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프랑스, 친구를 찾아 떠난 워크캠프

작성자 윤지영
프랑스 SJ63 · RENO 2013. 08 - 2013. 09 beceleuf

BECELEUF-ROCHARD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1. 워크캠프 준비
프랑스를 선택한 이유는 정말 단순했다. 이번 유럽 여행을 기획하는 발판이 되었던 지난 여행에서 나에게 많은 영감을 줬던 친구가 바로 프랑스인이었기 때문이었다. 비슷한 햇수를 살아왔지만 생각하는 방향이 정말 다르면서도 공감대가 유달리 많았던 그 친구와의 만남을 통해 나는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해 더욱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마침 프랑스는 세계에서 워크캠프를 가장 많이 주최하는 나라였기 때문에 별 무리 없이 워크캠프에 참여할 수 있었다.

2. 교통편 및 미팅 포인트, 첫 만남
우리의 미팅 포인트는 토요일 오후 5시 40분 Niort Station이었다. 마침 딱 5시 40분에 역에 도착하는 열차편 역시 있었지만 나는 연착에 대한 두려움에 한 타임 전 열차를 타고 2시간 정도 이른 오후 3시 쯤 역에 도착했다. 짐은 많은데 맡길 곳은 없고 한참을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나만큼이나 많은 짐을 들고 있는 한 친구를 발견했다. 역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다른 참가자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빵떡모자를 쓰고 수염을 기른 분이 홀연히 다가와 우리를 역 뒤편 주차장으로 안내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우리 캠프의 테크니컬 리더였고 그를 따라 역 주차장에 짐을 내리기가 무섭게 지금 막 들어오는 열차에서 나와 3주 간 함께 하게 될 다른 캠퍼들을 만나러 역으로 함께 마중을 나갔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과 갑자기 마주한 터라 어색함이 감도는 가운데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고, 다시 주차장으로 이동해 마을 분들이 손수 구워 오신 파이와 과일들로 간단한 다과를 나눴고 커다란 세계 지도에 그려진 각자의 나라 위에 이름을 쓰고 사진을 찍었다.

3. 하루 일과 및 업무 분담 - walk
우리 캠프는 토요일에 시작해서 3주 후 토요일에 끝이 나는 캠프였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크게 지역 사람들과 함께 캠프의 테마인 마을의 숙박시설을 재보수하는 일과, 우리의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캠프 내 일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캠프의 테마인 renovation에 걸맞게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 8시 30분부터 1시 30분까지 매일 5시간 동안 지역의 숙박시설을 재보수하는 일을 도왔다. 친환경을 중시하는 프랑스인만큼 숙소에서 자전거로 약 20분 정도 떨어진 숙박시설을 자전거로 왕복했는데, 출근(?) 할 때는 내리막이었지만, 반대로 퇴근(?) 할 때는 전부 오르막인지라 우리는 다리에 알이 배기도록 자전거를 탔다.
우리는 3주 간 맨 땅을 파서 친환경 수로를 만들고, 돌을 깎아 벤치를 만들었으며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진입로를 만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돌을 원하는 모양으로 깎아내는 스톤커팅 작업이었다. 그 전까지 돌은 딱딱하니까 그저 기계로 자르면 되는 줄 알았는데 돌의 강도에 따라 사람의 손으로 직접 작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테크니컬 리더는 매일 두 명씩 모두가 돌을 깎아 볼 기회를 제공했는데 정확히 45도의 각도를 유지하면서 끌로 깎아내어 평탄하게 만드는 작업은 생각보다 어렵고 지루했다. 모두의 실습이 끝나고 스톤커팅이 적성에 맞는 두 명이 마지막까지 리더와 함께 벤치를 만드는데 투입되었다.

또한 총 4개의 층으로 구성된 친환경 정화조를 만드는 작업에 모든 인력이 마지막까지 총 동원되었는데, 아무것도 없던 맨 땅에 구성이를 직접 파서 플라스틱으로 된 정화조를 각도에 맡게 파 붙고, 물을 끌어올 수 있는 산 위쪽부터 파이프 잘라 연결한 다음 파이프를 보호하는 모래와, 흙과 돌을 덮은 뒤 마지막에 기왓장과 큰 나무 조각으로 계단을 만들어 연결한 다음 다시 그 곳을 흙으로 덮어 평탄하게 만드는 작업을 3주 내내 진행했다. 매일매일 “일 그만!!! 우린 충분히 일했어!!!”를 외치며 숙소로 떠날 만큼 고된 작업이었다.


다음으로 우리의 먹고 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매일같이 한 두 명이 조를 이뤄 업무 분담을 했다. 키친 팀, 화장실 청소, 설거지 팀, 간식 팀, 그리고 숙소를 정리하는 팀까지 매주 주어지는 표에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채워 넣고 함께 일을 분담하여 맡았다. 원래 우리는 우리가 보수하는 숙박시설 옆에 위치한 유목민 천막에서 묵기로 되어있었으나, 샤워를 하고 음식을 하는 등에 필요한 물 조달이 원활하지 않아서 마을의 양궁장, 축구장이 결합된(?) 마을의 종합 체육시설(?)에서 3주 간의 귀중한 시간들을 함께 했다.


4. 번외 activity - play
- 웰컴 파티, bal festival, 라로펑쉐, 인터네셔널데이, 염소 농장, 양궁
우리의 첫 공식 행사는 3주간 묵을 마을, ardin에서 열어준 자그마한 웰컴 다과 파티였다. 마을의 동사무소 앞마당에서 주스와 과자를 먹으며 서로 인사를 하고 자기 소개를 했는데 내 이름이 무엇인지, 어디서 왔는지는 각자 불어로 얘기할 수 있도록 리더들이 도와주어 성공적으로 통역 없는 자기소개를 마칠 수 있었다.

우리가 두 번째로 참여했던 공식행사는 역시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는 흥겨운 음악페스티발이었다. 크게 드리운 나무 앞 풀밭에서 유럽 전통 음악을 라이브로 들으며 간단한 댄스를 추는 행사였는데, 이 날 처음 들은 유럽 전통 음악이 너무 좋아서 CD로 구워올 만큼 나는 열정적인 팬이 되었다. 다 같이 손을 잡고 발을 구르며 춤을 추다보니 쌀쌀한 날씨가 무색하게 다 같이 땀을 흘리며 놀았던 기억이 난다.

우리의 첫 번째 비공식 행사였던 나무 줄타기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좋아했던 두 리더에 의해 추진되었다. 나름 익스트림 스포츠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저질체력으로 인해 꼴찌로 들어와서 그날 밤 엄청난 근육통을 앓았다.

세 번째 공식 행사는 인터네셔널 데이. 각자 자신의 나라 음식을 만들어 마을 주민들과 함께 맛보고 즐기는 행사였는데 나는 불고기와, 호떡을 준비했다. 주방은 하나 밖에 없고 11명의 인원이 동시에 음식을 준비해야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준비과정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던 데다가, 리더들이 장을 봐온 불고기용 고기가 슬라이스가 아닌, 통 고기였는지라 칼이 없었던 나는 가위로 일일이 생고기를 잘라내야만 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불고기와 호떡을 격하게 애정해주는 모습을 보니 누구보다 보람되었고, 특히 우리 캠퍼들은 내가 요리를 담당한 날 불고기 한 번 더!를 외치는 바람에 나는 사랑의 힘으로 다시 가위질을 했다. (호떡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모든 친구들에게 레시피를 번역해서 발송해야 했다는...^^)

우리는 정말 빡빡하게 공식 비공식 일정을 소화했는데, 치즈의 나라 프랑스에 온 만큼 근교 염소농장에 방문해 치즈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투어 했다. 좋은 치즈들을 직접 맛볼 수 있었지만 나는 염소 특유의 냄새에 빈번하게 농장을 탈출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머무른 양궁장 주인아저씨께서는 양궁에 있어 독보적인 나라, south korea에서 온 나에게 매우 관심을 보이셨다. 활은 잡아봤는지, 한국 사람들은 다 활을 잘 쏘는지 등등 우리나라의 양궁 교육 상황(?)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이셨지만 아쉽게도 내가 활을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다는 말에 매우 실망을 하셨다. 하지만 덕분에 우리 캠퍼들은 모두 양궁을 체험해볼 기회를 얻게 되었고 과녁도 못 맞추던 다른 친구들과 달리 나는 (우연히)첫발부터 9점, 약간의 방황 끝에 마지막에 10, 10을 쏘며 아저씨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다.


- 낭뜨, 푸아티에, 니오흐, 라로쉐 근교 여행
우리는 주말이나, 작업이 끝나고 예정된 스케쥴이 없는 경우 주로 마을에서 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곳으로 여행을 갔다. 각각의 도시들이 모두 프랑스만의 매력을 맘껏 뽐내는 곳이었기에 여행 일정이 잡히면 우리는 전날부터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여행을 통해 주어지는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이것저것 계획을 짰다. 하지만 리더 두 명과 캠퍼 9명 모두를 운송할 만한 수단이 없어서 항상 차를 두 대로 나누어 타거나, 마을 사람들 혹은 테크니컬 리더의 도움을 받아 움직여야 했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항상 앞서 길을 안내하는 차를 뒤차가 따라가는 방식으로 이동해야 했는데 우리의 첫 여행이었던 낭뜨 여행에서 내가 타고 있던 뒷 차가 길을 잃어 다시 연락을 취하고 서로 찾느라 2시간여를 헤매다가 저녁도 먹지 못하고 밤 11시에 숙소에 도착한 웃지못할 일도 있었고, 라로쉐 여행 때는 앞차를 쫒아가는데 몰두한 나머지 차선을 넘어 버스 도로를 횡단하는 해프닝도 겪었다.

- 잔 크리스티나, 베르나르, 실비의 집 초대
또 매주 수요일 저녁에는 캠퍼들과 식사를 원하는 주민들의 집에 그룹을 나눠 초대되었고 함께 저녁을 먹고 문화와 와인을(?) 교류했다. 나와, 터키에서 온 마베, 그리고 알제리에서 온 마시의 첫 호스트였던 잔 크리스티나는 테라피트스로, 동양의학 쪽에 관심이 많았고 때문에 음식 역시도 하얀 것 (소금, 밀가루, 심지어 우유까지도) 먹지 않아 굉장히 건강한 식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두 번째 주에 우리 캠퍼 모두를 초대해 직접 담근 술과 말린 차, 가벼운 저녁식사를 함께 했던 베르나르는 18세기의 모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자신의 집을 구석구석 구경시켜주었다. 직접 담근 와인과 함께 우리는 핑크 프로이드의 롹 콘서트를 감상했었다.
마지막 주에 나와, 일본에서 온 마키코, 그리고 체코에서 온 카타리나와 캐롤리나를 초대했던 실비의 집에서는 말을 타보는 이색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난생 처음 말갈퀴를 잡고 말에 올라 애써 태연하려 했으나 겁에 질린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바람에 모든 이들에게 빅 웃음을 선사했었다.^^; 이날 함께 초대되었던 옆집 실빈느의 아버지가 마침 보르도에서 포도 농장을 하고 계셔서 캠프 기간 내내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피노까지 선물로 안아들고 이날도 밤 늦게 숙소로 귀환할 수 있었다.



5) 워크캠프 후, 그리고 - love
3주라는 시간이 너무 길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갔고 상상하기 싫었던 우리의 헤어질 시간 역시 금방 다가왔다. 토요일 아침 나는 영국으로 넘어가는 유로스타를 타기 위해서 가장 먼저 파리로 떠나야했는데, 우리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하늘에서도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친구들은 기차시간이 한참이나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배웅하기 위해 함께 역으로 와주었다. 우리 절대 울지 말자고, 또 만날 거니까 웃으면서 헤어지자고 서로 그렇게나 약속했는데 결국 참았던 눈물을 흘리느라 다들 눈이 토끼처럼 빨개진 채로 작별인사를 해야 했다.

함께 자고, 먹고, 씻고, 일하고, 놀고, 여행하고 모든 것을 함께 했던 우리이기에 서로를 더 깊이 사귀고 찐하게 사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함께 하는 시간 동안 힘든 일 기쁜 일을 함께 나누고 즐기던 친구들은, 캠프가 마칠 즈음엔 나의 새로운 가족들이 되어있었다.

궃은 일은 모두 도맡아하면서도 항상 겸손함과 미소를 잃지 않던 마시를 통해 나는 알제리와 북아프리카, 사하라라는 말로만 듣던 세계를 보고 듣고 경험했고, 항상 유쾌하고 긍정적인 마베를 통해 나는 터키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누구보다 마음이 따듯하고 다정한 카타리나와, 워크캠프 기간 동안 나를 동생처럼 챙겨주었던 캐롤리나로 인해서 나는 속 깊은 동유럽 사람들과 그들의 나라 체코 역시 마음 깊이 새기게 되었다. 일본에서 온 마키코는 수줍은 성격으로 인해 캠프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후쿠시마 원전 문제나, 아베 총리와 같은 민감한 문제까지도 가감 없이 서로 얘기할 수 있는 사이가 되었고 언제나 당당하고 자기주장이 명확한 폴린을 통해 또 다른 프랑스를 만났다. 매일이 즐거운 파티걸 수헤이 덕분에 viva mexico를 외쳐대며 힘든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고, 벨기에에서 온 래퍼 후안으로 인해 색다른 유럽 음악을 경험할 수 있어서 즐거웠다.
그리고 워크캠프에 들어가기 전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안 좋은 문제가 터지는 바람에 여러 모로 힘들었던 나는, 친구들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누구보다 행복하게 워크캠프를 마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 나는 한동안 심하게 워크캠프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나뿐만 아니라 함께 했던 모든 친구들이 매일같이 서로를 그리워하고 안부를 주고받고 워크캠프에서 들었던 음악과 나눴던 농담들을 공유하면서 마음을 추스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 또한 별이 한 가득 쏟아지는 잔디밭에 다 같이 누워 서로의 미래를 얘기하던 그 꿈같던 시간들을 쏟아내면 사라질 것 같아 글을 쓰기조차 어려웠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만남을 꿈꾸고 있다. 친구들은 모두 한국 방문을 계획하고 있고, 나 역시 친구들이 있는 유럽으로, 그리고 우리가 다시 만날 날을 꿈꾸며 한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내 인생에 마지막일 것처럼 완벽했던, 최고의 추억과 사람들을 선사해 준 워크캠프에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6. 나의 워크캠프 팁!
내가 개인적으로 준비했던 물품들은 한국 전통문양 책갈피, 한국 음식과 문화를 소개하기 위한 엽서, 공기, 단소, 편지지, 지도 등이었고 인터네셔널 데이를 위해 준비해간 불고기 양념, 그리고 호떡 믹스 등이 있었는데 전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또한 나는 붓 펜을 준비해서 책갈피를 선물할 때 봉투에 영문 이름과, 한글 이름을 궁서체로 써서^^; 나눠줬는데 모두들 한글이 너무 아름답다며 좋아했다. 나는 워크캠프를 떠나기 전, 시기가 맞아 반크에서 주최하는 글로벌한국문화관광외교대사 교육에 참여하여 각종 자료들을 많이 수집할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참 많이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침낭은 반드시 챙기시길 권한다. 우리 캠퍼 중에서도 침낭을 챙기지 않아서 테크니컬 리더가 주는 이불을 덮고 잤던 친구가 있는데 프랑스 날씨가 워낙 일교차가 컸던 터라 밤마다 매우 추웠고 그 친구 역시 매일 밤 옷을 껴입고 자야했다.

워킹 슈즈의 경우 나는, 어떤 신발을 챙겨야 하는지 상당히 고민했는데 몸을 많이 써야 하는 테마를 선택한 경우 (기후나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발목을 잡아줄 수 있는 등산용 신발이나 발에 잘 맞는 튼튼한 운동화를 권한다. 나는 장화를 챙겼는데 도착해서 보니 일을 하는데 장화는 쓸모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캠프를 진행하다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친구도 생기고 리더의 리더십 문제로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 참고 넘어가면 계속 반복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내가 겪은 유럽 친구들은, 내가 직접 말하고 대화로 풀기 전에 이를 먼저 우리처럼 이해해주거나 눈치를 보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워크캠프 참가 전 훈련 때 경험담을 발표했던 참가자가 독일에서 온 리더와 영어로 싸웠다는 이야기에 갸우뚱 하며 ‘에이...설마...’ 했었으나 겪어보니 나 역시 리더 및 다른 나라 친구들과 갈등을 겪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내 의견과 감정을 분명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이를 잘 극복해 더 좋은 관계로 발전시킨 경험이 있다. 따라서 반드시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솔직하고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을 권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