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스위스, 잊지 못할 나의 첫 워크캠프
Art Camp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11년 7월 경 나는 학교에서 지원을 받아 싱가포르로 교환학생 겸 인턴쉽프로그램을 떠나게 되었다. 6개월의 과정이 지난 뒤, 바로 한국에 돌아오는 친구들도 있있던 반면 세상을 좀 더 알고 싶었던 나는 새로운 경험을 위해서 싱가포르에 더 남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들어가기 쉬운 한국어만 쓰면 갈 수 있던 한국유통, 한국기업이 아닌 현지그룹 취업에 도전했다. 쉽지 않았던 3개월 간의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취업 후 현지 근무를 하게 되던 중, 프랑스로 워크캠프와 여행을 떠난 친구의 페이스북을 보고 워크캠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 휴가마다 모으고 모아 여행을 떠날 정도로 여행을 좋아하던 나로서는 가지 못 했던 유럽여행도 갈 수 있으며 워크캠프라는 새롭고도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고 절호의 기회다 싶어 정보를 알아보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타지에서 모든 걸 혼자 해결했던 나는 월급을 모아가며 2013년의 워크캠프를 준비했다. 드디어 2년간의 싱가폴 생활을 정리하던 날.. 나는 점 찍어두고 지원했던 워크캠프 합격의 소식과 더불어 80일간의 긴 여행을 시작했다. 일정 상 60여일 정도 유럽을 돌고 난 뒤 마지막 여정으로 놓아 둔 스위스 졸로투른 워크캠프로 가던 날.. 준비성이 철저한 편인 나는.. 하루 전 미리 근교 스위스의 수도 베른이라는 곳에 숙소를 잡고 워캠준비에 돌입했다. 영어 자기소개.. 한국의 자랑.. 준비 해 왔던 반크에서 받은 자료들 정리하고.. 어떻게 소개할 지 준비하고.. 그러다 긴장되었던 탓있지 잠을 제대로 청하지 못 하였다.
다음 날 졸로투른으로 향하던 날도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아직도 그 기차안에서의 두근거리던 심장이 기억난다. 약속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첨부터 내 활발한 성격대로 인사를 하였다. 멤버는 세르비아 출신 커플 참가자 Lazar & Maja , 러시아 출신 Sanal & Asha, 프랑스에서 온 Ly, 미국 출신 Mindy, 일본에서 온 Ikuo, 이태리에서 온 Danielle, 독일에서 온 Franka, 그리고 한국에서 온 Andy(나) 와 혜인.
다행히도 한국인이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는 서먹서먹 했지만 이것저것 게임을 하면서 친해... 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결국엔 맥주가 우리를 친하게 해 주었다.
졸로투른 워크캠프.. 우리가 주로 했던 일은 캠프 측에서 마련해 준 스튜디오로 가서 전문 인솔자 Gabriela 에게 기본적인 수업을 받은 후 5cmX5cm 캔버스와 10cmX10cm 캔버스에 자기가 그리고 싶은 자유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그 것을 주말에 졸로투른 시내의 열리는 주말마켓에 팔아 그 수익금을 기부하는 형식이엇다. 그리고 13일 간의 기간 동안 2 번의 아이들이 스튜디오에 방문하기도 하였는데 미리 선생님들과 조율하여 아이들에게 각 국의 언어를 가르쳐 주는 활동들을 하기도 하였다. 기분 좋게도 내 그림이 마켓에서 2개나 팔리어 친구들에게 우리 부스 맞은 편 과일주스를 쏘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이 나는 처음이었는데 (한국에서건 해외에서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놀라웠던 사실은 아이들이 '한글'이라는 언어에 참으로 신기하게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나름 생각 해 보았는데 아마 아이들의 언어는 달라도 그언어를 표현하는 것은 알파벳을 이용하는데 우리 한글은 우리만의 독창적인 한글 자음과 모음을 이용하는 것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실제로 한 친구는 한글은 어떻게 동그라미와 작대기 두개로 모든 것이 표현이 되는 신기한 언어냐고 하기도 하고(실제로 이응과 작대기만으로 표현이 가능했다, 작대기는 시옷에서부터 모든 모음까지 표현가능) 우리 언어가 분류상으로는 교착어에 속하고 알파벳등은 굴절어에 속해서 우리나라 한글은 받침부터 조합이 필요했는데 이 점도 매우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때때로 꽃보다 할배의 관광지 루체른에 여행을 가기도 하고, 졸로투른 근처 산맥 쥐라산맥의 한 자락 화이트스톤이라는 뜻의 산에 하이킹을 가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하이킹이라 해서 약간 귀찮기도 했고.. 피곤해서 버스에서 졸면서 갔는데.. 내리자 마자 보였던 (실제로 버스가 거의 산 중턱까지 가 준 뒤 정차하였다.) 장엄한 경관은 인터라켄 그린델발트에서 피르스트를 가며 보던 풍경과는 또 다른 느낌의 감동을 주기 시작했다. 끝 없이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들.. 스위스 출신인 가브리엘라의 설명을 들으며 가던 하이킹.. 그리고 거기서 바라보던 설산과 그릴 소시지! 밤마다 각국의 요리를 뽐내며 맥주와 기타로 흥겹게 놀던 그 때.. 지금 돌아보면 너무너무 가슴시리도록 그리운 추억이 되어버렸다.
워크캠프로 인해 얻은 점은
1. 세계 각 국의 친구들이다. 지금도 페이스북으로 서로 연락을 하며 안부를 묻는데 2년 정도 후에 그 친구들을 다시 보러 떠날 생각이다.. 이미 이태리 친구는 내년에 와이너리에서 같이 일하자고 연락이 왔다..
2. 그들도 우리와 같다. 같은 또래라 그런지 자기 나라의 경제와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대해 얘기도하는데 의견은 달랐지만 취업이 힘들다는 점에서 모두 공감하였다.. 세르비아 친구가 북한정권과 김정은을 알 때는 참 놀라웠다.
3. 달라진 한국의 위상이었다. 싱가포르에 근무 할 때는 한국을 워낙 좋아하는 나라라 늘 한국을 동경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워캠 친구들 조차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한국 음식 마니아 친구까지 있어 20년 전 아버지가 말씀하시던 해외에서의 한국의 위상과 큰 차이가 있음을 느꼇다.
지금은 한국에 와서 취업준비생으로 돌아왔지만 앞으로 나는 더욱 더 열심히 해서 그 친구들을 한국에 초청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떠나기도 할 계획을 벌써부터 짜고있는 날 보며.. 워크캠프 전과 후의 내가 얼마나 달라진지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이번경험을 하게 해준 국제워크캠프 기구와 더 나은세상 관계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싶다.
다음 날 졸로투른으로 향하던 날도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 아직도 그 기차안에서의 두근거리던 심장이 기억난다. 약속장소에 도착하자마자 첨부터 내 활발한 성격대로 인사를 하였다. 멤버는 세르비아 출신 커플 참가자 Lazar & Maja , 러시아 출신 Sanal & Asha, 프랑스에서 온 Ly, 미국 출신 Mindy, 일본에서 온 Ikuo, 이태리에서 온 Danielle, 독일에서 온 Franka, 그리고 한국에서 온 Andy(나) 와 혜인.
다행히도 한국인이 있었다! 처음에는 우리는 서먹서먹 했지만 이것저것 게임을 하면서 친해... 지지도 않았다... 하지만 결국엔 맥주가 우리를 친하게 해 주었다.
졸로투른 워크캠프.. 우리가 주로 했던 일은 캠프 측에서 마련해 준 스튜디오로 가서 전문 인솔자 Gabriela 에게 기본적인 수업을 받은 후 5cmX5cm 캔버스와 10cmX10cm 캔버스에 자기가 그리고 싶은 자유 주제로 그림을 그리고 그 것을 주말에 졸로투른 시내의 열리는 주말마켓에 팔아 그 수익금을 기부하는 형식이엇다. 그리고 13일 간의 기간 동안 2 번의 아이들이 스튜디오에 방문하기도 하였는데 미리 선생님들과 조율하여 아이들에게 각 국의 언어를 가르쳐 주는 활동들을 하기도 하였다. 기분 좋게도 내 그림이 마켓에서 2개나 팔리어 친구들에게 우리 부스 맞은 편 과일주스를 쏘기도 하였다. 그리고
아이들을 교육하는 것이 나는 처음이었는데 (한국에서건 해외에서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놀라웠던 사실은 아이들이 '한글'이라는 언어에 참으로 신기하게 반응한다는 것이었다. 나름 생각 해 보았는데 아마 아이들의 언어는 달라도 그언어를 표현하는 것은 알파벳을 이용하는데 우리 한글은 우리만의 독창적인 한글 자음과 모음을 이용하는 것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실제로 한 친구는 한글은 어떻게 동그라미와 작대기 두개로 모든 것이 표현이 되는 신기한 언어냐고 하기도 하고(실제로 이응과 작대기만으로 표현이 가능했다, 작대기는 시옷에서부터 모든 모음까지 표현가능) 우리 언어가 분류상으로는 교착어에 속하고 알파벳등은 굴절어에 속해서 우리나라 한글은 받침부터 조합이 필요했는데 이 점도 매우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때때로 꽃보다 할배의 관광지 루체른에 여행을 가기도 하고, 졸로투른 근처 산맥 쥐라산맥의 한 자락 화이트스톤이라는 뜻의 산에 하이킹을 가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하이킹이라 해서 약간 귀찮기도 했고.. 피곤해서 버스에서 졸면서 갔는데.. 내리자 마자 보였던 (실제로 버스가 거의 산 중턱까지 가 준 뒤 정차하였다.) 장엄한 경관은 인터라켄 그린델발트에서 피르스트를 가며 보던 풍경과는 또 다른 느낌의 감동을 주기 시작했다. 끝 없이 아름답게 펼쳐진 풍경들.. 스위스 출신인 가브리엘라의 설명을 들으며 가던 하이킹.. 그리고 거기서 바라보던 설산과 그릴 소시지! 밤마다 각국의 요리를 뽐내며 맥주와 기타로 흥겹게 놀던 그 때.. 지금 돌아보면 너무너무 가슴시리도록 그리운 추억이 되어버렸다.
워크캠프로 인해 얻은 점은
1. 세계 각 국의 친구들이다. 지금도 페이스북으로 서로 연락을 하며 안부를 묻는데 2년 정도 후에 그 친구들을 다시 보러 떠날 생각이다.. 이미 이태리 친구는 내년에 와이너리에서 같이 일하자고 연락이 왔다..
2. 그들도 우리와 같다. 같은 또래라 그런지 자기 나라의 경제와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대해 얘기도하는데 의견은 달랐지만 취업이 힘들다는 점에서 모두 공감하였다.. 세르비아 친구가 북한정권과 김정은을 알 때는 참 놀라웠다.
3. 달라진 한국의 위상이었다. 싱가포르에 근무 할 때는 한국을 워낙 좋아하는 나라라 늘 한국을 동경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워캠 친구들 조차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고 한국 음식 마니아 친구까지 있어 20년 전 아버지가 말씀하시던 해외에서의 한국의 위상과 큰 차이가 있음을 느꼇다.
지금은 한국에 와서 취업준비생으로 돌아왔지만 앞으로 나는 더욱 더 열심히 해서 그 친구들을 한국에 초청도 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떠나기도 할 계획을 벌써부터 짜고있는 날 보며.. 워크캠프 전과 후의 내가 얼마나 달라진지 또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잊을 수 없는 이번경험을 하게 해준 국제워크캠프 기구와 더 나은세상 관계자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