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비스마르, 24살의 뜨거운 여름 비스마르, 15개국 친
CHILD'S GAMES AND ADVENTURE CAMP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4살의 뜨거웠던 여름'
2013년 1학기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보내게 되면서, 이왕 유럽에 나온 김에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워크캠프에 대해 접하게
되었고, 운좋게 1지망으로 지원한 독일의 북쪽 끝 조그만 마을 Wismar에서 2013년
여름을 보내게 되었다. 꿈에도 상상하지못했던 아름다운 마을 Wismar에서 3주간
15명의 글로벌한 친구들과 좌충우돌 KIDS캠프를 준비하면서 사람 살아가는 것은 어디든
비슷하구나를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새롭고 다른 문화에 가끔은 입이 턱 벌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독일, Wismar에서 보냈던 3주는 내 생에 최고의 경험이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다.
'독일, 터키,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대만, 폴란드, 벨라루스, 러시아 그리고 한국!'
독일의 건장한 세 청년인 비비안, 미로, 조지아에서 온 쟈니, 이탈리아의 넉살좋은 개구쟁이 스테파노, 터키에서 온 수줍음 많은 예츠케, 나보다 어리지만 왕언니 같았던 폴라드 아가씨 말자나, 스페인에서 온 나를 정말 좋아했던 친구 미리암, 벨라루스에서 온 섹시한 다리아, 러시아에서 온 나의 웨건 메이트 엘리와 수많은 남정네들에게 관심을 표한 엘리사, 대만에서 온 침착하고 정말 착한 올리브, 영국에서 온 매력넘치는 그레이스 마지막으로 우연히 둘다 스페인에서 공부는 하고있었지만 한국토종인 이가연 신주혜.
이렇게 각자 생전 처음 본15명은 웨건이란 마차를 닮은 야외 숙소에서 둘씩 짝을 지어 잠을 잤으며, 공동주방과 공동거실을 21일간 사용하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사소한 의견 충돌이나 마찰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어떻게 해결할지에 초점을 맞추어 해결 과정에 공을 들였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느낀것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한국사람이나 독일,스페인,이탈리아 등 어디 사람이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였다. 내가 먼저 배려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다면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을 싫어할까? 캠프를 통해서 세계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두려움을 없앨 수 있었다. 이제 어느곳에 떨어진다 해도, 그 곳에 사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할 자신이 있다.
'독일의 깨물어주고 싶은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한 2주'
우리 워크캠프의 대표 주제는 KIDS였다. 약 1주일간 Wismar지역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할수 있는 프로그램을 그 지역 어린이를 위한 단체의 물질, 공간 등의 도움을 얻어 함께 기획하고 남은 2주간 아이들과 함께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였다.
큰 틀은 이미 정해져있는 상황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즉 2회에 걸쳐 international day라는 것을 준비하는 것이 그나마 큰 일이였다. 하지만 캠프지원자들 모두 아이들이나 놀이에 관심이 많았고 준비는 순조롭게 되었다. 나와 가연이는 윷놀이를 준비해서 진행하였는데 윷놀이 규칙을 영어로 1차번역한 후에 2차로 독일어로 번역하려니 조금 힘들었다. 나중에는 독일어를 쓰기 보다는 거의 바디랭귀지로 진행하였더니 한결 수월 하였다. 우리 외에도 각기 자신의 나라의 전통 놀이들을 진행해서 하였는데 이러한 놀이보다 인기있었던 것은 댄스타임이였다. 본래 기획에는 없었지만 중간에 쉬는 시간에 강남스타일과 젠틀맨을 한번 췄던 적이 있었는데 열화와 같은 반응에 그때부터 매일 1회에서 2회정도 따로 시간을 내어 아이들과 함께 강남스타일과 젠틀맨에 맞춰 춤을 췄었다. 그 독일 시골마을에서도 강남스타일은 누구나 아는 곡이였다. 때문에 댄스타임을 진행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었다. 단 한가지 어려운 점이라면 내 모자란 댄스실력이였지만 어찌어찌 흥겨움으로 극복해 냈다. 그 시간을 통해서 아이들과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었고, 그 시간을 통해서 아이들이 날 진심으로 대해주고 잘 따랐다.
아이들과 지낸 2주를 통해서, 아이들이 정말 순수하고 맑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수있었다. 내가 특별히 잘해준것도 없었지만 먼저 와서 날 껴안고 좋다고 부비고 내가 동양인이며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또한 무엇인가 만들어도 꼭 나에게 선물로 주는 모습에서 가슴깊이 감동할 수 있었다. 아직도 그 순수하고 맑은 눈망울이 선하다.
'워크캠프 후 한층 성장한 나'
처음에는 생활비도 아끼고,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도 사귀고, 영어도 늘리고 등의 이유로 지원한 워크캠프였으나 막상 끝날때는 헤어짐의 아쉬움과 복합적인 감정으로 인해 참 힘들었다. 마침 스페인 교환학생도 끝나 워크캠프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갔어야 하는 나는 아직도 마지막 날 밤을 잊지 못한다. 수많은 별아래서 몰래 눈물을 훔쳤었다.
내 생에 다시는 못 올 기회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3주간 아무 생각없이 오늘은 뭘하고 놀까? 뭘 만들어 먹을까? 의 고민이외에는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부족한 영어로 손짓발짓하며 친구들과 의사소통 했지만 나중에는 서로 눈빛만봐도 각자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워크캠프를 통해 조금 더 향상된 영어실력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소중한 친구들과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 가장 큰 수확이였다. 서로 생전 모르고 다른문화권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모여서 3주동안 가족처럼 생활하다 보니 많은 것들이 부딪히고, 갈등을 빚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그 갈등을 해결하고자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게 되었다. 이로인해 서로 더욱 가까워 질수 있었으며,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혹시라도 워크캠프 지원하는데 있어서 여건이 가능하거나 조금은 무리해야 되는 청년들이 있다면 워크캠프 지원을 자신있게 추천해주고싶다.
2013년 1학기를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보내게 되면서, 이왕 유럽에 나온 김에
특별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워크캠프에 대해 접하게
되었고, 운좋게 1지망으로 지원한 독일의 북쪽 끝 조그만 마을 Wismar에서 2013년
여름을 보내게 되었다. 꿈에도 상상하지못했던 아름다운 마을 Wismar에서 3주간
15명의 글로벌한 친구들과 좌충우돌 KIDS캠프를 준비하면서 사람 살아가는 것은 어디든
비슷하구나를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새롭고 다른 문화에 가끔은 입이 턱 벌어지기도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독일, Wismar에서 보냈던 3주는 내 생에 최고의 경험이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다.
'독일, 터키,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대만, 폴란드, 벨라루스, 러시아 그리고 한국!'
독일의 건장한 세 청년인 비비안, 미로, 조지아에서 온 쟈니, 이탈리아의 넉살좋은 개구쟁이 스테파노, 터키에서 온 수줍음 많은 예츠케, 나보다 어리지만 왕언니 같았던 폴라드 아가씨 말자나, 스페인에서 온 나를 정말 좋아했던 친구 미리암, 벨라루스에서 온 섹시한 다리아, 러시아에서 온 나의 웨건 메이트 엘리와 수많은 남정네들에게 관심을 표한 엘리사, 대만에서 온 침착하고 정말 착한 올리브, 영국에서 온 매력넘치는 그레이스 마지막으로 우연히 둘다 스페인에서 공부는 하고있었지만 한국토종인 이가연 신주혜.
이렇게 각자 생전 처음 본15명은 웨건이란 마차를 닮은 야외 숙소에서 둘씩 짝을 지어 잠을 잤으며, 공동주방과 공동거실을 21일간 사용하였다. 물론 그 과정에서 사소한 의견 충돌이나 마찰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어떻게 해결할지에 초점을 맞추어 해결 과정에 공을 들였었다.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느낀것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한국사람이나 독일,스페인,이탈리아 등 어디 사람이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였다. 내가 먼저 배려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자 한다면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을 싫어할까? 캠프를 통해서 세계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 두려움을 없앨 수 있었다. 이제 어느곳에 떨어진다 해도, 그 곳에 사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서로를 이해할 자신이 있다.
'독일의 깨물어주고 싶은 순수한 아이들과 함께한 2주'
우리 워크캠프의 대표 주제는 KIDS였다. 약 1주일간 Wismar지역에 있는 아이들과 함께할수 있는 프로그램을 그 지역 어린이를 위한 단체의 물질, 공간 등의 도움을 얻어 함께 기획하고 남은 2주간 아이들과 함께 그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이였다.
큰 틀은 이미 정해져있는 상황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즉 2회에 걸쳐 international day라는 것을 준비하는 것이 그나마 큰 일이였다. 하지만 캠프지원자들 모두 아이들이나 놀이에 관심이 많았고 준비는 순조롭게 되었다. 나와 가연이는 윷놀이를 준비해서 진행하였는데 윷놀이 규칙을 영어로 1차번역한 후에 2차로 독일어로 번역하려니 조금 힘들었다. 나중에는 독일어를 쓰기 보다는 거의 바디랭귀지로 진행하였더니 한결 수월 하였다. 우리 외에도 각기 자신의 나라의 전통 놀이들을 진행해서 하였는데 이러한 놀이보다 인기있었던 것은 댄스타임이였다. 본래 기획에는 없었지만 중간에 쉬는 시간에 강남스타일과 젠틀맨을 한번 췄던 적이 있었는데 열화와 같은 반응에 그때부터 매일 1회에서 2회정도 따로 시간을 내어 아이들과 함께 강남스타일과 젠틀맨에 맞춰 춤을 췄었다. 그 독일 시골마을에서도 강남스타일은 누구나 아는 곡이였다. 때문에 댄스타임을 진행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었다. 단 한가지 어려운 점이라면 내 모자란 댄스실력이였지만 어찌어찌 흥겨움으로 극복해 냈다. 그 시간을 통해서 아이들과 마음으로 소통할 수 있었고, 그 시간을 통해서 아이들이 날 진심으로 대해주고 잘 따랐다.
아이들과 지낸 2주를 통해서, 아이들이 정말 순수하고 맑다는 것을 피부로 느낄수있었다. 내가 특별히 잘해준것도 없었지만 먼저 와서 날 껴안고 좋다고 부비고 내가 동양인이며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듯했다. 또한 무엇인가 만들어도 꼭 나에게 선물로 주는 모습에서 가슴깊이 감동할 수 있었다. 아직도 그 순수하고 맑은 눈망울이 선하다.
'워크캠프 후 한층 성장한 나'
처음에는 생활비도 아끼고,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도 사귀고, 영어도 늘리고 등의 이유로 지원한 워크캠프였으나 막상 끝날때는 헤어짐의 아쉬움과 복합적인 감정으로 인해 참 힘들었다. 마침 스페인 교환학생도 끝나 워크캠프가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갔어야 하는 나는 아직도 마지막 날 밤을 잊지 못한다. 수많은 별아래서 몰래 눈물을 훔쳤었다.
내 생에 다시는 못 올 기회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3주간 아무 생각없이 오늘은 뭘하고 놀까? 뭘 만들어 먹을까? 의 고민이외에는 딱히 없었던 것 같다. 부족한 영어로 손짓발짓하며 친구들과 의사소통 했지만 나중에는 서로 눈빛만봐도 각자가 하고 싶은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워크캠프를 통해 조금 더 향상된 영어실력을 얻을 수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소중한 친구들과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 가장 큰 수확이였다. 서로 생전 모르고 다른문화권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모여서 3주동안 가족처럼 생활하다 보니 많은 것들이 부딪히고, 갈등을 빚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고, 그 갈등을 해결하고자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 보게 되었다. 이로인해 서로 더욱 가까워 질수 있었으며,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혹시라도 워크캠프 지원하는데 있어서 여건이 가능하거나 조금은 무리해야 되는 청년들이 있다면 워크캠프 지원을 자신있게 추천해주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