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부산 산복도로, 12개국 청춘들의 이야기
City embrace natur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외국친구들과 2주간 함께 예쁜 추억을 만들 것 같다는 바람을 가지고 부산으로 출발.
근데 숙소는 도대체 어디있지?, 숙소 찾는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덕과 골목을 오가며 드디어 찾은 숙소. 숙소는 나와 외국친구들이 앞으로 조사하고 개발방안을 내놓아야하는 '산복도로'에 위치해 있었다. 이렇게 숙소찾는 순간부터 어쩌면 워크캠프는 시작되었던 것 같다.
자기소개 시간. 둥그런 테이블에 앉자 아주.. 아주 어색하게 서로를 쳐다보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베트남, 독일, 러시아, 일본, 대만, 중국 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베트남 친구는 학생이 아닌 일을 하다가 왔었고, 해외여행이 처음인데 한국을 꼭 오고싶었다고 한다. 독일 친구 또한 해외여행이 처음이고 동양권 문화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독일 친구는 여자임에도 나보다 키가 훨씬 커서 처음엔 조금 어려웠다. 러시아 친구는 굉장히 조용하고, 특히 한국의 따가운 땡볕에 힘들어 했었다. 특히 우리가 활동하던 8월 초~중 순은 국내에선 나름 시원한 편인 부산조차도 35도 까지 오를만큼 정~~~말 더웠다. 일본 친구는 상대적으로 영어를 잘 못하여 처음에는 의사소통이 쉽지많은 않았지만, 후에는 애교있고 귀여운 자기 본연의 모습을 보며주면서 그 누구보다 가까워졌던 것 같다. 대만 친구는 영어보다 한국어로 소통하는게 더 잘 될 만큼 한국어를 굉장히 잘했다. K-POP 과 한국 가수들을 아주 좋아하고 한국음식 또한 정말 좋아했다. 이번이 3번째 한국에 온것이라 했다. 중국 친구는 일본에서 대학공부를 하고 있어서 일본어 또한 굉장히 잘해서 상대적으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꼇던 일본친구에게 많은 도움을 줬었다. 많이 외소했던 중국친구 또한 더위에 많이 힘들어했었다.
첫번째 주. 우리는 '생명그물'이라는 생태보호단체와 함께 부산의 생태 조사에 나섰다. 그중에서도 '로드킬'의 현 상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대처 방안 및 이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릴지에 대한 캠페인을 준비했다. 그 외에도 중,고등학교 환경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온천천, 삼락습지를 다니면서 부산의 도시 개발로 인해 파괴되고 있는 생태 현황을 파악했다. 또 하루는 청주 도심에 위치한 생태공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사실 생태에 대해 공부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통역이었다. 모든 설명과 수업은 한국강사를 통해 진행이되었고 한국 캠퍼 들은 외국친구들에게 통역을 해주었다. 전문적인 통역사도 아닌데다가 생태에 관한 용어가 많다보니 통역에 더 어려움을 느꼈었게 사실이다.
다시 캠페인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부산대 앞 교차로를 거점으로 캠페인 운동을 계획했다. '로드킬'의 심각성을 알리는데에는 우리가 직접 개구리가 되어 차에 깔려 죽는 척 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게 우리의 의견이었고, 나와 다른 한명의 캠퍼가 부직포로 개구리 옷과 모자를 만들어.. 정말 사람많은 곳에서 '개구리'가 되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파란 신호등이 켜지면 개구리 두명이 폴짝폴짝 뛰다가 맞은편에서 차모양의 박스를 든 다른 캠퍼들이 개구리를 치여 죽이는 것이다. 차에 치인 개구리는 그 더운 날 아스팔트 위에 뻗어 있고 개구리와 차가 아닌 다른 캠퍼들은 로드킬을 알리는 푯말을 들고 '개구리를 살리자'라고 외쳤다. 대박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촬영을 하기도했고 어떤사람들은 여기서 뭐하냐며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아마 내 생애 가장 민망하고 부끄러웠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한 13번 정도를 죽은 후에야 캠페인은 끝이 났다.
두번째주. 이제는 우리 숙소가 위치한 산복도로를 체험하고 어떻게 해야 산복마을을 이쁘게 만들지 고민하는 차례다. 먼저 산복도로를 설명하자면 6.25 전쟁 당시 피난민의 거주지였고 그때부터 많은 개발이 있었으나 지리적으로 언덕에 위치한 까닭과 부산시 중심가와 가깝지가 않아서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노인들이 많은.. 그런 동네였다. 교통편또한 만만치가 않았고 산복도로를 지나는 버스는 다른 버스에 비해 운행시간도 짧았다.
그 아중에서도 마을 사람들의 마을을 살리기 위한 흔적들이 여러군데 있었다. 마을 거주민이 운영하는 산복도로카페, 산복도로전시관, 그리고 감천마을이라고 해서 마을전체가 관광지인 곳도 있었다. 이들은 시 혹은 단체의 지원을 일정 부분 받는 것 같아 보였다.
우리가 고안한 방법은 벽화그리기와 산복도로 노인들을 위한 매니큐어 서비스였다. 벽화는 벽에다 직접 그리는 것이 아니라 얼굴 크기 만한 잘 깎여진 나무판에다가 이쁜 아무 그림이나 그린 후에 나무판들을 모아 집모양을 만들고 벽에 붙이는 것이었다. 미술 솜씨가 꽝인 내 나무판들도 같이 모아서 붙여보니 꽤 괜찮았다.
매니큐어 는 어르신들을 까꼬막이라는 마을 카페에 초대 한후에 한분한분 매니큐어를 발라드렸다. 비록 부족한 통역임에도 몇몇 외국친구들은 산복도로에 계시는 할머니들의 인생사와 특히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더운 탓에 쉽지않은 활동이었지만 그랬었기에 더욱더 하나가 되어 워크캠프를 잘 해나갈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자주 연락하는 워크캠프 친구들. 너무 고마웠고 다시 또 볼 날이 오길 기원해본다.
근데 숙소는 도대체 어디있지?, 숙소 찾는게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덕과 골목을 오가며 드디어 찾은 숙소. 숙소는 나와 외국친구들이 앞으로 조사하고 개발방안을 내놓아야하는 '산복도로'에 위치해 있었다. 이렇게 숙소찾는 순간부터 어쩌면 워크캠프는 시작되었던 것 같다.
자기소개 시간. 둥그런 테이블에 앉자 아주.. 아주 어색하게 서로를 쳐다보며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베트남, 독일, 러시아, 일본, 대만, 중국 에서 온 친구들이었다.
베트남 친구는 학생이 아닌 일을 하다가 왔었고, 해외여행이 처음인데 한국을 꼭 오고싶었다고 한다. 독일 친구 또한 해외여행이 처음이고 동양권 문화에 굉장히 관심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독일 친구는 여자임에도 나보다 키가 훨씬 커서 처음엔 조금 어려웠다. 러시아 친구는 굉장히 조용하고, 특히 한국의 따가운 땡볕에 힘들어 했었다. 특히 우리가 활동하던 8월 초~중 순은 국내에선 나름 시원한 편인 부산조차도 35도 까지 오를만큼 정~~~말 더웠다. 일본 친구는 상대적으로 영어를 잘 못하여 처음에는 의사소통이 쉽지많은 않았지만, 후에는 애교있고 귀여운 자기 본연의 모습을 보며주면서 그 누구보다 가까워졌던 것 같다. 대만 친구는 영어보다 한국어로 소통하는게 더 잘 될 만큼 한국어를 굉장히 잘했다. K-POP 과 한국 가수들을 아주 좋아하고 한국음식 또한 정말 좋아했다. 이번이 3번째 한국에 온것이라 했다. 중국 친구는 일본에서 대학공부를 하고 있어서 일본어 또한 굉장히 잘해서 상대적으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느꼇던 일본친구에게 많은 도움을 줬었다. 많이 외소했던 중국친구 또한 더위에 많이 힘들어했었다.
첫번째 주. 우리는 '생명그물'이라는 생태보호단체와 함께 부산의 생태 조사에 나섰다. 그중에서도 '로드킬'의 현 상황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대처 방안 및 이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알릴지에 대한 캠페인을 준비했다. 그 외에도 중,고등학교 환경 동아리 학생들과 함께 온천천, 삼락습지를 다니면서 부산의 도시 개발로 인해 파괴되고 있는 생태 현황을 파악했다. 또 하루는 청주 도심에 위치한 생태공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사실 생태에 대해 공부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통역이었다. 모든 설명과 수업은 한국강사를 통해 진행이되었고 한국 캠퍼 들은 외국친구들에게 통역을 해주었다. 전문적인 통역사도 아닌데다가 생태에 관한 용어가 많다보니 통역에 더 어려움을 느꼈었게 사실이다.
다시 캠페인으로 돌아와서, 우리는 부산대 앞 교차로를 거점으로 캠페인 운동을 계획했다. '로드킬'의 심각성을 알리는데에는 우리가 직접 개구리가 되어 차에 깔려 죽는 척 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게 우리의 의견이었고, 나와 다른 한명의 캠퍼가 부직포로 개구리 옷과 모자를 만들어.. 정말 사람많은 곳에서 '개구리'가 되었다. 내용은 이러했다. 파란 신호등이 켜지면 개구리 두명이 폴짝폴짝 뛰다가 맞은편에서 차모양의 박스를 든 다른 캠퍼들이 개구리를 치여 죽이는 것이다. 차에 치인 개구리는 그 더운 날 아스팔트 위에 뻗어 있고 개구리와 차가 아닌 다른 캠퍼들은 로드킬을 알리는 푯말을 들고 '개구리를 살리자'라고 외쳤다. 대박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촬영을 하기도했고 어떤사람들은 여기서 뭐하냐며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아마 내 생애 가장 민망하고 부끄러웠던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한 13번 정도를 죽은 후에야 캠페인은 끝이 났다.
두번째주. 이제는 우리 숙소가 위치한 산복도로를 체험하고 어떻게 해야 산복마을을 이쁘게 만들지 고민하는 차례다. 먼저 산복도로를 설명하자면 6.25 전쟁 당시 피난민의 거주지였고 그때부터 많은 개발이 있었으나 지리적으로 언덕에 위치한 까닭과 부산시 중심가와 가깝지가 않아서 젊은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노인들이 많은.. 그런 동네였다. 교통편또한 만만치가 않았고 산복도로를 지나는 버스는 다른 버스에 비해 운행시간도 짧았다.
그 아중에서도 마을 사람들의 마을을 살리기 위한 흔적들이 여러군데 있었다. 마을 거주민이 운영하는 산복도로카페, 산복도로전시관, 그리고 감천마을이라고 해서 마을전체가 관광지인 곳도 있었다. 이들은 시 혹은 단체의 지원을 일정 부분 받는 것 같아 보였다.
우리가 고안한 방법은 벽화그리기와 산복도로 노인들을 위한 매니큐어 서비스였다. 벽화는 벽에다 직접 그리는 것이 아니라 얼굴 크기 만한 잘 깎여진 나무판에다가 이쁜 아무 그림이나 그린 후에 나무판들을 모아 집모양을 만들고 벽에 붙이는 것이었다. 미술 솜씨가 꽝인 내 나무판들도 같이 모아서 붙여보니 꽤 괜찮았다.
매니큐어 는 어르신들을 까꼬막이라는 마을 카페에 초대 한후에 한분한분 매니큐어를 발라드렸다. 비록 부족한 통역임에도 몇몇 외국친구들은 산복도로에 계시는 할머니들의 인생사와 특히 자식들에 대한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더운 탓에 쉽지않은 활동이었지만 그랬었기에 더욱더 하나가 되어 워크캠프를 잘 해나갈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자주 연락하는 워크캠프 친구들. 너무 고마웠고 다시 또 볼 날이 오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