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예측불허, 프랑스 시골 마을에서의 2주

작성자 박선민
프랑스 REMPART23 · RENO/HERI 2013. 08 - 2013. 09 nanteuil en vallee

Moulin de Villognon 4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 인터넷을 뒤져봐도, 친구의 경험담을 들어봐도, 막연하기만 할 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았다. 캠프에 참가하기 일주일 전, 파리에 도착해서 관광객의 시선으로 둘러본 프랑스는 내가 줄곧 살아왔던 한국과는 냄새부터가 다른, 이국적인 곳이었다. 관광을 하면서 프랑스는 정말 불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청난 규모의 박물관에서도 오디오 가이드가 없이는 작품의 제목조차 알 수 없는 현실에 불어공부를 열심히 해서 다시 한 번 프랑스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다가올 워크캠프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참가하게 된 워크캠프의 장소는 파리에서 기차로 3시간 정도 떨어진 Ruffec이라는 지방이었다. 파리에 사는 사람들조차 생소해하는 곳이었기에 가는 내내 긴장을 놓칠 수 없었다. 약속된 시간에 도착한 Ruffec역에는 워크캠프 이름이 적힌 칠판을 들고 있는 남자(자미쉬)가 오래된 봉고차 앞에 서있었다. 나 이외에도 프랑스 여자애(마고)가 캠프장소로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자미쉬 외에도 캠프리더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녀는 자연스럽게 프랑스식으로 나에게 인사를 했다. 당황스러웠지만 친근하고 따뜻한 인사로 나의 워크캠프는 시작되었다. 나의 우려대로 캠프리더들은 영어에 서툴렀다.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마음이 통하는 데 있어 언어의 차이가 장벽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밝은 미소와 함께 차근차근 영어로 서로에 대해 묻고 답했다. 캠프리더들의 따뜻한 미소와 말투는 어느새 잔뜩 긴장해있던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기차역에서 조금 떨어진 거리에 캠프장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캠프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반겨준 건 자미쉬와 비슷한 복장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며 앞에 앉으라고 하더니 이내 카드를 뽑으라고 했다. 그리고는 이상한 지령을 시키더니 마담 이르마에게 가서 미래를 점쳐보라고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어리둥절한 채로 나는 그들이 가리키는 곳으로 향했다. 허름해 보이지만 신비스러웠던 캐러밴 안에 들어가자 커튼 뒤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담이라고 해서 여자인줄 알았는데 남성의 목소리였다. 나에게 카드를 뽑으라고 하더니 나의 미래를 봐주겠다고 했다. 마담 이르마에 따르면 나는 프랑스에서 프랑스남자와 사랑에 빠져 양 목장을 운영하며 살게 된다고 했다. 그 외에 나에 대한 여러가지 기본적인 질문을 했는데 이러한 독특한 방식으로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는 모습이 앞으로 다가올 워크캠프의 일정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뒤이어 여러 캠프참가자들이 도착했다.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게임도 배우고 함께 하면서 조금씩 얼굴과 이름을 익혀갔다. 캠프장에 하루 먼저 도착한 알렉시아가 나와 다른 친구들에게 캠프장을 돌면서 소개를 해줬다. 잘 다듬어진 정원과 아늑한 거실이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단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원인을 알 수 없이 물이 끊겨 우물에서 물을 길어서 사용해야 했다. 실은 그 사실을 알았을 때 불편해서 과연 살 수 있을까 싶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이내 적응했다.
두 번째 날부터 일을 배우기 시작했다.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사실 정확히 알지는 못했기에 막연하기만 했다. 캠프장소에서 십여 분 정도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말 그대로 일터였다. 우리의 일은 집을 짓는 것이었는데 캠프리더와 함께 일터를 돌아다니면서 여러 작업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내가 맡게 된 일은 벽을 쌓는 일이었는데 영국에서 온 칼룸과 로즈와 함께 일을 하게 되었다. 일터에서의 첫 날은 모든 게 생소했다. 캠프리더인 찰리는 곧 익숙해질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일은 주위에서 벽을 쌓기에 알맞은 높이와 크기의 돌을 찾아와 층을 쌓고 시멘트를 바르는 것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무거운 돌을 들고 시멘트를 만드는 일이 사실 쉽지는 않았다.
프랑스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달리 일을 하면서 휴식시간을 여유롭게 가졌다. 일을 하면서 총 2번의 휴식시간이 있었는데 한 번은 간단히 빵과 음료를 먹으면서 쉬는 짧은 휴식이었고 한 번은 점심을 먹고 잠깐의 낮잠을 즐기는 긴 휴식이었다. 파리에서 관광을 할 때도 프랑스음식을 여러 번 맛봤지만 이곳에서는 전형적인 프랑스 음식을 맛보게 되었다. 평소에도 빵과 치즈를 좋아했지만 현지에서 맛보는 빵과 치즈는 느낌이 사뭇 달라 처음에는 입에 맞지 않았다. 음식에 있어서는 이것 말고도 또 한가지 새로운 것이 있었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식사를 할 때 본식 외에 꼭 디저트를 즐긴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보통 간단하게 먹는 점심식사도 프랑스 사람들은 꼭 디저트와 함께 했다.
워크캠프의 두 번째 날은 너무나 길었다. 처음 해보는 힘든 일에 온 몸이 시멘트 얼룩 투성이였다. 셋째 날도 어김없이 일찍 일어나 일터로 향했다. 벽을 쌓는 일은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구해 온 돌이 틀에 맞지 않으면 직접 망치로 돌을 깎아 내야 했다. 일은 힘들었지만 일을 마치고 샤워를 하고 마당에 모여 앉아 다같이 게임을 할 때는 힘들었던 하루가 말끔히 씻겨져 나갔다. 워크캠프를 하면서 새로운 게임을 많이 배우게 되었는데 게임을 하면서도 한국과는 참 많이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캠프장에서의 식사는 캠프 참가자들이 돌아가며 준비했다. 식사팀으로 일하는 날은 일터에 나가지 않았는데 하루는 우리 팀의 두 명이 식사팀이었다. 네 명이 하던 일을 두 명이서 하게 된 것이다. 같은 양의 일을 절반의 수의 사람이 하려니 배로 힘이 들었지만 이 날은 나의 워크메이트인 칼룸과 처음으로 이야기의 물꼬를 트게 된 날이었다.
워크캠프에서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RUFFEC을 벗어나 근처의 마을로 다같이 투어를 갔다. RUFFEC에 오기 위해 환승을 하러 잠깐 들른 POITIER라는 곳이었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지도를 받아 다시 관광객으로 돌아가 여기저기를 구경했다. 프랑스에는 어느 지역이건 교회가 정말 많다는 것을 느꼈다. 한국에도 교회가 많지만 역사도 더 오래 되었고 내부의 모습도 이전에 알던 것과는 달랐다.
워크 캠프 기간 중 식사팀을 총 두 번 했었는데 그 때마다 한국음식을 선보였다. 한 번은 불고기였고 다른 한 번은 부침개를 했다. 사실 한국에 있을 때도 그럴싸한 요리는 해본 적이 없었기에 걱정이 앞섰다. 한국에서 미리 알아간 레시피를 따라 요리를 하려 했지만 현지 사정상 내가 원하는 재료가 다 준비되지 못했다. 그래서 있는 범위 내에서 퓨전으로 만들어냈다. 요리를 하는 내내 과연 친구들의 입에 맞을까 인원 수에 맞게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등의 갖가지 걱정으로 가득 찼다. 한국 음식을 맞볼 기회가 없었을텐데 내가 제대로 해내지 못해서 맛이 없다는 인상이 박혀버리면 다음부터 꺼리게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불고기 양념까지 탈탈 털어먹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면서 걱정은 사라지고 음식을 하는 엄마의 마음까지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저녁 시간에는 식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모여서 여러가지 게임도 했다. 가끔은 식사팀이 게임을 준비하기도 했는데 친구들의 행동을 묘사하기도 하고 이상한 샌드위치도 만들기도 했고 다같이 춤도 췄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행복하게 웃으면서 지냈던것 같다. 하지만 일은 여전히 힘들었다. 갑자기 비가 내려서 비를 쫄딱 맞으며 돌을 옮기기도 했고 하루종일 커다란 돌을 치우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적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먹어야 할지도 몰랐던 치즈와 햄이 점점 입에 맞아 어떤 날은 배가 터질 것처럼 많이 먹은 날도 있다.
하루는 이웃마을 축제를 구경갔는데 예술의 도시답게 작은 마을인데도 공연의 수준이 높았다. 밤하늘 아래 울려퍼지는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열정적인 댄서들의 춤, 그리고 소울이 가득한 가수의 노래는 프랑스 자체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프랑스에 머물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프랑스의 하늘은 참 예쁘다는 것인데 항상 하늘이 넓고 색깔이 다양하다. 내가 머문 곳은 시골이라 밤하늘에 별이 항상 많이 떠있었는데 책에서만 보던 별자리를 직접 볼 수도 있었다.
하루는 다같이 버스를 타고 바다에 갔다. 프랑스의 바다는 파도가 높았다. 워터파크에서나 느낄 수 있었던 높은 파도를 타고 놀다보니 바닷물이 차가운 것은 금세 잊게 되었다. 워크캠프에 있으면서 가장 낭만적이었던 순간은 숙소에 있는 정원에 천막을 쳐놓고 오래된 프랑스 영화를 본 것이었다. 침낭을 들고 나와 별빛 가득한 밤하늘 아래 모여 앉아 영화를 볼 때의 그 낭만은 아직도 꿈만 같다. 어떤 날은 일을 마친 후 근처 강가에 가서 카누를 타기도 했다. 이전에도 카누를 타 본 적이 있었지만 전형적인 프랑스 시골마을의 풍경 속에서 타는 카누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오지 않을 것만 같았지만 어느 새 성큼 다가와있던 캠프의 마지막 밤은 캠프리더들이 준비한 작은 이벤트로 시작되었다. 캠프에서의 마지막 저녁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인 홍합요리와 함께 간단한 샐러드와 감자튀김이었다. 프랑스 음식에 제대로 적응해버린 나는 정말 쉴새 없이 먹었다. 다함께 정원에 앉아 캠프 기간동안 찍었던 사진들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게임도 하고 장난도 하다 보니 그 밤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프랑스에서의 보름간의 워크캠프는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예상할 수 없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정말 이것보다는 더 힘들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버티기도 했고 살면서 이 정도의 낭만을 또 경험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행복하고 감동적인 순간들도 있었다. 고생을 함께 하면 더 끈끈해진다고 물도 나오지 않는 열악한 환경에서 서로 격려해가며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순간은 정말 가족처럼 오랜 친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캠프기간이 끝나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서 각자의 생활을 한다는 것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캠프에서의 하루하루를 회상하며 에세이를 쓰는 지금 프랑스에서 먹었던 바게트부터 캠프장의 냄새까지 모든 것이 그립다. 일이 힘들 때는 하루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다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또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