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시에라 모레나, 낯선 곳에서 나를 만나다

작성자 김태영
멕시코 NAT13-58 · ENVI/CONS 2013. 08 Sierra Morena, Chiapas

Sierra Morena 2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모든 사람은 다르다. 그들은 특정 공통분모를 다른 사람들과 조금씩 공유하며 살아갈지도 모르지만 사람마다 어떤 사물을 보는 관점, 즉 가치관은 꼭 똑같기에는 불가능한 법이다. 이 가치관은 자신도 모르게 시나브로 형성된 것이라 이 것이 변화하기엔 쉽지 않다. 최근 소셜 미디어가 발달함에 따라, 일부 사람들의 가치는 내가얼마나 근사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남들에게 보여주기 바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행 초보자 시절의 나 역시 이 범주에 크게 다르지 않았다. 책에서나 읽거나 영화 속에서나 보던 건물과 장소를 보는 것들은 나의 마음을 셀레게 하기 충분하였고, 다녀와서는 치기어린 마음으로 남들에게 내가 얼마나 ‘대단한’ 장소를 다녀왔는지 자랑하기 바빴다. 하지만 여행을 한 국가들이 한 자리에서 두 자리로 넘어가고 내가 Google 지도에 다녀왔던 곳을 표시하던 별들은 어느덧 백자리가 넘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나의 여행관이란 남들이 영화에서나 보거나, Facebook에서 ‘좋아요’를 누를 수 밖에 없던 장소들을 가보고 보는 것만으론 나의 가슴을 뛰게 하진 못했다. 어느 덧 여행을 단순히 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 나라의 일부분을 이해했다고 생각되는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리고 이 것이 내가 바로 ‘워크캠프’를 선택한 이유였다.


“ 당신은 본인 나라의 수도를 아시나요?”

당신은 수십 년동안 태어나고 자라왔던 나라의 수도 이름을 알고 있나요? 초등학생들끼리 대화를 나누다 이런 질문이 나오면 질문자에게 다른 친구에게 바보냐고 되묻을지도 모르겠고, 사회에 나가서 사회인들끼리 대화하면서 이 질문이 나오면, 그들은 서울의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 얘기하려한다고 짐작할 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워크캠프를 했던 멕시코의 Sierra Morena에 사는 약 200여명의 사람들의 90% 이상은 본인들 나라의 수도가 정말로 어딘지 모른다. 그리고 그 곳에 나는 약 2주동안 8명의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했던 특별한 기억이 시작되었다.
Sierra Morena 라는 멕시코의 가장 가난한 주인 Chiapas 에 남서쪽에 위치한 생태 보존지역안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나의 워크캠프의 Meeting Point인San Cristóbal de las Casas(이하San Cristóbal)에서는 차로6~ 7시간정도 떨어진 거리에 위치해 있다. 사실 중남미를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San Cristóbal은 생각보다 유명한 곳이다. 이는 멕시코가 아즈텍 문명과 마야문명의 유적지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나라인데이다. 그 중에서 Chiapas 주는 마야 문명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며, 활력이 넘치고 교통의 주요한 목 역할을 하는 San Cristóbal은 여행자들에게 자연스럽게 Must-see해야 하는 곳이 되었다. 더구나 나에겐 함께 콜롬비아를 여행했던 Samuel이란 멕시코 친구가 본인 나라를 얘기할 때 추천 했던 장소이기도 했다. 사실 어느 곳이든 이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면 그 곳에 여행자들이 원하는 기본은 다 갖춰진 게 일반적었고, 이 도시 역시 그 범주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이 장소는 단지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장소에 불과했고, 실제로 우리가 워크캠프를 진행하는 장소인 Sierra Morena는 구글 맵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이 것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이 워크캠프를 선택하는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했다. 내가 시작하는 날짜에 동일한 날에 진행되는 우리를 포함해 무려 7팀이나 되었고 7팀 중에서네명의 한국인이 참여한다는 점을 우연히 다른 팀 리더를 통해 알게 되었다.(사실 몰려있던 한 팀에 웃으면서 다가가서 소개하고 팀을 물어보는데, 우연히 팀 이름이 비슷한 팀이 잘못이해해서 30분동안 그 팀인줄 알고 같이 얘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2시간 후, 나는 나를 비롯해 그 중 세명이 우리 팀에 속해 있다는 것을 자기소개하면서 알게 되었다. 이 때 Sierra Morena를 산에서 활약(?)하던 한국인 삼총사가 탄생한 순간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파리지앵 마흐고(Margaux), 벨기에 출신 세바스티안(Sebastian), 현지 출신의 아나(Ana)와 이자벨(Isabel) , 마지막으로 팀 리더 다비드(David)이다.
Sierra Morena를 향한 여정은 쉽지 않았다. 원래 계획은 Revolución Mexicana 라는 작은 마을에 하룻밤 묶고 가기로 되어 있어서 마을에 도착 후 경찰소(자치단과 비슷한 역할)에 안내되어 짐을 풀고 잠을 청하려는 데 문제가 발생했다. 마침 우리가 가는 시기에 Chiapas 주에 주지사에 대한 반발로 강력한 파업이 발생했던 것이었다. 이 마을 역시 주지사에 대한 강력한 반발심을 가지고 파업에 동참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파업을 마을에 출입할 수 있는 모든 길을 통제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이들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는 일정에 없던 Villa Corzo 라는 곳으로 자리를 바꾸어 잠을 청하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인기에 깜짝 놀라야했다. 외국사람을 볼 기회가 없었던 그들에게 단지 신기함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었다. 덕분에 한국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사진촬영 요청으로 내가 짐짓 모델이 된 듯한 기분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마침내 우리가 워크캠프를 진행할 장소로 도착할 수 있었고, 우리가 도착했던 곳은 멕시코의 냄새가 한 껏 풍기는 곳이라고 예상했던 것과 달리 풍경이 한국의 모습과 몹시 흡사했다. 이는 나에게 실망을 주기는 커녕 오히려 나에겐 친숙함을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데 도착하자마자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에게 제공되어야 할 물품들이 마을 측에서는 주 정부가 준비할 것이라고 생각을 해왔고, 워크캠프를 운영하는 Natate사무소에서는 마을에서 준비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끝냈다고 여겨왔던 것이었다. 졸지에 어떤 식량도 준비할 수가 없었던 우리는 큰 문제에 봉착했다. 이 마을은 식료품 가게 하나도 없었고 단지 일부 집에서 간혹 기름이나 다과 등을 판매하는 것이 전부였다. 모두 하나 같이 심각한 표정을 짓던 와중에 마을의 장인 호르헤(George)와 논의 끝에 해결책을 마을에서 음식을준비하던 것으로 끝이 나고, 음식이 조달되기 전까진 1-2명씩 흩어져 현지 가정집을 방문해서 식사를 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로 인해 현지 가정집을 체험해보는 값진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문제는 가족들은이미 식사를 마치고 혼자 식사를 하는 나를 기다리보니 오히려 더욱 어색한 공기가이 흐르고 침묵만이 가득차기 시작했다.(이는 심지어 Hello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 공간은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 드래곤볼에서나 나오는 ‘정신과 시간의 방 (하루가 일년으로 느껴지는 장소)’처럼 일 분 일 초가 몇 시간처럼 느껴지는 곳과 다름이 없었다. 그 때 여행하면서 깨달은 간단하지만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남미를 여행하면서 배운 생존 스페인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나의 생존 스페인어는 일반적인로 쌍방향성을 지니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아니라, 내가 일단 짧은 의사표현을 하면 상대방은 이해하지만 나는 알아듣지 못하는 일방향적인 의사수단이었다. 물론 항상 그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를 잊지 않았다.

우리의 워크캠프의 주된 과업은 마을을 둘러싼 산에 등산로를 개척과 동시에 이정표를 만들어 외부에서 생태계를 탐구하기 위해 오는 사람들에게 좀 더 쾌적한 환경과 현지 사람들이 이동 시 편의를 도모해주는 것, 더불어 현지에 있는 커피 농장이나 여러 유기농 방식으로 재배되는 작물들을 도와주는 것이 명시된 우리의 과업이었다. 단 위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 시 정부와 마을과의 의사소통의 문제로 인해 신호판을 만드는 재료들을 구할 수 없게 되어, 우리는 주로 등산로를 개척하기를 담당하게 되었다. 이 작업은 말그대로 산에 나무나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것을 먼저 칼로 베어내어 제거하고, 이를 곡괭이와 삽으로 땅을 파내어 길의 형태를 띄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의 일은 항상 현지인 한 명과 우리 팀으로 구성되어 일이 진행이 되었는데, 현지인은 보통 일일 단위로 교체되었다. 특히 첫째 날은 예정보다 일을 일찍 마치고 도착하였는데 전원 모두 도착하자마자 바로 잠들어버렸다( 저녁을 먹기 위해 잠시 일어났다가 다시 잠들었다!). 일을 마치고 나니 이루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이 들었다. 솔직한 마음으론 이 일을 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도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특히 일의 분업이 잘 이루어졌다고 생각이 드는데, 남자들이 힘쓰는 것을 도맡아 칼고 곡괭이로 진출을 하면 여자들과 일부 남자들이 길을 만들었다. 그 중 나를 제외한 한국인 두 명이 군대에서 배운 노하우를 바탕으로 나무가지를 곁대어 계단형식으로 어느정도 산책로라고 여겨질 수 있는 길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 일이 상당히 고되었기 때문에 일 중간 중간에 쉬는 시간이 정말 행복했고 쉴 때 모두가 허물없이 친해지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 때 서로 농담도 많이 하고 각 나라의 차이점을 많이 나누기도 했다. 특히 동물들 울음소리를 각 나라에서 어떻게 말해는지 말하면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 작업을 진행하면서 여러 장인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이들의 작업 능력은 우리의 두 세 명 역할을 혼자서 해내는 정도였다. 그 중에 한 명이 나에게 정말 큰 감명을 주었는데, 그의 이름은 토니였다. 그는 일을 하는 도중에서 끊임없이 영어나 한국어를 물어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저녁을 먹기 위해 내려가고 있는데 토니를 만났다. 토니는 공책을 들고서 어딘가 가고 있었는데, 같은 기관 소속이지만 팀이 다른 끌레모(Cleiment)가 영어를 가르치는 수업을 향하고 있던 것이었다. 공책을 보니 영어의 많은 단어들이 가득히 적혀 있었고, 또한 내가 며칠 전 가르쳐준 한국어 숫자들까지 적혀 있었다. 이를 계속 반복해서 보면서 암기하고 있었다.이는 나에게 배움에 대한 열정은 있으나, 그 환경이 뒷받침되지 못하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가 멕시코의 발달된 도시에서만 태어났으면 어떠하였을 까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도시에 나가서 살고 싶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그는Sierra Morena 라는 곳에 태어나 자라고 지내서 지금의 모습이 행복하다고 한다. 이는 그는 정말 행복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는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만 다른 사회 - 물질적으로 풍족한 생활 -을 경험하게 되어도 그가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여길까 하는 의문 말이다. 그가 생각하다고 믿는 행복은 일정한 틀 안에서 갇힌 부의 형평적이지 못한 부의 재분배로 인한 구조적인 만족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말이다. 혹은 내가 너무 사회에 길들여있지 않은가 하는 의구심도 함께 스쳐지나갔다. 어느 쪽이든 바람직하지 못하단 생각에 마음 한 편이 씁쓸했다.
두번 째주의 일정은 우리가 머물던 숙소(유일한 마을의 공용 건물)를 재정비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는 우리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이 곳은 종종 외부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기 위해 필요한 자금으로 멕시코 생태계 연구팀들이 종종 방문하여 세미나를 열면서 Sierra Morena 일대를 조사하는데, 우리가 머무는 와중에도 한 팀이 왔었다. 산 속에는 다양한 식생물들이 살았는데 그 중에는 원숭이와 퓨마도 있었다(실제로 주말에 마을 사람 일부와 산을 올라갔을 때 팀원 중 마흐고는 이상한 소리를 들어 물어보니, 마을 사람이 퓨마라고 이야기해주어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고 한다). 이와 같은 생태계 연구 팀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숙소개선이반드시 먼저 해결되어 할 과제로 여겨졌다. 왜냐하면 우리가 머물면서 숙소의 수 많은 문제점을 많이 찾을 수 있었는데, 그 중에서 청결도가 심했다. 나와 일부 팀원들 시트에서 주먹보다 큰 곰팡이들도 발견이 되었는데 현지인들은 그리 대수롭게 여기지 않는 분위기였다. 우리는 그것을 빨래하고 또한 먼지를 전부 털어내었다. 이 때도 군대에서 모포를 터는 모습을 보여주자 이를 신기해하며 본인도 우리와 함께 시도하기도 했다. 건물의 외부의 내구도도 부실하여 시멘트와 흙을 이용하여 건물을 보수하고, 나무 부분의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오일을 스폰지에 적셔 닦아주는 것도 지붕 위에에서부터 아래까지 빈틈없이 진행되었다. 특히 둘째 주는 육체적인 피로도가 상대적으로 첫째 주에 비해 덜했기에, 일을 하면서 그리고 일을 끝내고 우리는 서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중에서 한국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팀원중에 일부는 나에게 한국사람들이 어떻게 해외여행을 여행하는 것이 빈번한지 물어보기도 하였다. 워크캠프를 여러 번 참여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이 점이 궁금했다고 한다. 그들의 인식에는 여전히 한국은 경제적으로 어느정도 성장을 이룬 나라로 기억을 하지만, 우리가 현재 누리고 있는 것보다 그 수준은 낮게 추측하고 있었다. 우리 팀원들에게도한국은 싸이의 나라, 연쇄적으로 연상되는 강남스타일이 전부인 경우인 것이 많았다. 덕분에 이를 어느정도 설명을 하자, 이들은 한국이 그정도 경제성장을 이루었는지 몰랐다고 놀라워하는 눈치였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사람에 대해서도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그것은 한국인들은 조용히 열심히 일만 한다는 것이었다. 여태껏 만난 한국인들이 그런 경우가 많아서 나를 보고 수다스러운 한국인 처음 본다고 할 정도였다. 사실 이는 나도 마찬가지였는데, 나는 멕시코인하면 많은 사람들이 떠들기 좋아하고 매운 음식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우리 팀 데이빗은 이야기를 즐기지만 매운 음식을 질색이었고, 다른 현지 팀원들도 그렇게 말이 많지 않았다. 더구나 다른 유럽에서 온 친구들도 전부 조용한 편이라 내가 제일 시끄러웠던 것 같다. 나름 한국인에 대한 다른 면을 보여줬다고 긍정적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다…
어느 날 우리는 축구 경기에 초청을 받았고 주 3회 열리는 시합에 나가게 되었다. 나머지 일행들은 축구를 선호하지 않아 뛰지 않았고, 유일하게 한국인 세 명만 시합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경기장에 가면서 사실 조금 여유로운 마음으로 갔던 것이 사실이었다. 멋진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주자는 이야기를 하며. 도착하자마자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깨닭게 되었다. 간단한 런닝화를 신고 터벅터벅 걸어가고 우리와 다르게, 그들은 전원 축구화를 신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오랫동안시합을 함께 경기를 해왔기 때문인지 생각보다 체계적으로 진행이 되었고 실력도 상당히 뛰어났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축구 실력과 상관없이 외국인(특히 동양인을 그들은 백인들보다 더 신기해했다.)들과 같이 지낸다는 사실에 더 재밌어하는 것 같았다. 비단 축구시합 뿐만 아니라 식사를 하기 위해 가정집을 방문할 때 여러 마주칠 때 우리와 이야기하는 것을 즐겼다. 특히 아이들에게 우리는 최고의 놀이감이었다. 그리고 어느 덧 시간이 빠르게 흘러 마지막 날이 되었고 우리는 떠나게 되었다.

Sierra Morena에서도 멕시코 화폐는 통용이 되지만 그 화폐는 그들이 서로에게 지불의 대가로 사용되는 용도보단 외부에서 온 사람들을 위해, 혹은 외부의 물품을 구입할 때만 사용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을 사람들은 음식을 대부분 스스로 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이 집 주변이나 산에서 경작을 실시하고나, 혹은 남자들이 산에 올라가 식량을 구해오는 교과서에 들어보던 자급자족에 가까운 사회였다. 물론 완벽한 자급자족인 사회라고 보긴 어렵지만, 상당 부분 이상을 자급자족으로 살아가는 사회였다. 분명히 일부 가족들은 텔레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저녁을 먹고가족 전체가 둘러앉아 텔레비전을 보곤하였고, 나도 몇 번 앉아있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모른다. 한국뿐만 아니라 프랑스를 들어본 적도 없고 미국이란 나라는 알지만 뉴욕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리고 본인들의 수도인 멕시코 시티가 어디인지 모른다. 우리 팀이 이 곳에 오기 위해 잠시 거쳐왔던 Villa Corzo가(우리가 생각하기엔 작은 마을인) 그들에겐 큰 도시였다. 이들 중에서 대도시을 경험해보고 환멸을 느껴 돌아온 경우도 상당수 있었다. 난 그들이 ‘시크하고 낭만있어 보이는’ 뉴욕커나 파리지앵이 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그들은 ‘Sierra Morenian’이란 순박하지만 그들의 환경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개념의 단어가 적합하도 본다. 난 멕시코를 느끼고 다국적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워크캠퍼가 되었고 소기 목적을 달성했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평생동안 안주거리가 될 수 있는 유쾌한 기억을 얻게되었다. 신이란 존재가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 중에 하나는 망각이라고 한다. 나도 언젠가 이 기억이 희미해지겠지만, 분명히 가장 후 순위에 위치한 기억이 되지 않을 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