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스위스 빈, 고된 여정 끝에 찾은 행복
NATURE PARC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 워크캠프의 시작은 항상 기대+걱정
스위스 작은 산골짜기 마을 Binn에서 개최되는 이번 워크캠프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이미 25일간의 자유여행과 한 차례의 덴마크 워크캠프를 마치고 바로 연이어 신청한 워크캠프는 물론 내 의사로 선택한 스케줄이었지만 몸과 마음이 꽤나 지쳐있던 상태였던 것 같다. 교통비를 최소화 시키고자 고른 바젤공항에서부터 빈까지의 이동까지 정확한 루트 정보없이 막연히 떠난 나로서는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데 꼬박 하루를 소요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더 빠른 기차 루트가 있었던 것 같다.) 기차로 보는 풍경은 이렇게 와~ 소리가 절로 날 정도로 멋있는데 난 내려서 보고 갈 여유조차 없고, 날은 저물어 가는데 인포싯에는 먼저 도착해도 숙식을 제공해 줄 수 없다고 쓰여있고. 정말 마음같아서는 아무 노부부나 붙잡고 하루만 재워달라고 청해야하나 싶었다. 빈으로 가는 기차루트의 중간에 갈아타는 곳인 브리그에서 마침 숙박시설을 발견하여 냉큼 휴식과 잠을 청했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느라 스위스를 맘껏 구경할 찰나도 없었는데 마침 브리그에서는 스위스에서 유명한 밴드의 작은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마을도 예쁘고 이제 오늘 밤 신변이 보호될 거처를 찾았다는 안심에 다음 날에 대한 기대도 차츰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 Our work and life in Binn
햇살 따뜻한 이 곳 브리그에서 다시 빈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내리는 와중에 나와 비슷한 차림새의 무거운 캐리어를 든 금발머리 여자와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 같은 종착역에 내리는 모습을 보고 대화를 나누다가 같은 워크캠프를 신청한 캠퍼인 것을 알게 되었다. 핀란드에서 온 아이노라고 하는 이 친구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쾌활한 친구였다. 베이스캠프까지는 거의 다 왔다만 그래도 도착하기도 전에 캠퍼를 만나서 함께 가니 안심이 되기도 했다.
미팅포인트에 도착하니 약속시간에 맞춰 미리 우리를 기다리던 리더인 스위스인 파스칼과, 러시아인 올가, 세르비아인 듀샨이 있었다. 아직 안 온 사람 체코인 블라디아와 스페인인 차비에르가 더 있었지만 오기로 했던 다른 참가자들의 불참으로 인해 이번 캠프는 총 7명의 소규모로 진행되었다. 이곳 저곳 모두 산맥으로 둘러싸인 스위스에서 우리가 할 프로젝트는 하이킹시즌이 되기 이전에 하이킹도로를 미리 정비하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 주제가 하이킹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전에 있던 자유여행과 다른 워크캠프의 짐들로 인해 침낭 및 하이킹장비를 준비해가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운이 따랐는지 굉장히 좋은 숙소가 배정되었다. 오두막집에 침대와 침구류, 식탁, 쇼파 등 모든 것이 갖춰져있었다. 음식은 미리 우리가 낸 돈으로 채워진 마트카드로 마음껏 사서 먹고 요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일요일에 만나 친해질 시간도 갖고 개인 휴식시간을 가지며 다음 날에 시작될 워크가 무엇일지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방공호 같은 곳에서 모여 우리의 워크리더를 기다렸다. 이 곳 주변의 모든 하이킹도로를 정비하는 사람은 강인한 인상을 가진 비르기따였다. 비르기따와 함께 일하는 분들 역시 우리를 하이킹도로까지 태워다 주시거나 때때로는 우리가 하는 일을 옆에서 함께 도와주시기도 했다. 첫 날은 비가와도 물이 잘 흘러갈 수 있도록 수로를 파내는 것이었다. 해가 너무 쨍쨍 뜨거운데도 우리는 묵묵히 그냥 시키는대로 도로를 곡괭이질 하고 삽질 하고 진짜 힘들었다. 덴마크 워크캠프는 뭐 그냥 천국이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끝이 안보이는 하이킹도로를 따라서 일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이노와 나는 "이건 진짜...work=노동이다....노예체험 하는 것 같애"라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우리는 비르기따에게 설마 2주 내내 이 일을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다행히 그건 아니란다. 오늘 하는 일이 아마 가장 어려운 일일거라는 말이 그나마 희망을 갖게 해주었다.
첫 날 이렇게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나서도 사실 우리 워크캠프는 강도가 꽤나 센 프로젝트였던 것이 분명하다. 매일 다른 루트를 골라서 곡괭이를 지고 오르며 산길을 깨끗이 정비하고, 하이킹 하는 데 방해가 될 돌을 골라 버리고, 금방 자라서 커지는 따가운 가시수풀을 다 잘라내고, 이정표를 바꿔야 하는 곳과 시냇물에 다리가 놓여져야 하는 곳에 다리를 놓는 것까지 온 산을 다 헤집고 다닌 것 같다. 사실 우리보다도 남자들은 해머를 들고 수로를 파야했으니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그치만 다들 큰 불만없이 묵묵히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했다. 하나 신기했던 경험은 지역 방송국에서 우리 프로젝트를 취재하러 나온 것이었다. 규모가 큰 촬영은 아니었지만 여자VJ 한명이 우리 일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인터뷰도 해갔다. 아쉽게도 인터넷이 안되서 그 프로그램을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매일 아침 다들 급하게 세수하고 시리얼을 먹고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옷을 챙겨입고 그렇게 나가도 항상 5분, 10분씩 늦어서 비르기따에게 눈치가 보이기 일쑤였다. 그리고 오전 8시경부터 보통 3시까지 일을 했다. 시간이 느리게 간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항상 점심시간을 고대했다. 이렇게 힘들 게 일하고 오면 우리는 모두 지쳐서 각자 침대며 쇼파에 널부러졌다. 워크캠프가 한참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되뇌였는지 싶지만 그 때 당시에는 정말로 매일 몸이 녹초가 되어있었다. 그 날 그 날 저녁식사는 순번을 따지진 않았지만 돌아가면서 요리했다. 혼자 동양인인 나를 빼고는 모두 주식이 빵, 감자, 샐러드, 고기 등이어서 매일 먹는 게 비슷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나름 잘 챙겨 먹었다. 그 중 하루는 내가 주먹밥과 볶음밥을 해주었는데 처음에는 못보던 비쥬얼에 다들 '이게 뭐지' 싶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만들었던 요리를 뚝딱! 다 해치워주었다. 세르비아 친구가 여태까지 우리가 먹었던 음식중에 이게 일등이야! 라고 해주고 다들 맛있었다고 잘먹었다고 하니 일류 요리사의 기분이란 이런건가 싶었다 :) 저녁은 각자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각자 알고 있는 게임을 하면서 그 날의 피로를 풀었다.
솔직히 나는 산악을 좋아하지 않는다. 워크캠프 내내 스스로에게 의문점이었던 게 산악을 싫어하는 내가 왜 이 프로그램을 선택했는지였다. 하이킹 슈즈는 없어서 발이 다 굳은 살로 도배되고 날씨는 더웠다 추웠다 비가 왔다가 그쳤다가 변덕이기 일쑤고 그냥 산악하는 것도 힘든 데 이걸 곡괭이를 들고 치워가면서 오르락 내리락 하니 저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때 내 나름 중요한 결정으로 인해 마음가짐을 다시잡아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산에 오를 때마다 매번 숨차고 힘들어도 내가 이 산도 못 오르면서 어떻게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고 다시 한번 힘을 냈다. 또 2000m에 다다르는 산맥들을 오르고 내리면서 보는 경관은 정말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고 또 아름다웠다. 산맥 끝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을 직접 내가 만져볼 수 있는 만큼의 고도를 올라갔으니 정말 내 아래 모든 게 다 보이는 느낌이었다. 아이노와 나는 항상 여긴 힘들어도 진짜 자연경관만큼은 최고라는 말을 자주 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우리 워크캠프들은 캠프도 좋아하고 자전거 타는 것도 좋아하고 서양애들이라서 그런지 활동적인 모습이 많이 보였다. 덕분에 나도 같이 다니면서 북돋아 지는 느낌이었고 서로 이끌어주고 하나되는 모습이 지금 돌이켜보니 인상적이다.
* 워크캠프를 떠나 이제 다들 제 자리로
우리의 워크캠프는 목요일날 끝났지만 금요일에 하루 통째로 휴식시간을 갖고 토요일에 각자 떠나기로 했다. 각자의 스케줄에 맞춰 출발해야 했던 우리는 금요일 밤에 마지막으로 스위스식 만찬을 즐기고 카드 게임을 하고 서로의 노래를 듣고 얘기를 나누다가 그렇게 good night 인사를 나누며 침대로 돌아갔다.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쫑알쫑알 누워서 서로 대화를 나누던 나와 아이노는 2주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는 말과 함께 내일 이곳을 떠나면 은근히 기분이 이상할 것 같다고 했다. 우리가 집이라고 불렀던 이 곳에서 이렇게 하루종일 붙어 생활하면서 어느새 가족이 된 것같다는 말과 함께. 나의 룸메이트 아이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다음 날 새벽 일찍 출발해야 했다. 새벽에 다들 아이노를 잠에 취해 인사해주고 나는 오두막 현관아래까지 내려가서 인사를 했는데 어제 했던 말들이 떠오르면서 감정에 북받혀 눈물이 흘렀다. 어제까진 못 느꼈지만 막상 이별이 바로 코앞이니 이렇게 짧은 시간에 정이 들긴 들었구나 싶었다. 나는 조금 더 잠을 청하고 내 스케줄에 맞춰 남은 캠퍼들과 헤어짐의 인사를 나눴다. (그 사이에 스페인친구 차비에르는 인사 한마디 없이 먼저 떠나버렸다는 것에 당황했지만.) 나름대로 조용한 곳에서 심심한 듯 무심하게 지나갔던 2주였지만 떠나려니 아쉬웠다. 무엇이든 끝이 있기 마련인 건 불변의 진리인데, 우리는 그 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 올 것만 같다는 착각속에서 살고있는가보다.
스위스 작은 산골짜기 마을 Binn에서 개최되는 이번 워크캠프는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이미 25일간의 자유여행과 한 차례의 덴마크 워크캠프를 마치고 바로 연이어 신청한 워크캠프는 물론 내 의사로 선택한 스케줄이었지만 몸과 마음이 꽤나 지쳐있던 상태였던 것 같다. 교통비를 최소화 시키고자 고른 바젤공항에서부터 빈까지의 이동까지 정확한 루트 정보없이 막연히 떠난 나로서는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데 꼬박 하루를 소요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더 빠른 기차 루트가 있었던 것 같다.) 기차로 보는 풍경은 이렇게 와~ 소리가 절로 날 정도로 멋있는데 난 내려서 보고 갈 여유조차 없고, 날은 저물어 가는데 인포싯에는 먼저 도착해도 숙식을 제공해 줄 수 없다고 쓰여있고. 정말 마음같아서는 아무 노부부나 붙잡고 하루만 재워달라고 청해야하나 싶었다. 빈으로 가는 기차루트의 중간에 갈아타는 곳인 브리그에서 마침 숙박시설을 발견하여 냉큼 휴식과 잠을 청했다. 하루종일 돌아다니느라 스위스를 맘껏 구경할 찰나도 없었는데 마침 브리그에서는 스위스에서 유명한 밴드의 작은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마을도 예쁘고 이제 오늘 밤 신변이 보호될 거처를 찾았다는 안심에 다음 날에 대한 기대도 차츰 다시 일어나고 있었다.
* Our work and life in Binn
햇살 따뜻한 이 곳 브리그에서 다시 빈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내리는 와중에 나와 비슷한 차림새의 무거운 캐리어를 든 금발머리 여자와 마주쳤다. 우리는 서로 같은 종착역에 내리는 모습을 보고 대화를 나누다가 같은 워크캠프를 신청한 캠퍼인 것을 알게 되었다. 핀란드에서 온 아이노라고 하는 이 친구는 나보다 한 살 많은 쾌활한 친구였다. 베이스캠프까지는 거의 다 왔다만 그래도 도착하기도 전에 캠퍼를 만나서 함께 가니 안심이 되기도 했다.
미팅포인트에 도착하니 약속시간에 맞춰 미리 우리를 기다리던 리더인 스위스인 파스칼과, 러시아인 올가, 세르비아인 듀샨이 있었다. 아직 안 온 사람 체코인 블라디아와 스페인인 차비에르가 더 있었지만 오기로 했던 다른 참가자들의 불참으로 인해 이번 캠프는 총 7명의 소규모로 진행되었다. 이곳 저곳 모두 산맥으로 둘러싸인 스위스에서 우리가 할 프로젝트는 하이킹시즌이 되기 이전에 하이킹도로를 미리 정비하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 주제가 하이킹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전에 있던 자유여행과 다른 워크캠프의 짐들로 인해 침낭 및 하이킹장비를 준비해가지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운이 따랐는지 굉장히 좋은 숙소가 배정되었다. 오두막집에 침대와 침구류, 식탁, 쇼파 등 모든 것이 갖춰져있었다. 음식은 미리 우리가 낸 돈으로 채워진 마트카드로 마음껏 사서 먹고 요리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일요일에 만나 친해질 시간도 갖고 개인 휴식시간을 가지며 다음 날에 시작될 워크가 무엇일지 호기심에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방공호 같은 곳에서 모여 우리의 워크리더를 기다렸다. 이 곳 주변의 모든 하이킹도로를 정비하는 사람은 강인한 인상을 가진 비르기따였다. 비르기따와 함께 일하는 분들 역시 우리를 하이킹도로까지 태워다 주시거나 때때로는 우리가 하는 일을 옆에서 함께 도와주시기도 했다. 첫 날은 비가와도 물이 잘 흘러갈 수 있도록 수로를 파내는 것이었다. 해가 너무 쨍쨍 뜨거운데도 우리는 묵묵히 그냥 시키는대로 도로를 곡괭이질 하고 삽질 하고 진짜 힘들었다. 덴마크 워크캠프는 뭐 그냥 천국이었다고 생각할 정도로 끝이 안보이는 하이킹도로를 따라서 일하기란 쉽지 않았다. 아이노와 나는 "이건 진짜...work=노동이다....노예체험 하는 것 같애"라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우리는 비르기따에게 설마 2주 내내 이 일을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다행히 그건 아니란다. 오늘 하는 일이 아마 가장 어려운 일일거라는 말이 그나마 희망을 갖게 해주었다.
첫 날 이렇게 힘든 하루를 보내고 나서도 사실 우리 워크캠프는 강도가 꽤나 센 프로젝트였던 것이 분명하다. 매일 다른 루트를 골라서 곡괭이를 지고 오르며 산길을 깨끗이 정비하고, 하이킹 하는 데 방해가 될 돌을 골라 버리고, 금방 자라서 커지는 따가운 가시수풀을 다 잘라내고, 이정표를 바꿔야 하는 곳과 시냇물에 다리가 놓여져야 하는 곳에 다리를 놓는 것까지 온 산을 다 헤집고 다닌 것 같다. 사실 우리보다도 남자들은 해머를 들고 수로를 파야했으니 정말 힘들었을 것이다. 그치만 다들 큰 불만없이 묵묵히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했다. 하나 신기했던 경험은 지역 방송국에서 우리 프로젝트를 취재하러 나온 것이었다. 규모가 큰 촬영은 아니었지만 여자VJ 한명이 우리 일하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인터뷰도 해갔다. 아쉽게도 인터넷이 안되서 그 프로그램을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매일 아침 다들 급하게 세수하고 시리얼을 먹고 점심으로 먹을 샌드위치를 옷을 챙겨입고 그렇게 나가도 항상 5분, 10분씩 늦어서 비르기따에게 눈치가 보이기 일쑤였다. 그리고 오전 8시경부터 보통 3시까지 일을 했다. 시간이 느리게 간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항상 점심시간을 고대했다. 이렇게 힘들 게 일하고 오면 우리는 모두 지쳐서 각자 침대며 쇼파에 널부러졌다. 워크캠프가 한참 지난 지금 돌이켜보면 뭐가 그렇게 힘들었는지 시간이 빨리 갔으면 좋겠다고 되뇌였는지 싶지만 그 때 당시에는 정말로 매일 몸이 녹초가 되어있었다. 그 날 그 날 저녁식사는 순번을 따지진 않았지만 돌아가면서 요리했다. 혼자 동양인인 나를 빼고는 모두 주식이 빵, 감자, 샐러드, 고기 등이어서 매일 먹는 게 비슷했지만 그래도 우리는 나름 잘 챙겨 먹었다. 그 중 하루는 내가 주먹밥과 볶음밥을 해주었는데 처음에는 못보던 비쥬얼에 다들 '이게 뭐지' 싶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만들었던 요리를 뚝딱! 다 해치워주었다. 세르비아 친구가 여태까지 우리가 먹었던 음식중에 이게 일등이야! 라고 해주고 다들 맛있었다고 잘먹었다고 하니 일류 요리사의 기분이란 이런건가 싶었다 :) 저녁은 각자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각자 알고 있는 게임을 하면서 그 날의 피로를 풀었다.
솔직히 나는 산악을 좋아하지 않는다. 워크캠프 내내 스스로에게 의문점이었던 게 산악을 싫어하는 내가 왜 이 프로그램을 선택했는지였다. 하이킹 슈즈는 없어서 발이 다 굳은 살로 도배되고 날씨는 더웠다 추웠다 비가 왔다가 그쳤다가 변덕이기 일쑤고 그냥 산악하는 것도 힘든 데 이걸 곡괭이를 들고 치워가면서 오르락 내리락 하니 저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때 내 나름 중요한 결정으로 인해 마음가짐을 다시잡아야 하는 일이 있었는데) 산에 오를 때마다 매번 숨차고 힘들어도 내가 이 산도 못 오르면서 어떻게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하고 다시 한번 힘을 냈다. 또 2000m에 다다르는 산맥들을 오르고 내리면서 보는 경관은 정말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고 또 아름다웠다. 산맥 끝에 아직 녹지 않은 눈을 직접 내가 만져볼 수 있는 만큼의 고도를 올라갔으니 정말 내 아래 모든 게 다 보이는 느낌이었다. 아이노와 나는 항상 여긴 힘들어도 진짜 자연경관만큼은 최고라는 말을 자주 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우리 워크캠프들은 캠프도 좋아하고 자전거 타는 것도 좋아하고 서양애들이라서 그런지 활동적인 모습이 많이 보였다. 덕분에 나도 같이 다니면서 북돋아 지는 느낌이었고 서로 이끌어주고 하나되는 모습이 지금 돌이켜보니 인상적이다.
* 워크캠프를 떠나 이제 다들 제 자리로
우리의 워크캠프는 목요일날 끝났지만 금요일에 하루 통째로 휴식시간을 갖고 토요일에 각자 떠나기로 했다. 각자의 스케줄에 맞춰 출발해야 했던 우리는 금요일 밤에 마지막으로 스위스식 만찬을 즐기고 카드 게임을 하고 서로의 노래를 듣고 얘기를 나누다가 그렇게 good night 인사를 나누며 침대로 돌아갔다.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에 쫑알쫑알 누워서 서로 대화를 나누던 나와 아이노는 2주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는 말과 함께 내일 이곳을 떠나면 은근히 기분이 이상할 것 같다고 했다. 우리가 집이라고 불렀던 이 곳에서 이렇게 하루종일 붙어 생활하면서 어느새 가족이 된 것같다는 말과 함께. 나의 룸메이트 아이노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다음 날 새벽 일찍 출발해야 했다. 새벽에 다들 아이노를 잠에 취해 인사해주고 나는 오두막 현관아래까지 내려가서 인사를 했는데 어제 했던 말들이 떠오르면서 감정에 북받혀 눈물이 흘렀다. 어제까진 못 느꼈지만 막상 이별이 바로 코앞이니 이렇게 짧은 시간에 정이 들긴 들었구나 싶었다. 나는 조금 더 잠을 청하고 내 스케줄에 맞춰 남은 캠퍼들과 헤어짐의 인사를 나눴다. (그 사이에 스페인친구 차비에르는 인사 한마디 없이 먼저 떠나버렸다는 것에 당황했지만.) 나름대로 조용한 곳에서 심심한 듯 무심하게 지나갔던 2주였지만 떠나려니 아쉬웠다. 무엇이든 끝이 있기 마련인 건 불변의 진리인데, 우리는 그 끝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 올 것만 같다는 착각속에서 살고있는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