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이탈리아, 우연한 만남이 준 선물
Macchiagodena I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우연히 대학교 2학년 때 쯤 학교홈페이지를 통해 워크캠프에 대해 알게 되었다.
대학생 때 유럽배낭여행을 가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내게 워크캠프 또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유럽여행에 가게 된다면 꼭 워크캠프도 같이 하겠다고 다짐했다.
4학년이 되고 더이상 이대로는 미룰 수 없겠다 싶어 휴학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사실은 스페인 워크캠프를 신청하고 싶었으니 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이 마감되고
스페인에 남아있는 프로그램도 없어서 대충 날짜 맞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워크캠프를
신청하게 되었다.
1차로 썼던 이탈리아에 합격을 하고 워크캠프 일정에 맞춰서 유럽여행 일정도 짰다.
워크캠프 하루 전 날, 로마의 한 호스텔에서 내일은 어떤 친구들을 만날까?
영어도 잘 못하는데 잘 지낼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들로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떼르미니역에서 Boiano행 기차를 타고 가면서 큰 짐을 들고 타는 젊은 외국인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혹시 쟤가 나랑 같은 워크캠프를 하는 애일까? 라는 상상을 하며
미팅포인트인 Boiano역에 도착했다.
비가 오고 우박이 떨어지는 캄캄한 밤이었다. 한 이탈리아인 아저씨가 날 보자마자
Macchiagodena? 이러는거다. 기차에서 내렸던 사람들 중 나만 유일하게 동양인이었기 때문에 금방 알아보신듯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같은 기차에 없었던지 나 혼자 아저씨와 단둘이 차를 타고 숙소로 갔다. 차를 타고 가는데 안개가 너무 심해서 앞은 하나도
안보이고 우박은 무섭게 떨어지고...정말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다행히 살아서 숙소에 도착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나보다 먼저 가있겠구나 나만 늦었구나. 내 자신을 자책하며
숙소에 도착했는데 숙소에는 이탈리아 아저씨 3명밖에 없다.
아니 첫날인데 벌써 놀러나갔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 3명중에
담당자인 돈프랑코 아저씨와 얘기를 해보니 나 혼자란다..........
진짜 청천벽력같은...완전 멘붕......
당장 다시 짐 들고 이 집을 떠나야 되나 이런 생각을 하는데 여긴 산 위에 있는
자동차 없이는 아무데도 못가는 동네이고 밤이 늦기도 했고 날씨도 안 좋고 정말
이를 어쩐다.......
게다가 이 아저씨들 중에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돈프랑코 아저씨만 조금 할 줄 아시는데 정말정말 조금 할 줄 아신다.
당장 오늘 여기서 자야하는데 돈프랑코 아저씨와 단둘이 자야한다는 게 무서웠다.
아저씨들이 이탈리아어로 계속 얘기를 하시다가 누군가와 전화를 하시더니 다른
참가자가 온다고 한다. 나는 다음날 올 줄 알았는데 몇 시간 뒤에 한 여자애가 숙소에 도착했다. 여자가 한명 생겼다는데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기차를 탔는데 잘못 내려서 겨우겨우 왔다고 한다. 이 친구는 러시아에서 온
마리아라고 하는데 마리아도 나와 같이 참가자 수를 보고 좌절했다.
실망감 가득하고 정신없었던 우리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가 했던 일은 마을에 성당과 기도원 등 건물을 몇 채 짓는데 돌 나르고 삽질하고 청소하고 같이 일하는 안토니오 아저씨 도와드리는 일을 했다.
쉽게 말해서 공사장에서 하는 일을 했다.
일이 힘든 건 많이 들어서 예상을 하고 갔지만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역시 여자라고 봐주는 건 전혀 없었고 마지막 날에는 삽질을 심하게 했더니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손에 굳은살이 남아있다.
식사로 아침, 저녁은 담당자인 돈프랑코 아저씨가 빵이랑 버터,비스켓,커피,과일 등을
챙겨주셨는데 끝나갈 때 쯤에는 여기저기 동네사람들 집으로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서 아침에만 주로 먹었고 점심은 같이 일하는 안토니오 아저씨와 빅토리오라는 동네아저씨와 함께 먹었는데 돈프랑코 아저씨나 마을에 사는 아주머니들이 오셔서 매일 코스요리를 해주셨다. 항상 와인과 함께 1차는 파스타 2차는 고기요리 디저트로 빵과 커피를 먹었다. 처음엔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찢어질 것 같았는데 끝날 때쯤에는 이미 위가 늘어나 있었다.
같이 워크캠프를 한 마리아는 영어도 잘하고 심지어 이탈리아도 조금 할 줄 알아서
나빼고 이탈리아어로 얘기를 했다. 마리아는 모르는 단어는 아저씨들한테 매일매일
질문하고 밤마다 PMP에 있는 동영상으로 이탈리아어 공부를 하는데 어찌 아저씨들이
이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밥먹을 때 마리아한테만 말 걸고 나는 이탈리아어도
못하고 하니깐 소외되곤 했었다. 게다가 마리아 성격이 딱히 누굴 잘 챙겨주거나
그런 성격이 아니라서 일일이 통역도 안 해주고 나는 늘 그냥 먹기만 했다...
그래도 아저씨들은 참 착하고 좋은 분들이셨다.
워크캠프 가기 전에 인터넷에서 읽었던 후기들에서도 그리고 설명회에서도 자기나라
음식 하나쯤은 준비해야 된다고 해서 다들 준비한다는 불고기양념과 김을 준비해갔다.
그런데 매일 음식도 해주시고 쓸 일이 없었다. 사실 첫 주에는 일도 너무 힘들고 내가 생각했던 워크캠프는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캐리어에 있는 불고기양념을 보면서 떠나기 전에 엄마랑 같이 마트에서 장봤던 생각이 나면서 몰래 울기도 했다.
소수(2명)라는 게 장점도 있긴 했다. 동네 사람들도 꽤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저녁식사 초대도 많이 받았다. 우리를 담당해주시던 돈프랑코 아저씨는 누나가 위독해서 2주차에는 많이 볼 수 없었다. 대신 빅토리오 아저씨께서 우리를 자주 집으로 초대 해주셔서 직접 스파게티면 만드는 것도 보여주시고 직접 만든 스파게티 면으로 수제 파스타도
해주셨고 아저씨께서 와인 만드는 일을 하셔서 아저씨네 집 지하에 있는 와인 만드는 곳도 구경하고 했다. 이 외에도 많은 요리를 해주시고 근처에 피자가 맛있는 레스토랑도 데려가 주시고 우리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그리고 산드라 아줌마네 집도
두 번이나 초대를 받았는데 해주신 음식이 너무너무 맛있었다.
특히 마지막 날 남편분이 해산물 요리 특집을 해주셨는데 정말 환상이었다.
그리고 산드라 아줌마는 딸하나 아들하나 있는데 이 아이들이 내가 한국사람 이라고
하니깐 여자아이가 내 옆에서 핸드폰을 가지고 우물쭈물하더니 갑자기 강남스타일
노래를 틀어서 우리 모두 빵터졌다. 그 여자아이는 강남스타일 1절이 다 끝날 때 까지 내 옆에 가만히 서있었다는...^^; 한참 강남스타일 열풍이 지났을 때 였는데도 강남스타일의 인기를 실감했다.
사실 첫날부터 당장 이곳을 떠나고 싶고 일은 힘들고 말도 안통하고 실망스럽고 우울한 날들의 연속이었는데 어느 날 노래를 들으면서 일하고 있는데 우연히 원모어찬스의
럭셔리버스 라는 노래가 나왔다. 노래 가사중에
“우리는 기다리며 살지 멋진 순간들만
하지만 우릴 기다린 건 황당한 순간들
하지만 먼 훗날 뒤돌아 보면 모두 럭셔리한 무용담
걱정할 필요 없어 모두 추억이 될테니“ 라는 가사가 나왔는데 평소 별로 좋아하지
않는 노래였는데 딱 지금 내 상황이랑 맞는 가사에 공감을 하고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지금은 이렇게 힘들고 빨리 탈출하고만 싶지만 힘든 만큼 나중에 뒤돌아보면 정말 많은 기억이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2주차부터는 나도 마리아한테 이탈리아 단어들을 조금씩 배워서 써먹기도 하고 일도
처음보다 덜 힘들고 적응이 되었다.
내가 기대했던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다른 캠프보다 시설도 좋고 맛있는 것도 정말 많이 먹고 진짜 이탈리아인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내가 언제 또 이렇게 현지인들의 삶을 보고 느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정말 힘든 만큼 고생한 만큼 기억에 남는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두 달이 지난 지금도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 마을사람들과, 그 풍경과,
같이 일했던 마리아도 그립다.
30살이 되기 전에 꼭 한번 워크캠프에 다시 도전하고 싶다.
다음엔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겠지.^^
대학생 때 유럽배낭여행을 가는 것에 대한 환상이 있었던 내게 워크캠프 또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유럽여행에 가게 된다면 꼭 워크캠프도 같이 하겠다고 다짐했다.
4학년이 되고 더이상 이대로는 미룰 수 없겠다 싶어 휴학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다.
사실은 스페인 워크캠프를 신청하고 싶었으니 하고 싶었던 프로그램이 마감되고
스페인에 남아있는 프로그램도 없어서 대충 날짜 맞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워크캠프를
신청하게 되었다.
1차로 썼던 이탈리아에 합격을 하고 워크캠프 일정에 맞춰서 유럽여행 일정도 짰다.
워크캠프 하루 전 날, 로마의 한 호스텔에서 내일은 어떤 친구들을 만날까?
영어도 잘 못하는데 잘 지낼 수 있을까? 이러한 생각들로 깊은 잠을 잘 수 없었다.
떼르미니역에서 Boiano행 기차를 타고 가면서 큰 짐을 들고 타는 젊은 외국인들을
유심히 관찰하며 혹시 쟤가 나랑 같은 워크캠프를 하는 애일까? 라는 상상을 하며
미팅포인트인 Boiano역에 도착했다.
비가 오고 우박이 떨어지는 캄캄한 밤이었다. 한 이탈리아인 아저씨가 날 보자마자
Macchiagodena? 이러는거다. 기차에서 내렸던 사람들 중 나만 유일하게 동양인이었기 때문에 금방 알아보신듯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같은 기차에 없었던지 나 혼자 아저씨와 단둘이 차를 타고 숙소로 갔다. 차를 타고 가는데 안개가 너무 심해서 앞은 하나도
안보이고 우박은 무섭게 떨어지고...정말 이대로 죽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다행히 살아서 숙소에 도착했다.
다른 참가자들은 나보다 먼저 가있겠구나 나만 늦었구나. 내 자신을 자책하며
숙소에 도착했는데 숙소에는 이탈리아 아저씨 3명밖에 없다.
아니 첫날인데 벌써 놀러나갔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그 아저씨 3명중에
담당자인 돈프랑코 아저씨와 얘기를 해보니 나 혼자란다..........
진짜 청천벽력같은...완전 멘붕......
당장 다시 짐 들고 이 집을 떠나야 되나 이런 생각을 하는데 여긴 산 위에 있는
자동차 없이는 아무데도 못가는 동네이고 밤이 늦기도 했고 날씨도 안 좋고 정말
이를 어쩐다.......
게다가 이 아저씨들 중에 영어 할 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돈프랑코 아저씨만 조금 할 줄 아시는데 정말정말 조금 할 줄 아신다.
당장 오늘 여기서 자야하는데 돈프랑코 아저씨와 단둘이 자야한다는 게 무서웠다.
아저씨들이 이탈리아어로 계속 얘기를 하시다가 누군가와 전화를 하시더니 다른
참가자가 온다고 한다. 나는 다음날 올 줄 알았는데 몇 시간 뒤에 한 여자애가 숙소에 도착했다. 여자가 한명 생겼다는데 마음에 위안이 되었다.
기차를 탔는데 잘못 내려서 겨우겨우 왔다고 한다. 이 친구는 러시아에서 온
마리아라고 하는데 마리아도 나와 같이 참가자 수를 보고 좌절했다.
실망감 가득하고 정신없었던 우리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가 했던 일은 마을에 성당과 기도원 등 건물을 몇 채 짓는데 돌 나르고 삽질하고 청소하고 같이 일하는 안토니오 아저씨 도와드리는 일을 했다.
쉽게 말해서 공사장에서 하는 일을 했다.
일이 힘든 건 많이 들어서 예상을 하고 갔지만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역시 여자라고 봐주는 건 전혀 없었고 마지막 날에는 삽질을 심하게 했더니 두 달이
지난 지금도 손에 굳은살이 남아있다.
식사로 아침, 저녁은 담당자인 돈프랑코 아저씨가 빵이랑 버터,비스켓,커피,과일 등을
챙겨주셨는데 끝나갈 때 쯤에는 여기저기 동네사람들 집으로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서 아침에만 주로 먹었고 점심은 같이 일하는 안토니오 아저씨와 빅토리오라는 동네아저씨와 함께 먹었는데 돈프랑코 아저씨나 마을에 사는 아주머니들이 오셔서 매일 코스요리를 해주셨다. 항상 와인과 함께 1차는 파스타 2차는 고기요리 디저트로 빵과 커피를 먹었다. 처음엔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찢어질 것 같았는데 끝날 때쯤에는 이미 위가 늘어나 있었다.
같이 워크캠프를 한 마리아는 영어도 잘하고 심지어 이탈리아도 조금 할 줄 알아서
나빼고 이탈리아어로 얘기를 했다. 마리아는 모르는 단어는 아저씨들한테 매일매일
질문하고 밤마다 PMP에 있는 동영상으로 이탈리아어 공부를 하는데 어찌 아저씨들이
이뻐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밥먹을 때 마리아한테만 말 걸고 나는 이탈리아어도
못하고 하니깐 소외되곤 했었다. 게다가 마리아 성격이 딱히 누굴 잘 챙겨주거나
그런 성격이 아니라서 일일이 통역도 안 해주고 나는 늘 그냥 먹기만 했다...
그래도 아저씨들은 참 착하고 좋은 분들이셨다.
워크캠프 가기 전에 인터넷에서 읽었던 후기들에서도 그리고 설명회에서도 자기나라
음식 하나쯤은 준비해야 된다고 해서 다들 준비한다는 불고기양념과 김을 준비해갔다.
그런데 매일 음식도 해주시고 쓸 일이 없었다. 사실 첫 주에는 일도 너무 힘들고 내가 생각했던 워크캠프는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캐리어에 있는 불고기양념을 보면서 떠나기 전에 엄마랑 같이 마트에서 장봤던 생각이 나면서 몰래 울기도 했다.
소수(2명)라는 게 장점도 있긴 했다. 동네 사람들도 꽤 많이 만날 수 있었고 저녁식사 초대도 많이 받았다. 우리를 담당해주시던 돈프랑코 아저씨는 누나가 위독해서 2주차에는 많이 볼 수 없었다. 대신 빅토리오 아저씨께서 우리를 자주 집으로 초대 해주셔서 직접 스파게티면 만드는 것도 보여주시고 직접 만든 스파게티 면으로 수제 파스타도
해주셨고 아저씨께서 와인 만드는 일을 하셔서 아저씨네 집 지하에 있는 와인 만드는 곳도 구경하고 했다. 이 외에도 많은 요리를 해주시고 근처에 피자가 맛있는 레스토랑도 데려가 주시고 우리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셨다. 그리고 산드라 아줌마네 집도
두 번이나 초대를 받았는데 해주신 음식이 너무너무 맛있었다.
특히 마지막 날 남편분이 해산물 요리 특집을 해주셨는데 정말 환상이었다.
그리고 산드라 아줌마는 딸하나 아들하나 있는데 이 아이들이 내가 한국사람 이라고
하니깐 여자아이가 내 옆에서 핸드폰을 가지고 우물쭈물하더니 갑자기 강남스타일
노래를 틀어서 우리 모두 빵터졌다. 그 여자아이는 강남스타일 1절이 다 끝날 때 까지 내 옆에 가만히 서있었다는...^^; 한참 강남스타일 열풍이 지났을 때 였는데도 강남스타일의 인기를 실감했다.
사실 첫날부터 당장 이곳을 떠나고 싶고 일은 힘들고 말도 안통하고 실망스럽고 우울한 날들의 연속이었는데 어느 날 노래를 들으면서 일하고 있는데 우연히 원모어찬스의
럭셔리버스 라는 노래가 나왔다. 노래 가사중에
“우리는 기다리며 살지 멋진 순간들만
하지만 우릴 기다린 건 황당한 순간들
하지만 먼 훗날 뒤돌아 보면 모두 럭셔리한 무용담
걱정할 필요 없어 모두 추억이 될테니“ 라는 가사가 나왔는데 평소 별로 좋아하지
않는 노래였는데 딱 지금 내 상황이랑 맞는 가사에 공감을 하고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지금은 이렇게 힘들고 빨리 탈출하고만 싶지만 힘든 만큼 나중에 뒤돌아보면 정말 많은 기억이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2주차부터는 나도 마리아한테 이탈리아 단어들을 조금씩 배워서 써먹기도 하고 일도
처음보다 덜 힘들고 적응이 되었다.
내가 기대했던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다른 캠프보다 시설도 좋고 맛있는 것도 정말 많이 먹고 진짜 이탈리아인들의 삶을 느낄 수 있는 경험이었다.
내가 언제 또 이렇게 현지인들의 삶을 보고 느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정말 힘든 만큼 고생한 만큼 기억에 남는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두 달이 지난 지금도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고 마을사람들과, 그 풍경과,
같이 일했던 마리아도 그립다.
30살이 되기 전에 꼭 한번 워크캠프에 다시 도전하고 싶다.
다음엔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