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깡시골, 후회에서 찾은 행복

작성자 박현지
프랑스 CONC 070 · ENVI/CULT 2013. 07 Auray

ECOMUSEE DE SAINT DEGA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처음에 국제 봉사를 참여하게된 계기를 말하자면, 단순히 학교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 의 일부로서, 참가했던 것이 전부였다. 개인적으로는 그 봉사보다, 그후에 다닐 배낭여행에 더 가대를 품었던것이 더 컸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왕 가는거 열심히 해보자는 각오로 임하게 되었다. 처음 봉사지역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황당했엇다. 한적한 시골의 허름한 기차역 뿐이었다. 오기전에 파리에서 옃일 묵었던 탓인지, 그곳과는 너무 문위기가 달라서 적응하기도 힝들었고, 처음엔 내가 왜 여기 깡시골 까지와서 고생해야 됬었는지, 스스로도 후회하게 되었다. 그런데 차차 워크캠프 인원들도 오고, 그중한국인도 만날수있어서 나름 안심이 되었다. 서로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으며, 차에 올라타서 우리가 15일동안 봉사할 지역으로 향했다. 그곳은 eco-musee 라고 우리나라로 치면, 민속촌 박물관 같은 느낌으로 한 마을 전체가 박물관이었다. 그곳은 78~80년대 유물과 소품들이 전시되아있었고, 우리는 그곳을 보수, 수리하는 역할을 맡았다.
환경은 열악했다. 잠자는 곳도 텐트 였고, 심지어 샤워실도 텐트였다. funny shower 은 말로만 들어봤지, 실제로 하게될지는 상상도 못했었다. 그곳의 음식은 서로 그룹을 나눠서 식당번이 되었다. 그 그룹은 하루동안 점심, 져녁을 차려야 했고, 설겆이 뿐아니라, 화장실 청소까지 했어야 했다. 그곳의 주된 일은 나무의 껍질을 벗기고 잘라서, 집을 만들대 사용될만한 기둥을 만들어내야 했어야 되는 것이였고, 짚을 모아서 지뭉에 쌓는 일을하던지, 시멘트를 집 벽사이사이에 메우는 역할도 했어야 했다. 프랑스는 우리와 다르게 해가 일찍 뜨고 아주늦게 대략 10시 11시쯤 지기때문에 단순히 육체적인 노동으로 부터 오는 피로감이 아니라, 그곳의 환경과 날씨 로인해 정신적인 부적응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더극심했던거 거같다. 따라서 하루일과는 최대한 일찍 끝내ㄱ줘서 대략 2시쯤 이면 일을 끝냈다. 그이후로는 마음대로 놀수있게 됬었는데 팀리더가 우리를 데리고 마을 이곳저곳 다데려다니고, 해변이랑 호수도 수없이 갔던것 같다. 그당시에는 육체척으로 많이 힘들어서 투정도 많이 부리고 그랬는데, 지금와소 생각해보면, 그런 우리를 데리고 여기저기 구경시켜 줬던 팀리더 에게 참 고맙다. 밤이되면 프랑스 나라 답게, 항상 와인이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곳아이들은 와인과 보드타를 굉장히 즐겨마신다는 거에 굉장히 신기했다. 또 한가지, 프랑스 애들은 담배를 즐긴다. 워크캠프 내내 한가지 불만 이있었더라면, 그들은 꼐속 줄담배를 피워댔고, 항상 술만 마시다가 주정 하고 잠이든다.. ㅋㅋ 그들에겐 담배는 우리에게 카톡과 같은 아주 보편적인 문화다. 그들이 항상 우리 한국인보고 너흰 항상 와아파이만 찾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면 우리는 그걸 대항해서 이건 너희들 담배랑 똑같은 것이니 이해해달라라고 말하곤 했다. 이부분 때문에 약간의 충돌이있었지만 마지막에는 잘풀렸다. 한가지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경험은 마을 길을 따라 그 주민들이 행을 지어서 그마을 고유의 전통 민요? 를 부르고 마지막엔 마을회관에 모여 남녀노소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는 것이었다. 사실상 이런건 우리나라에는 본적이없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노인과 젊은 층들이 시간적으로나 그들이 살아온 시대적 괴리가 굉장히 커서 공통적인 공감대가 거의없다. 따라서 항상 단절된 모습만 몰수있었는데, 여기 이마을은 너무 달랐다. 그들은 크게 원을 만들어서 그들의 전통 춤을 추며 재미있게 그들만의 문화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며 너무 신기했었고, 내심 부럽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저런 문화가 빨리 정착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워캠은 솔직히 내인생에 있어서 가장 육체적으로 힘든 기간이었다. 그래도 그곳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 그곳에서 만난 local 사람들이 사는법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를 경험할수 있었고, 개인적으로 이렇게 다양한 배경과 가지관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는것 자체가 너무나 값진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