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레이캬비크, 여름날의 특별한 만남
Gay Pride in Reykjavik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대학을 진학한 후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다양한 것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틀에 박힌 여행보단 좀 더 그 나라의 문화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접하고 만나고 싶었다. 그러던 차 알게 된 것이 워크캠프였고 그 중 게이친구를 두었던 나는 좀 더 그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단 생각으로 지원하게되었다.
아이슬란드까지 가는 것은 멀고도 멀었다.. 게이페스티발 그 한단어에 꽂혀 어떤 나라건간에 사실 큰 상관은 없었기에 거리는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부푼 마음을 안고 3번의 경유를 통해 이틀만에 아이슬란드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코끝 시린 여름으로 맞이하던 아이슬란드에서 3일간 동남부를 여행을 했다.
지구가 갓 생겼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십 리를 가도 집 한채 없이 황량하다 못해 광활한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불과 얼음의 땅이라는 아이슬란드는 그 말이 잘 어울렸다.
어딜가나 슈퍼가 있는 한국과 달리, 시내를 벗어나면 사람도 그 어떤 건물도 없었고, 어딜가나 터지는 전파와 달리 전파가 끊어지는게 부지기수였다. 처음엔 불편했고,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불편은 곧 내게 준비성을 주었고 편리한 것들 없이도 견딜 수 있단 것을 증명해주었다.
그렇게 아이슬란드의 매력 속에 깊게 빠져들 쯤 부푼 기대를 안고 캠프에 참가하게되었다. 내가 참가하게 될 프로그램은 ‘게이퍼레이드’로 아이슬란드의 가장 큰 축제 중에 하나라고 아이슬란드의 지역사람이 내게 말을 해주었다. 아이슬란드뿐만 아니라, 덴마크,스웨덴,영국 등지에서도 참가하기 위해서 온다고 했기에 더욱 더 기대가 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도착한 캠프는 인포짓 내용과 상당부분이 달라 내게 당혹감을 주었다. 8명이라던 캠퍼들은 14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8명분의 선물과 재료를 들고 갔던 나는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마치, 비행기좌석에 빠질 사람을 대비해서 오버부킹하는 그런 시스템이었나보다. 으레 이런 일이 있다는 양 보스는 우리에게 다른 숙소를 추천했다.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숙소를 향했다. 30분이 걸어도 끝이 없었고, 거의 1시간을 걸어서 겨우 도착한 숙소는 동네 어린이 체육관정도 되는 곳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휑한 곳에 먼지는 쌓여있고 더럽게 얼룩진 푹 꺼진 매트리스만이 우릴 반겼다. 화장실은 건물 통틀어 3개였고, 샤워시설은 남녀공용으로 딱 하나 뿐이었다. 14명의 친구들이 쓰기엔 너무한 시설이었지만 우리 모두 호텔을 바라고 오진 않았다며 다들 긍정적이게 바라보며 게임을 하고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프로그램의 아이들이 우리 숙소에 왔고, 우린 30명가까이 그 곳에서 생활을 해야했다..
보스는 항상 태연했다. 곧이어 그는 '그래서 너희들에게 다른 프로그램을 제안할거야 어때?' 그는 다른 캠프에 지원하길 바라는 투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처음에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아했었다. 하지만, 여타 다른 캠프들과 달리 수영장 티켓만 달랑 끊어주고 우릴 거의 방치하다시피해서 캠퍼들 모두 지루해하였고 다른 방도가 없었다고 보는 눈치였다. 한국오빠와 나, 터키, 대만 친구는 끝까지 가기 싫어했고 결국 보스는 우리를 찾아와 말했다. '너희들 민주주의 모르니? 이건 민주주의니깐 너희가 따라야해' 처음에 권유하던 그는 온데간데 없고 모두들 가길 바란다고 민주주의를 운운하며 강요하였다. 팀리더 폴란드녀와 스페인남은 있고 싶음 있으라고 했지만 다른 숙소 틈에 끼이게 해줄게 라는 말은 했지만 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고 저런 말을 해서 배려가 아닌 조롱에 가까웠다. 왜 우리가 우리의 캠프를 두고 다른 캠프까지 가야하는가...
사실 난 왜 그들이 우릴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캠프 참가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이미 나는 한국에서부터 다른 아이슬란드 워크캠퍼들과 연락을 하며 지냈는데, 락페스티벌이 열리던 그 곳에선 넘쳐나는 쓰레기에 일손이 부족했고 보안을 해줄 사람도 턱없이 달렸다고 한다. 그 곳 역시 상황이 열악했고, 주민 체육관의 옥탑창고에서 생활을 했는데 모두다 감기에 걸리고 너무도 힘겹다는 것이었다.
보스는 우리에게 가서 보안일을 주로 하게될 것이고, 너네는 힘들 일이 없단 얘길했지만, 가서 우리가 한 일은 그 넓은 곳의 쓰레기를 줍는 일이었다.
나는 '게이페스티발'이란 것으로 무언가 뜻깊게 이 캠프를 보내고 싶은 마음에 이 곳을 오기 1년전부터 이런 저런 것을 배웠고, 우리 캠퍼들 모두 이 캠프를 즐기고 뜻깊게 보내기 위해서 왔다. 건축가, 학교선생님, 각 나라의 대학생들이 이 프로그램에 대해 뜻깊게 생각해서 왔다.
터키 친구는 터키의 현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 알리고 싶어 왔다하고, 일부 성적소수자란걸 커밍아웃한 캠퍼들은 '레인보우캠페인'을 하자며 적극적이기까지했다.
이렇게 열정적인 캠퍼들에게 갑자기 캠프 주제가 바꾸고, 계속 말이 바뀌는 상황에서 주최측에서 배려는 어디도 없었다..
믿을것은 캠퍼들밖에 없다고 그나마 캠퍼들끼리 음식을 해먹으면서 노는 것이 섬에서 즐기며 놀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즐겁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모두들 즐겁게 지내려고 애썼다. 각자의 나랏말로 서로의 이름을 써주고 산책을 하며 사뭇 진지한 얘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섬 특성상 할 것이 많진 않았고, 인터넷도 안되고 그렇다해서 팀리더 둘이가 커플인 바람에 둘이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 팀을 신경쓰는편도도 아니었기 때문에 대부분 개인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사실 팀리더 커플은 그냥 공짜로 여행을 즐기는 카우치서퍼들같았다. 팀은 뒷전이었고, 닥치는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해치우는 수준이었다.
그럴때마다 사전교육에서 팀리더의 자질이 프로그램의 방향에 큰 영향을 준단 얘기가 가슴 깊숙히 와닿았다. 사실, 먼 곳까지 가서 그렇게 하릴없이 시간이 가는 것도 아까웠지만, 이런 문제 외로 문제가 생겼는데, 문제에 대해서 얘길해도 락페스티발인데 니가 적응하지 못하는거라고 언쟁만 높였다.
해외경험이 없던 나에게 유럽아이들의 성적,문화적 개방이 낮설게 다가와서 그럴 수도 있었지만 해외생활을 오래했던 다른 캠프의 한국인 캠퍼 역시 이해할 수 없다며 중도포기를 했다.
마약,성적인문제,음주문제는 결코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났다고 본다.
틀에 박힌 여행을 하기 싫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했던 내게 정말이지 말하는대로의 여행이 되어버렸다.
난 호화여행을 바라고 온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유럽워크캠프 중 가장 프로그램비가 비싼 곳이었다. 미리 여행을 하며 느꼈지만 14명의 캠퍼들의 프로그램비라면 프로그램 운용비를 빼고도 호스텔이나 숙소에서 머무를 수도 있었을거다. 다른 아이슬란드 캠프에 참가했던 친구는 우리와 달리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 팀리더나 개인의 역량도 있겠지만 프로그램 운용이 우리 프로그램보단 잘되었다고 생각된다. 다음번에 참가하게 된다면 이런 일 없이 아무리 봉사활동을 하러 왔다는 캠퍼들일지라도 조금 더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프로그램으로 거듭나있길 바라여 본다.
아이슬란드까지 가는 것은 멀고도 멀었다.. 게이페스티발 그 한단어에 꽂혀 어떤 나라건간에 사실 큰 상관은 없었기에 거리는 그다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부푼 마음을 안고 3번의 경유를 통해 이틀만에 아이슬란드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코끝 시린 여름으로 맞이하던 아이슬란드에서 3일간 동남부를 여행을 했다.
지구가 갓 생겼다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십 리를 가도 집 한채 없이 황량하다 못해 광활한 벌판이 펼쳐져 있었다. 불과 얼음의 땅이라는 아이슬란드는 그 말이 잘 어울렸다.
어딜가나 슈퍼가 있는 한국과 달리, 시내를 벗어나면 사람도 그 어떤 건물도 없었고, 어딜가나 터지는 전파와 달리 전파가 끊어지는게 부지기수였다. 처음엔 불편했고, 힘들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불편은 곧 내게 준비성을 주었고 편리한 것들 없이도 견딜 수 있단 것을 증명해주었다.
그렇게 아이슬란드의 매력 속에 깊게 빠져들 쯤 부푼 기대를 안고 캠프에 참가하게되었다. 내가 참가하게 될 프로그램은 ‘게이퍼레이드’로 아이슬란드의 가장 큰 축제 중에 하나라고 아이슬란드의 지역사람이 내게 말을 해주었다. 아이슬란드뿐만 아니라, 덴마크,스웨덴,영국 등지에서도 참가하기 위해서 온다고 했기에 더욱 더 기대가 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도착한 캠프는 인포짓 내용과 상당부분이 달라 내게 당혹감을 주었다. 8명이라던 캠퍼들은 14명으로 늘어나 있었다. 8명분의 선물과 재료를 들고 갔던 나는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마치, 비행기좌석에 빠질 사람을 대비해서 오버부킹하는 그런 시스템이었나보다. 으레 이런 일이 있다는 양 보스는 우리에게 다른 숙소를 추천했다. 1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숙소를 향했다. 30분이 걸어도 끝이 없었고, 거의 1시간을 걸어서 겨우 도착한 숙소는 동네 어린이 체육관정도 되는 곳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휑한 곳에 먼지는 쌓여있고 더럽게 얼룩진 푹 꺼진 매트리스만이 우릴 반겼다. 화장실은 건물 통틀어 3개였고, 샤워시설은 남녀공용으로 딱 하나 뿐이었다. 14명의 친구들이 쓰기엔 너무한 시설이었지만 우리 모두 호텔을 바라고 오진 않았다며 다들 긍정적이게 바라보며 게임을 하고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프로그램의 아이들이 우리 숙소에 왔고, 우린 30명가까이 그 곳에서 생활을 해야했다..
보스는 항상 태연했다. 곧이어 그는 '그래서 너희들에게 다른 프로그램을 제안할거야 어때?' 그는 다른 캠프에 지원하길 바라는 투였다. 하지만 아이들은 처음에 그다지 가고 싶지 않아했었다. 하지만, 여타 다른 캠프들과 달리 수영장 티켓만 달랑 끊어주고 우릴 거의 방치하다시피해서 캠퍼들 모두 지루해하였고 다른 방도가 없었다고 보는 눈치였다. 한국오빠와 나, 터키, 대만 친구는 끝까지 가기 싫어했고 결국 보스는 우리를 찾아와 말했다. '너희들 민주주의 모르니? 이건 민주주의니깐 너희가 따라야해' 처음에 권유하던 그는 온데간데 없고 모두들 가길 바란다고 민주주의를 운운하며 강요하였다. 팀리더 폴란드녀와 스페인남은 있고 싶음 있으라고 했지만 다른 숙소 틈에 끼이게 해줄게 라는 말은 했지만 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고 저런 말을 해서 배려가 아닌 조롱에 가까웠다. 왜 우리가 우리의 캠프를 두고 다른 캠프까지 가야하는가...
사실 난 왜 그들이 우릴 필요로 하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캠프 참가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이미 나는 한국에서부터 다른 아이슬란드 워크캠퍼들과 연락을 하며 지냈는데, 락페스티벌이 열리던 그 곳에선 넘쳐나는 쓰레기에 일손이 부족했고 보안을 해줄 사람도 턱없이 달렸다고 한다. 그 곳 역시 상황이 열악했고, 주민 체육관의 옥탑창고에서 생활을 했는데 모두다 감기에 걸리고 너무도 힘겹다는 것이었다.
보스는 우리에게 가서 보안일을 주로 하게될 것이고, 너네는 힘들 일이 없단 얘길했지만, 가서 우리가 한 일은 그 넓은 곳의 쓰레기를 줍는 일이었다.
나는 '게이페스티발'이란 것으로 무언가 뜻깊게 이 캠프를 보내고 싶은 마음에 이 곳을 오기 1년전부터 이런 저런 것을 배웠고, 우리 캠퍼들 모두 이 캠프를 즐기고 뜻깊게 보내기 위해서 왔다. 건축가, 학교선생님, 각 나라의 대학생들이 이 프로그램에 대해 뜻깊게 생각해서 왔다.
터키 친구는 터키의 현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 알리고 싶어 왔다하고, 일부 성적소수자란걸 커밍아웃한 캠퍼들은 '레인보우캠페인'을 하자며 적극적이기까지했다.
이렇게 열정적인 캠퍼들에게 갑자기 캠프 주제가 바꾸고, 계속 말이 바뀌는 상황에서 주최측에서 배려는 어디도 없었다..
믿을것은 캠퍼들밖에 없다고 그나마 캠퍼들끼리 음식을 해먹으면서 노는 것이 섬에서 즐기며 놀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즐겁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모두들 즐겁게 지내려고 애썼다. 각자의 나랏말로 서로의 이름을 써주고 산책을 하며 사뭇 진지한 얘기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섬 특성상 할 것이 많진 않았고, 인터넷도 안되고 그렇다해서 팀리더 둘이가 커플인 바람에 둘이 어울리는 시간이 많아 팀을 신경쓰는편도도 아니었기 때문에 대부분 개인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사실 팀리더 커플은 그냥 공짜로 여행을 즐기는 카우치서퍼들같았다. 팀은 뒷전이었고, 닥치는대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해치우는 수준이었다.
그럴때마다 사전교육에서 팀리더의 자질이 프로그램의 방향에 큰 영향을 준단 얘기가 가슴 깊숙히 와닿았다. 사실, 먼 곳까지 가서 그렇게 하릴없이 시간이 가는 것도 아까웠지만, 이런 문제 외로 문제가 생겼는데, 문제에 대해서 얘길해도 락페스티발인데 니가 적응하지 못하는거라고 언쟁만 높였다.
해외경험이 없던 나에게 유럽아이들의 성적,문화적 개방이 낮설게 다가와서 그럴 수도 있었지만 해외생활을 오래했던 다른 캠프의 한국인 캠퍼 역시 이해할 수 없다며 중도포기를 했다.
마약,성적인문제,음주문제는 결코 정상적인 범주를 벗어났다고 본다.
틀에 박힌 여행을 하기 싫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싶어했던 내게 정말이지 말하는대로의 여행이 되어버렸다.
난 호화여행을 바라고 온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유럽워크캠프 중 가장 프로그램비가 비싼 곳이었다. 미리 여행을 하며 느꼈지만 14명의 캠퍼들의 프로그램비라면 프로그램 운용비를 빼고도 호스텔이나 숙소에서 머무를 수도 있었을거다. 다른 아이슬란드 캠프에 참가했던 친구는 우리와 달리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 팀리더나 개인의 역량도 있겠지만 프로그램 운용이 우리 프로그램보단 잘되었다고 생각된다. 다음번에 참가하게 된다면 이런 일 없이 아무리 봉사활동을 하러 왔다는 캠퍼들일지라도 조금 더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프로그램으로 거듭나있길 바라여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