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두근거림 안고 떠난 여름, 잊지 못할 추억
GELLE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처음 내가 워크캠프에 대해 알게된 것은 2012년 12월 겨울이었다.
잠깐 단기알바를 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한 언니와 친해지게 된 것이 이번 내 도전의 계기라고 생각된다. 언니에게 워크캠프에 대해서 듣고 알게 되고 난 후 난 엄청난 호기심이 생겼다. 외국의 정서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고,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몇 주간 생활한다는 것이 엄청난 매력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이번여름방학에 시간이 된다면 같이 워크캠프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였다.
알바가 끝나고 이에 대해 잊고 있다가, 문득 워크캠프에 대해 이야기하던 것이 떠올라 언니에게 연락을 해 보았고, 우리는 정말 약속 했던 것처럼 서로 서류를 따로 제출하였으나 둘다 합격하여 같은 워크캠프를 가게 되었다.
비행기표도 예매하고 외국인 친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두근두근 하는 마음을 붙잡고 드디어 2013.7.26일 우리는 인천공항에서 파리의 샤롤드골 공항으로 떠났다.
내 워크캠프의 기간은 2013.7.28 ~ 2013.8.17 일로 프랑스의 GELLES라는 마을에서 3주간 건설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길면 길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기간이 정말 짧게 느껴졌다.
첫날, 버스가 조금 늦은 관계로 나는 1시간정도 늦게 도착을 했고 우리와 러시아 친구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먼저 도착해있었다. 각 워크캠프의 숙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집 한 채가 워크캠프의 숙소였다. 따라서 방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남자들은 한 방을 사용했고 여자들은 3방으로 나누어져서 사용했다.
우리 워크캠프 멤버들은 프랑스 3명, 가나 1명, 러시아 3명, 세르비아 2명, 그리스 1명, 터키 2명, 그리고 대한민국 2명으로 총 14명이었다.
우리의 일 하는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12시 까지였다. 약 4시간 동안 건설 중 목공예를 거의 했는데 우리가 했던 일들은 울타리를 직접 만들어서 큰 쓰레기통 근처에 설치하는 일을 하였다. 물론 땅을 파고 시멘트도 만들고 하였으나 건설업이라고 해서 힘든 일을 걱정했던 나로서는 일이 매우 재미있었다. 또한 이 4시간 중에도 꼭 오전 10시에는 10분간 coffee time이 있었는데 나뿐만 아니라 모든 친구들이 나중에는 이 시간만을 기다리기도 하였다.
12시에 일을 마치고 나면 12시 30분부터 점심시간 이었다! 이때의 점심식사는 우리가 첫 날에 무작위로 2명씩 돌아가면서 팀을 정했다. 이를 kitchen team 이라고 했는데 자신이 kitchen team에 속한 날에는 일을 하러 나가는 대신 집 내부를 청소하고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일을 하였다.
여기까지는 매일이 같은 일상이었지만 우리의 또 다른 스케줄은 매 오후에 시작했다.
다른 워크캠프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리더가 매우 활동적인 친구여서 매일 매일이 다른 스케줄과 더불어 엄청난 활동을 하였다. 주중오후 활동 중 기억나는 일들을 몇 가지 꼽아보겠다.
첫 번째로 7월 29일 Gelles의 마을 파티가 있었다. 우리를 환영해 주는 것과 더불어 마을의 전통의상과 전통춤을 직접 보고 함께 배워보는 기회였다. 이런 기회는 정말 특별했던 것 같다.
두 번째로 소방서 견학이 있었다. 특이한 점은 이 마을의 소방관들은 공무원이 아니라 다들 자원봉사자라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 아닐까 싶었다. 소방차도 타보고 직접 물을 뿌려보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바베큐 파티까지 지금 생각해도 행복한 하루였다.
세 번째로 양궁이 기억이 난다. 물론 축구, 농구 등 다른 스포츠들도 했으나 우리나라는 양궁으로 최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체육관에서 양궁을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는 없다. 하지만 여기서는 체육관에서 원하는 모든 주민들이 양궁을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양궁의 강국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외국 친구들은 내가 매우 잘 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쳐다보았는데 뭔가 부끄러움을 느꼈다.
네 번째로 국가소개가 있었다. 각 나라의 음식들을 직접 만들고 앞에 나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내 나라를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나와 언니는 불고기와 라면을 만들었는데 라면을 매우 싱겁게 끓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친구들이 매워서 먹지 못했다. 반면에 불고기는 정말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우린 미리 “반크” 를 통해서 대한민국 지도, 세계지도, 우리의 세계문화유산 등을 준비해 갔는데 무언가 준비를 해 갔다는 점에서 모두들 놀랐었다.
마지막으로 8.15~8.16일 동안 이번 워크캠프에서 가장 큰 축제가 있었다. 이것은 마을에서 개최하지만 마을만의 축제가 아닌 큰 축제였다. 8월 16일에 워크캠프 자원봉사자들이 각자 자신의 나라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것은 인포짓에도 미리 공지가 되어 있어서 나는 "대한민국" 이라는 나라를 알리고자 한복을 준비해 갔다. 나는 우리나라가 작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당연히 한복을 알 줄 알았는데 내가 국기를 들고 있지 않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Japanese? 라고 물어보았다. 기모노라는 이름은 아는데 한복은 모르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슬퍼져서 나도 모르게 한!복! 이라면서 외치고 다녔던 것 같다. 이 축제는 퍼레이드 준비와 수레제작 등도 우리가 직접 한거라서 아마 모든 친구들이 가장 잊을 수 없는 추억 일 거로 예상된다.
지금까지만 해도 엄청난 활동을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우리의 엄청난 하루는 주말이었다. 말했듯이 우리의 리더는 매우 활동적인 친구여서 운동을 좋아했다. 덕분에 운동에 약한 나도 많은 체력을 길러서 올 수 있었다.
첫째 주말은 근처의 마을을 놀러간다고 하여서 다들 엄청 기대했지만.. 그 전에 등산을 하였고, 두 번째 주말은 수영장을 가기로 했는데 차로 갈 수 있는 거리를 걸어서 갔다.. '얼마나 걷는다고 그러느냐' 라고 말하겠지만 우리는 오후 활동을 끝내고서도 거의 매일을 2시간씩 걷는 산책을 나갔었다. 그래서 주말까지 걷는것에 당시에는 너무 힘들어서 짜증도 났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덕분에 외국인 친구들과도 더욱 친해질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외국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다가가지 못하는 만큼, 그 친구들도 그랬다. 문화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실제로 겪었던 일 중에서 지나가는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서 안으면 친구들이 소리쳤다. "Don't Eat!!" 라고. 또한 모인 친구들 중에서 한 친구는 장난으로 "너희는 여기서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다. 정상이라면 포크를 사용한다." 라고 말을 했다. 물론 우리는 기분이 상할 수 있다. 나도 처음에는 정말 너무도 기분이 나빴는데 '이 친구들은 그 말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한 거다' 라고 생각해보니 그저 편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외국인들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것이 많은 만큼 이 친구들도 똑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나는 화를 내기 보다는 그 친구들을 이해시키려고 비록 잘 하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설명을 하려 노력했고, 친구들도 나중에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시는 그러지 않았으며, 젓가락 사용법을 물어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사실 처음에 워크캠프를 간다고 할 때는 걱정을 많이 했었다. 언니는 외국에 몇 번 자율적으로 나간 적이 있었지만 나는 정말 처음으로 나가는 것이었고, 영어를 잘 하는 편도 아니어서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못 어울릴까봐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3주간 활동을 해 보니 오히려 내가 그 친구들을 '외국인'이라고 생각해서 망설였던 것 같다. 아무리 말을 더듬더듬하고 천천히 해도 친구들은 항상 날 위해서 기다려 주었고 그 배려 덕분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마지막 날은 정말 헤어지기가 너무 아쉬워서 나는 한명 한명 떠날 때마다 정말 펑펑 울었다.
좋은 기억들도 있었고 앞서 말한 상황처럼 마음이 상하는 일들도 있었지만, 서로 최선을 다해 일을 할 땐 열심히, 또 축제를 즐길 땐 신나게 즐겼던 3주. 처음에는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했던 워크캠프였지만, 마음을 열고나니 그저 생김새와 사용하는 언어만 다른 다 같은 사람이고 다 같은 친구였다. 내가 마음을 연 만큼 그 친구들도 마음을 열어주었으며, 나아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까지 더 좋게 보게 되었다고 마지막 날 친구들이 말하는 것에 엄청난 뿌듯함을 느꼈다.
그저 해외 봉사활동이 아니라 더 나아가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더 많은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저 여행 같았던 한 여름날의 꿈같은 날들.
헤어짐이 있기에 만남이 있는 것이고, 만남이 있기에 헤어짐이 있는 것처럼...
다시 한 번 더 도전하면 마지막엔 또다시 만나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너무 슬프겠지만, 시간이 된다면 이번엔 또 다른 활동으로 도전해 보고 싶다.
잠깐 단기알바를 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한 언니와 친해지게 된 것이 이번 내 도전의 계기라고 생각된다. 언니에게 워크캠프에 대해서 듣고 알게 되고 난 후 난 엄청난 호기심이 생겼다. 외국의 정서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고,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몇 주간 생활한다는 것이 엄청난 매력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이번여름방학에 시간이 된다면 같이 워크캠프를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였다.
알바가 끝나고 이에 대해 잊고 있다가, 문득 워크캠프에 대해 이야기하던 것이 떠올라 언니에게 연락을 해 보았고, 우리는 정말 약속 했던 것처럼 서로 서류를 따로 제출하였으나 둘다 합격하여 같은 워크캠프를 가게 되었다.
비행기표도 예매하고 외국인 친구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두근두근 하는 마음을 붙잡고 드디어 2013.7.26일 우리는 인천공항에서 파리의 샤롤드골 공항으로 떠났다.
내 워크캠프의 기간은 2013.7.28 ~ 2013.8.17 일로 프랑스의 GELLES라는 마을에서 3주간 건설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길면 길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기간이 정말 짧게 느껴졌다.
첫날, 버스가 조금 늦은 관계로 나는 1시간정도 늦게 도착을 했고 우리와 러시아 친구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먼저 도착해있었다. 각 워크캠프의 숙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집 한 채가 워크캠프의 숙소였다. 따라서 방으로 나눠져 있었는데 남자들은 한 방을 사용했고 여자들은 3방으로 나누어져서 사용했다.
우리 워크캠프 멤버들은 프랑스 3명, 가나 1명, 러시아 3명, 세르비아 2명, 그리스 1명, 터키 2명, 그리고 대한민국 2명으로 총 14명이었다.
우리의 일 하는 시간은 오전 8시부터 오후 12시 까지였다. 약 4시간 동안 건설 중 목공예를 거의 했는데 우리가 했던 일들은 울타리를 직접 만들어서 큰 쓰레기통 근처에 설치하는 일을 하였다. 물론 땅을 파고 시멘트도 만들고 하였으나 건설업이라고 해서 힘든 일을 걱정했던 나로서는 일이 매우 재미있었다. 또한 이 4시간 중에도 꼭 오전 10시에는 10분간 coffee time이 있었는데 나뿐만 아니라 모든 친구들이 나중에는 이 시간만을 기다리기도 하였다.
12시에 일을 마치고 나면 12시 30분부터 점심시간 이었다! 이때의 점심식사는 우리가 첫 날에 무작위로 2명씩 돌아가면서 팀을 정했다. 이를 kitchen team 이라고 했는데 자신이 kitchen team에 속한 날에는 일을 하러 나가는 대신 집 내부를 청소하고 점심식사를 준비하는 일을 하였다.
여기까지는 매일이 같은 일상이었지만 우리의 또 다른 스케줄은 매 오후에 시작했다.
다른 워크캠프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리더가 매우 활동적인 친구여서 매일 매일이 다른 스케줄과 더불어 엄청난 활동을 하였다. 주중오후 활동 중 기억나는 일들을 몇 가지 꼽아보겠다.
첫 번째로 7월 29일 Gelles의 마을 파티가 있었다. 우리를 환영해 주는 것과 더불어 마을의 전통의상과 전통춤을 직접 보고 함께 배워보는 기회였다. 이런 기회는 정말 특별했던 것 같다.
두 번째로 소방서 견학이 있었다. 특이한 점은 이 마을의 소방관들은 공무원이 아니라 다들 자원봉사자라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못할 일이 아닐까 싶었다. 소방차도 타보고 직접 물을 뿌려보기도 하고 마지막에는 바베큐 파티까지 지금 생각해도 행복한 하루였다.
세 번째로 양궁이 기억이 난다. 물론 축구, 농구 등 다른 스포츠들도 했으나 우리나라는 양궁으로 최강국임에도 불구하고 체육관에서 양궁을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는 없다. 하지만 여기서는 체육관에서 원하는 모든 주민들이 양궁을 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양궁의 강국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외국 친구들은 내가 매우 잘 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쳐다보았는데 뭔가 부끄러움을 느꼈다.
네 번째로 국가소개가 있었다. 각 나라의 음식들을 직접 만들고 앞에 나가서 마을 사람들에게 내 나라를 소개하는 시간이었다. 나와 언니는 불고기와 라면을 만들었는데 라면을 매우 싱겁게 끓였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친구들이 매워서 먹지 못했다. 반면에 불고기는 정말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우린 미리 “반크” 를 통해서 대한민국 지도, 세계지도, 우리의 세계문화유산 등을 준비해 갔는데 무언가 준비를 해 갔다는 점에서 모두들 놀랐었다.
마지막으로 8.15~8.16일 동안 이번 워크캠프에서 가장 큰 축제가 있었다. 이것은 마을에서 개최하지만 마을만의 축제가 아닌 큰 축제였다. 8월 16일에 워크캠프 자원봉사자들이 각자 자신의 나라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것은 인포짓에도 미리 공지가 되어 있어서 나는 "대한민국" 이라는 나라를 알리고자 한복을 준비해 갔다. 나는 우리나라가 작지만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당연히 한복을 알 줄 알았는데 내가 국기를 들고 있지 않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Japanese? 라고 물어보았다. 기모노라는 이름은 아는데 한복은 모르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슬퍼져서 나도 모르게 한!복! 이라면서 외치고 다녔던 것 같다. 이 축제는 퍼레이드 준비와 수레제작 등도 우리가 직접 한거라서 아마 모든 친구들이 가장 잊을 수 없는 추억 일 거로 예상된다.
지금까지만 해도 엄청난 활동을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정작 우리의 엄청난 하루는 주말이었다. 말했듯이 우리의 리더는 매우 활동적인 친구여서 운동을 좋아했다. 덕분에 운동에 약한 나도 많은 체력을 길러서 올 수 있었다.
첫째 주말은 근처의 마을을 놀러간다고 하여서 다들 엄청 기대했지만.. 그 전에 등산을 하였고, 두 번째 주말은 수영장을 가기로 했는데 차로 갈 수 있는 거리를 걸어서 갔다.. '얼마나 걷는다고 그러느냐' 라고 말하겠지만 우리는 오후 활동을 끝내고서도 거의 매일을 2시간씩 걷는 산책을 나갔었다. 그래서 주말까지 걷는것에 당시에는 너무 힘들어서 짜증도 났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덕분에 외국인 친구들과도 더욱 친해질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외국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다가가지 못하는 만큼, 그 친구들도 그랬다. 문화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실제로 겪었던 일 중에서 지나가는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서 안으면 친구들이 소리쳤다. "Don't Eat!!" 라고. 또한 모인 친구들 중에서 한 친구는 장난으로 "너희는 여기서 정상적이지 않은 것이다. 정상이라면 포크를 사용한다." 라고 말을 했다. 물론 우리는 기분이 상할 수 있다. 나도 처음에는 정말 너무도 기분이 나빴는데 '이 친구들은 그 말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한 거다' 라고 생각해보니 그저 편견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외국인들에 대해 제대로 모르는 것이 많은 만큼 이 친구들도 똑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나는 화를 내기 보다는 그 친구들을 이해시키려고 비록 잘 하지는 못하더라도 최대한 설명을 하려 노력했고, 친구들도 나중에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다시는 그러지 않았으며, 젓가락 사용법을 물어보는 친구들도 있었다.
사실 처음에 워크캠프를 간다고 할 때는 걱정을 많이 했었다. 언니는 외국에 몇 번 자율적으로 나간 적이 있었지만 나는 정말 처음으로 나가는 것이었고, 영어를 잘 하는 편도 아니어서 말이 잘 통하지 않아 못 어울릴까봐 많이 망설였다. 하지만 3주간 활동을 해 보니 오히려 내가 그 친구들을 '외국인'이라고 생각해서 망설였던 것 같다. 아무리 말을 더듬더듬하고 천천히 해도 친구들은 항상 날 위해서 기다려 주었고 그 배려 덕분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마지막 날은 정말 헤어지기가 너무 아쉬워서 나는 한명 한명 떠날 때마다 정말 펑펑 울었다.
좋은 기억들도 있었고 앞서 말한 상황처럼 마음이 상하는 일들도 있었지만, 서로 최선을 다해 일을 할 땐 열심히, 또 축제를 즐길 땐 신나게 즐겼던 3주. 처음에는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했던 워크캠프였지만, 마음을 열고나니 그저 생김새와 사용하는 언어만 다른 다 같은 사람이고 다 같은 친구였다. 내가 마음을 연 만큼 그 친구들도 마음을 열어주었으며, 나아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까지 더 좋게 보게 되었다고 마지막 날 친구들이 말하는 것에 엄청난 뿌듯함을 느꼈다.
그저 해외 봉사활동이 아니라 더 나아가 정말 많은 것을 배웠고, 더 많은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저 여행 같았던 한 여름날의 꿈같은 날들.
헤어짐이 있기에 만남이 있는 것이고, 만남이 있기에 헤어짐이 있는 것처럼...
다시 한 번 더 도전하면 마지막엔 또다시 만나기 힘들다는 것을 알기에 너무 슬프겠지만, 시간이 된다면 이번엔 또 다른 활동으로 도전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