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졸업 전 마지막, 독일 워크캠프 도전

작성자 김세연
독일 VJF 6.4 · RENO 2013. 08 독일

Buchenwald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올해 봄, 워크캠프 참가 신청을 할 때만 해도 나는 4학년을 준비하는 예비 취준생이었다. 사회에 나가기 전 마지막 여름방학은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다가왔다. 학생으로 지냈던 3년 넘는 시간을 돌이켜보니 새내기 시절 계획했던 많은 일들을 해내기도 했지만, 그 반대로 이루지 못한 일들도 많았다. 그 중 하나는 바로 워크캠프였다. 1학년때만 해도 넘치는 열정으로 매년 워크캠프를 가리라 다짐했었지만, 막상 신청하려 컴퓨터에 앉으면, 프로그램 찾기는 그렇게도 신이 나면서 신청서 작성은 왜 그리도 귀찮은 것인지... 결국 3년동안 난 단 한번도 워크캠프 참가를 실천에 옮기지 못했었다. 그런데 나란 사람이란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 졸업을 앞두고 있으니 대학생 신분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소중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본격적인 나의 워크캠프 참가 준비가 시작되었다.
워크캠프와 함께 유럽여행을 준비했기 때문에 유럽지역을 선택하였고, 날짜에 맞춰 나의 전공을 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갔다. 그 중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독일의 Buchenwald라는 지역의 나치수용소 박물관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었다. 신청서 마감을 겨우 맞추어 신청서를 제출하고 며칠이 지나 합격했다는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
사실 막상 나치수용소라는 곳에서 일을 한다고 하니 합격의 기쁨은 잠깐이고, 두려움이 몰려왔다. 대부분의 워크캠프와는 달리 깨끗한 숙소와 편리한 시설을 자랑하였으나, 그 곳은 나치가 학살된 역사적 현장, 바로 그 한가운데였기 때문이다. 박물관과 그 지역에 대하여 조사를 하면 할수록 두려움은 커져갔다.

6월21일 유럽으로 출국하여 60일간의 여행을 마친 뒤 나는 워크캠프에 참가하기 위해 독일 Buchenwald지역으로 출발하였다. 도착한 그곳은 유대인이 대량으로 학살되었다고 보기엔 너무나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이었다. 심지어 바우하우스라는 유명한 디자인학교와 음학대학교가 위치해 있을 만큼 그곳은 한적하고도 예술적 낭만이 넘치는 곳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도착한 워크캠프의 첫날밤 나는 한국인은 나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밤에 잠이 들 때 까지 영어만을 써야 한다는 사실에 첫날부터 마음이 답답하기 시작했다.
나의 룸메이트는 일본인 한 명과 벨라루스인 한 명으로 배정되었다. 사실 모두가 그렇듯 한국인이라면 일본에 대하여 약간의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지만, 한국인 한 명 없던 그곳에서 내가 의지할 곳은 일본인 뿐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 일어공부를 한 덕에 우리는 금세 친해지게 되었다.
총 20명의 참가자들은 프랑스, 터키, 일본, 중국은 물론 벨라루스나 세르비아와 같은 낯선 곳에서 온 친구들도 많았다. 우리가 모여서 할 일은 그리 큰 일이 아니었는데, 유대인 감옥이었던 유적지를 정리하고, 유물을 발굴하고 또 그것을 보존 처리하는 것이었다. 평소 미술관에 취직을 꿈꿔온 나는 큐레이터와 함께 그러한 일을 눈앞에서 직접 체험한다는 것 자체가 무척이나 영광이었다. 하지만 막상 일을 시작하고 보니 할 일은 많지 않았고, 교육자분과 함께 2주간 제2차 세계대전에 관하여 공부하고 서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사실 우리나라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하지는 않았으나, 역사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은 나라 중 하나인데, 정작 나는 우리의 해방 외에는 알고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막상 토론을 시작하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2차 세계대전에 박학다식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견해 역시 확실한 사실에 놀랐다. 또한 세계대전이라는 단어에 걸맞게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여러 나라에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에 정말 지구촌이라는 말을 다시금 실감하였다.
음식 같은 경우는 서로 매일같이 돌아가며 각자 자신의 나라의 전통음식으로 점심,저녁을 준비하였는데, 소소하게 각 나라 문화를 체험하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이렇듯 밥을 먹고 유적지를 발굴하고 오후에는 매일같이 역사에 대하여 토론하고 나치즘과 파시즘에서 토론하는 동안 나는 마치 G20과 같은 2차 세계대전 관련 정상회담에 참여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곳에 봉사하러 왔다기 보다는 많은 것을 듣고 배우고 토론하며 자신을 비롯한 세계의 모든 나라에 대하여 생각해보고 앞으로 전쟁이 발발하지 않기 위한 예방책을 세우는 등 매우 뜻 깊은 시간이었다. 특히나 전쟁이 앞으로 일어날것인가 하는 주제에 대한 토론을 하는 날에는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었다. 모두가 북한과의 관계에 대하여 물었고, 비교적 북한과 가까운 서울에 살고 있는 나에게 무섭지 않느냐고 물어왔다. 나는 미처 평소엔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나라의 시선들과 견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우리나라가 지금 현재 너무나도 분단의 사실에 무뎌진 것은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2주를 시작하기 전 첫날은 2주가 언제쯤 가려나 앞이 깜깜했는데, 막상 2주를 모두 보내고 나니 우리는 모두 마치 가족처럼 친해져 있었고, 심지어 헤어지는 날은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는 2학기를 준비하기 위해 워크캠프가 끝난 뒤 바로 비행기표를 끊어서 집으로 돌아왔지만, 다른 친구들은 베를린에서 다시 만나 2차 파티를 즐겼다는 후문이.....

요새는 세상이 좋아져, 많은 나라에서 우리나라 대학으로 교환학생을 오지만, 이처럼 다양한 나라에서 같은 시간에 모여 같은 일을 하는 일은 흔치 않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그 일원이 될 수 있고,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서로 마음 맞는 이야기와 추억을 나눌 수 있다. 과연 앞으로 나의 인생에서 다시 한번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을지… 워크캠프를 마치고 돌아온 지금 나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내가 생각보다 외국인과 잘 어울릴 수 있음을 깨닫고, 이 경험을 이어나가려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