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체코, 고생 끝에 만난 행복

작성자 정하림
체코 SDA 302 · RENO/AGRI 2013. 06 체코

Organic Farming at Camphill Community I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그 때 썼던 일기들과 함께 찍은 사진들을 다시 한 번 찬찬히 훑어보았다. 아직 그립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다시 그 곳에 있을 것만 같다.

'숙소가 열악하다', '일이 고되다', '샤워실이 고작 한 개 뿐이다', '너무 힘들었다',...

내가 워크캠프에 참여하기 전 다른 사람들의 후기에서 여러 번 반복되었던 이야기들이다. 생각해보면 다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나는 워크캠프에서 돌아와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저런 이야기는 상황 설명을 위해 딱 한 두마디 정도 했을 뿐이다. 나에게 그런 것들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유럽 쪽의 워크캠프를 참여하는 김에 아쉬우니 유럽의 다른 몇몇 나라들을 여행했었다. 그렇게 체코로 넘어가기 2주 전 쯤, 나는 여행하다 만난 독일 친구에게 홍수 소식을 들었다. 체코를 중심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까지 심각한 홍수 피해를 입었다는 것. 특별히 걱정은 하지 않았다. 내가 체코로 가기까지는 아직 2주나 남았고 그 전까지는 다 복구될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워크캠프 시작 1주 전 쯤, 나는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심각한 홍수 피해로 내가 참여하고자 했던 워크캠프 프로그램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 없는 상황이며, 홍수로 인한 피해를 복구하는 작업이 우선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래도 참여하겠느냐 하여 참여하겠다 했고, 실제로 10명 참가 예정이었던 이 워크캠프에는 5명 정도밖에 오지 않았다. 물론 이후에 체코인들이 몇명 더 합류하긴 했지만...

실제로 피해는 매우 심각했다. 건물 3층 높이까지 물이 차올랐던 흔적이 있고, 농작물들은 하나도 남김 없이 쓰러져 죽어있었다. 원래 지내기로 예정되어있던 숙소도 홍수 피해로 인해 엉망진창이라 우리는 짓다 만 채로 남겨진 흙 덩어리 같은 작은 건물에서 지내게 되었다. 예상대로 샤워실은 딱 하나 뿐이었고, 그 곳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과 홍수 피해 복구작업을 돕기 위해 몰려온 체코의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고등학생들까지 그 한 개의 샤워실을 다 함께 사용해야 했다. 전기 콘센트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먼지 풀풀 날리는 방에서 더러운 매트리스 위에 가져온 침낭을 깔고 짐을 풀었다.

그렇게 열악한 시설을 마주했던 첫 날, 우리 캠프의 리더 중 한 명이었던 노라에게 나는 '이정도면 정말 좋은데? 생각하고 각오했던 것보다 더 나은 것 같다!'라고 말했고(사실이었다!), 노라는 나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게 생각해주니 정말 다행이다. 비록 환경은 nice하지 않지만 2주동안의 시간을 우리가 스스로 nice하게 만들자!'

둘째 날 아침 7시부터 시작된 일은... 정말로 힘들었다. 첫 날 우리를 모아두고 '홍수 피해 복구 작업이 훨씬 힘들고 고될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와줘서 고맙다. 하지만 일의 주제가 이러한 만큼 남자, 여자 구분없이 다같이 일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힘들것이다.' 라고 말했던 우리의 보스 예로슬라프의 말은 절대 틀리지 않았다. 콘크리트를 옮기고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벽돌을 아래로 나르고 벽을 깨고 건축쓰레기를 가져다 버리고 흙먼지도 쓸고 닦고... 일이 끝난 후에는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모두들 온통 먼지덩어리가 되어있었다. 현대판 신데렐라인가ㅎㅎ

매일 매일이 그랬다. 이후에 땡볕에서 홍수 피해로 쓰러진 나무들을 구하고, 밭 일을 하는 등의 작업들이 추가되긴 했지만, 일의 강도가 굉장했다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대체 무엇때문이었을까. 우리는 그렇게 힘들게 일하면서도 쉬지 않고 재미있게 대화하고 깔깔대며 웃었던 것 같다. 사진을 쭉 살펴보아도 웃지 않고 있는 사진을 찾는 것이 힘들만큼.

힘들게 일한 뒤 늦은 점심을 먹고(점심 식사는 정말정말로! 최고로! 맛있었다!! 다시 한 번 감사를...ㅎㅎ) 직접 탄 커피와 시리얼을 가지고 나무그늘 밑 삐그덕 거리는 의자에 앉아 가졌던 우리들만의 티타임, 샤워 후(신기하게도 샤워하는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모두의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 덕분이었던 것 같다.) 창문으로 쏟아지는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침낭 위에 누워 듣던 노라의 아이팟 노래들, 와이파이를 찾아 헤매며 옆 마을 테레진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벌였던 모기와의 사투, 잔디축구장에서 돗자리를 깔고 직접 만들어온 음식들과 기타와 함께 밤이 늦도록 즐겼던 피크닉, 새벽 2시가 넘도록 계속 되었던 각자의 나라와 그 문화에 대한 깊은 대화, 프로젝터까지 가져와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체코어더빙에 아랍어자막 영화를 다운받는 바람에 이루어지지 못했던 무비나잇, 예로슬라프의 패션쇼, 매일 밤 기대했던 fire, 딸기잼 만들기, 다같이 보냈던 프라하에서의 1박2일, 그리고... 그저 그 모든 순간순간들.

마지막 날 밤, 마지막이라고 다들 뭔가 특별하게 보내보려고 했지만, 사실 우리에게는 2주동안 매일매일이 특별했고 꿈같았다. 그저 마주보고 앉아서 농담하고 까불대고 웃고 아쉽다고 한 번 씩 껴안고 하는것만으로도 충분한 밤이었다. 지금까지 워크캠프를 하면서 우리만큼 서로 잘 맞고 조화되고 열심히 즐겁게 일한 팀은 없었다는 쟈네타와 예로슬라프의 이야기를 듣고 그래 그렇구나, 이게 우리구나 싶어서 또 한번 찡했던... 본 것, 느낀 것, 깨달은 것, 그 순간순간 하나도 놓칠 것이 없었던 워크캠프.

함께 모여 마지막으로 한 명 씩 피드백을 하고 이야기를 나눌 때, 우리 모두가 공감했던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음식이 정말정말 맛있었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이 곳, Camphill에는 strange happiness가 있다는 것! 어제 어땠고, 내일 어떨 것, 그런 걱정 하나 없이 오늘 하루하루를 살며 순간을 즐기고 행복하게 사는 삶, 그 속에서 우리도 2주를 함께했다. 화려한 모습이나 재치있는 언변, 깔끔한 외모...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 곳에서 그저 묵묵히 행복하게 순간을 살아내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렇게 치명적인 홍수 피해를 입고도 웃으며 일할 줄 아는 사람들, 하루하루를 꼭꼭 씹어먹듯이 즐길 줄 아는 사람들, 정말 사소한 듯 하면서도 너무나 대단한 그 삶을 우리는 strange happiness라고 표현했다. 그것이 그렇게 멀리 있는 것도 아니며,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님을. 무어라고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굉장히 특별한듯 하면서도 너무나 평범한 종류의 행복.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그리고 그에 대한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진다는 것. 그렇게 삶을 즐기고 행복하게 산다는 것. 나에게 참 많은 고민거리와 숙제들을 던져주었던 시간이었다.

다음 날 아침, 캠퍼들과 작별인사를 하는데... 나는 왜 밴디와 안을 때 밴디의 'very very thank you.' 하다는 말을 듣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을까. 마음 깊이 밴디의 진심이 느껴져서일까... 그 이후로는 눈물이 참아지지 않았다. 한 명 한 명 사랑스럽고 아름다웠던 우리 캠프 멤버들. 각자 다른 이야기를 갖고 다른 삶을 안고서 살아가고 있지만 한 마음, 한 뜻으로 이곳에 모여 같이 일하고 같이 웃고 떠들고 함께 했던 시간들. 반드시 꼭 다시 만나기를 마음 깊이 서로 약속하며 아쉬운 작별의 허그를 하고 각자 갈 길로 떠난다. 192센치 장신의 보이따와도 작별인사를 하면서 꼭 안는데 그 순간조차 키를 훅 낮춰주며 토닥토닥해주는 그의 다정함이 느껴졌다.

앞으로 당분간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가끔가끔 우리의 순간들을 떠올릴 때 다들 행복을 느낄 수 있기를... 정말로.

그렇게 모두와 작별하고 기차역에 혼자 앉아 들어오고 떠나는 기차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더랬다. 계단 아래에서 들려오는 길거리 연주자의 음악을 들으면서 몇 시간째 그냥... 그러다가 문자를 몇 통 받았다. 내가 마지막 날 밤에 모두에게 썼던 편지에 대한 답장이었다. 예쁜 한복 치마 속에 감춰진 편지를 다들 그제서야 발견하고는 감동적인 문자를 보내오더라. 다시 혼자 여행해야한다는 사실에 조금 외롭고 마음이 허했던 것들이 순간 사라졌다. 우리는 꼭 다시 만날거니까!! 그렇게 힘을 내서 다음 여정지인 아름다운 베니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내가 내 인생에서 어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꽤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되는 2주 동안의 값진 경험이었다. 그 곳에서 만났던 노라, 테레자, 리디아, 밴디, 카리나, 설리, 다니엘라, 예로슬라프, 쟈네따, 보이따, 그리고 모두들 지금 이 순간, 많이많이 행복하기를^.^ 아직도 그들은 나에게 너무나 좋은 친구이다. 물론 앞으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