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미래의 공허함, 워크캠프로 채우다
Biancavilla CT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던 양평 어느 곳에서의 작은 결심. 그때의 난 군 전역을 6개월 앞둔 상병이었다. 학교에 적응하느라 정신 없었던 대학교 1학년, 나의 전공이 아닌 도전의 대학교 2학년, 그리고 1년 반의 군생활....... 그 때의 난 미래의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시작한 전역 후 하고 싶은 일 목록........ 그 중 1순위는 한국 밖으로의 여행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잠시 싱가폴에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었던 나는 이번엔 조금더 긴 여행을 꿈꿨다. 이미 유럽여행을 다녀온 두 명의 누나와 전화를 하며 종종 상의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누나가 자신이 경험했던 "워크캠프"를 소개해 주었고, 나는 관심을 가지며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에 지원하였다.
약 2주의 시간이 지났을 때, 1순위였던 이탈리아에서의 활동이 정해졌고, 그 이후 차근차근 계획을 세웠다. 나의 여행은 단순히 워크캠프만이 아닌 다른 문화를 느껴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워크캠프 이후의 유럽여행 또한 계획했다.
비행기, 유레일 패스 등은 말년휴가 때 예매하고 숙박은 '가서 그때그때 구하자'라는 생각으로 여행 출발일을 두근거리는 마음을 잡고 기다렸다.
여행이 다 계획대로 되던가? 나의 여행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버렸다. 10월 6일 시작이었던 워크캠프를 10월 5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 그걸 알게 된것도 10월 4일 런던에서 로마로 갈 때였다. PM10시 로마에서 허겁지겁 스마트폰으로 캠프리더에게 전화를 했더니, 다행히 다음날 날 데리러 공항으로 온다는 말에 편하게(라고 쓰고 의자에서 캐리어 가방을 끌어안고 라고 읽는다) 다음날 8시까지 피우미치오 공항에서 쪽잠을 잤다.
그리고 도착한 카타니아...(캠프리더의 아들의 여자친구가 픽업해주었음)
숙소는 많은 후기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깔끔하고 안락했다. 아이들도 너무 귀여웠고, 평화로운 포도밭은 내가 갖고있던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고민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평온함을 지녔었다. 긴장의 30시간이었던지 숙소에서 짐을 풀다가 잠깐 침대에 누웠는데.... 다음날 아침에 깼다.
10월 6일
한명 한명 도착하더니 마지막 일본인 친구까지 도착했다. 6명의 워크캠퍼는 각각 이탈리아(2명), 오스트리아(2명), 일본(1명), 한국(나)로 이루어져 있었고, 우리가 보통 하는 일은 포도를 따서 와인을 만들거나, 근처 농장 정리 등이었다. (사실 힘든 일은 없었다)
틈틈히 우리는 서로의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의 경우 워크캠프 이후에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를 돌면서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했다.
서로의 술 문화, 우리 또래의 청년들이 고민하는 것, 불안감, 즐거운 기억, 신기한 전통, 서로의 음식 등을 공유하면서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아마도 이탈리아에서 매 식사마다 올라오는 와인(VINO)의 영향이 컸을 듯 하다. 인포싯에서 주류 금지라고 해서 사오지 않았던 소주가 갑자기 생각났는데.... 캠프리더는 굉장히 아쉬워했던게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전날엔 장염에 걸려 하루종일 앓아 누웠는데, 친구들이 나에게 배려했던 모습과 걱정하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머리에 남는다.
2년동안의 나는 규율이 정해져있고, 틀이 있는 군대에서 생활했다. 그 생활 3일 후 바로 떠난 여행이었기에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 우리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각만 중요한게 아니라 우리 밖의 있는 사람들의 시각 또한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배려를 하려면 그 사람을 알아야 하고,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뿌리를 알아야 한다. 나의 가치관과 나의 사고관을 그들에게 억압하면 안되고, 내가 한발 다가서서 그들의 뿌리를 한번이라도 쓰다듬을 생각을 해야한다.
워크캠프는 나에게 넓은 세상에서의 또 다른 작은 세상을 본 기회였다.
맨 처음 나는 출발하는 날 이런 글을 적었었다.
여행의 시작은 설렘으로 가득차 있다
익숙함에서 낯선 무언가를 만나는 기대감,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어딘가에 떨어지는 막막함.
하지만 이길의 끝을 걸어갈 즈음엔....
오늘부터 걸어갈 그 무수한 기억들이 그리워
몇번씩이나 뒤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리움들은 다시 나를 낯선곳으로 이끌 것이다.
이 워크캠프를 통해 또 다른 곳으로 떠나는 중독을 얻었다.
그 공허함을 메우기 위해 시작한 전역 후 하고 싶은 일 목록........ 그 중 1순위는 한국 밖으로의 여행이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잠시 싱가폴에 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었던 나는 이번엔 조금더 긴 여행을 꿈꿨다. 이미 유럽여행을 다녀온 두 명의 누나와 전화를 하며 종종 상의를 했다. 그러던 어느날 누나가 자신이 경험했던 "워크캠프"를 소개해 주었고, 나는 관심을 가지며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에 지원하였다.
약 2주의 시간이 지났을 때, 1순위였던 이탈리아에서의 활동이 정해졌고, 그 이후 차근차근 계획을 세웠다. 나의 여행은 단순히 워크캠프만이 아닌 다른 문화를 느껴보는 것이었기 때문에, 워크캠프 이후의 유럽여행 또한 계획했다.
비행기, 유레일 패스 등은 말년휴가 때 예매하고 숙박은 '가서 그때그때 구하자'라는 생각으로 여행 출발일을 두근거리는 마음을 잡고 기다렸다.
여행이 다 계획대로 되던가? 나의 여행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버렸다. 10월 6일 시작이었던 워크캠프를 10월 5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 그걸 알게 된것도 10월 4일 런던에서 로마로 갈 때였다. PM10시 로마에서 허겁지겁 스마트폰으로 캠프리더에게 전화를 했더니, 다행히 다음날 날 데리러 공항으로 온다는 말에 편하게(라고 쓰고 의자에서 캐리어 가방을 끌어안고 라고 읽는다) 다음날 8시까지 피우미치오 공항에서 쪽잠을 잤다.
그리고 도착한 카타니아...(캠프리더의 아들의 여자친구가 픽업해주었음)
숙소는 많은 후기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깔끔하고 안락했다. 아이들도 너무 귀여웠고, 평화로운 포도밭은 내가 갖고있던 미래에 대한 불안함과 고민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평온함을 지녔었다. 긴장의 30시간이었던지 숙소에서 짐을 풀다가 잠깐 침대에 누웠는데.... 다음날 아침에 깼다.
10월 6일
한명 한명 도착하더니 마지막 일본인 친구까지 도착했다. 6명의 워크캠퍼는 각각 이탈리아(2명), 오스트리아(2명), 일본(1명), 한국(나)로 이루어져 있었고, 우리가 보통 하는 일은 포도를 따서 와인을 만들거나, 근처 농장 정리 등이었다. (사실 힘든 일은 없었다)
틈틈히 우리는 서로의 나라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의 경우 워크캠프 이후에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를 돌면서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했다.
서로의 술 문화, 우리 또래의 청년들이 고민하는 것, 불안감, 즐거운 기억, 신기한 전통, 서로의 음식 등을 공유하면서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아마도 이탈리아에서 매 식사마다 올라오는 와인(VINO)의 영향이 컸을 듯 하다. 인포싯에서 주류 금지라고 해서 사오지 않았던 소주가 갑자기 생각났는데.... 캠프리더는 굉장히 아쉬워했던게 기억에 남는다.
마지막 전날엔 장염에 걸려 하루종일 앓아 누웠는데, 친구들이 나에게 배려했던 모습과 걱정하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히 머리에 남는다.
2년동안의 나는 규율이 정해져있고, 틀이 있는 군대에서 생활했다. 그 생활 3일 후 바로 떠난 여행이었기에 나에게는 큰 의미가 있었다. 우리 안에 있는 사람들의 시각만 중요한게 아니라 우리 밖의 있는 사람들의 시각 또한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배려를 하려면 그 사람을 알아야 하고, 그 사람을 알려면 그 사람의 뿌리를 알아야 한다. 나의 가치관과 나의 사고관을 그들에게 억압하면 안되고, 내가 한발 다가서서 그들의 뿌리를 한번이라도 쓰다듬을 생각을 해야한다.
워크캠프는 나에게 넓은 세상에서의 또 다른 작은 세상을 본 기회였다.
맨 처음 나는 출발하는 날 이런 글을 적었었다.
여행의 시작은 설렘으로 가득차 있다
익숙함에서 낯선 무언가를 만나는 기대감,
내가 예측할 수 없는 어딘가에 떨어지는 막막함.
하지만 이길의 끝을 걸어갈 즈음엔....
오늘부터 걸어갈 그 무수한 기억들이 그리워
몇번씩이나 뒤를 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리움들은 다시 나를 낯선곳으로 이끌 것이다.
이 워크캠프를 통해 또 다른 곳으로 떠나는 중독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