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스페인 고성, 삽질로 찾은 진짜 의미
Montsoriu castl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지나치는 여행이 아닌 머무르는 여행을 하고 싶었다. 가고 싶었던 나라에서 더 의미 있는 시간과 추억들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하던 와중에 나는 기적 같은 우연으로 워크캠프를 만나게 되었고, 나는 가장 가고 싶었던 나라인 스페인에서 2주 간 까딸루냐 지방의 몬세라 산에 있는 고성을 발굴 및 복원하는 작업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아침 9시부터 1시 반까지 약 4시간에 걸쳐 테크니컬 리더와 함께 고성을 복원하는데 필요한 작업들을 했다. 나는 원래 고고학에 환상을 가지고 있던 터라,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탐험가 모자를 쓰고 조각난 유적들을 발굴하여 맞추는 일을 하게 될 거라는 김칫국에 설레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하게 된 일은 고성에 잡초를 뽑고 흙먼지가 가득 쌓여 당장 보이지 않는 성의 바닥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덕분에 2주 내내 흙을 퍼 옮기며 삽질과 곡갱이질을 무한대로 반복해야 했다. 겹겹이 흙먼지사이에 쌓인 돌들을 옮겨내고 매일같이 땅을 파내려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특히 삽이나 곡괭이 같은 연장 자체가 너무 무거워서 처음에 많이 고생을 했다. 38도의 더위에 안전모를 쓰고 날리는 모래바람 앞에서 눈을 뜰 수가 없어서 주로 선글라스를 쓰고 일을 했는데 멋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착용이 처음이라 낯설기도 하고 다들 안전모에 어울리지 않는 선글라스를 낀 모습이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처음에는 다 같이 바닥을 복구하기 위해 흙을 파냈지만 점점 인원을 나눠서 주변에 난 풀들과 돌들도 정리해 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날엔 성에서 발견된 항아리의 파편들을 씻어서 번호를 매겨 복원을 위한 준비과정을 도왔는데 정말 내가 바래왔던 작업들을 해볼 수 있어서 신기하기도 했고 뿌듯했다.
캠퍼들은 전부 우리가 복원작업을 하는 고성에서 2층 침대를 놓고 함께 생활했다. 산꼭대기에 위치한 성이었기 때문에 주로 산을 타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24명의 캠퍼들만이 사는 세상이었다. 우리는 이 곳에서 축구를 했고, 어두운 성에서 서로의 왕을 지키기 위한 게임을 하기도 했으며, 별이 쏟아지는 밤에 각자 가져온 수건을 깔고 요가와 명상을 배우기도 하고, 지역 학생들을 초대해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계곡물을 끌어다 샤워를 해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작업이 끝나면 이를 덜덜 떨어가며 얼음장 같은 물에 몸을 씻어야했다. 또한 성이 마을 사람들에게 개방되는 주말에는 인근 마을에 있는 마을센터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매주 여분의 옷을 챙겨 마을로 내려가야 했는데 차가 산 끝까지 올라올 수 없어 매번 걸어서 산을 오르내려야 했다. 산을 올라가고 내려가는 일은 생각보다 체력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빠른 길로 가기 위해 지형이 험한 길을 선택하자니 캠퍼들이 자주 미끄러졌고 천천히 가는 길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결국 리더들은 각자의 선택에 길을 맡기곤 했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길을 선택하는데 있어 고민에 빠졌다.
주말에 우리가 지냈던 곳은 마을 주민들을 위한 지역문화센터였다. 첫 번째 주에는 많은 캠퍼들이 단체로 배탈이 나서 고생을 했고, 두 번째 주이지 마지막 주에서야 근교 여행과 함께 지역의 파티에 가서 다들 미뤄뒀던 문화생활을 즐겼는데 아쉽게도 나는 주말만 되면 쌓였던 피로와 함께 배탈, 몸살 등 병이 나서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이번 워크캠프에서 만난 모든 친구들이 나에게 처음이었고 새로웠지만 나에게 가장 인상이 깊었던 친구들은 단연 폴란드에서 온 마그다와 이탈리아에서 온 마티아였다. 마그다는 나와 다른 환경과 문화에서 자랐지만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부분이 비슷한 친구였기 때문에 캠프 내내 많은 의지가 되어주었다. 스페인 생활은 생활패턴이나 음식뿐만 아니라 분위기나 문화가 많이 달랐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많았는데 마그다는 그런 부분들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마티아는 작년에 참여했던 워크캠프에서 한국인들을 만난 적이 있어 몇 가지 간단한 한국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끔 너무 힘들거나 우울할 때 나를 빵빵 터트려주었다.
워크캠프 기간 동안 사실 나는 체력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많이 힘들었고, 가끔 내 바닥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무너졌었다. 환상과 달리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할 때도 많았고 반복적인 일들로 지겨울 때도 있었다. 그리고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캠퍼들의 행동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었던 데다가 결정적으로 개인 의사에게 가야 햘 만큼 몸이 아파 드러누운 적도 있어서 더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캠프를 통해서 나는 평범했던 내 삶에 감사하게 되었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더 좋은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꾹 참고 하지 못했을 말들을 뱉었고 무엇보다 나와 다른 친구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24시간을 함께 살아내야 했던 워크캠프에서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아침 9시부터 1시 반까지 약 4시간에 걸쳐 테크니컬 리더와 함께 고성을 복원하는데 필요한 작업들을 했다. 나는 원래 고고학에 환상을 가지고 있던 터라,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처럼 탐험가 모자를 쓰고 조각난 유적들을 발굴하여 맞추는 일을 하게 될 거라는 김칫국에 설레었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하게 된 일은 고성에 잡초를 뽑고 흙먼지가 가득 쌓여 당장 보이지 않는 성의 바닥을 드러내는 일이었다. 덕분에 2주 내내 흙을 퍼 옮기며 삽질과 곡갱이질을 무한대로 반복해야 했다. 겹겹이 흙먼지사이에 쌓인 돌들을 옮겨내고 매일같이 땅을 파내려가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특히 삽이나 곡괭이 같은 연장 자체가 너무 무거워서 처음에 많이 고생을 했다. 38도의 더위에 안전모를 쓰고 날리는 모래바람 앞에서 눈을 뜰 수가 없어서 주로 선글라스를 쓰고 일을 했는데 멋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착용이 처음이라 낯설기도 하고 다들 안전모에 어울리지 않는 선글라스를 낀 모습이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처음에는 다 같이 바닥을 복구하기 위해 흙을 파냈지만 점점 인원을 나눠서 주변에 난 풀들과 돌들도 정리해 나갔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 날엔 성에서 발견된 항아리의 파편들을 씻어서 번호를 매겨 복원을 위한 준비과정을 도왔는데 정말 내가 바래왔던 작업들을 해볼 수 있어서 신기하기도 했고 뿌듯했다.
캠퍼들은 전부 우리가 복원작업을 하는 고성에서 2층 침대를 놓고 함께 생활했다. 산꼭대기에 위치한 성이었기 때문에 주로 산을 타는 분들을 제외하고는 24명의 캠퍼들만이 사는 세상이었다. 우리는 이 곳에서 축구를 했고, 어두운 성에서 서로의 왕을 지키기 위한 게임을 하기도 했으며, 별이 쏟아지는 밤에 각자 가져온 수건을 깔고 요가와 명상을 배우기도 하고, 지역 학생들을 초대해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계곡물을 끌어다 샤워를 해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작업이 끝나면 이를 덜덜 떨어가며 얼음장 같은 물에 몸을 씻어야했다. 또한 성이 마을 사람들에게 개방되는 주말에는 인근 마을에 있는 마을센터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매주 여분의 옷을 챙겨 마을로 내려가야 했는데 차가 산 끝까지 올라올 수 없어 매번 걸어서 산을 오르내려야 했다. 산을 올라가고 내려가는 일은 생각보다 체력적으로 무척 힘들었다. 빠른 길로 가기 위해 지형이 험한 길을 선택하자니 캠퍼들이 자주 미끄러졌고 천천히 가는 길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결국 리더들은 각자의 선택에 길을 맡기곤 했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길을 선택하는데 있어 고민에 빠졌다.
주말에 우리가 지냈던 곳은 마을 주민들을 위한 지역문화센터였다. 첫 번째 주에는 많은 캠퍼들이 단체로 배탈이 나서 고생을 했고, 두 번째 주이지 마지막 주에서야 근교 여행과 함께 지역의 파티에 가서 다들 미뤄뒀던 문화생활을 즐겼는데 아쉽게도 나는 주말만 되면 쌓였던 피로와 함께 배탈, 몸살 등 병이 나서 제대로 참여하지 못했다.
이번 워크캠프에서 만난 모든 친구들이 나에게 처음이었고 새로웠지만 나에게 가장 인상이 깊었던 친구들은 단연 폴란드에서 온 마그다와 이탈리아에서 온 마티아였다. 마그다는 나와 다른 환경과 문화에서 자랐지만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 부분이 비슷한 친구였기 때문에 캠프 내내 많은 의지가 되어주었다. 스페인 생활은 생활패턴이나 음식뿐만 아니라 분위기나 문화가 많이 달랐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많았는데 마그다는 그런 부분들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리고 마티아는 작년에 참여했던 워크캠프에서 한국인들을 만난 적이 있어 몇 가지 간단한 한국어를 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끔 너무 힘들거나 우울할 때 나를 빵빵 터트려주었다.
워크캠프 기간 동안 사실 나는 체력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많이 힘들었고, 가끔 내 바닥을 보는 것 같아서 마음이 많이 무너졌었다. 환상과 달리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할 때도 많았고 반복적인 일들로 지겨울 때도 있었다. 그리고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캠퍼들의 행동에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있었던 데다가 결정적으로 개인 의사에게 가야 햘 만큼 몸이 아파 드러누운 적도 있어서 더 어렵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렇지만 이 캠프를 통해서 나는 평범했던 내 삶에 감사하게 되었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더 좋은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꾹 참고 하지 못했을 말들을 뱉었고 무엇보다 나와 다른 친구들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은 24시간을 함께 살아내야 했던 워크캠프에서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