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작은 마을, 23살의 뜨거운 여름
JUIGNE SUR SARTH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를 다녀온지 6개월의 시간이 지나서야 보고서를 쓰게 됐다.
2013년 지난 한 해 나는 프랑스 북부의 한 마을에서 교환학생으로 1년을 보냈다. 1학기를 마치고 나서 다른 프랑스 학생들이 그렇듯 내게도 3개월가량의 방학이 주어졌다. 한국이었다면 이것저것 할 게 많았겠지만 머나먼 타지에서 학교도 가지 않은 채 보내는 3개월은 참 긴 시간이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며 2개월을 보낼 계획을 세웠지만 남은 한 달을 무엇을 하며 보낼지 큰 고민이었다. 그러던 중 나보다 먼저 교환학생을 다녀온 친구의 추천으로 워크캠프를 등록하게 되었다. 나의 워크캠프 선택 조건은 프랑스 내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해서 결정된 곳이 프랑스 서부의 작은 마을에서 담벼락을 쌓는 일을 하는 CONC 128. 사전 정보가 없는 곳이라 두렵기도 했지만 설렘도 컸다.
-첫만남
2013년 8월 7일, 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TER와 TGV를 갈아타며 6시간에 걸쳐 Juigne-sur-Sarthe에 도착했다. 내가 살던 마을보다 더 작았던 마을의 기차역에서 처음으로 친구들을 만났던 그 시간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다. 가장 처음 만난 바르셀로나에서 온 Kike, 그 후로 터키에서 온 Asya와 Muge, 아일랜드에서 온 Chris를 만나 기술 리더인 Benoit와 함께 역에서 20분 거리인 캠핑지로 향했다. 캠핑지에는 이미 다른 친구들이 도착해 있었다. 일본에서 온 Chikako, 스페인의 Leire, 아프가니스탄계 프랑스인 Hejaz와 스페인의 Esther. 그리고 캠프의 생활 리더인 Sofia까지 총 11명의 새로운 가족이 모이게 되었다. CONC 128의 숙소는 마을 축구장에 설치한 텐트였고, 숙식과 샤워시설은 축구장 내에 있는 작은 건물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3주
사실 처음 3일 정도는 정말 힘들었다. 처음 보는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모국어가 아닌 영어나 불어로 소통을 하며 하루 24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실 처음 3일이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어색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고, 또 함께 땡볕에서 무거운 돌을 옮기고, 아침 점심 저녁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힘든 일들을 나눠 하면서 우리는 급속도록 친해지게 됐다. 사실 그 과정에서 다툼도 있었고 사고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마저 11명의 우리를 더더욱 가까워지게 한 과정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함께 땀을 흘리면 가까워진다는 그 말은 정말 불변의 진리다.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숙소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의 작업장에서 작업을 했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일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음악을 틀어놓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며 일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언제나 작업장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일을 마친 오후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자유시간에는 나무 그늘아래에서 책도 읽고 낮잠도 자고, 축구장에서 맨발로 럭비도 하고, 프로젝터를 빌려 숙소에서 영화도 보며 땀 흘려 열심히 일한 것에 보상받듯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또 해가 지고 이 작은 마을에서 불빛 한 점 찾아보기 어려울 때면 우리는 너도나도 텐트에서 침낭을 가지고나와 축구장에 드러누웠다. 그리고서 쏟아지는 별빛 속에서 오손도손 수다를 떨던 그 시간들은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수없이 떨어지는 별똥별에 소원을 빌고, 별자리들을 찾다가 소소한 실수에 꺄르륵 웃기도 하고, 또 태어나서 처음 보는 밀키웨이에 황홀해하던 그 순간들이 문득 너무 그리워진다.
돌, 흙을 나르며 일만하던 우리들이 마을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에 신나서 함께 치장했던 날, 옆 도시의 캠프 친구들과 만나 함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던 날, 시내로 나들이가자며 꼬박 3시간을 걸었던 날, 수영복을 입고 호숫가로 놀러갔던 날, 마을에 있는 아주 작은 장난감 박물관의 귀여운 노부부를 만났던 날 등 하루하루가 언제나 특별하고 행복했다.
-이별
이별의 날짜에 가까워질 때마다 제발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기를 기도했었다. 이 사랑스러운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생각을 할 때면 순식간에 우울해졌다. 그러나 언제나 시간은 흘렀고, 우리의 작업도 모두 무사히 끝마치게 됐으며 헤어질 시간은 점점 다가왔다. 리더들을 제외한 친구들은 어차피 파리를 거쳐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우리는 다 같이 마지막으로 파리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파리에서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각자의 비행기 일정에 따라 이별을 고할 때 마다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항상 모든 이별에 서툴렀는데 이번엔 특히 심했다. 한 명 한 명의 친구들이 떠나갈 때마다 가슴에 큰 생채기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친했던 친구들인 Asya와 Chikako와 헤어질 때는 정말 많이 슬프고 힘들었다.
하지만 이별 후에도 우리는 계속 연락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말 새삼스럽지만 그걸 가능하게 해준 기술의 발전에 감사하다. 6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여전히 친구들과 서로를 그리워하며 꾸준히 소식을 주고받는다. 사실 생각해보면 세상은 정말 좁다. 우리가 다시 함께 만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한 희망은 내가 한국에 돌아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커다란 힘이 되어주고 있다. 그때의 기억들은 언제나 나를 미소 짓게 한다.
내 인생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2013년 지난 한 해 나는 프랑스 북부의 한 마을에서 교환학생으로 1년을 보냈다. 1학기를 마치고 나서 다른 프랑스 학생들이 그렇듯 내게도 3개월가량의 방학이 주어졌다. 한국이었다면 이것저것 할 게 많았겠지만 머나먼 타지에서 학교도 가지 않은 채 보내는 3개월은 참 긴 시간이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며 2개월을 보낼 계획을 세웠지만 남은 한 달을 무엇을 하며 보낼지 큰 고민이었다. 그러던 중 나보다 먼저 교환학생을 다녀온 친구의 추천으로 워크캠프를 등록하게 되었다. 나의 워크캠프 선택 조건은 프랑스 내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렇게 해서 결정된 곳이 프랑스 서부의 작은 마을에서 담벼락을 쌓는 일을 하는 CONC 128. 사전 정보가 없는 곳이라 두렵기도 했지만 설렘도 컸다.
-첫만남
2013년 8월 7일, 북부의 작은 마을에서 TER와 TGV를 갈아타며 6시간에 걸쳐 Juigne-sur-Sarthe에 도착했다. 내가 살던 마을보다 더 작았던 마을의 기차역에서 처음으로 친구들을 만났던 그 시간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생생하다. 가장 처음 만난 바르셀로나에서 온 Kike, 그 후로 터키에서 온 Asya와 Muge, 아일랜드에서 온 Chris를 만나 기술 리더인 Benoit와 함께 역에서 20분 거리인 캠핑지로 향했다. 캠핑지에는 이미 다른 친구들이 도착해 있었다. 일본에서 온 Chikako, 스페인의 Leire, 아프가니스탄계 프랑스인 Hejaz와 스페인의 Esther. 그리고 캠프의 생활 리더인 Sofia까지 총 11명의 새로운 가족이 모이게 되었다. CONC 128의 숙소는 마을 축구장에 설치한 텐트였고, 숙식과 샤워시설은 축구장 내에 있는 작은 건물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3주
사실 처음 3일 정도는 정말 힘들었다. 처음 보는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모국어가 아닌 영어나 불어로 소통을 하며 하루 24시간을 함께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사실 처음 3일이 힘들었던 가장 큰 이유는 '어색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고, 또 함께 땡볕에서 무거운 돌을 옮기고, 아침 점심 저녁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하고, 힘든 일들을 나눠 하면서 우리는 급속도록 친해지게 됐다. 사실 그 과정에서 다툼도 있었고 사고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일들마저 11명의 우리를 더더욱 가까워지게 한 과정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함께 땀을 흘리면 가까워진다는 그 말은 정말 불변의 진리다.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숙소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의 작업장에서 작업을 했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일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음악을 틀어놓고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며 일하다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언제나 작업장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일을 마친 오후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자유시간에는 나무 그늘아래에서 책도 읽고 낮잠도 자고, 축구장에서 맨발로 럭비도 하고, 프로젝터를 빌려 숙소에서 영화도 보며 땀 흘려 열심히 일한 것에 보상받듯 달콤한 휴식을 취했다. 또 해가 지고 이 작은 마을에서 불빛 한 점 찾아보기 어려울 때면 우리는 너도나도 텐트에서 침낭을 가지고나와 축구장에 드러누웠다. 그리고서 쏟아지는 별빛 속에서 오손도손 수다를 떨던 그 시간들은 평생 못 잊을 것 같다. 수없이 떨어지는 별똥별에 소원을 빌고, 별자리들을 찾다가 소소한 실수에 꺄르륵 웃기도 하고, 또 태어나서 처음 보는 밀키웨이에 황홀해하던 그 순간들이 문득 너무 그리워진다.
돌, 흙을 나르며 일만하던 우리들이 마을 축제가 열린다는 소식에 신나서 함께 치장했던 날, 옆 도시의 캠프 친구들과 만나 함께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눴던 날, 시내로 나들이가자며 꼬박 3시간을 걸었던 날, 수영복을 입고 호숫가로 놀러갔던 날, 마을에 있는 아주 작은 장난감 박물관의 귀여운 노부부를 만났던 날 등 하루하루가 언제나 특별하고 행복했다.
-이별
이별의 날짜에 가까워질 때마다 제발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기를 기도했었다. 이 사랑스러운 친구들과 헤어진다는 생각을 할 때면 순식간에 우울해졌다. 그러나 언제나 시간은 흘렀고, 우리의 작업도 모두 무사히 끝마치게 됐으며 헤어질 시간은 점점 다가왔다. 리더들을 제외한 친구들은 어차피 파리를 거쳐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기에 우리는 다 같이 마지막으로 파리 여행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파리에서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각자의 비행기 일정에 따라 이별을 고할 때 마다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항상 모든 이별에 서툴렀는데 이번엔 특히 심했다. 한 명 한 명의 친구들이 떠나갈 때마다 가슴에 큰 생채기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친했던 친구들인 Asya와 Chikako와 헤어질 때는 정말 많이 슬프고 힘들었다.
하지만 이별 후에도 우리는 계속 연락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정말 새삼스럽지만 그걸 가능하게 해준 기술의 발전에 감사하다. 6개월이 넘는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여전히 친구들과 서로를 그리워하며 꾸준히 소식을 주고받는다. 사실 생각해보면 세상은 정말 좁다. 우리가 다시 함께 만나는 것을 상상하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한 희망은 내가 한국에 돌아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커다란 힘이 되어주고 있다. 그때의 기억들은 언제나 나를 미소 짓게 한다.
내 인생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