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터키, 묘한 이끌림에 떠난 워크캠프
MATH VILLAGE-2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1. 참가동기
친한 친구로부터 '국제워크캠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 당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라인 '터키'에서 열리는 국제워크캠프 프로젝트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터키에 관심이 갔던 이유는 그 나라를 떠올리면 생각이 나는 어렴풋한 이미지 때문이었습니다. 석양 위로 초승달이 떠오르는 장면이 왠지 모르게 떠올랐는데, 굉장히 묘한 느낌이었고, 그 느낌 하나로 국제워크캠프를 '터키'에서 해보고 싶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저 외국인 친구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닌, 현지인들과 직접 교류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제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2. 특별한 에피소드
모든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다 제게는 특별합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만 힘들게 취사선택해 간추려 보았습니다.
(1) 우리가 처음 만났던 우울한 날
아무래도 처음 모든 캠퍼들이 만났던 2013년 8월 19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제가 오피스에 제일 먼저 도착한 캠퍼여서, 제가 참가했던 프로그램을 주관해주셨던 분 그리고 리더와 제일 처음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너무 일찍 도착을 해서 다른 캠퍼들이 오기 전까지 리더와 반나절동안 둘이서 함께 다니며 서로에 대한 장벽을 허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캠프가 끝이 난지 이제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리더인 '라단'과 함께 술탄아흐멧 지구에 있는 스파이스 바자르에서 온갖 가게를 누비고 다니며 신기한 차와 젤리를 먹으며 즐거웠던 시간이, 이스티클랄 거리를 걸으며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황홀한 음악을 들으며 서로의 음악적 취향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던 순간이, 쿰피르 가게에 앉아 연애에 대한 소소한 경험들을 얘기했던 그 순간 순간이 모두 생생합니다.
그렇게 리더와 함께 재밌는 시간을 가지고 오피스에 돌아왔을 때는, 다른 캠퍼들에 대한 궁금증이 매우 증폭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미팅 시간이 한참 지날때까지 오피스에 모인 사람은 저, 그리고 리더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 전부였습니다. 열 명이 오기로 되어있었는데 다섯 명만이 모인 상태였고, 도착하지않은 다른 캠퍼들로부터는 그 어떤 연락도 오지 않은 상황이였습니다. 모두가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리더를 제외하곤 모두 아시아인들이어서, 유러피언들과의 교류를 기대했던 저로써는 시작부터 좋지않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리더를 바라보니 리더 또한 무척이나 실망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모인 다섯 캠퍼들에게 오피스 담당자분께서는 오리엔테이션 영상을 보여주셨고, 마지막에 남기신 말 한마디가 실망감에 빠진 저를 위로 끌어 올렸습니다.
"The camp depends on you."
그 분의 말 한마디 덕분에, 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 모두가 다시 힘을 얻고 캠프를 즐겁게 열어갈 수 있었다고 지금 와서 생각합니다.
(2) 덜커덩 트랙터를 타고 복숭아 밭으로!
제가 참가했던 프로젝트에서는 참으로 다양한 활동의 기회를 저 그리고 다른 캠퍼들에게 제공해주었습니다. 나무 옮기는 일, 쓰레기통 치우는 일, 돌 길 쓸기, 오이썰어 담기(그리고 오이써느라 수고했다고 말씀하시며 요리사 아저씨인 Asim이 정성껏 만드신 케이크 먹기...!), 가구 사포질 하고 칠하기, 그리고 복숭아 따기...!!! 참으로 다양한 활동을 2주간 했고, 모든 활동이 정말로 재미있었지만, 그 중 제가 제일 즐겼던 활동은 복숭아를 따는 일이었습니다.
복숭아를 따러 과수원에 가는 길 부터가 너무나 낭만적이었습니다. 코가 커서 '따삐'라 (우리 캠퍼들끼리 몰래 중국어로 별명을 붙여) 불렀던 (정말 믿기지 않지만 94년생인) 소년이 운전하는 트랙터 뒤에 다섯명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시골마을 길을 참 재미나게도 달렸습니다. 온 만신이 덜커덩 거리고 바닥에서는 흙먼지가 뭉게뭉게 피어올랐지만, 우리들은 얼마나 재미있어 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도착한 복숭아 밭에서, 새빨간 복숭아들이 탐스럽게 열려있는 복숭아 나무들을 보는 것도, 그리고 그 복숭아를 따서 바로 입으로 가져서 베어 물었을 때의 감동은 말로 다 표현을 못할 정도로 만족스럽고 즐거웠습니다.
복숭아 과수원에서 트랙터를 타고 다시 '수학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저희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 또한 무척이나 신기로운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동양아이들이 어떻게 이 시골마을에까지 와서 트랙터를 타며 복숭아를 먹고 있는 거지? 하는 표정들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연예인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복숭아 하나씩을 던져서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우리가 딴 복숭아로 만든 복숭아쨈(Asim 아저씨께서 만드신)을 바로 그 다음날 아침 바게뜨 빵에 발라 먹었습니다!
(3) 인터뷰를 하다!!!
일을 끝내고 사라와 함께 수학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남자가 저희를 불렀습니다. 보아하니 딱봐도 터키인은 아닌 것 같고... 유럽에서 온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알고보니 캐나다에서 라디오 쇼를 맡고 있는 저널리스트 였습니다...! 그리고 저희에게 인터뷰 요청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저와 사라는, 그 아저씨와 함께 조그만 야외교실에 마주보고 앉아 ㅋㅋ 단촐한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저씨께서는 어떻게 해서 이 먼 곳에 까지 오게 되었으며, 수학 마을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언어' 자체에 대해 관심이 많으셨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도 질문을 몇차례 던지셨는데, 한국말에는 '노랗다'에도 여러가지 표현이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해 참으로 신기하고 멋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렇다'와 '샛!노랗다'와 '누리끼리~하다'는 다 노란색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다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말에 참으로 신기해하셨는데, 그 순간 한국어에 대해 자부심을 가짐과 동시에 지난 학기에 학교에서 활동했던 동아리(외국인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주는) 덕분에 쉽게 설명을 할 수 있었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뿌듯해했습니다.
(4) 가장 좋았던 요트 투어!!!
사실 국제워크캠프를 통해 터키 셀축에 위치한 '수학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왔습니다만, 사실 일을 했다고 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하루하루가 너무너무 편안했습니다. 워크캠프에서 '워크'는 빼야할 것 같은 느낌! 그래도 저희들은 휴일은 또 휴일대로 즐겼는데, 봉사활동하러 왔다고 기특해하시며 요트투어를 무료로 체험할 수 있게 해주신 분들이 계셨고, 수학 마을에서 함께 지냈던 터키 학생들(고등학생, 대학생)과 함께 요트투어를 하러 갔습니다...!
총 4군데의 바다를 돌며 요트 투어는 진행이 됬었는데,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요트 2층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2층은 너무 붐빌 것 같아서 계속 1층에만 있다가, 친구들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너무 놀랐던 것은... 함께 온 터키 학생들이 요트 위에서 너무도 자유롭게 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는 장면을 본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그 자유로운 영혼들의 춤사위에 저 또한 뭔가 마음 속에서 울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흐뭇하게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터키 학생 한 명이 다가와 함께 춤을 추자고 저를 이끌었습니다. 물론, 거절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러다가 지금 저 아이들과 함께 춤을 추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제 머릿속에 크게 울렸고, 저는 못이기는 척 그 아이 손을 잡고 요트 가운데로 나가 너무도 신나게 춤을 췄습니다. 친근했던 그 아이는 제게 터키 춤의 이름 하나 하나를 알려주며 스텝을 알려주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춤은 춰본적도 없는지라, 스텝이라 할 것도 없이 그저 몸부림을 치는 정도에 그쳤지만... 저는 그 순간 너무너무 즐거웠습니다. 다른 친구들에게 손짓을 하며 부르니 모두들 부끄러운지 손사래만 치고 있었는데, 역시 리더...! 라틴댄스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라단이 제 손짓에 반응해 함께 춤을 추러 왔습니다. 춤을 추며 어색해하는 스스로가 느껴졌지만, 용기를 낸 스스로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박수를 쳐주고 싶은 기분이었고, 저를 그저 이방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춤속에 함께 참여케 해준 그 터키 아이들과 제가 터키에 올 수 있게 지원해주신 부모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5) 리더에게 얼굴을 붉혔던 캠프 마지막 날
터키 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해 얘기했던 것 중, 그들이 가장 흥미로워했던 것은 다름 아니라 '한국 나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은 태아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10달 동안을 나이에 포함시키며, 그래서 '한국 나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얘기를 했을 때, 모두가 신기해 하며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리더에게도 해주었습니다. 리더인 라단은 제 얘기가 이해가 잘 안갔는지, 욕을 섞어가며 뭐 그런 이상한 이야기가 다 있냐는 말로 제 기분을 언짢게 만들었습니다. 저도 초반에는 계속해서 이해를 할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만, 라단의 한 마디 한 마디가 한국에 대해 욕을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퍽이나 상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욕을 섞어서 한국 나이니 뭐니 하는 건 좀 너무 이상하다고 하는 그 얘기에, 저는 라단을 이해시키는 걸 완전히 포기하고 너같은 애들은 알 필요 없다고 딱 잘라 얘기해버렸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말 없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버렸습니다. 그러자 라단이 갑자기 왜 그러냐고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순간 너무 화가나서 말조차 하기가 싫은 마음에, 그냥 다른 것 때문에 잠시 갔다 온다고 에둘러서 말할까 하다가, 머리 속으로 스치는 생각 하나 때문에 솔직히 제 생각을 말했습니다. 나는 너한테 한국 나이에 대해서 설명을 친절하게 해주려고 노력을 했는데, 너는 이해가 안간다는 이유 하나로 나한테 욕을 하지 않았느냐고. 그래서 솔직히 나는 지금 기분이 많이 상했다고. 그러자 라단은 자신은 정말 욕을 한 적이 없다고, 자신은 평소에 욕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제가 아무말없이 서있자 다시 저한테 한 번 더 물었습니다. 자기가 정말로 욕을 했냐고 묻는 는 말에 저는 그렇다고 얘기했는데... 라단은 정말로 자기가 욕을 했다는 걸 모르는 표정이었고, 저에게 너무나도 미안해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아서, 잠시 생각 좀 정리하고 올테니 걱정마라고, 다시 돌아올거라고 얘기를 하고 한참을 돌아다니며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습니다.
밤늦게 마을의 외진 곳에 앉아 혼자 생각을 하려니, 너무나도 서럽고 화도 나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캠프 마지막날 이렇게 안좋게 일이 생기는 걸까, 내가 다시 돌아가면 거기에 있는 사람들 내가 소리지른 것 다 알텐데 날 어떻게 바라볼까, 그냥 텐트로 가서 자버릴까, 아 그냥 집에 가고 싶다... 정말 온갖생각을 다 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결국엔 다시 라단에게 가기로 결심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도착하니, 라단은 다른 테이블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저는 아까 머물렀던 테이블앞에 앉아 다른 캠퍼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조금 후 라단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라단은 정말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추운데 어디에 있다가 왔냐고 제게 물었고, 저는 순간, 라단에게 솔직한 제 생각을 말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혼자 있었던 시간동안 곰곰히 생각했던 것들을 라단에게 서툴지만 영어로 전했고, 라단은 저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라단에게 전해준 제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있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크고 사소한 일로 다투고, 서로 기분이 언짢은 일도 많았지만, 나는 그게 바로 우리가 여기 이 캠프에 참가한 이유라고 생각해.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다른 교육방식 안에서 커왔기 때문에, 가끔씩 우리는 서로가 하는 말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았잖아. 그렇지만 나는 너랑 지난 2주동안 함께하면서, 그 어디에서도 돈을 주고는 살 수 없는 값진 수업을 받았고, 나는 그것에 대해 너무 감사하게 생각해.'
결과적으로, 그 날 이후 저와 라단은 둘만이 가지고 있는 그 묘한 일로 인해서 서로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연락하고 지내고 있지요. 언젠가 함께 터키의 동부를 여행하자고 멀다면 먼 약속도 함께 하구요. :)
(6) 터키사람들은 한국인을 정~말~로 좋아하는 구나!
터키여행을 하면서 정말 많이 느꼈던 건, 터키사람들이 한국을 정말로 많이 좋아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나 캠프 마지막 날 낮에 다녀왔던 옆마을 '쉬린제' 마을에서는, 평생 받을 사랑을 다 받고 돌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정말로 많은 터키인들에게서 지대한 관심을 받고 왔습니다.
캠프 마지막 날이라 저를 포함한 다섯 캠퍼들과 저를 항상 예뻐해줬던 엘리프 언니는 옆마을인 쉬린제 마을에서 쇼핑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날따라 한국인을 좋아하는 터키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습니다. 동양아이들이 시골시장을 돌아다니는 걸 보며 많은 사람들은 "꼬레? 꼬레?"하며 한국인이 있냐고 많이 물어보았습니다.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저는 정말로 지대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터키에서도 K-POP이 대세인지라 저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터키 소녀들에게서 악수를 받고, 포옹을 받고, 사진모델이 되어서 수많은 터키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이라는 말 한마디에 너무나 감격스러워하며 악수를 청했던 소녀의 얼굴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고, 소싯적 한국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다며 한국인은 모두 warm-hearted라 얘기해주신 터키 아저씨의 따뜻한 미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수학 마을'을 떠나기 전 엘리프 언니가 제게 건넸던 가방 안에는, 제가 그 전날 쉬린제 마을에서 사려고 했었지만 돈이 부족해 살 수 없었던 작고 예쁜 가방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니가 건네준 편지... ㅜㅜ 언니가 영어를 잘 하지 못해 항상 우리는 종이를 펴고 그림을 그리며 그림대화를 하곤 했었는데, 편지에는 언니가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적었는지 영어로 빼곡히 편지글이 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 속에는 언니가 제게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영어가 부족해 미처 다 얘기하지 못한 너무도 사랑스럽고 따뜻한 마음들이 예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언니는 저와 대화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영어를 배우겠다고 얘기했습니다. ㅜㅜ 한국에서는 너무나도 평범한 얼굴이고, 스스로는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저를 늘 귀엽다고 아껴주며, 자신감을 주었던 엘리프 언니가 참 생각이 많이 납니다.
3. 활동 이야기
활동 이야기는 위에서 잠시 얘기했던 대로, 정말로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나무 옮기는 일, 쓰레기통 치우는 일, 돌 길 쓸기, 오이썰어 담기, 가구 사포질 하고 칠하기, 그리고 복숭아 따기...! 활동 자체도 참 재미가 있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항상 일거리를 제공해 주었던 훈훈한 형제 두 명입니다. '따삐'와 '샤오삐'. '큰 코'와 '작은 코' 입니다. ㅋㅋ 무성한 수염과 나무껍질 같은 까만 피부탓에 서른 살 아저씨로 보이지만, 사실은 94년, 93년 생... 둘 다 말이 없어 저는 그들을 상남자라 부르고 다녔습니다. 한국말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일본인 친구 사라는 '상남자'에 대한 의미를 참으로 알고 싶어했고, 저는 부족한 영어탓에 'real man'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그들 덕분에 따삐와 샤오삐는 상남자 형제가 되어 늘 저희 캠퍼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한창 놀 나이에 쉬는 날 없이 일만 하고, 일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비춰질 정도였으니, 저와 사라는 그 형제에 대해 궁금한 점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시골마을에 까지 들어와 살게 되었는지, 왜 형제만 둘이서 이 마을에 살고 있는건지, 여자친구는 있는지... ㅋㅋ 캠프 마지막 날 저녁에 따삐가 저희 테이블로 와서 함께 식사를 하는 덕분에, 그동안 두 형제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보따리 채로 다 풀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쑥쓰러워 미처 물어보지 못한 것들은 눈치빠른 타이완 소년들이 다 물어봐 주었고, 저는 (그래도 궁금한 것 다 물어보진 못했지만) 속 시원히 궁금한 점을 거의 다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활동하면서 또 한 가지 소소했던 즐거움은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인인 저와 터키인인 리더 라단, 일본인 사라, 그리고 타이완 소년 두 명(포포와 핀칭)이 모였기 때문에, 그리고 인원이 워낙 적었기 때문에 저희들은 모두가 깊게 서로서로 교류할 수 있었고 동시에 4개 국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일하다가 더우면 가끔은 일본어로 "메~짜 아쯔이...!!!", 뚱뚱한 사람이 지나가면 중국어로 "팜~팜~", 고마운 일이 생기면 터키어로 "테셰큘랄~~~", 그리고 따삐와 샤오삐가 지나가면 "상!남!자" 라고 서로의 언어로 이야기 하며 일도 무척이나 재미있게 진행했습니다. ㅎㅎ
4. 다른 참가자들의 이야기
(1) 너무나도 귀여운 모리걸 '사라'(일본)
사라는 92년생으로, 저와 동갑내기 친구입니다. 일본인이지만 아일랜드에 살고, 꿈이 '한국남자와 결혼!!!하는 것'인, 한국을 한국인보다도 무척이나 사랑하는 친구입니다. 처음에 만났을 때 제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처음에는 '아... K-POP 좋아하는 아이구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진정한 한국인이 되고 싶다고 늘 이야기하는 사라의 말은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라가 한국인을 참으로 좋아해서 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사라와 저는 동갑내기 친구이고, 둘 다 '모리걸(숲 속에서 나온 것같은 분위기의 소녀)' 스타일을 좋아하는 관계로 취향이 도플갱어 수준으로 무척이나 똑같았습니다...! 비슷하다고 하면 서운할 정도로 취향이 똑같아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너무너무 잘 통하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ㅜㅜ 같은 텐트를 썼기 때문에 다른 캠퍼들과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다가 가끔 함께 텐트로 돌아오는 날이면 하늘에 있는 쏟아질듯한 많은 별들을 보면서 또 이야기 보따리를 꺼내기도 하고, 텐트에 누워서도 끝없이 긴 이야기 보따리를 술술술 풀어나갔습니다.
사라는 무척이나 귀여운 것을 좋아했습니다. 터키에는 유난히 고양이가 많았는데, 고양이를 볼 때면 늘 그 특유의 하이톤으로 "큐~~~~~~~~~~~~~~~~~~트~~~~~~~~~~~~~~~!!!!!!!!!!"라고 외치며 ㅋㅋㅋ 고양이들을 찍으러 다니기에 바쁜 아이였습니다. 캠프가 시작하고 끝날때까지, 단 한 번도 변함없이 동물들을 너무 귀여워해서, 저와 다른 캠퍼들은 농담으로 사라 카메라 안에는 고양이 사진만 2만장이 넘을 거라고도 얘기했습니다. 2만장이 넘을지도 ㅎㅎ
사라는 지금 이탈리아를 한국인 친구와 함께 여행중입니다! 사라가 이탈리아에서 아일랜드로 조심히 넘어가기를 바랍니다...!
(2) 너무 예쁜 리더 ㅜㅜ '라단'(터키)
라단에 대한 이야기는 위에서 많이 해서, 조금 글이 짧아질 것 같습니다. ㅎㅎ 라단은 처음 봤을 때는 27살인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저보다 2살 어린, 94년 생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성숙하게 생겨서 제가 오해를 했습니다.
라단은 클럽문화를 아~주 사랑하고, 라틴댄스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운 프로급의 춤솜씨를 뽐냅니다. ㅎㅎ 그리고 대학에서는 'International Relationship'을 전공해서, 국제적 화두에 대해 무척이나 관심이 많고, 스스로의 Pride를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입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자기 주장이 강해서, 라단과 얘기를 할 때면 늘 신경을 곤두서는 저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라단과는 정말로 솔직한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라단은 웃을 때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서, 가끔은 꼭 안아주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ㅎㅎ
(3) 모르는 게 없는 소년, '포포'(타이완)
포포는 93년 생이고, 'Computer Science'를 공부하는 무척이나 똑똑한 아이입니다! 포포는 정말로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ㅋㅋ 게임이면 게임, 드라마면 드라마, 게다가 국제정세에 까지 관심이 많은 똑똑한 친구입니다. ㅎㅎ
포포에게는 참 고마운 점도 많은데, 제가 가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앞서갈때나, 티 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다른 캠퍼들로 인해서 상처를 받았을 때, 제 자존감을 절대로 건드리지 않으면서 저를 많이 감싸줬습니다. 때문에 저는 포포를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따뜻해지고, 포포에게 고마운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포포가 캠프 마지막 날 하루 전에 선물로 줬던 예쁜 엽서와 젓가락이 무척이나 소중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개학하고 학교 기숙사에까지 들고왔어요 ㅎㅎ
(4) 부끄럼이 많은 소년, '핀칭'(타이완)
핀칭은 포포와 고등학교 때 친구이고, 빠른 94년 생입니다. 그리고 핀칭은 치과의사가 꿈인데, 자주 입는 빨간색 티셔츠에는 '치약'이라고 한국말로 써져 있습니다. ㅋㅋㅋ 왜 치약이 한국어로 티셔츠에 써져 있는지 물어보니, 이 티셔츠에 적힌 모든 외국어는 'Tooth paste'를 의미한다고 하더군요! ㅎㅎ
핀칭은 부끄럼을 너무 많이 타서 정~~~말 잘 안 웃습니다. 아무리 재밌는 얘기를 해도 입가를 살짝 올려 미소만 잠시 지었다가 다시 입꼬리를 내립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핀칭보고도 상남자라고 하면서 많이 놀렸는데, 핀칭은 터키 여학생들 사이에서 정말 인기 최고였습니다. 식사시간만 되면 여학생들이 핀칭 줄 서있는 걸 보며 다들 핀칭 살피느라 정신이 없어서... ㅎㅎ 핀칭이랑 사진 찍고 싶은데 부끄럽다고 얘기하는 여학생들도 많았구요! ㅎㅎ 핀칭한테 캠프 마지막 날 전에 전해줬던 편지에, 웃는게 훨~~~씬 멋있다고 적었더니 다음날 시도때도 없이 미소를 짓던데 ㅋㅋ 참 귀엽고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반강제로? 협박으로? 핀칭에게 졸라서 받은 제 그림도 소중하게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치과의사가 되면 꼭 우리한테는 공짜로 해줘야 한다고 부탁했는데, 그러면 타이완에 와야하지 않냐고, 그 돈이 더 많이 들껄? 하고 얘기하더군요... ㅋㅋ
5. 참가 후 변화
지금은 또 한국 돌아온 지 시간이 조금 흘러서, 한국에 막 도착했을 때와는 제 모습이 또 다를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래간만에 저를 본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무척이나 긍정적이었습니다. 원래 워낙에 남을 경계하는 탓에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늘 긴장을 하고 있는 저인데, 오랫만에 만난 선배 언니를 보자 마자 와락 껴안았습니다! 언니가 무척이나 기뻐하면서 이제부터 포옹하는 인사법을 제 마스코트로 만들라고 하더군요! ㅎㅎ 그리고 제 얼굴에 꽃이 피었다고 하면서 너무너무 얼굴이 좋아보인다고, 너무너무 행복해 보인다고 이야기 많이 해줬습니다! 친구들도 얼굴은 참 많이 탔지만 너무 즐거워 보인다고 많이 이야기 하구요 ㅎㅎ
터키에서와는 너무도 다른 생활... 한국에 이제 완전히 적응했다고 느낄 때는, 제가 손에 꼽을 정도로 오늘 하루동안 웃은 일이 많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입니다. ㅜㅜ 터키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가장 걱정했던 문제였습니다. '한국 돌아가면 다시 그 환경 속에서 삭막해질텐데... 그러면 다시 생각이 비관적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것... 가끔씩은 터키에서의 지난 3주가 무척이나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만, 항상 그 때 그 속에서의 긍정적이고 밝았던, 제가 좋아했던 제 모습을 떠올리면서 의식적으로 밝게 생각을 하고 지금 제가 존재하는 이 사회 속에서 행복하게 지내려고 노력합니다. ^_^
음... 사실은 보고서를 계속 미뤘던 이유도 '참가 후 변화'에 대해 스스로도 미처 정리가 안 되어있고 혼란스러워서, 그래서 사실 지금은 그 때만큼 즐겁지 않다고 스스로 글로 적고 그 사실을 상기시키는 자체가 두려워서 였습니다. 솔직히 말해, 터키에 있을 때와 비교했을 때 지금 제 생활은 무척이나 빠르게 돌아가고 톱니바퀴처럼 변화없이 단조롭게 흘러가는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터키를 갔다오기 전에는 그저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니... 하고 삶의 의욕없이 제 자신을 그 속에 놓아버렸던 것 과는 달리, 지금은 다시 저에게 꿈이 생겼고 그 때문에 하루하루가 의미있으면서, 글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지만 터키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며 느꼈던 것들로 인해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다양하고 질적으로 풍족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생각함에 있어 자신이 또 앞으로 삶을 이어가고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여기는데, 저는 터키여행을 통해 받은 따뜻한 사랑을 그저 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잠깐의 '원동력'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터키 여행에서와 같이 그렇게 정말로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글이 어수선하고 정리가 안되는 것 같습니다만... 참가 후 변화를 굳이 표현하자면 '사람의 삶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고, 질적으로 풍요로울 수 있는 가를 직접 체험하고 온 것', '사람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것',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을 찾은 것' 등등이 있겠습니다.
* 정리가 안되고 어수선한... 제 긴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리고,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ok0294@naver.com 010-9633-0619)
사실, 터키 여행(캠프 전 1주일간 자유여행, 총 3주간 터키에 머무름)을 시작했던 가장 솔직한 이유는 '사람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싶어서 였습니다. 제가 항상 혼자하는 걸 좋아해서 뭐든 혼자 다 완벽하게 끝내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사실 이 부분을 참 고치고 싶었거든요... ㅜㅜ 그러다가 터키 사람들이 정말로 따뜻하고 한국인에 대해 좋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터키 여행을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결과는 아주 만족스럽네요 ㅎㅎ 정말로 사랑을 많이 받고 왔습니다. 사람에 의한 상처는 사람에 의해서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ㅎㅎ
친한 친구로부터 '국제워크캠프'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 당시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라인 '터키'에서 열리는 국제워크캠프 프로젝트를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터키에 관심이 갔던 이유는 그 나라를 떠올리면 생각이 나는 어렴풋한 이미지 때문이었습니다. 석양 위로 초승달이 떠오르는 장면이 왠지 모르게 떠올랐는데, 굉장히 묘한 느낌이었고, 그 느낌 하나로 국제워크캠프를 '터키'에서 해보고 싶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저 외국인 친구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닌, 현지인들과 직접 교류를 할 수 있다는 점이 제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2. 특별한 에피소드
모든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다 제게는 특별합니다. 그 중에서 몇 가지만 힘들게 취사선택해 간추려 보았습니다.
(1) 우리가 처음 만났던 우울한 날
아무래도 처음 모든 캠퍼들이 만났던 2013년 8월 19일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당시 제가 오피스에 제일 먼저 도착한 캠퍼여서, 제가 참가했던 프로그램을 주관해주셨던 분 그리고 리더와 제일 처음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너무 일찍 도착을 해서 다른 캠퍼들이 오기 전까지 리더와 반나절동안 둘이서 함께 다니며 서로에 대한 장벽을 허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캠프가 끝이 난지 이제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리더인 '라단'과 함께 술탄아흐멧 지구에 있는 스파이스 바자르에서 온갖 가게를 누비고 다니며 신기한 차와 젤리를 먹으며 즐거웠던 시간이, 이스티클랄 거리를 걸으며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하는 황홀한 음악을 들으며 서로의 음악적 취향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던 순간이, 쿰피르 가게에 앉아 연애에 대한 소소한 경험들을 얘기했던 그 순간 순간이 모두 생생합니다.
그렇게 리더와 함께 재밌는 시간을 가지고 오피스에 돌아왔을 때는, 다른 캠퍼들에 대한 궁금증이 매우 증폭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미팅 시간이 한참 지날때까지 오피스에 모인 사람은 저, 그리고 리더를 포함해서 다섯 명이 전부였습니다. 열 명이 오기로 되어있었는데 다섯 명만이 모인 상태였고, 도착하지않은 다른 캠퍼들로부터는 그 어떤 연락도 오지 않은 상황이였습니다. 모두가 실망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리더를 제외하곤 모두 아시아인들이어서, 유러피언들과의 교류를 기대했던 저로써는 시작부터 좋지않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리더를 바라보니 리더 또한 무척이나 실망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렇게 모인 다섯 캠퍼들에게 오피스 담당자분께서는 오리엔테이션 영상을 보여주셨고, 마지막에 남기신 말 한마디가 실망감에 빠진 저를 위로 끌어 올렸습니다.
"The camp depends on you."
그 분의 말 한마디 덕분에, 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 모두가 다시 힘을 얻고 캠프를 즐겁게 열어갈 수 있었다고 지금 와서 생각합니다.
(2) 덜커덩 트랙터를 타고 복숭아 밭으로!
제가 참가했던 프로젝트에서는 참으로 다양한 활동의 기회를 저 그리고 다른 캠퍼들에게 제공해주었습니다. 나무 옮기는 일, 쓰레기통 치우는 일, 돌 길 쓸기, 오이썰어 담기(그리고 오이써느라 수고했다고 말씀하시며 요리사 아저씨인 Asim이 정성껏 만드신 케이크 먹기...!), 가구 사포질 하고 칠하기, 그리고 복숭아 따기...!!! 참으로 다양한 활동을 2주간 했고, 모든 활동이 정말로 재미있었지만, 그 중 제가 제일 즐겼던 활동은 복숭아를 따는 일이었습니다.
복숭아를 따러 과수원에 가는 길 부터가 너무나 낭만적이었습니다. 코가 커서 '따삐'라 (우리 캠퍼들끼리 몰래 중국어로 별명을 붙여) 불렀던 (정말 믿기지 않지만 94년생인) 소년이 운전하는 트랙터 뒤에 다섯명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시골마을 길을 참 재미나게도 달렸습니다. 온 만신이 덜커덩 거리고 바닥에서는 흙먼지가 뭉게뭉게 피어올랐지만, 우리들은 얼마나 재미있어 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도착한 복숭아 밭에서, 새빨간 복숭아들이 탐스럽게 열려있는 복숭아 나무들을 보는 것도, 그리고 그 복숭아를 따서 바로 입으로 가져서 베어 물었을 때의 감동은 말로 다 표현을 못할 정도로 만족스럽고 즐거웠습니다.
복숭아 과수원에서 트랙터를 타고 다시 '수학마을'로 돌아오는 길에, 저희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 또한 무척이나 신기로운 것이었습니다. 모두들 동양아이들이 어떻게 이 시골마을에까지 와서 트랙터를 타며 복숭아를 먹고 있는 거지? 하는 표정들이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연예인이 된 듯한 착각에 빠져서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며 복숭아 하나씩을 던져서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우리가 딴 복숭아로 만든 복숭아쨈(Asim 아저씨께서 만드신)을 바로 그 다음날 아침 바게뜨 빵에 발라 먹었습니다!
(3) 인터뷰를 하다!!!
일을 끝내고 사라와 함께 수학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남자가 저희를 불렀습니다. 보아하니 딱봐도 터키인은 아닌 것 같고... 유럽에서 온 듯한 느낌이 들었는데, 알고보니 캐나다에서 라디오 쇼를 맡고 있는 저널리스트 였습니다...! 그리고 저희에게 인터뷰 요청을 해왔습니다!!! 그래서 저와 사라는, 그 아저씨와 함께 조그만 야외교실에 마주보고 앉아 ㅋㅋ 단촐한 인터뷰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저씨께서는 어떻게 해서 이 먼 곳에 까지 오게 되었으며, 수학 마을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셨습니다. 그 외에도 '언어' 자체에 대해 관심이 많으셨는지 그 부분에 대해서도 질문을 몇차례 던지셨는데, 한국말에는 '노랗다'에도 여러가지 표현이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해 참으로 신기하고 멋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렇다'와 '샛!노랗다'와 '누리끼리~하다'는 다 노란색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다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말에 참으로 신기해하셨는데, 그 순간 한국어에 대해 자부심을 가짐과 동시에 지난 학기에 학교에서 활동했던 동아리(외국인에게 한국말을 가르쳐주는) 덕분에 쉽게 설명을 할 수 있었다고 스스로 생각하며 뿌듯해했습니다.
(4) 가장 좋았던 요트 투어!!!
사실 국제워크캠프를 통해 터키 셀축에 위치한 '수학 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왔습니다만, 사실 일을 했다고 하기가 민망할 정도로 하루하루가 너무너무 편안했습니다. 워크캠프에서 '워크'는 빼야할 것 같은 느낌! 그래도 저희들은 휴일은 또 휴일대로 즐겼는데, 봉사활동하러 왔다고 기특해하시며 요트투어를 무료로 체험할 수 있게 해주신 분들이 계셨고, 수학 마을에서 함께 지냈던 터키 학생들(고등학생, 대학생)과 함께 요트투어를 하러 갔습니다...!
총 4군데의 바다를 돌며 요트 투어는 진행이 됬었는데, 제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요트 2층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2층은 너무 붐빌 것 같아서 계속 1층에만 있다가, 친구들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너무 놀랐던 것은... 함께 온 터키 학생들이 요트 위에서 너무도 자유롭게 음악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추는 장면을 본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그 자유로운 영혼들의 춤사위에 저 또한 뭔가 마음 속에서 울리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흐뭇하게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터키 학생 한 명이 다가와 함께 춤을 추자고 저를 이끌었습니다. 물론, 거절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러다가 지금 저 아이들과 함께 춤을 추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제 머릿속에 크게 울렸고, 저는 못이기는 척 그 아이 손을 잡고 요트 가운데로 나가 너무도 신나게 춤을 췄습니다. 친근했던 그 아이는 제게 터키 춤의 이름 하나 하나를 알려주며 스텝을 알려주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춤은 춰본적도 없는지라, 스텝이라 할 것도 없이 그저 몸부림을 치는 정도에 그쳤지만... 저는 그 순간 너무너무 즐거웠습니다. 다른 친구들에게 손짓을 하며 부르니 모두들 부끄러운지 손사래만 치고 있었는데, 역시 리더...! 라틴댄스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라단이 제 손짓에 반응해 함께 춤을 추러 왔습니다. 춤을 추며 어색해하는 스스로가 느껴졌지만, 용기를 낸 스스로에게 세상에서 가장 큰 박수를 쳐주고 싶은 기분이었고, 저를 그저 이방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춤속에 함께 참여케 해준 그 터키 아이들과 제가 터키에 올 수 있게 지원해주신 부모님께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5) 리더에게 얼굴을 붉혔던 캠프 마지막 날
터키 사람들에게 한국에 대해 얘기했던 것 중, 그들이 가장 흥미로워했던 것은 다름 아니라 '한국 나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한국인들은 태아가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10달 동안을 나이에 포함시키며, 그래서 '한국 나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얘기를 했을 때, 모두가 신기해 하며 어떻게 그럴수가 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리더에게도 해주었습니다. 리더인 라단은 제 얘기가 이해가 잘 안갔는지, 욕을 섞어가며 뭐 그런 이상한 이야기가 다 있냐는 말로 제 기분을 언짢게 만들었습니다. 저도 초반에는 계속해서 이해를 할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만, 라단의 한 마디 한 마디가 한국에 대해 욕을 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퍽이나 상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욕을 섞어서 한국 나이니 뭐니 하는 건 좀 너무 이상하다고 하는 그 얘기에, 저는 라단을 이해시키는 걸 완전히 포기하고 너같은 애들은 알 필요 없다고 딱 잘라 얘기해버렸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아무말 없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버렸습니다. 그러자 라단이 갑자기 왜 그러냐고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순간 너무 화가나서 말조차 하기가 싫은 마음에, 그냥 다른 것 때문에 잠시 갔다 온다고 에둘러서 말할까 하다가, 머리 속으로 스치는 생각 하나 때문에 솔직히 제 생각을 말했습니다. 나는 너한테 한국 나이에 대해서 설명을 친절하게 해주려고 노력을 했는데, 너는 이해가 안간다는 이유 하나로 나한테 욕을 하지 않았느냐고. 그래서 솔직히 나는 지금 기분이 많이 상했다고. 그러자 라단은 자신은 정말 욕을 한 적이 없다고, 자신은 평소에 욕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제가 아무말없이 서있자 다시 저한테 한 번 더 물었습니다. 자기가 정말로 욕을 했냐고 묻는 는 말에 저는 그렇다고 얘기했는데... 라단은 정말로 자기가 욕을 했다는 걸 모르는 표정이었고, 저에게 너무나도 미안해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아서, 잠시 생각 좀 정리하고 올테니 걱정마라고, 다시 돌아올거라고 얘기를 하고 한참을 돌아다니며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습니다.
밤늦게 마을의 외진 곳에 앉아 혼자 생각을 하려니, 너무나도 서럽고 화도 나고 슬프기도 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캠프 마지막날 이렇게 안좋게 일이 생기는 걸까, 내가 다시 돌아가면 거기에 있는 사람들 내가 소리지른 것 다 알텐데 날 어떻게 바라볼까, 그냥 텐트로 가서 자버릴까, 아 그냥 집에 가고 싶다... 정말 온갖생각을 다 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릅니다. 그렇지만 결국엔 다시 라단에게 가기로 결심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도착하니, 라단은 다른 테이블에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저는 아까 머물렀던 테이블앞에 앉아 다른 캠퍼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조금 후 라단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라단은 정말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추운데 어디에 있다가 왔냐고 제게 물었고, 저는 순간, 라단에게 솔직한 제 생각을 말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혼자 있었던 시간동안 곰곰히 생각했던 것들을 라단에게 서툴지만 영어로 전했고, 라단은 저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라단에게 전해준 제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적혀있었습니다. '우리는 가끔 크고 사소한 일로 다투고, 서로 기분이 언짢은 일도 많았지만, 나는 그게 바로 우리가 여기 이 캠프에 참가한 이유라고 생각해. 우리는 서로 너무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다른 교육방식 안에서 커왔기 때문에, 가끔씩 우리는 서로가 하는 말을 정말로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았잖아. 그렇지만 나는 너랑 지난 2주동안 함께하면서, 그 어디에서도 돈을 주고는 살 수 없는 값진 수업을 받았고, 나는 그것에 대해 너무 감사하게 생각해.'
결과적으로, 그 날 이후 저와 라단은 둘만이 가지고 있는 그 묘한 일로 인해서 서로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연락하고 지내고 있지요. 언젠가 함께 터키의 동부를 여행하자고 멀다면 먼 약속도 함께 하구요. :)
(6) 터키사람들은 한국인을 정~말~로 좋아하는 구나!
터키여행을 하면서 정말 많이 느꼈던 건, 터키사람들이 한국을 정말로 많이 좋아한다는 점이었습니다. 특히나 캠프 마지막 날 낮에 다녀왔던 옆마을 '쉬린제' 마을에서는, 평생 받을 사랑을 다 받고 돌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정말로 많은 터키인들에게서 지대한 관심을 받고 왔습니다.
캠프 마지막 날이라 저를 포함한 다섯 캠퍼들과 저를 항상 예뻐해줬던 엘리프 언니는 옆마을인 쉬린제 마을에서 쇼핑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 날따라 한국인을 좋아하는 터키사람들을 참 많이 만났습니다. 동양아이들이 시골시장을 돌아다니는 걸 보며 많은 사람들은 "꼬레? 꼬레?"하며 한국인이 있냐고 많이 물어보았습니다.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저는 정말로 지대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터키에서도 K-POP이 대세인지라 저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터키 소녀들에게서 악수를 받고, 포옹을 받고, 사진모델이 되어서 수많은 터키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국인이라는 말 한마디에 너무나 감격스러워하며 악수를 청했던 소녀의 얼굴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고, 소싯적 한국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다며 한국인은 모두 warm-hearted라 얘기해주신 터키 아저씨의 따뜻한 미소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수학 마을'을 떠나기 전 엘리프 언니가 제게 건넸던 가방 안에는, 제가 그 전날 쉬린제 마을에서 사려고 했었지만 돈이 부족해 살 수 없었던 작고 예쁜 가방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니가 건네준 편지... ㅜㅜ 언니가 영어를 잘 하지 못해 항상 우리는 종이를 펴고 그림을 그리며 그림대화를 하곤 했었는데, 편지에는 언니가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적었는지 영어로 빼곡히 편지글이 써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 속에는 언니가 제게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영어가 부족해 미처 다 얘기하지 못한 너무도 사랑스럽고 따뜻한 마음들이 예쁘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언니는 저와 대화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영어를 배우겠다고 얘기했습니다. ㅜㅜ 한국에서는 너무나도 평범한 얼굴이고, 스스로는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저를 늘 귀엽다고 아껴주며, 자신감을 주었던 엘리프 언니가 참 생각이 많이 납니다.
3. 활동 이야기
활동 이야기는 위에서 잠시 얘기했던 대로, 정말로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나무 옮기는 일, 쓰레기통 치우는 일, 돌 길 쓸기, 오이썰어 담기, 가구 사포질 하고 칠하기, 그리고 복숭아 따기...! 활동 자체도 참 재미가 있었지만,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항상 일거리를 제공해 주었던 훈훈한 형제 두 명입니다. '따삐'와 '샤오삐'. '큰 코'와 '작은 코' 입니다. ㅋㅋ 무성한 수염과 나무껍질 같은 까만 피부탓에 서른 살 아저씨로 보이지만, 사실은 94년, 93년 생... 둘 다 말이 없어 저는 그들을 상남자라 부르고 다녔습니다. 한국말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던 일본인 친구 사라는 '상남자'에 대한 의미를 참으로 알고 싶어했고, 저는 부족한 영어탓에 'real man'이라고 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어쨌거나 그들 덕분에 따삐와 샤오삐는 상남자 형제가 되어 늘 저희 캠퍼들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습니다. 한창 놀 나이에 쉬는 날 없이 일만 하고, 일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비춰질 정도였으니, 저와 사라는 그 형제에 대해 궁금한 점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시골마을에 까지 들어와 살게 되었는지, 왜 형제만 둘이서 이 마을에 살고 있는건지, 여자친구는 있는지... ㅋㅋ 캠프 마지막 날 저녁에 따삐가 저희 테이블로 와서 함께 식사를 하는 덕분에, 그동안 두 형제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보따리 채로 다 풀어놓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쑥쓰러워 미처 물어보지 못한 것들은 눈치빠른 타이완 소년들이 다 물어봐 주었고, 저는 (그래도 궁금한 것 다 물어보진 못했지만) 속 시원히 궁금한 점을 거의 다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활동하면서 또 한 가지 소소했던 즐거움은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인인 저와 터키인인 리더 라단, 일본인 사라, 그리고 타이완 소년 두 명(포포와 핀칭)이 모였기 때문에, 그리고 인원이 워낙 적었기 때문에 저희들은 모두가 깊게 서로서로 교류할 수 있었고 동시에 4개 국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일하다가 더우면 가끔은 일본어로 "메~짜 아쯔이...!!!", 뚱뚱한 사람이 지나가면 중국어로 "팜~팜~", 고마운 일이 생기면 터키어로 "테셰큘랄~~~", 그리고 따삐와 샤오삐가 지나가면 "상!남!자" 라고 서로의 언어로 이야기 하며 일도 무척이나 재미있게 진행했습니다. ㅎㅎ
4. 다른 참가자들의 이야기
(1) 너무나도 귀여운 모리걸 '사라'(일본)
사라는 92년생으로, 저와 동갑내기 친구입니다. 일본인이지만 아일랜드에 살고, 꿈이 '한국남자와 결혼!!!하는 것'인, 한국을 한국인보다도 무척이나 사랑하는 친구입니다. 처음에 만났을 때 제가 한국인인 것을 알고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처음에는 '아... K-POP 좋아하는 아이구나...'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진정한 한국인이 되고 싶다고 늘 이야기하는 사라의 말은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사라가 한국인을 참으로 좋아해서 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사라와 저는 동갑내기 친구이고, 둘 다 '모리걸(숲 속에서 나온 것같은 분위기의 소녀)' 스타일을 좋아하는 관계로 취향이 도플갱어 수준으로 무척이나 똑같았습니다...! 비슷하다고 하면 서운할 정도로 취향이 똑같아서, 무슨 이야기를 해도 너무너무 잘 통하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ㅜㅜ 같은 텐트를 썼기 때문에 다른 캠퍼들과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다가 가끔 함께 텐트로 돌아오는 날이면 하늘에 있는 쏟아질듯한 많은 별들을 보면서 또 이야기 보따리를 꺼내기도 하고, 텐트에 누워서도 끝없이 긴 이야기 보따리를 술술술 풀어나갔습니다.
사라는 무척이나 귀여운 것을 좋아했습니다. 터키에는 유난히 고양이가 많았는데, 고양이를 볼 때면 늘 그 특유의 하이톤으로 "큐~~~~~~~~~~~~~~~~~~트~~~~~~~~~~~~~~~!!!!!!!!!!"라고 외치며 ㅋㅋㅋ 고양이들을 찍으러 다니기에 바쁜 아이였습니다. 캠프가 시작하고 끝날때까지, 단 한 번도 변함없이 동물들을 너무 귀여워해서, 저와 다른 캠퍼들은 농담으로 사라 카메라 안에는 고양이 사진만 2만장이 넘을 거라고도 얘기했습니다. 2만장이 넘을지도 ㅎㅎ
사라는 지금 이탈리아를 한국인 친구와 함께 여행중입니다! 사라가 이탈리아에서 아일랜드로 조심히 넘어가기를 바랍니다...!
(2) 너무 예쁜 리더 ㅜㅜ '라단'(터키)
라단에 대한 이야기는 위에서 많이 해서, 조금 글이 짧아질 것 같습니다. ㅎㅎ 라단은 처음 봤을 때는 27살인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저보다 2살 어린, 94년 생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성숙하게 생겨서 제가 오해를 했습니다.
라단은 클럽문화를 아~주 사랑하고, 라틴댄스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운 프로급의 춤솜씨를 뽐냅니다. ㅎㅎ 그리고 대학에서는 'International Relationship'을 전공해서, 국제적 화두에 대해 무척이나 관심이 많고, 스스로의 Pride를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이입니다. 저와 마찬가지로 자기 주장이 강해서, 라단과 얘기를 할 때면 늘 신경을 곤두서는 저였지만, 그렇기 때문에 라단과는 정말로 솔직한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라단은 웃을 때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서, 가끔은 꼭 안아주고 싶을 때가 있었습니다. ㅎㅎ
(3) 모르는 게 없는 소년, '포포'(타이완)
포포는 93년 생이고, 'Computer Science'를 공부하는 무척이나 똑똑한 아이입니다! 포포는 정말로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ㅋㅋ 게임이면 게임, 드라마면 드라마, 게다가 국제정세에 까지 관심이 많은 똑똑한 친구입니다. ㅎㅎ
포포에게는 참 고마운 점도 많은데, 제가 가끔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앞서갈때나, 티 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다른 캠퍼들로 인해서 상처를 받았을 때, 제 자존감을 절대로 건드리지 않으면서 저를 많이 감싸줬습니다. 때문에 저는 포포를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따뜻해지고, 포포에게 고마운 점이 많습니다. 그래서 포포가 캠프 마지막 날 하루 전에 선물로 줬던 예쁜 엽서와 젓가락이 무척이나 소중한 지도 모르겠습니다. 개학하고 학교 기숙사에까지 들고왔어요 ㅎㅎ
(4) 부끄럼이 많은 소년, '핀칭'(타이완)
핀칭은 포포와 고등학교 때 친구이고, 빠른 94년 생입니다. 그리고 핀칭은 치과의사가 꿈인데, 자주 입는 빨간색 티셔츠에는 '치약'이라고 한국말로 써져 있습니다. ㅋㅋㅋ 왜 치약이 한국어로 티셔츠에 써져 있는지 물어보니, 이 티셔츠에 적힌 모든 외국어는 'Tooth paste'를 의미한다고 하더군요! ㅎㅎ
핀칭은 부끄럼을 너무 많이 타서 정~~~말 잘 안 웃습니다. 아무리 재밌는 얘기를 해도 입가를 살짝 올려 미소만 잠시 지었다가 다시 입꼬리를 내립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핀칭보고도 상남자라고 하면서 많이 놀렸는데, 핀칭은 터키 여학생들 사이에서 정말 인기 최고였습니다. 식사시간만 되면 여학생들이 핀칭 줄 서있는 걸 보며 다들 핀칭 살피느라 정신이 없어서... ㅎㅎ 핀칭이랑 사진 찍고 싶은데 부끄럽다고 얘기하는 여학생들도 많았구요! ㅎㅎ 핀칭한테 캠프 마지막 날 전에 전해줬던 편지에, 웃는게 훨~~~씬 멋있다고 적었더니 다음날 시도때도 없이 미소를 짓던데 ㅋㅋ 참 귀엽고 사랑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반강제로? 협박으로? 핀칭에게 졸라서 받은 제 그림도 소중하게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치과의사가 되면 꼭 우리한테는 공짜로 해줘야 한다고 부탁했는데, 그러면 타이완에 와야하지 않냐고, 그 돈이 더 많이 들껄? 하고 얘기하더군요... ㅋㅋ
5. 참가 후 변화
지금은 또 한국 돌아온 지 시간이 조금 흘러서, 한국에 막 도착했을 때와는 제 모습이 또 다를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래간만에 저를 본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무척이나 긍정적이었습니다. 원래 워낙에 남을 경계하는 탓에 가족들과 함께 있어도 늘 긴장을 하고 있는 저인데, 오랫만에 만난 선배 언니를 보자 마자 와락 껴안았습니다! 언니가 무척이나 기뻐하면서 이제부터 포옹하는 인사법을 제 마스코트로 만들라고 하더군요! ㅎㅎ 그리고 제 얼굴에 꽃이 피었다고 하면서 너무너무 얼굴이 좋아보인다고, 너무너무 행복해 보인다고 이야기 많이 해줬습니다! 친구들도 얼굴은 참 많이 탔지만 너무 즐거워 보인다고 많이 이야기 하구요 ㅎㅎ
터키에서와는 너무도 다른 생활... 한국에 이제 완전히 적응했다고 느낄 때는, 제가 손에 꼽을 정도로 오늘 하루동안 웃은 일이 많이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입니다. ㅜㅜ 터키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가장 걱정했던 문제였습니다. '한국 돌아가면 다시 그 환경 속에서 삭막해질텐데... 그러면 다시 생각이 비관적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것... 가끔씩은 터키에서의 지난 3주가 무척이나 그리울 때도 있습니다만, 항상 그 때 그 속에서의 긍정적이고 밝았던, 제가 좋아했던 제 모습을 떠올리면서 의식적으로 밝게 생각을 하고 지금 제가 존재하는 이 사회 속에서 행복하게 지내려고 노력합니다. ^_^
음... 사실은 보고서를 계속 미뤘던 이유도 '참가 후 변화'에 대해 스스로도 미처 정리가 안 되어있고 혼란스러워서, 그래서 사실 지금은 그 때만큼 즐겁지 않다고 스스로 글로 적고 그 사실을 상기시키는 자체가 두려워서 였습니다. 솔직히 말해, 터키에 있을 때와 비교했을 때 지금 제 생활은 무척이나 빠르게 돌아가고 톱니바퀴처럼 변화없이 단조롭게 흘러가는 점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터키를 갔다오기 전에는 그저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니... 하고 삶의 의욕없이 제 자신을 그 속에 놓아버렸던 것 과는 달리, 지금은 다시 저에게 꿈이 생겼고 그 때문에 하루하루가 의미있으면서, 글로는 다 표현하지 못하지만 터키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것을 보며 느꼈던 것들로 인해서 사람의 삶이 얼마나 다양하고 질적으로 풍족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생각함에 있어 자신이 또 앞으로 삶을 이어가고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여기는데, 저는 터키여행을 통해 받은 따뜻한 사랑을 그저 제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잠깐의 '원동력'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터키 여행에서와 같이 그렇게 정말로 즐겁게 살고 싶습니다.
글이 어수선하고 정리가 안되는 것 같습니다만... 참가 후 변화를 굳이 표현하자면 '사람의 삶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고, 질적으로 풍요로울 수 있는 가를 직접 체험하고 온 것', '사람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것',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을 찾은 것' 등등이 있겠습니다.
* 정리가 안되고 어수선한... 제 긴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리고,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ok0294@naver.com 010-9633-0619)
사실, 터키 여행(캠프 전 1주일간 자유여행, 총 3주간 터키에 머무름)을 시작했던 가장 솔직한 이유는 '사람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싶어서 였습니다. 제가 항상 혼자하는 걸 좋아해서 뭐든 혼자 다 완벽하게 끝내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사실 이 부분을 참 고치고 싶었거든요... ㅜㅜ 그러다가 터키 사람들이 정말로 따뜻하고 한국인에 대해 좋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터키 여행을 결정하게 된 것입니다. 결과는 아주 만족스럽네요 ㅎㅎ 정말로 사랑을 많이 받고 왔습니다. 사람에 의한 상처는 사람에 의해서 치유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