나도 침낭을 가져와야 한다고 했지만 이미 캠프에 구비된 침낭이 있어서 나는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숲에서 캠핑에 대해 조금 배웠는데, 나침반 보는 법을 설명해주시던 Mr.Kind라는 할아버지분의 친절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이날은 러시아의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 하며 다른 캠퍼들과 장난도 치고 정말 증겁게 보냈던 하루중 하나였다. 두번째 주에는 평일날 오전 오후에 잠깐씩 시간을 내서 근교에 있는 메모리얼 파크도 가고 시내에 있는 성당과 공원에도 갔다. 소련의 폴란드인과 자국민에 대한 학살을 잊지 않기 위해 만든 메모리얼 파크는 아직도 과거사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 때문인지 정말 인상적이었다. 스몰렌스크 시내의 성당은 상트에서 봤던 성당들 못지않게 아름다워 스몰렌스크 사람들의 신앙심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HOPE 캠프에서의 2주는 생각해 보면 항상 즐겁지만은 않았다. 말이 안통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되었기 때문에 러시아어를 못하는 사람에게는 절대 함부로 추천 할 수도 없는 캠프였다. 다 포기하고 싶을만큼 외롭고 힘들었던 시간들도 있었고 모든것을 잊을 수 있을만큼 행복했던 시간들도 있었다. 정말 이 시간들이 스페인 캠퍼 로자의 말처럼 나를 좀 더 강하게 만들어 주었을까? 알수없다. 하지만 몇번이나 떠나고 싶다고 생각했던 캠프였는데도 막상 안녕이라고 말하고 나니 눈물이 쏟아졌다. 이 캠프를 통해서 나에게는 평생 잊지 못 할 얼굴들이 마음속에 생겨났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언어가 안통함에도 불구하고, 아니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에게 먼저 눈빛으로 미소로 다가와준 캠퍼들과 아이들의 얼굴들을 나는 평생동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러시아어를 배워야 겠다는 새로운 목표가 생긴 것도 이들 때문이었다. 만약 한번이라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무 고마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