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캄보디아, 아이들의 눈빛을 잊지 못해

작성자 고기범
캄보디아 EE0024 · EDU/CUL 2012. 08 Battambang, Cambodia

FEDA, BTB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캄보디아의 한 초등학교. 스무 명 남짓한 아이들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난 이 학교에 온 첫 한국인이자, 4시부터 7시까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오늘은 길 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내 수업의 마지막 날이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조용히 마지막 수업을 시작한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열심히 영어단어를 받아 적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큰 소리로 따라 읽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재밌는 게임을 하면서 크게 한바탕 웃는다. 그렇게,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범한 작별인사를 하려했다. 마치 내일 다시 볼 것처럼 자연스럽게 수업이 끝나갈 무렵, 이상하게도 교실에 미묘한 기류가 흐른다. 아이들이 내가 가버린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나 보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눈물이 차올라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 순간 한 아이가 먼저 입을 연다. Time,
Go, Fast. 문법은커녕 알파벳 받아 적기도 힘겨워 하던, 그 녀석이 내뱉은 3개의 단어에 난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고 말았다. 녀석도 나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하고 있구나. 아이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빠르게 스쳐지나간다. 처음 학교에 왔던 날. '저 인간은 뭐지?'라고 말하는 듯한, 신기함과 두려움이 가득한 얼굴로 날 쳐다보던 아이들의 눈빛 용기 내어 내민 내 손바닥에 손가락 하나를 수줍게 올려놓고는 베시시 웃어버리던 얼굴. 처음 보는 물감이 신기한지 조막만한 손에 물감을 잔뜩 묻히고선 내 얼굴에 이리저리 비벼대던 녀석들 순간,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다. 이러면 안 되는데. 생각보다 훨씬 정이 많이 들었나보다. 그래도 아이들 앞인지라 가까스로 눈물을 참아내고는, 담담히 작별인사를 건넨다. 해줄 수 있는 게 너무나도 많은데 다 해주지 못해서 아쉽고. 많은걸 해주고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부족한 선생님이지만 잘 따라줘서 고맙고. 부디 건강히 잘 지내라고. 반장이 자리에서 일어서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인사로 수업이 끝이 난다. 강사한니다, 성생닝 안넝히게세오, 성생닝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이들과 포옹을 나누고는 한명 한명씩 이름을 부르며, 필기구와 노트를 담은 조그만 가방을 건넨다. 이 선물이 아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기도하며. 아이들이 모두 나가고, 홀로 남은 텅 빈 교실을 멍하니 바라본다. 잘했어. 잘한 거야. 어린 시절. 명절이 되면 일가친척이 모두 우리 집에 모이곤 했고, 난 버릇처럼 명절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난 명절이 유난히도 싫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재밌게 놀고 웃고 떠들던 따뜻함이, 다음날 부시시한 눈을 비비고 일어나면 어느새 사라져버리곤 없는. 그 참을 수 없는 허전함이 난 참 싫었다. 소파위에 엉켜있는 이불과 베개. 부랴부랴 준비하다 여기저기 던져놓고 간 수건들. 급히 나가느라 내려놓기만 하고 마시지도 못한 커피. 채 식지도 않아 여전히 따뜻할, 그 허전함을 남기고 가야 할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그 순간 누군가 밖으로 나와 보라고 소리친다. '무슨 일이지?'라는 생각에 문을 나선 순간 생각지도 못한 광경에 어안이 벙벙하다. 아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집에 가지 않고 나를 기다려 준 건가?' 한 녀석이 중얼중얼 무언가를 말하고, 내 수업을 통역해주던 친구가 그 녀석의 말을 대신 전한다. "Please come again, I'll waiting for you" 녀석, ‘기다린다’라는 의미를 아는 걸까. 괜시리 콧잔등이 시큰해져, 애써 밝게 웃어보이고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차에 오른다. 차가 학교를 벗어날 때까지 이이들이 그 고사리 같은 손들을 이리저리 흔들어댄다. 삼류영화에나 나올법한 흔하디흔한 스토리일지도 모르지만. 막상 내가 주인공이 되고 나니, 어느새 터져버린 눈물이 멈추질 않는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마음속으로 굳게 다짐한다. 꼭, 다시 돌아오겠노라고. 이제 더 이상 여행을 떠날 만큼 여유로운 방학은 남아있지 않지만,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만남이 있으면 언제나 헤어짐도 있는 법이지만, 만나야할 사람은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되어있다고. 그러니 우리는 꼭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문득, 생각해본다. 어쩌면, 우리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그토록 재미없다고 비웃어대던, 흔하디흔한 삼류영화의 한 장면일지도 모른다고.
특별한 것을 찾아 헤매이다, 정작 눈앞의 소중한 행복을 놓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사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준 건 고작 영어 조금 가르쳐 준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그 작은 것에도 이렇게 고마워하는 아이들이 있으니, 가끔씩은 이렇게, 오늘 내가 누군가를 위해 해줄수 있는게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것도 나쁘지 않을것 같다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되면,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던져버리는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오늘을 돌이켜보면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다들 잘 지내고 있으렴. 금방 다시 돌아올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