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레이캬비크, 2주간의 따뜻한 기억
Art and Renovation in Reykjavik and the fjords of whale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나의 워크캠프는 급하게 시작되었다. 한번쯤 가보리라 마음먹은지는 2년전, 하지만 어디로, 언제 라는 구체적인 항목들은 여전히 빈칸으로 남겨두었다. 처음 마음먹었던 나라는 서유럽이나 남부 유럽권 도시들이었고, 독일과 이탈리아, 스페인, 프랑스 처럼 누구나 들으면 한번쯤 가보고싶다는 이야기가 나올법한 곳들이었다. 사실상 아이슬란드는 열람만하면 주루룩 쏟아지는 목록들에 왠지 마음만 먹으면 갈수 있는 만만한 곳으로 보이기도했다.
'워크캠프'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한건 사실 런던에 온 다음이었다. 한국보다 확실히 유럽여행이 만만한 런던에서 이지젯 열람을 하며 괜히 어디로 한번 날아가볼까 생각을 하던중 문득 예전에 고이 접어둔 워크캠프가 떠올랐고, 스페인과 프랑스 쪽을 생각하며 들어온 내 기대와는 달리 홈페이지에는 이미 남부 유럽권은 모두 마감된 상태였다. 여름이 워크캠프가 가장 많이 열리는 때라는 것이 그제서야 떠올랐다. 한숨을 쉬며 모집공고에 들어가 혹시 추가모집하는 워크캠프를 찾아보는데, 그때 눈에 띈것이 아이슬란드 워크캠프. 아이슬란드에 대한 관심은 그때 시작되었다.
아이슬란드가 뭐하는 곳이길래 늘 워크캠프가 이렇게 많이 열리지? 라는 궁금증을 안고 네이버에 아이슬란드 검색을 시작했다. 첫번에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오로라가 가득한 하늘, 이미 아이슬란드 워크캠프에 대한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만 나느 추위를 많이타는 편이다. 더 추워지기 전에 가고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비행기표를 구할 수 있는 캠프중 가장 가까운 10월 캠프를 신청했다. 이렇게 나의 아이슬란드 워캠이 시작되었다.
처음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황무지같은 벌판에 서있던 공항과 상상을 초월하는 물가가 준 충격이다. 물가가 비싸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있었지만 물가로 악명높은 런던을 뛰어넘는 아이슬란드의 물가에, 지갑열기가 더 조심스러워졌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의 풍경과 사람들은 그런 걱정들을 잊게해주는 힐링 그자체였던것같다.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는 HARBOR HOUSE라는 아주 작은 오두막 같은 곳이었는데, 지은지 100년이 더된 곳이라고했다. 마치 우리나라 기와집 같은 곳에서 지내는 기분이었는데, 사실상 거의 무너질것같은 집이었다. 그럼에도 있을 건 다있어서 2층에는 침실, 1층에는 거실과 부엌 화장실이있었다. 다만 샤워시설이 너무 열악해서 2주 내내 수영장에 가서 샤워를 했다. 그외 다른 것들은 보기와 달리 나름 내실있는 집이었다. 캠프가 끝난 지금은 그 작은 집과 삐그덕 거리던 계단까지 아련하다.
우리팀은 6명으로 구성된 아주 작은 팀이었는데, 아마 팀의 규모가 작아 작은 집에 배정이 된것같았다. 팀을 소개하자면 타이완 2명, 한국인 1명, 이탈리아 1명, 미국인 1명, 러시아인 1명으로 나름 고루고루 섞여있는 팀이었는데 우리팀에 비해 다른팀들을 보면 러시아 인들과 타이완 인들이 상당히 많이 오는 것같다. 남자 2명에 여자 4명으로 구성된 우리팀은 RENOVATION AND ART라는 이름대로 집보수, 페인트칠, 땅파기 와 같은 일들을 주로했다. 전공이 건축쪽과 연결되어있어서 나름 자신있게 신청한 워크캠프였는데,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에서 일을하는 것은 '힘들다 어렵다'를 떠나서 '추위'로 요약되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일하는 시간보다 여가시간이 더많은지라 특별히 힘들고 고달픈 기억은 없다. 일은 5시쯤 끝나고 나머지 저녁시간은 수영장을 가거나 놀면서 시간을 보낸 우리팀,타이완 친구들의 타이완 요리와 내가 만든 닭도리탕으로 ASIAN Night를 열기도하고 이탈리아 정통 HOME MADE 푸드를 먹어보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소소하고 재밌게 보냈던것같다. 특별히 바쁠것이 없이 여가시간이 많은 아이슬란드 워크캠프에서 가장 중요한건 아마 여가시간을 함께 보낼 캠프 팀원들이 아닐까 싶다. 한편 캠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3일동안 아이슬란드 전체를 도는 익스커션(25000크로나)을 떠났는데, 14일중 가장 기억에 남는 3일이었다. 눈으로는 잘 볼수 없었지만 카메라에는 나타나던 오로라, 아득하게 느껴지던 거대한 빙하산, 김이 올라오는 화산 지대 한가운데 있던 GREEN LAGOON 온천탕, 숨막히게 아름다웠던 해변까지 아이슬란드가 아름답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아무 이름없는 산과 폭포들, 하늘과 닿아있는 지대들이 하나하나 그림같은 곳들이다. 한편으론 아이슬란드가 춥다는걸 뼈저리게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는데 물과 전기가 나오지 않는 최악의 숙소에 다들 당황했다. 대체 우리가 지불한 25000크로나가 어디로 간거냐는 참가자들의 불만에 리더들과 약간의 충돌도 있었고, 샤워시설이 없는 숙소때문에 새벽부터 수영장을 찾아 헤맨 기억도 난다. 춥고 몸이 편한 3일은 아니었던지라, 마치 전우애마냥 캠퍼들끼리는 더 끈끈해질 수 있었던 것같기도하다. 지금 돌아봐도 컴컴한 돌건물을 돌아다니며 유령들처럼 메트리스를 찾아헤매던 건 아마 평생 못잊을 경험이다.
또 다른 주말엔 아이슬란드 플리마켓을 방문했는데, 지독한 물가에 쇼핑은 접어두고 있던 캠퍼들도 다들 신이나서 구경을 했다. 마켓 바로 앞이 바닷가라 쇼핑이 끝나고 나서는 바다를 따라 걷기도하고, 항구를 보고 위치한 멋진 건축물에 들어가 구경을 하기도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특별한 익스커젼이 없던 2번째 일요일 밤에는 다들 WHITE HOUSE(리더들이 생활하는 센터??)에서 각자 만든 요리들을 차려두고 음악을 틀어놓고 파티를 하기도 했는데 우리팀 뿐 아니라 같은 기간에 진행된 다른 캠퍼들까지 모두 모이니 꽤 큰 파티가 됐다. 밤에는 아이슬란드의 클럽을 가기도했는데 아이슬란드의 밤을 느껴볼 수 있는 날이었다.
이렇게 순식간에 14일이 지나가고 마지막날, 다들 헤어지기 아쉬워 사진을 찍고 또 찍던 기억이 난다. 메일이며 집주소까지 교환하면서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했는데, 다시 아이슬란드를 찾아간다 해도 이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는 없을 거란 생각을 하며 모두 아쉬워했다. 동고동락을 같이한 WF110캠퍼들이 없는 아이슬란드는 아마 전혀 다른 아이슬란드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헤어진 이후에도 간간히 페이스북이나 WHATS APP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는데, 미국인과 러시아인을 제외하곤 대부분 유럽에 남아있어 아마 정말 다시한번 모여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를 가기 전, 사실 큰 기대를 안고 가지 않았다. 생소한 곳에서 오로라와 자연 경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충분하단 생각이었다. 하지만 캠프가 끝난 지금 아이슬란드가 나에게 남긴건 사진과 풍경이 아닌 사람들, 못잊을 추억들이다. 힘든 기억도 있지만 그런 기억들 마저 훈훈하게 가슴에 남는건 그런 어려움을 함께 나눈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늦은 밤에 컵라면에 맥주를 나눠먹던 기억, 진실게임을 하면서 낄낄거리던 시간, 바보같은 포즈로 엽사를 찍던 것들까지....하나하나 빼놓을 수 없이 소중하다. 40이 넘은 아저씨부터 20대의 대학생들까지 모두들 어린애들마냥 다들 마음을 열고 친해질 수 있었던 14일이었다.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도 이렇게 마음을 열고 친해질 수 있었을까? 캠프에 온 사람들끼리도 이야기했던 것이지만 어른이 되 갈수록 점점 허물없이 친해지기가 어려운 인간관계에서 아이슬란드의 시간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새로운 관계로 남은 것 같다. 그만큼 특별한 경험으로 남은 아이슬란드의 시간은 캠프가 끝난 지금도 가슴 한켠이 따듯해지는 추억이다. 훈훈함의 결정체로 남은 아이슬란드의 모든 것들에 지금도 감사하다.
'워크캠프'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한건 사실 런던에 온 다음이었다. 한국보다 확실히 유럽여행이 만만한 런던에서 이지젯 열람을 하며 괜히 어디로 한번 날아가볼까 생각을 하던중 문득 예전에 고이 접어둔 워크캠프가 떠올랐고, 스페인과 프랑스 쪽을 생각하며 들어온 내 기대와는 달리 홈페이지에는 이미 남부 유럽권은 모두 마감된 상태였다. 여름이 워크캠프가 가장 많이 열리는 때라는 것이 그제서야 떠올랐다. 한숨을 쉬며 모집공고에 들어가 혹시 추가모집하는 워크캠프를 찾아보는데, 그때 눈에 띈것이 아이슬란드 워크캠프. 아이슬란드에 대한 관심은 그때 시작되었다.
아이슬란드가 뭐하는 곳이길래 늘 워크캠프가 이렇게 많이 열리지? 라는 궁금증을 안고 네이버에 아이슬란드 검색을 시작했다. 첫번에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오로라가 가득한 하늘, 이미 아이슬란드 워크캠프에 대한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만 나느 추위를 많이타는 편이다. 더 추워지기 전에 가고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비행기표를 구할 수 있는 캠프중 가장 가까운 10월 캠프를 신청했다. 이렇게 나의 아이슬란드 워캠이 시작되었다.
처음 아이슬란드에 도착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황무지같은 벌판에 서있던 공항과 상상을 초월하는 물가가 준 충격이다. 물가가 비싸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있었지만 물가로 악명높은 런던을 뛰어넘는 아이슬란드의 물가에, 지갑열기가 더 조심스러워졌다. 하지만 아이슬란드의 풍경과 사람들은 그런 걱정들을 잊게해주는 힐링 그자체였던것같다.
우리가 머물렀던 숙소는 HARBOR HOUSE라는 아주 작은 오두막 같은 곳이었는데, 지은지 100년이 더된 곳이라고했다. 마치 우리나라 기와집 같은 곳에서 지내는 기분이었는데, 사실상 거의 무너질것같은 집이었다. 그럼에도 있을 건 다있어서 2층에는 침실, 1층에는 거실과 부엌 화장실이있었다. 다만 샤워시설이 너무 열악해서 2주 내내 수영장에 가서 샤워를 했다. 그외 다른 것들은 보기와 달리 나름 내실있는 집이었다. 캠프가 끝난 지금은 그 작은 집과 삐그덕 거리던 계단까지 아련하다.
우리팀은 6명으로 구성된 아주 작은 팀이었는데, 아마 팀의 규모가 작아 작은 집에 배정이 된것같았다. 팀을 소개하자면 타이완 2명, 한국인 1명, 이탈리아 1명, 미국인 1명, 러시아인 1명으로 나름 고루고루 섞여있는 팀이었는데 우리팀에 비해 다른팀들을 보면 러시아 인들과 타이완 인들이 상당히 많이 오는 것같다. 남자 2명에 여자 4명으로 구성된 우리팀은 RENOVATION AND ART라는 이름대로 집보수, 페인트칠, 땅파기 와 같은 일들을 주로했다. 전공이 건축쪽과 연결되어있어서 나름 자신있게 신청한 워크캠프였는데, 영하로 떨어지는 기온에서 일을하는 것은 '힘들다 어렵다'를 떠나서 '추위'로 요약되는 경험이었다.
하지만 일하는 시간보다 여가시간이 더많은지라 특별히 힘들고 고달픈 기억은 없다. 일은 5시쯤 끝나고 나머지 저녁시간은 수영장을 가거나 놀면서 시간을 보낸 우리팀,타이완 친구들의 타이완 요리와 내가 만든 닭도리탕으로 ASIAN Night를 열기도하고 이탈리아 정통 HOME MADE 푸드를 먹어보기도 하면서 하루하루 소소하고 재밌게 보냈던것같다. 특별히 바쁠것이 없이 여가시간이 많은 아이슬란드 워크캠프에서 가장 중요한건 아마 여가시간을 함께 보낼 캠프 팀원들이 아닐까 싶다. 한편 캠프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3일동안 아이슬란드 전체를 도는 익스커션(25000크로나)을 떠났는데, 14일중 가장 기억에 남는 3일이었다. 눈으로는 잘 볼수 없었지만 카메라에는 나타나던 오로라, 아득하게 느껴지던 거대한 빙하산, 김이 올라오는 화산 지대 한가운데 있던 GREEN LAGOON 온천탕, 숨막히게 아름다웠던 해변까지 아이슬란드가 아름답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 아무 이름없는 산과 폭포들, 하늘과 닿아있는 지대들이 하나하나 그림같은 곳들이다. 한편으론 아이슬란드가 춥다는걸 뼈저리게 느끼는 시간이기도 했는데 물과 전기가 나오지 않는 최악의 숙소에 다들 당황했다. 대체 우리가 지불한 25000크로나가 어디로 간거냐는 참가자들의 불만에 리더들과 약간의 충돌도 있었고, 샤워시설이 없는 숙소때문에 새벽부터 수영장을 찾아 헤맨 기억도 난다. 춥고 몸이 편한 3일은 아니었던지라, 마치 전우애마냥 캠퍼들끼리는 더 끈끈해질 수 있었던 것같기도하다. 지금 돌아봐도 컴컴한 돌건물을 돌아다니며 유령들처럼 메트리스를 찾아헤매던 건 아마 평생 못잊을 경험이다.
또 다른 주말엔 아이슬란드 플리마켓을 방문했는데, 지독한 물가에 쇼핑은 접어두고 있던 캠퍼들도 다들 신이나서 구경을 했다. 마켓 바로 앞이 바닷가라 쇼핑이 끝나고 나서는 바다를 따라 걷기도하고, 항구를 보고 위치한 멋진 건축물에 들어가 구경을 하기도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특별한 익스커젼이 없던 2번째 일요일 밤에는 다들 WHITE HOUSE(리더들이 생활하는 센터??)에서 각자 만든 요리들을 차려두고 음악을 틀어놓고 파티를 하기도 했는데 우리팀 뿐 아니라 같은 기간에 진행된 다른 캠퍼들까지 모두 모이니 꽤 큰 파티가 됐다. 밤에는 아이슬란드의 클럽을 가기도했는데 아이슬란드의 밤을 느껴볼 수 있는 날이었다.
이렇게 순식간에 14일이 지나가고 마지막날, 다들 헤어지기 아쉬워 사진을 찍고 또 찍던 기억이 난다. 메일이며 집주소까지 교환하면서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했는데, 다시 아이슬란드를 찾아간다 해도 이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는 없을 거란 생각을 하며 모두 아쉬워했다. 동고동락을 같이한 WF110캠퍼들이 없는 아이슬란드는 아마 전혀 다른 아이슬란드란 생각이 든다. 그렇게 헤어진 이후에도 간간히 페이스북이나 WHATS APP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으며 지내는데, 미국인과 러시아인을 제외하곤 대부분 유럽에 남아있어 아마 정말 다시한번 모여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를 가기 전, 사실 큰 기대를 안고 가지 않았다. 생소한 곳에서 오로라와 자연 경관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겐 충분하단 생각이었다. 하지만 캠프가 끝난 지금 아이슬란드가 나에게 남긴건 사진과 풍경이 아닌 사람들, 못잊을 추억들이다. 힘든 기억도 있지만 그런 기억들 마저 훈훈하게 가슴에 남는건 그런 어려움을 함께 나눈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늦은 밤에 컵라면에 맥주를 나눠먹던 기억, 진실게임을 하면서 낄낄거리던 시간, 바보같은 포즈로 엽사를 찍던 것들까지....하나하나 빼놓을 수 없이 소중하다. 40이 넘은 아저씨부터 20대의 대학생들까지 모두들 어린애들마냥 다들 마음을 열고 친해질 수 있었던 14일이었다. 한국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도 이렇게 마음을 열고 친해질 수 있었을까? 캠프에 온 사람들끼리도 이야기했던 것이지만 어른이 되 갈수록 점점 허물없이 친해지기가 어려운 인간관계에서 아이슬란드의 시간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새로운 관계로 남은 것 같다. 그만큼 특별한 경험으로 남은 아이슬란드의 시간은 캠프가 끝난 지금도 가슴 한켠이 따듯해지는 추억이다. 훈훈함의 결정체로 남은 아이슬란드의 모든 것들에 지금도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