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프리카에서 찾은 청춘의 가치
Mundaha Primary School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젊음을 가치있게 보내고 있는가?' 내가 돌아본 나의 젊음은 여느 대학교 4학년들이 그렇듯 나또한 취업에 대한 압박으로 인한 채워지지않는 무언가의 공허감을 채우는데 사용되고 있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젊음이란 귀중한 시간으로 이른바 의미없는 스펙쌓기에 몰두 하고 있는 나를 보고 있자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어쩌면 스펙쌓기가 눈 앞의 취업을 해결하는 단초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취업이 결코 인생의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고 생각이들었다. 내게는 다시 돌아오지 않은 나의 젊음을 가장 값지게 이용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접한 워크캠프 챌린저 공고는 내 가슴의 불을 지피기에 충분했다. 언젠가 아프리카라는 미지의 대륙을 가고 말겠다는 막연한 꿈을 가지곤 있었지만, 젊은 날에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시간적 그리고 금전적인 제약 때문에 차일 피일 뒤로 미루다 보면 언젠가는 나이와 건강 때문에 가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 내게 워크캠프 챌린저는 하늘이 준 기회와도 같았다.
워크캠프 챌린저의 벽은 예상대로 높았다. 하지만 나는 그 높은 장벽은 진정성을 갖춘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다. 나는 워크캠프 챌린저 선발의 여부를 떠나 이번 선발과정에 참여하는 동안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성장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애썼다. 서류전형을 통과하는가 싶더니, 블로그 전형에 이어, 최종 면접을 보게 되었다.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거짓말처럼 일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아프리카 워크캠프 챌린저로 선발되었다. 나는 그렇게 2013년, 스물여섯의 젊음이란 청춘을 가장 값지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지만은 않았다. 이번에 워크캠프 챌린저로 선발되지 못한 이들에 대한 무언가의 책임감 그리고 사명감은 나를 더욱 성숙한 태도로 임하게 만들었다. 워크캠프에 참가하는 수많은 봉사자들 가운데 나는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의무감 마저 들었다. 워크캠프 챌린저는 단순히 무료로 아프리카 워크캠프를 다녀오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인생의 교훈과 가치를 담고 있었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워크캠프 챌린저, 나는 워크캠프 챌린저가 되는 과정에서 부터 성장하고 있던 것이다.
사실 누군가 내게 아프리카 워크캠프에 왜 가냐고 물으면 쉽게 답하기 힘들었다. 봉사활동이라는 관점이라고 보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여행은 더더욱 아니었으니 말이다. 워크캠프에 직접 참여하고 난 뒤,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다. 인생을 배우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히는 곳이라고 말이다. 이번에 내가 참가한 케냐의 워크캠프 주 활동내용은 진흙 벽돌 만들기이다.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진흙 벽돌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 케냐 지역사회에 이바지 했는가는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미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홍콩, 멕시코, 케냐 등에서 모인 청년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Learning by Doing을 통해 세계시민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이었다.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생각과 가치관을 교환하고 미래에 대해 서로 걱정하며 서로의 꿈을 축복하는 그런 시간들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교육에 가까웠다. 그들과 이야기 할 때면 내가 몹시 부끄럽기까지 했다. 악기하나 다룰 줄 모르고, 제대로된 취미생활, 특기 하나 없는 나의 무미건조한 삶이 너무나 초라해보였다.
3주라는 시간이 흘렀고 나는 다시 한국이라는 사회로 돌아왔다. 내가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내게 아직까지도 이렇다할 답을 내려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케냐 워크캠프의 경험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강렬한 기억으로 기억 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스물여섯의 젊음을 가장 값지게 보냈다고 자부한다.
워크캠프 챌린저의 벽은 예상대로 높았다. 하지만 나는 그 높은 장벽은 진정성을 갖춘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었다. 나는 워크캠프 챌린저 선발의 여부를 떠나 이번 선발과정에 참여하는 동안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성장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애썼다. 서류전형을 통과하는가 싶더니, 블로그 전형에 이어, 최종 면접을 보게 되었다.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거짓말처럼 일어났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아프리카 워크캠프 챌린저로 선발되었다. 나는 그렇게 2013년, 스물여섯의 젊음이란 청춘을 가장 값지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지만은 않았다. 이번에 워크캠프 챌린저로 선발되지 못한 이들에 대한 무언가의 책임감 그리고 사명감은 나를 더욱 성숙한 태도로 임하게 만들었다. 워크캠프에 참가하는 수많은 봉사자들 가운데 나는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의무감 마저 들었다. 워크캠프 챌린저는 단순히 무료로 아프리카 워크캠프를 다녀오는 것이 아닌 그 이상의 인생의 교훈과 가치를 담고 있었다.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워크캠프 챌린저, 나는 워크캠프 챌린저가 되는 과정에서 부터 성장하고 있던 것이다.
사실 누군가 내게 아프리카 워크캠프에 왜 가냐고 물으면 쉽게 답하기 힘들었다. 봉사활동이라는 관점이라고 보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여행은 더더욱 아니었으니 말이다. 워크캠프에 직접 참여하고 난 뒤, 이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다. 인생을 배우고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넓히는 곳이라고 말이다. 이번에 내가 참가한 케냐의 워크캠프 주 활동내용은 진흙 벽돌 만들기이다.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진흙 벽돌을 얼마나 많이 만들어 케냐 지역사회에 이바지 했는가는 결코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미국,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홍콩, 멕시코, 케냐 등에서 모인 청년들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Learning by Doing을 통해 세계시민으로 성숙해가는 과정이었다.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이들이 한 자리에 모여 생각과 가치관을 교환하고 미래에 대해 서로 걱정하며 서로의 꿈을 축복하는 그런 시간들은 그야말로 살아있는 교육에 가까웠다. 그들과 이야기 할 때면 내가 몹시 부끄럽기까지 했다. 악기하나 다룰 줄 모르고, 제대로된 취미생활, 특기 하나 없는 나의 무미건조한 삶이 너무나 초라해보였다.
3주라는 시간이 흘렀고 나는 다시 한국이라는 사회로 돌아왔다. 내가 해야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내게 아직까지도 이렇다할 답을 내려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이번 케냐 워크캠프의 경험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든 강렬한 기억으로 기억 될 것이다. 그렇게 나는 스물여섯의 젊음을 가장 값지게 보냈다고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