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우간다, 설렘과 두려움으로 시작된 첫 도전

작성자 김장현
우간다 UPA/008/13 · KIDS/CONS 2013. 08 Bamusuuta

International work-camp on orphans' care and suppor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평소 새로운 환경에서 도전하고 여행하는 것을 동경해오던 제게 아프리카 워크캠프는 매력적인 유혹이었습니다. 학생일 때 가 아니면 앞으로 이런 기회를 갖기 어렵고 조금이라도 젊을 때 사서 고생한번 제대로 해보자는 심산으로 막연한 기대와 각오로 워크캠프에 지원하였습니다.
처음으로 영어로 된 지원서도 작성해보고, Ticket구매, 출국일자 귀국일자 정하기, 캠프이후의 일정 계획하기 등 모든 것이 쉽지 않고 막막했지만 누군가로부터 누군가에 의해서 하는 것이 아닌 내가 결정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라는 사실이 좋았습니다. 준비하면서 느낀 것은 아무리 인터넷이 발달했고 세계각국에 한국인이 많이 있다지만 우간다에 대한 정보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다른 학교에서 지원한 친구 한명이 있어 그 친구와 함께한다는 것이 제겐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출국 당일, 사전에 항공편 일정을 우간다 사무소에 전달하고 도착시간에 맞춰 pick up을 약속했기에 그 구두약속만을 굳게 믿고 비행기에 탑승을 하였습니다. 사실 가는 내내 현지의 이런저런 사정으로 인해 아무도 나와 있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전전긍긍 했습니다. 이는 모든 것을 단체로 유 경험자를 통해서가 아닌 초행인 개개인이 하기에 더욱더 조심스럽고 막연하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우간다 Entebe공항에 무사히 착륙하여 입국수속 및 Visa를 발급받고 길 잃은 어린아이가 제 부모를 찾듯 UPA(Uganda pioneer Asociation)일원을 둘러보며 찾았습니다. 노란티를 입은 한 흑인 청년이 우리 이름을 쓴 펫말을 들고 있었는데 바로 그 청년이 우리를 마중나온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불안했던 제 마음이 녹아내렸는데 그 청년과 눈이 마주친 순간은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옆에 분홍티를 입은 네덜란드 봉사지원자도 있었는데 그 둘을 만나고 나니 정말 아프리카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간단히 서로 인사를 나누고 승용차를 이용해 수도 근처에 위치한 Nansana의 UPA센터로 이동하였습니다. 우리가 이동한 이곳은 Work-camp 시작전후 International Volunteer들이 머무는 Guest house로 안전하고 화장실 및 취사 시설이 잘 갖추어진 곳입니다. 사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한국보다 불편하니 여기서 어떻게 생활하나 웃음 지었지만 워크캠프가 끝나고 난 뒤에는 마치 그곳은 사막의 Oasis처럼 느껴졌습니다.
저와 친구는 캠프 이전에 현지를 조금이라도 더 알고 캠프에 임하고 싶어 5일정도 우간다에 일찍 도착 하였습니다. 그래서 시작 전, 기회가 닿아 수도인 Kampala와 Jinja의 Source of nile을 다녀왔습니다. 또 현지 유심으로 바꾸어 핸드폰 사용도 할 수 있었고, 현지 과일 및 야채등을 구입하여 요리도 해먹는 등 하루하루 조금씩 아프리카 우간다의 생활에 적응을 해 나갔습니다. 처음 우간다의 수도인 Kampala에 도착하여 높은빌딩에서 내려본 풍경을 잊을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그동안 TV를 통해 보아왔던 아프리카의 모습과 너무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중앙선이 없는 도로에 마따뚜(현지택시)로 가득찬 거리, 그 차에서 나오는 매연과 흙먼지, 마따뚜 사이사이로 움직이는 수많은 오토마이택시와 형형색색의 옷을 입은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아프리카 또한 여느 나라의 수도와 같이 분주하고 복잡했습니다.
워크캠프 시작일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맡은 프로젝트는 Kids/Cons 였습니다. 팀원은 총 14명으로 현지지원자 7명, 해외지원자5명, 현지건축전문가2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저를 포함한 해외지원자 5명중 3명은 한국인 이었고 나머지 2명중 한명은 31세 독일남자와 18세 레바논 남자아이였습니다. 친구와 저를 뺀 한명의 다른 한국인은 유일한 여성해외봉사자 였고 모두 남자였습니다. 워크캠프 내내 가장 아쉬웠던 부분으로 해외봉사자의 비율이 적고 현지봉사자의 비율이 많은 점을 들 수 있겠습니다. 아무래도 현지 봉사자가 많다보니 그들 위주로 모든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언어 또한 일하는 동안 그들은 그들끼리 그들의 언어로 하는 경우가 다반사여서 허물수 없는 벽같은 것이 캠프 내내 존재하였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더 당부사항으로 말씀드리자면 우리 서로의 '다름'은 극복하기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현지인들과의 문화, 배움의 차이, 경제력 차이는 상당히 심하여 보통 우리의 생각으로 다가간다면 충격과 상처를 받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들어 현지인들끼리 남녀구분없이 오가는 성적인 농담이나, 외국인의 물건을 탐내거나 물건을 살 때 외국인에게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현지지원자들 또한 예외는 아니기에 더욱더 충격이었고 나중에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당시에는 이럴 줄 알았으면 유럽에 지원할걸 하고 후회도 했었습니다.
워크캠프 기간동안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는 한 고을의 Health care center 였습니다. 예상은 했었지만 역시나 그곳에 물과 전기가 없었습니다. 물이 필요하면 도보로 20분정도 걸리는 우물에서 1시간정도 걸려 물을 길어와야 했고, 전기가 필요하면 도보로 30분 걸리는 시내로 나가야 했습니다. 저와 제 친구는 매일아침 6시에 둘이 물 기르는 일을 하였는데 처음에는 아무도 하지않아 욕하며 시작했던 일이지만 나중에 가서는 한국인의 부지런함과 성실함을 보여준거 같아 뿌듯하고 기쁜마음 으로 물을 길렀습니다. 캠프 도착 첫날, 우리는 생활 하는데 있어 몇 가지 규칙을 정하고 cooking, water, cleaning 담당 3개조로 조를 나누었습니다.
cooking조는 아침 점심 저녁 및 Tea time을 준비합니다. 일과시간동안 건축작업은 하지 않아 쉬워보이지만 요리를 위해서 불을 키우는 작업은 나름 힘든 일이었습니다. 땔감을 구하고, 부채로 불씨를 키우고 하루종일 불 옆에서 불이 꺼지지 않게 자리를 지켜야 하는 일, 설거지 등이 주된 업무입니다. 사실 요리하는 것은 쉽고 요리를 준비하고 정리하는 작업이 시설이 안갖추어진 곳에서 하려니 너무나도 손이 많이 갔습니다. cooking조를 하면서 아프리카 우간다의 현지음식인 뽀쇼, 마또께, 짜빠티, 콩죽 등을 접하고 배울 수 있어 재미와 의미가 있었습니다. 한때 군대에서 취사병이었던 제게 특히나 cooking 조의 추억은 각별하고 군생활을 상기시키는 작업이었습니다. 사실 씁쓸하지만 이곳 모든 작업과 생활이 군생활과 매우 흡사했습니다. 군대 잘 다녀왔구나 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었고, 다른나라 참가자들과 작업하면서 역시 군대를 다녀온 남자는 다르다는 것도 뼈저리게 느꼇습니다.
water조는 말그대로 물을 길어오는 조 였습니다. 요리와 설거지, 시멘섞는작업, 세면세족을 위해서 많은양의 물을 필요로 했기에 하루에도 한번에 100L가 넘는 물의 양을 몇 번씩 손과 발로 나르고 길러야 했습니다.
cleaning은 딱히 매일 청소 할 일도 없고 해서 다같이 청소할 때 했던 것 같습니다.
공사작업은 cooking조를 제외한 모든 인원이 참가해서 함께 했습니다.
캠프기간동안에도 느끼고 뒤돌아봐도 생각이 드는 것이 캠프 기간동안 여러 규율도 정하고 조를 나눠 체계적으로 일을 진행하려 했지만 모든 것이 제대로 진행된 것은 딱히 없었습니다. 아침 기상시간을 지켜 일어나는 사람도 몇 없었고, 자신이 속한 조에서 맡은 임무를 알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갈 정도로 중구난방으로 작업한 적도 있고, 일하기 싫어하는 몇몇 때문에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마음이 깨끗이 사라질 때도 있었고, 눈에 가시처럼 보기싫은 지원자도 있었고, 이런 불만을 제대로 말하지 못해서 답답했습니다.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기에, 지원자들이 모여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누구도 서로에게 뭐라 하기 보다는 협동하자라고 말만 할뿐 이었고, 솔선수범이기 보다는 서로 눈치만 보며 일하는 상황이 지속 되었습니다.
하지만 또 되짚어 보면 그렇게 제가 불평하며 지내는 동안에도 그냥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하는 친구도 있었고, 불평은 하지만 일하는데 있어 끝까지 하고 솔선수범 하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 하나하나가 제 자신은 어떤 위치에서 어떤 마음으로 봉사를 하고 있는지 되돌아보게 하는 시간이 되었고 정말 값진 시간이 주어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나라, 다른 언어, 다른피부를 가진, 다른 문화와 환경속에서 살아온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방법, 이렇게 나와는 다른 사람들과 한 가지 목표를 향해 함께 일하는 방법등에 대해서 고민하고 그들에게 어떻게 먼저 친근하게 다가가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시간 또한 당시에는 유쾌하고 즐겁진 않았지만 정말 값진 경험이라 자부합니다. 아프리카 워크캠프는 타국에서 온 내게 집 없는 아이들을 위해 현지 누구나가 할 수 있는 노동의 장소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일을 하며 살아 갈 수 있고 어떻게 일을 하는 것이 나의 가치를 높이고 인정받는 일인지 배우고 훈련하는 배움의 장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산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고 가족과 집이 있다는 것, 따뜻한 물과 전기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복인지 느끼게 해준 시간 이었습니다.
외국인인 저에게 먼저 다가와 반겨주고 이름도 지겹게 불러주고 맑은 미소를 끊임없이 선물해준 아프리카의 아이들을 잊지 못할 것이고 아프리카의 대자연 또한 그리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