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Espalem, 낯선 곳에서 찾은 특별한 인연
BLESL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설렘 가득했던 한번의 클릭은 나를 프랑스로 향하게 했다. 역 앞에서 반갑게 맞아주었던 클로이와 나탈리의 식구들의 모습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참으로 어색했던 우리가 과연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라고 느꼈던 첫 만남.
잠자리, 샤워실, 부엌, 화장실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하나 둘씩 치우고 청소하다 보니 적응이 되는건 시간문제였다. 적응을 해야 했던건 장소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문화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한 첫 경험이었기에 내게 적응이 필요했다.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것, 야채를 깨끗이 씻지 않고 음식을 만드는 것, 한국과 다른 라이언의 식사예절 등 나와 다른 행동들은 다소 거부감을 일으켰다. 하지만 다른 만큼 매력적인 것들도 많았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한국, 홍콩식의 음식을 맛볼 수 있었고, 처음 접해보는 게임들, 춤, 제스쳐, 나라마다 다른 문화들은 거부감을 짓누를 만큼 신선했다.
봉사역시 힘들기도 했지만 즐거웠다. 우리의 주된 봉사는 오래된 돌을 걸러내고 그 위에 시멘트를 바르는 일이었다. 더불어 행운이게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봉사도 해보고, 다른 지역의 축제를 도와주는 일도 했다.
지역 축제를 도와주는 일을 하는데 우리들과 관계자 그리고 캠프리더 간에 마찰이 있었다. 일손이 부족하다고 숙소에서 불러놓고는 일이 없다며 웨이팅만 계속 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4번을 기다렸다. 평소 주장이 확실한 누리아가 4번의 기회를 줬으니 숙소에 가겠다고 먼저 리더에게 말을 꺼냈고, 그 얘기가 끝나자마자 관리자가 우리 앞을 지나갔다. 관리자를 부여잡고, 누리아가 다시 한번 말하고 있는 순간에 화가 나 감정이 복받친 마이티가 관리자에게 다소 격한 말을 했다. 관리자가 가고 난 후 누리아는 큰 일도 아닌일에 감정적으로 나서면 안됐고, 무례한 발언을 하면 안됐다며 마이티를 나무랐다. 한국에서도 가능했을까? 부당하다고 리더가 아닌, 팀원들이 관리자에게 의견을 말하고 친구가 친구에게 방금 행동한 것에 대해 잘못을 꼬집어 주는것. 나였다면, 아마 하염없이 기다리다 은근슬쩍 리더를 꼬셔 숙소로 가자고 했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누리아의 입장이었다면, 난 결코 마이티에게 그렇게 말 할 수없었을 것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2주였지만, 내가 가장 크게 느낀건 한국인과 홍콩인이었던 아시안 친구들은 주장을 ‘눈치’를 보며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간의 마찰이 있었을 때도 항상 아시안 친구들은 조용했다. 문화차이라고 하기엔 극복해야할 문제였다. ‘눈치’를 보면 따르기만 할 뿐이다. 가장 크게 느꼈던 나의, 우리의 부족함이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프랑스의 자연을 느낀 것도 하나의 축복이었다. 잔디가 보이면 누워 일광욕을 하고, 강이 보이면 물놀이를 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별똥별을 봤던 날이었다.
‘잔디 위에 푹신한 패드를 깔고 다같이 누웠다. 마이티와 누리아는 내 배를 베개삼아 누웠고 다다닥 붙어 있으니 꽤나 따뜻해졌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엄청난 별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처음으로 본 슈팅스타에 나와 다연언니는 소릴 질렀다.
슈팅스타를 보기위해 다들 숨죽여 하늘만을 바라보았다. 조용한 밤하늘을 보며 다들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이, 국가, 성별도 다른 우리가 같은 공간에 옹기종기 포개어 누워있다.
하늘엔 별이 내리고 우리는 그저 숨죽여 바라만 보았다.
우리는 슈팅스타가 떨어질 때 꿈을 빌기로 했다. 다들 잘 빌었을까?‘ - 2013. 8. 10
그 순간을 기록했던 메모이다.
걱정했던 첫 만남과는 달리 우리는 옹기종기 포개워 누워있을 만큼의 친구가 되어있었다. 모든 친구들이 'Romantic'이라고 외칠만큼 아름다웠던 순간. 숨죽여 있던 그 순간을 아직도 나는 잊지 못한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그 날 밤을 그리고 2주간의 생활들이 별똥별처럼 순식간에 날아갔지만, 별똥별을 봤을 때의 강렬한 인상처럼 내 마음 속에 길이 남아 나와 살아갈 것이다.
잠자리, 샤워실, 부엌, 화장실 어느 하나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하나 둘씩 치우고 청소하다 보니 적응이 되는건 시간문제였다. 적응을 해야 했던건 장소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문화를 가진 친구들과 함께한 첫 경험이었기에 내게 적응이 필요했다. 수돗물을 그냥 마시는 것, 야채를 깨끗이 씻지 않고 음식을 만드는 것, 한국과 다른 라이언의 식사예절 등 나와 다른 행동들은 다소 거부감을 일으켰다. 하지만 다른 만큼 매력적인 것들도 많았다.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한국, 홍콩식의 음식을 맛볼 수 있었고, 처음 접해보는 게임들, 춤, 제스쳐, 나라마다 다른 문화들은 거부감을 짓누를 만큼 신선했다.
봉사역시 힘들기도 했지만 즐거웠다. 우리의 주된 봉사는 오래된 돌을 걸러내고 그 위에 시멘트를 바르는 일이었다. 더불어 행운이게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봉사도 해보고, 다른 지역의 축제를 도와주는 일도 했다.
지역 축제를 도와주는 일을 하는데 우리들과 관계자 그리고 캠프리더 간에 마찰이 있었다. 일손이 부족하다고 숙소에서 불러놓고는 일이 없다며 웨이팅만 계속 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4번을 기다렸다. 평소 주장이 확실한 누리아가 4번의 기회를 줬으니 숙소에 가겠다고 먼저 리더에게 말을 꺼냈고, 그 얘기가 끝나자마자 관리자가 우리 앞을 지나갔다. 관리자를 부여잡고, 누리아가 다시 한번 말하고 있는 순간에 화가 나 감정이 복받친 마이티가 관리자에게 다소 격한 말을 했다. 관리자가 가고 난 후 누리아는 큰 일도 아닌일에 감정적으로 나서면 안됐고, 무례한 발언을 하면 안됐다며 마이티를 나무랐다. 한국에서도 가능했을까? 부당하다고 리더가 아닌, 팀원들이 관리자에게 의견을 말하고 친구가 친구에게 방금 행동한 것에 대해 잘못을 꼬집어 주는것. 나였다면, 아마 하염없이 기다리다 은근슬쩍 리더를 꼬셔 숙소로 가자고 했을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누리아의 입장이었다면, 난 결코 마이티에게 그렇게 말 할 수없었을 것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2주였지만, 내가 가장 크게 느낀건 한국인과 홍콩인이었던 아시안 친구들은 주장을 ‘눈치’를 보며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간의 마찰이 있었을 때도 항상 아시안 친구들은 조용했다. 문화차이라고 하기엔 극복해야할 문제였다. ‘눈치’를 보면 따르기만 할 뿐이다. 가장 크게 느꼈던 나의, 우리의 부족함이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프랑스의 자연을 느낀 것도 하나의 축복이었다. 잔디가 보이면 누워 일광욕을 하고, 강이 보이면 물놀이를 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별똥별을 봤던 날이었다.
‘잔디 위에 푹신한 패드를 깔고 다같이 누웠다. 마이티와 누리아는 내 배를 베개삼아 누웠고 다다닥 붙어 있으니 꽤나 따뜻해졌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엄청난 별들이 하늘을 수놓았다.
처음으로 본 슈팅스타에 나와 다연언니는 소릴 질렀다.
슈팅스타를 보기위해 다들 숨죽여 하늘만을 바라보았다. 조용한 밤하늘을 보며 다들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이, 국가, 성별도 다른 우리가 같은 공간에 옹기종기 포개어 누워있다.
하늘엔 별이 내리고 우리는 그저 숨죽여 바라만 보았다.
우리는 슈팅스타가 떨어질 때 꿈을 빌기로 했다. 다들 잘 빌었을까?‘ - 2013. 8. 10
그 순간을 기록했던 메모이다.
걱정했던 첫 만남과는 달리 우리는 옹기종기 포개워 누워있을 만큼의 친구가 되어있었다. 모든 친구들이 'Romantic'이라고 외칠만큼 아름다웠던 순간. 숨죽여 있던 그 순간을 아직도 나는 잊지 못한다.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그 날 밤을 그리고 2주간의 생활들이 별똥별처럼 순식간에 날아갔지만, 별똥별을 봤을 때의 강렬한 인상처럼 내 마음 속에 길이 남아 나와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