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작은 섬, 특별한 여름날의 추억
ILE D'AIX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가 뭐지 ?’ 프랑스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던 찰나에 연관검색어에 떠 있는 프랑스 워크캠프에 이상하게 눈이 끌렸다. 그 호기심을 포기하지 못하고 클릭해본 그 단어 ‘워크캠프’. 내가 이 단어를 그저 잠깐의 궁금증으로 스쳐지나갔다면 ? 그 때는 몰랐었다. 그저 하나의 스펙에 끝날 일이 아니었음을......
프랑스 워크캠프에 참여하기로 마음 먹은 나는 프랑스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워크캠프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 고민 아닌 고민에 빠졌다. ‘이거 좋은 경험일 것 같은데...’ ‘ 이게 재밌긴 더 재밌겠지 ?’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주저하던 그 때 내 눈에 들어온 한 단어 ile(영어로 island) ! 그래 이거야 ! 뭔가 모험이 펼쳐질 것 같은 작은 섬. 인터넷에 찾아보니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방영했던 보야르 원정대의 배경인 보야르요새가 이 섬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난 뒤, 나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Go to the ILE D’AIX !!
영어를 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십여년간 배워온 영어와 전자사전을 두드리며 겨우 완성한 이력서,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 유학생 친구에게 사정사정해서 점검까지 받은 후, 간절한 마음으로 결국 제출 ! 1주일 뒤에 들어간 워크캠프 홈페이지는 반갑게 나의 합격소식을 알려주었다. ‘정말 가는구나 !’
출국을 얼마 남기지 않고 결정된 일이라 내 마음은 너무도 바빴다. ‘각자 전통음식을 소개해주는 시간엔 무엇을 해야되지 ?’ ‘ 영어를 지금이라도 좀 더 공부할까 ?’
파리에서 1주일동안 혹독한 입국신고식을 겪으면서 더욱 간절해진 마음. ‘ 빨리 워크캠프에 가고 싶다’ 결국 오지 않을 것 같던 그 날이 오늘이 되었다 ! 미리 예매해 둔 표를 몇번이나 확인하며 올라탄 TGV, 라로셸이라는 도시에 도착하여 지방 기차로 갈아타고 로슈포르라는 곳에 내려서 이 번엔 또 버스를 타야했다 ! 쉽지 않은 워크캠프 가는 여정길......
그 버스 안에서 심상치 않은 큰 배낭을 메고 있던 한 백인친구. 순간 예감했다. ‘어쩌면 나와 같은 곳을 가는지도......’ 그때는 몰랐지만 그 후 3주뒤에 우리는 인종과 언어를 뛰어넘는 너무 소중한 친구가 될 운명이었다.
버스의 종점까지 가는 길에 남아있던 3명. 우리 모두는 일댁스로 향하는 워크캠프 참여자였다.
통성명을 한 뒤, 아직 일댁스에 가는 보트를 타려면 30여분간의 시간이 남았기에 우리는 조금 서로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처음 내가 알아 본 백인친구의 이름은 헨드릭. 독일에서 왔고 나이는 26살. 유창한 영어안에 섞인 그만의 특유의 억양이 너무도 맘에 들었다. 다른 한 친구는 멕시코에서 온 로드리고. 18살(그 얼굴에 18살 ??) 이미 스페인에서 다른 워크캠프를 참여하고 이 곳에 왔다고 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를 목적지로 데리고 갈 보트에 올라탔다. ‘ 정말 시작되는구나 !’
20분여간의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드디어 일댁스에 도착했다. 그 곳엔 키가 작은 곱슬머리의 한 친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에디, 이 워크캠프의 리더였다.
에디를 따라가니 도착한 우리의 숙소 !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깨끗하였다. 2층엔 우리의 숙소와 샤워실이, 1층에는 주방과 식탁이 있었고, 이미 우리 셋을 제외한 다른 친구들은 식탁에 둘러 앉아 어색한 분위기 속에 조금씩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 땐 우리가 지금처럼 진실한 친구가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말간 대략의 워크캠프 일정을 듣고, 가끔은 근처의 바닷가에서 비치볼과 조금은 추운 바닷가에서 수영을 즐기고, 또 우리에게 각각 주어진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둘러보기도 하였다. 늘 서울에서만 자라온 나는 자연이 주는 편안함이라는 것을 이 곳에 와서 처음으로 느꼈다.
드디어 시작된 월요일 ! 모두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복장을 갖춰입고, 작업을 시작하였다. 우리가 3주 동안 하게 된 일은 요새 안의 낡은 시멘트 벽을 부수고 그 안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하는 법을 몰라 헤메었지만, 테크니컬 리더인 스테판의 설명과, 조금씩 할수록 알아가는 노하우에 날이 흐를수록 우리는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때론 짖궂은 날씨 탓에 자전거를 타고 일하는 곳에 가는게 고된 날도, 부셔도 부셔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두터운 시멘트벽 앞에 한숨도 쉬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누구 하나도 투정부리지 않고, 아픈 내색하나 없이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기에 우리의 워크캠프는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1시에 일을 마치고 나면 언제나 기대되는 점심식사 ! 우리는 팀을 네 팀으로 나누어서 매일 번갈아가며 식사팀, 청소팀, 설거지팀을 하루에 한번씩 맡게 되었다. 누가 무엇을 만들든, 항상 맛있다고 웃으면서 배터지게 먹는 우리 팀원들. 지금 생각해봐도 믿기 힘든 일이다. 누구 하나 밉지 않고, 한명 한명 이름만 떠올려도 웃음이 나고 금방 보고 싶어지는 마음이 솟아난다니......
또 너무나 친절한 마을 주민들 역시 잊을 수 없다. 우리를 위해 바비큐 파티를 열어준 분도, 이 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세일링을 경험시켜 준 분도, 새우 요리를 만들었다며 우리를 초대해 준 분도...... 자연환경과 그 곳의 주민들, 거기다 너무도 완벽한 참여자들까지...... 다시 이런 날이 올 수 있을까 ?
드디어 오지 않을 것 같던 마지막 주가 찾아왔다. 마지막 주는 이제 우리의 임무를 마무리 하고, 우리의 작업현장에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서 각자 나라의 전통요리를 소개하고 맛보는 인터네셔널 데이가 있었다. 내가 준비한 음식은 당연 불고기와 잡채 ! 서툰 요리실력에 조금은 긴장했지만, 어린아이부터 노인분들까지 한국음식이 최고라며 쉴새없이 와서 줄을 서서 받아가는 바람에 나는 내 음식을 시식조차 못해보았지만 마음만은 너무나 행복하였다.
드디어 마지막 날...... 정이 많던 터키에서 온 야프락은 벌써 눈에 한가득 눈물이 고였고, 다른 친구들도 내색은 안하지만 조금은 빨개진 눈시울에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 모두 이 시간을 너무도 아쉬워하고 또 그리워하겠구나 ‘ 배가 떠나가는 순간까지 우리를 배웅해준 캠프리더와 마을 주민들.
나는 단언컨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내 20대 중 가장 소중했던 3주였다고 !
프랑스 워크캠프에 참여하기로 마음 먹은 나는 프랑스에서 이뤄지는 수많은 워크캠프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 고민 아닌 고민에 빠졌다. ‘이거 좋은 경험일 것 같은데...’ ‘ 이게 재밌긴 더 재밌겠지 ?’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주저하던 그 때 내 눈에 들어온 한 단어 ile(영어로 island) ! 그래 이거야 ! 뭔가 모험이 펼쳐질 것 같은 작은 섬. 인터넷에 찾아보니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도 방영했던 보야르 원정대의 배경인 보야르요새가 이 섬 옆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난 뒤, 나는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Go to the ILE D’AIX !!
영어를 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십여년간 배워온 영어와 전자사전을 두드리며 겨우 완성한 이력서, 영어에 자신이 없어서 유학생 친구에게 사정사정해서 점검까지 받은 후, 간절한 마음으로 결국 제출 ! 1주일 뒤에 들어간 워크캠프 홈페이지는 반갑게 나의 합격소식을 알려주었다. ‘정말 가는구나 !’
출국을 얼마 남기지 않고 결정된 일이라 내 마음은 너무도 바빴다. ‘각자 전통음식을 소개해주는 시간엔 무엇을 해야되지 ?’ ‘ 영어를 지금이라도 좀 더 공부할까 ?’
파리에서 1주일동안 혹독한 입국신고식을 겪으면서 더욱 간절해진 마음. ‘ 빨리 워크캠프에 가고 싶다’ 결국 오지 않을 것 같던 그 날이 오늘이 되었다 ! 미리 예매해 둔 표를 몇번이나 확인하며 올라탄 TGV, 라로셸이라는 도시에 도착하여 지방 기차로 갈아타고 로슈포르라는 곳에 내려서 이 번엔 또 버스를 타야했다 ! 쉽지 않은 워크캠프 가는 여정길......
그 버스 안에서 심상치 않은 큰 배낭을 메고 있던 한 백인친구. 순간 예감했다. ‘어쩌면 나와 같은 곳을 가는지도......’ 그때는 몰랐지만 그 후 3주뒤에 우리는 인종과 언어를 뛰어넘는 너무 소중한 친구가 될 운명이었다.
버스의 종점까지 가는 길에 남아있던 3명. 우리 모두는 일댁스로 향하는 워크캠프 참여자였다.
통성명을 한 뒤, 아직 일댁스에 가는 보트를 타려면 30여분간의 시간이 남았기에 우리는 조금 서로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처음 내가 알아 본 백인친구의 이름은 헨드릭. 독일에서 왔고 나이는 26살. 유창한 영어안에 섞인 그만의 특유의 억양이 너무도 맘에 들었다. 다른 한 친구는 멕시코에서 온 로드리고. 18살(그 얼굴에 18살 ??) 이미 스페인에서 다른 워크캠프를 참여하고 이 곳에 왔다고 한다.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를 목적지로 데리고 갈 보트에 올라탔다. ‘ 정말 시작되는구나 !’
20분여간의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드디어 일댁스에 도착했다. 그 곳엔 키가 작은 곱슬머리의 한 친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에디, 이 워크캠프의 리더였다.
에디를 따라가니 도착한 우리의 숙소 !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넓고 깨끗하였다. 2층엔 우리의 숙소와 샤워실이, 1층에는 주방과 식탁이 있었고, 이미 우리 셋을 제외한 다른 친구들은 식탁에 둘러 앉아 어색한 분위기 속에 조금씩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아무도 그 땐 우리가 지금처럼 진실한 친구가 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말간 대략의 워크캠프 일정을 듣고, 가끔은 근처의 바닷가에서 비치볼과 조금은 추운 바닷가에서 수영을 즐기고, 또 우리에게 각각 주어진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둘러보기도 하였다. 늘 서울에서만 자라온 나는 자연이 주는 편안함이라는 것을 이 곳에 와서 처음으로 느꼈다.
드디어 시작된 월요일 ! 모두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복장을 갖춰입고, 작업을 시작하였다. 우리가 3주 동안 하게 된 일은 요새 안의 낡은 시멘트 벽을 부수고 그 안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하는 법을 몰라 헤메었지만, 테크니컬 리더인 스테판의 설명과, 조금씩 할수록 알아가는 노하우에 날이 흐를수록 우리는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때론 짖궂은 날씨 탓에 자전거를 타고 일하는 곳에 가는게 고된 날도, 부셔도 부셔도 끝이 없을 것만 같은 두터운 시멘트벽 앞에 한숨도 쉬었지만, 돌이켜보면 그 누구 하나도 투정부리지 않고, 아픈 내색하나 없이 주어진 시간 동안 최선을 다했기에 우리의 워크캠프는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1시에 일을 마치고 나면 언제나 기대되는 점심식사 ! 우리는 팀을 네 팀으로 나누어서 매일 번갈아가며 식사팀, 청소팀, 설거지팀을 하루에 한번씩 맡게 되었다. 누가 무엇을 만들든, 항상 맛있다고 웃으면서 배터지게 먹는 우리 팀원들. 지금 생각해봐도 믿기 힘든 일이다. 누구 하나 밉지 않고, 한명 한명 이름만 떠올려도 웃음이 나고 금방 보고 싶어지는 마음이 솟아난다니......
또 너무나 친절한 마을 주민들 역시 잊을 수 없다. 우리를 위해 바비큐 파티를 열어준 분도, 이 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세일링을 경험시켜 준 분도, 새우 요리를 만들었다며 우리를 초대해 준 분도...... 자연환경과 그 곳의 주민들, 거기다 너무도 완벽한 참여자들까지...... 다시 이런 날이 올 수 있을까 ?
드디어 오지 않을 것 같던 마지막 주가 찾아왔다. 마지막 주는 이제 우리의 임무를 마무리 하고, 우리의 작업현장에 마을 사람들을 초대해서 각자 나라의 전통요리를 소개하고 맛보는 인터네셔널 데이가 있었다. 내가 준비한 음식은 당연 불고기와 잡채 ! 서툰 요리실력에 조금은 긴장했지만, 어린아이부터 노인분들까지 한국음식이 최고라며 쉴새없이 와서 줄을 서서 받아가는 바람에 나는 내 음식을 시식조차 못해보았지만 마음만은 너무나 행복하였다.
드디어 마지막 날...... 정이 많던 터키에서 온 야프락은 벌써 눈에 한가득 눈물이 고였고, 다른 친구들도 내색은 안하지만 조금은 빨개진 눈시울에서 나는 느낄 수 있었다. ‘ 모두 이 시간을 너무도 아쉬워하고 또 그리워하겠구나 ‘ 배가 떠나가는 순간까지 우리를 배웅해준 캠프리더와 마을 주민들.
나는 단언컨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내 20대 중 가장 소중했던 3주였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