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서 아이슬란드, 낯선

작성자 이민희
아이슬란드 SEEDS 120 · CONS/ENVI 2013. 09 아이슬란드 West frjod지역

Isafjarðardjup: Nature & Fun in the Westfjord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또 다른 지구, 아이슬란드 Heydalur에서 얻은 보물>

새로운 학기가 시작된다. 시험을 본다. 또 시험을 본다.
대학교를 다닌다는 건 이런 것 이구나! …아닌데?내가 생각한 대학생활은 이게 아닌데? 매주 시험을 보고 있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한 학기가 끝나있다.
방학이 시작된다. 한숨 돌리는 사이 성적표 봉투가 집에 도착한다.
성적이 내 인생의 지표가 아닌데, 부모님도, 친구들도, 나 자신도 성적표를 보고 지난 3개월의 나를 평가했다.
내 성격도, 내 일기도 아닌 A, B, C, D 문자로 표기된 그 성적표로.
고등학교 졸업 후 3년 동안 시간이 흐르는걸 그냥 책상에 앉아 지켜만 보았다.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은데.. 하나도 안 행복해!!
멈춰야 할 때 멈춰야 한다던데,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난 1년간 행복을 찾기로 마음먹었고 학교를 휴학하게 되었다.


장기간 휴학인 만큼 일상을 벗어나 긴 여행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아시아권은 취업을 하고 출장 차 나갈 일이 많다고 하고, 미국은 비자가 필요하네. 남미나 아프리카는 너무 멀고 혼자 가기는 위험해!
남은 건 유럽. 그래 대학생 때 한번씩 다 가본다는 유럽에 한번 가보자. 그런데 남들처럼 똑같은 여행은 싫다. 여행 오게 되면서 어쩌다 알게 된 그런 유적지에 가서 사진을 찍는, 인증샷을 위한 여행은 싫었다. 한 나라에 오랫동안 머무르면서 문화를 알고 그 나라 사람을 사귀어 보고 싶었다.
작년에 친한 친구가 봉사활동으로 다녀왔다는 워크캠프가 떠올랐다. 2주라는 긴 시간 동안 해외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과 문화도 교류하고 봉사활동까지 할 수 있다고 했다. 워크캠프 홈페이지를 들어가보니 수많은 활동들이 참가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매일 워크캠프 홈페이지에 들어가 어떤 프로그램이 나에게 맞을까 읽어보았다.
워크캠프가 아니라면 감히 가기 힘든 그런 나라를 찾아보았고, 결국 최종적으로 내가 지원하게 된 나라는 아이슬란드였다.
북유럽권 국가이지만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떨어져 그린란드 근처에 있는 외딴 섬 아이슬란드. 한국인들이 많이 가보지 못했고 나 역시 아이슬란드, 특히 내가 가는 west fjord지역은 구글링을 하여도 별다른 정보가 나오지 않아 전혀 아는 게 없었다.
평소 호기심과 모험심이 왕성한 나는 ‘가보면 알게 되겠지?’하는 생각으로 아이슬란드 워크캠프를 신청하게 되었고, 2013년 9월 1일 아이슬란드에 도착하게 되었다.


아이슬란드에 오기 전 스페인을 3주간 여행하고 왔다.
8월의 스페인은 햇살이 강렬한 여름의 나라였다. 아이슬란드에 오니 처음 마주한 날씨는 회색 구름에 잦은 비였다. 이름만 Iceland 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추웠다. 비바람이 매섭게 몰아쳐 많이 걱정스러웠다.
평소에 날씨에 따라 기분이 좋았다 안 좋았다 하는 나였기에, 해가 쨍쨍하게 뜨길 바랬다. 다행히도 워크캠프 기간 동안 해가 뜬 날이 많았다. (9월이지만 눈이 오기도 했다!)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나와 다른 8명의 봉사자들은 빨간 버스에 올라 West fjord로 향했다.
West fjord는 아이슬란드 북서쪽에 위치한 큰 반도를 말하며 레이캬비크에서 차로 5시간 정도 걸렸다. 차를 타고 가는데 “이게 마지막 도시야”라고 하면서 필요한 물품을 사라고 했다. 도시? 그냥 작은 시골인데? 얼마나 오지로 우리들을 데려가는 것인가.. 끝내 도착한 곳은 피오르드 산맥 속 외딴 호텔이었다. 호텔 이름은 "Heydalur"
우리들은 성수기가 끝난 이 호텔에서 마무리 일손을 돕는 것이 주된 업무였다. 리더를 제외하고 총 8명인 우리들은 2명씩 짝을 지어 아침&점심조, 간식&저녘조, 놀이조, 휴식조를 편성하여 매일매일 역할을 바꾸며 일을 했다.
워크캠프 오기 전에는 직접 식사를 직접 만들어야 되는 건 줄 알았는데 워크캠프마다 다른 것 같았다. 아직 호텔 영업 중이라 우리들은 식사 전,후 테이블 정리 및 설거지만 도왔고 음식은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숙소 역시 ‘침낭이 필요없다’는 인포싯을 읽고 정말 안 가져갔는데 따뜻한 방 푹신한 침대가 있는 곳에서 잘 수 있었다.
다시 음식 이야기로 돌아가 Heydalur의 주인할머니 Stella는 우리들을 위해 아이슬란드식 음식들을 매일 다양하게 만들어 주었다. 아침마다 따끈따끈한 통밀 빵에 버터를 발라먹는데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였다. ‘느끼해보이는데.. 그치만 여기서 밖에 못 먹으니까..’ 하고 먹었다. 결국 버터홀릭이 되어 한국에서도 버터를 사버렸다^.^;
버터를 비롯해서 직접 만든 블루베리 잼 또한 잊을 수 없다.
아이슬란드는 앞에서 말했듯이 비가 많이 오고 날씨가 좋지 않아 비닐하우스가 아니면 농사짓기가 힘든 땅이다. 그런 곳에서 자연적으로 나는 농작물이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블루베리다. 아이슬란드 지천에 블루베리가 옹기종기 모여 자라고 있다. 워낙 깨끗한 지역이라 그 자리에서 바로 먹어도 아무 탈이 없다.
날씨 좋은 날 Gisli 할아버지가 블루베리를 따오면 우리들은 밝은 조명아래에서 블루베리 선별작업을 했다. 크고 단단한 블루베리만 체에 걸러서 얻는 작업으로 엄청 쉽고 간단했다.
그만큼 지루한 작업이라 대화하거나 간단한 게임을 하면서 일을 했다. 오랜 시간 대화하면서 각 나라의 문화도 배우고 우정도 쌓을 수 있었다.


여기서 나와 함께했던 워크캠프 친구들을 소개하자면, 우리는 리투아니아인 리더 1명과 독일인 3명, 스페인 1명, 이탈리아 1명, 러시아 1명, 대만 1명 한국인1명 총9명으로 구성된 팀이었다. 모두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고 싶어 아이슬란드를 찾아온 순수하고 심성이 착한 친구들이었다.
처음엔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친구들밖에 없는걸 확인하고 ‘나만큼 버벅 되겠구나.’하고 안심하고 갔는데 다들 너무 유창하게 영어를 해서 놀랐다. 한번도 외국에 나가본 적 없던 나는 정말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이다.
한국에서 영어의 필요성을 모르고 살았고, 영어시험 공부밖에 해본 적 없던 나는 리스닝, 스피킹이 거의 안 되는 “영어 잘 못하는 사람”이였던 것에 충격을 받았다.
처음엔 대화도 하나도 안 들리고 내가 말을 하면 애들이 “sorry?” 하고 되묻는 것이 부끄러워 대화에 잘 끼어들지도 못하고 벙어리처럼 있었다.
하지만 문득 이 2주가 나에게 전환점이 되는 소중한 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니면 언제 외국아이들과 말을 해보겠어? 지금이라도 깨닫게 되어 다행이다! 난 행운아야!
그 후 문법에 상관없이 내 생각을 많이 말로 전하려고 노력했고, 친구들도 귀 기울여 내 말을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워크캠프 끝자락에 가서는 “sorry?”, “what?”없이 한번에 내 이야기를 듣고 대화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팀원들은 이름만 불러도, 서로 얼굴만 쳐다보아도 미소 짓는 사이가 되었다.
워크캠프가 끝난 지금, 이메일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서로 소식을 주고 받고 있다.


우리들은 블루베리 선별 작업 말고도 별장 근처 잡초를 뽑거나 시멘트를 만들고, 파이프를 묻기위해 땅을 파는 등 호텔에서 필요한 모든 일손을 도와주었다.
6시에 간식을 먹고 9시에 저녁을 먹는 요상한 식습관을 비롯하여 치즈 버터가 들어간 유럽식 식사 때문에 ‘살찌는 것 아냐?’하고 생각했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였다.
야외에서 일을 하다 보면 많은 체력을 소비할 수 있었다. 잡초 뽑는 것도 이름만 잡초지 1m가 되는 갈대를 삽으로 뿌리까지 뽑아야 했고, 딱딱한 자갈밭을 삽으로 깊게 파기도 했다.
이렇게 고된 일을 하고 나면 어깨나 몸 전체적으로 힘이 빠지는데, 그래서 우리는 매일매일 온천에서 몸을 녹였다. 야외온천도 있고 실내수영장도 있고 근처엔 자연온천도 있었다. 나중엔 사용 안 하던 사우나까지 우리가 다시 작동시켰다.
야외온천에 밤늦게 들어가면 날씨 좋은 밤엔 수많은 별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별 뿐인가? 은하수를 비롯하여 내 생에 볼 수 있을까 했던 오로라 또한 아이슬란드 밤하늘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로라는 매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2주 동안 4번 정도 본 것 같다. 오로라를 부르는 미신이라면서 다같이 온천에 앉아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오로라가 없어도 밤하늘은 너무 아름다웠다. 이제서야 밤하늘은 검은색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밤에 보이는 산이 검은색 이다. 하늘은 셀 수 없이 많은 별들 때문에 옅은 회색 빛을 띄고 있었다. ‘이 근처엔 우리밖에 없는데 왜 산너머가 밝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다 별이나 오로라 때문이었다. 하얗게 우유를 뿌려놓은 듯한 은하수도 환한 밤하늘을 가로질러 나있었다. 온천에 앉아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들고 별을 바라보면 광활한 우주의 숭고함을 느낄 수 있었다.


West fjord, heydalur에서 만난 워크캠프 친구들, 호텔사람들, 호텔에서 키우던 loki(개)와 kope(앵무새), 그리고 빙하, 피오르드 산맥, 수많은 폭포, 무지개, 밤하늘, 오로라.. 이 모든 것들이 내가 아이슬란드라는 나라를 사랑하게 만들어주었다.
워크캠프 가기 전 여행했던 스페인 보다 아이슬란드가 강렬하게 기억 남는다. 스페인에선 혼자 여행하며 시내와 유적지를 배회했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에선 함께 행복을 공유한 워크캠프 친구들과, 2주 동안 따뜻하게 날 맞아준 Heydalur가 있었다.
어떻게 이 아름다운 워크캠프를 하고도 반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워크캠프가 끝나고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 생각하면 한여름의 꿈 같고 아련하다.
콘크리트 정글 속에서 U자형 피오르드가 눈에 겹쳐 보이곤 한다.
아이슬란드에서의 워크캠프는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