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음악 그리고 잊지 못할 여름
BLESLE MUSIC FESTIVAL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의 하고싶은 일, 해야했던 일 중에 혼자서 배낭여행을 떠나는 것이 있었다.
대학교 여름방학에 혼자 배낭여행을 떠나려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모아서 준비를 했다. 그러던 중에 워크캠프를 알게 되고 나의 무계획 배낭여행의 유일한 계획인 워크캠프를 집어넣게 되었다. 평소에 운동과 음악과 같은 엔터테인먼트를 좋아하던 나는 페스티벌의 워크캠프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의 음악 캠프를 찾게 되고 신청했다.
처음 프랑스를 가서 여행후에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블렐르의 기차역에 도착하게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캠프리더 두 명과 이미 도착해있던 스페인 참가자 친구 2명 프랑스 친구 1명을 만나게 되었다. 예정보다 일찍 만난 우리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다른 참가자들을 기다리며 가볍게 음료를 마시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워크캠프였다. 그런데 처음에는 서로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았다. 영어를 다들 잘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서로의 발음과 억양을 잘 이해하지 못 했다. 그래서 처음 도착했을 때 걱정하는 마음이 컸다. 유일한 동양인 남자가 혼자 와서 캠프에 참가하게 된 것이 그들에게도 낯설었다.
그런데 캠핑장에서 머물면서 점점 변하게 되었다. 나는 리옹에서 온 흑인 친구와 같은 텐트를 쓰게 되었는데 신기하면서도 점점 통하는게 많아지게되었다. 함꼐 운동을 하고 산책을 하며 많은 친구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우리 캠프는 프랑스에서 온 리더 포함 여섯명 그리고 스페인 친구 두명 터키 친구 두명 우크라이나에서온 친구 그리고 한국에서 온 나였다. 첫 날 저녁은 침묵이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갈 수록 활발해지면서 얘기도 많이 나누게 되었다. 서로의 문화 서로의 언어를 배워가며 캠프를 이뤄갔다. 그러면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하루하루 장을 보고 서로를 위해 음식을 해가며 생활하는 캠프 생활은 쉽지는 않았지만 나에게는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캠프를 하면서 음악축제일을 도우는 일은 더욱 값진 경험이었다. 프랑스의 실제 작은 시골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축제 관계자들 봉사활동자들 그리고 놀러온 친구들까지 만나게 되었다.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때로는 언어의 문제, 때로는 서로의 문화차이 등의 문제도 있었지만 그것은 과정일 뿐이었다. 캠프를 준비하며 마을 생활의 적응 되자 하루하루가 갈 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이 아까웠다. 친구들과 헤어질 시간도 온다는 것도 무척 싫을 정도였다.
축제를 위해 우리가 한 일은 포스터를 만들고 피켓을 만들고 설치를 위한 준비였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축제 일짜가 다가올 수록 점점 변하는 모습에 우리는 뿌듯함을 느꼈다. 3일 간의 축제에도 봉사활동 목걸이를 하고 축제를 위해 일할 때 축제에 관해 나에게 사람들이 물어볼때 뿌듯함을 느꼇다. 그리고 스페인 친구와 함께 매우 기초적인 불어로 바에서 일할 때 많은 사람들이 동양에서 온 남자인 나에게 불어도 잘하고 Merci라고 할 때 성취감을 느꼇다.
축제 과정이 순탄치 많은 않았다. 서로에게 작은 오해를 해서 갈등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여러나라 사람이 갈등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갈등은 당연한거고 그거를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근처에 있던 다른 캠프에 한국인들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캠프가 별로 재미도 없고 친구들도 별로라고 하였다. 집에 빨리 가고 싶다고 얘기하면서 캠프 친구들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과 잘 지내는 나를 매우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더욱 뿌듯하고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게 아까워졌다.
축제가 끝난 후 서로 헤어질 시간이 되었을 때 무척이나 아쉬웠다. 눈물을 보이는 친구도 있었고 서로에게 감사한다고 얘기하고 서로의 나라를 방문하고 싶어하고 다시 볼 날을 그리워 했다. 서로 꼭 만나자고 서로의 나라의 방문했을 때를 기약하며 아쉬움을 나누었던 캠프였다.
대학교 여름방학에 혼자 배낭여행을 떠나려 아르바이트를 하고 돈을 모아서 준비를 했다. 그러던 중에 워크캠프를 알게 되고 나의 무계획 배낭여행의 유일한 계획인 워크캠프를 집어넣게 되었다. 평소에 운동과 음악과 같은 엔터테인먼트를 좋아하던 나는 페스티벌의 워크캠프를 찾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의 음악 캠프를 찾게 되고 신청했다.
처음 프랑스를 가서 여행후에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블렐르의 기차역에 도착하게 되었다. 도착하자마자 캠프리더 두 명과 이미 도착해있던 스페인 참가자 친구 2명 프랑스 친구 1명을 만나게 되었다. 예정보다 일찍 만난 우리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다른 참가자들을 기다리며 가볍게 음료를 마시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워크캠프였다. 그런데 처음에는 서로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았다. 영어를 다들 잘하지 않았지만 무엇보다 서로의 발음과 억양을 잘 이해하지 못 했다. 그래서 처음 도착했을 때 걱정하는 마음이 컸다. 유일한 동양인 남자가 혼자 와서 캠프에 참가하게 된 것이 그들에게도 낯설었다.
그런데 캠핑장에서 머물면서 점점 변하게 되었다. 나는 리옹에서 온 흑인 친구와 같은 텐트를 쓰게 되었는데 신기하면서도 점점 통하는게 많아지게되었다. 함꼐 운동을 하고 산책을 하며 많은 친구들과 친해지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우리 캠프는 프랑스에서 온 리더 포함 여섯명 그리고 스페인 친구 두명 터키 친구 두명 우크라이나에서온 친구 그리고 한국에서 온 나였다. 첫 날 저녁은 침묵이었다. 그러나 하루 이틀 갈 수록 활발해지면서 얘기도 많이 나누게 되었다. 서로의 문화 서로의 언어를 배워가며 캠프를 이뤄갔다. 그러면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하루하루 장을 보고 서로를 위해 음식을 해가며 생활하는 캠프 생활은 쉽지는 않았지만 나에게는 정말 좋은 경험이었다.
캠프를 하면서 음악축제일을 도우는 일은 더욱 값진 경험이었다. 프랑스의 실제 작은 시골마을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축제 관계자들 봉사활동자들 그리고 놀러온 친구들까지 만나게 되었다.
축제를 준비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때로는 언어의 문제, 때로는 서로의 문화차이 등의 문제도 있었지만 그것은 과정일 뿐이었다. 캠프를 준비하며 마을 생활의 적응 되자 하루하루가 갈 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이 아까웠다. 친구들과 헤어질 시간도 온다는 것도 무척 싫을 정도였다.
축제를 위해 우리가 한 일은 포스터를 만들고 피켓을 만들고 설치를 위한 준비였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축제 일짜가 다가올 수록 점점 변하는 모습에 우리는 뿌듯함을 느꼈다. 3일 간의 축제에도 봉사활동 목걸이를 하고 축제를 위해 일할 때 축제에 관해 나에게 사람들이 물어볼때 뿌듯함을 느꼇다. 그리고 스페인 친구와 함께 매우 기초적인 불어로 바에서 일할 때 많은 사람들이 동양에서 온 남자인 나에게 불어도 잘하고 Merci라고 할 때 성취감을 느꼇다.
축제 과정이 순탄치 많은 않았다. 서로에게 작은 오해를 해서 갈등도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세계 각국에서 온 여러나라 사람이 갈등이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갈등은 당연한거고 그거를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근처에 있던 다른 캠프에 한국인들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캠프가 별로 재미도 없고 친구들도 별로라고 하였다. 집에 빨리 가고 싶다고 얘기하면서 캠프 친구들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과 잘 지내는 나를 매우 부러워했다. 그러면서 더욱 뿌듯하고 시간이 빨리 흘러가는게 아까워졌다.
축제가 끝난 후 서로 헤어질 시간이 되었을 때 무척이나 아쉬웠다. 눈물을 보이는 친구도 있었고 서로에게 감사한다고 얘기하고 서로의 나라를 방문하고 싶어하고 다시 볼 날을 그리워 했다. 서로 꼭 만나자고 서로의 나라의 방문했을 때를 기약하며 아쉬움을 나누었던 캠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