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레이캬비크, 예술로 물들다
Visual art in Reykjavik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유럽 여행의 일환으로 계획에 일부가 되었던 아이슬란드로의 워크캠프. 주제가 'Visual Art in Iceland'인 만큼 캠프에 대한 기대가 컸던 게 사실이었다. 이유는 나의 대학 전공이 인테리어 디자인이므로, 가능하면 새로운 경험을 쌓는-직업 찾기의 연장선이기를 바랬던 것 같다. 디테일한 주제는 아이슬란드 내에 도착한 뒤에서야 정확하게 무엇을 하게 될 것인지를 통지받았는데, 그것은 어느 홈페이지에 비주얼 아트를 이용한 가이드북을 만들어 업로드를 하는 것이었다.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참 안타까웠던 것은, 아이슬란드에 모인 대다수의 참가자들이 네 명을 제외하고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었다. 하다못해 순수미술 전공자도 아니었다. 다름아닌 그냥 여행자이면서 워크캠프라는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찰나, 아트를 배워볼까 하는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로,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다. 2주라는 짧은 시간 내에 비주얼 아트를 가르킬 수 있을리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어떤 참가자는 가르쳐지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2주라는 시간 동안 아이슬란드에서 여행사를 통한 비교적 저렴한 투어를 다녀오기도 했으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작업 시간은 2주도 채 안되는 시간이었다.
문제는 작업 뿐만이 아니었는데, 많은 돈을 수거 해 감에도 불구하고 여행사를 통해 함께 움직인 투어에서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엄청난 창고같은 집에서 한겨울에, 거진 10년은 넘게 사용하다 버려진것 같은 매트리스 위에 각자의 침낭을 깔고 잠을 자야 하는 날도 있었다.(패딩도 껴 입은 채로, 온수가 없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은 씻지도 않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걸어만 다녀도 손가락이 얼어붙는 추위에 참가자들의 불만은 서서히 쌓여갔던 것 같다. 긍정적으로 해 가려고 해도 그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참가자들의 불만은 쌓여가고, 리더들은 그들의 불만을 보고도 본 채 만 채하고 밝게 따라와 주지 않는 참가자들에게 실망을 한 것 같았다.
이래저래 그 짧은 기간동안 약 70만원 이상이라는 돈을 추가적으로 내고, 상황도 참 열악한 상태였는데, 그나마 시간이라는 게 빨리 지나가 줘서 이렇게 회상하고 보니 별거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한번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 전공자와 함께하는 비주얼 아트는 어떤이는 빨리 결과만을 내길 바라고 어떤이는 그냥 여행처럼 즐기기를 바랬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다른 배경의 사람을 알 수 있는 계기어서 색다르기도 했지만, 작업하는 것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특히나 외국의 남자들 중에는 구제 불능인 영혼들이 많은데, 더구나 정신연령이 어린 것이 남자라고 하는 데다가, 언어도 모국어가 아닌 외국 언어를 사용해야 했으니, 그들은 더더욱 애처럼 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난 태어나 처음으로 인내심의 한계를 체험했다. 30세가 넘은 남자가 책임감 없이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행색인지도 두 눈으로 보고, 다른 참가자들의 조언을 통해 쓸데 없는 감정 낭비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인지를 배웠고,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실망감을 쉽게 잘 다룬다는 것을 보았다. 세상에는 감정 조절, 관계 조절을 잘 하는 사람이 참 많은 것 같다. 어떤의미에서는 나는 아직 그런 것에는 익숙치가 않아서 참 부러울 따름이다.
첨부하는 홈페이지는 같이 작업했던 비주얼 아트(-라고 하기엔 전문성이 떨어지지만) 를 올린 홈페이지로 참가자들이 작업 한 것들을 리더들이 후작업을 잘 해서 그럴싸하게 입혀놨다고 하는 것이 옳다. 어찌되었건 완성이 된 것을 보니 기분은 후련하다. 해가 지날 수록 더욱 발전하고 보다 뜻깊은 활동을 할 수 있는 world wide friend가 되었으면 좋겠다. 난 좀 실망을 했으니, 보다 천천히 나아질 것이라고,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은 아주 많이 열려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해외에 처음 나가 있는 경험으로 새로운 감각들을 많이 익혔던 계기였다. 어떤날은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나의 상태에 너무 상심해서 울기도 하고, 다른사람이 손수 만든 엄청난 요리를 먹을 수 있게 된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알게 되었고, ..디자인적으로 뭔가 영감을 받는 계기라거나 기억에 남을 훌륭한 작업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잊지 못할 기억이 되리란 것은 확신한다.
결과론적으로 봤을 때 참 안타까웠던 것은, 아이슬란드에 모인 대다수의 참가자들이 네 명을 제외하고 디자인 전공자가 아니었다. 하다못해 순수미술 전공자도 아니었다. 다름아닌 그냥 여행자이면서 워크캠프라는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찰나, 아트를 배워볼까 하는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로,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많았다. 2주라는 짧은 시간 내에 비주얼 아트를 가르킬 수 있을리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어떤 참가자는 가르쳐지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2주라는 시간 동안 아이슬란드에서 여행사를 통한 비교적 저렴한 투어를 다녀오기도 했으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작업 시간은 2주도 채 안되는 시간이었다.
문제는 작업 뿐만이 아니었는데, 많은 돈을 수거 해 감에도 불구하고 여행사를 통해 함께 움직인 투어에서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는 엄청난 창고같은 집에서 한겨울에, 거진 10년은 넘게 사용하다 버려진것 같은 매트리스 위에 각자의 침낭을 깔고 잠을 자야 하는 날도 있었다.(패딩도 껴 입은 채로, 온수가 없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은 씻지도 않있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걸어만 다녀도 손가락이 얼어붙는 추위에 참가자들의 불만은 서서히 쌓여갔던 것 같다. 긍정적으로 해 가려고 해도 그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참가자들의 불만은 쌓여가고, 리더들은 그들의 불만을 보고도 본 채 만 채하고 밝게 따라와 주지 않는 참가자들에게 실망을 한 것 같았다.
이래저래 그 짧은 기간동안 약 70만원 이상이라는 돈을 추가적으로 내고, 상황도 참 열악한 상태였는데, 그나마 시간이라는 게 빨리 지나가 줘서 이렇게 회상하고 보니 별거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한번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비 전공자와 함께하는 비주얼 아트는 어떤이는 빨리 결과만을 내길 바라고 어떤이는 그냥 여행처럼 즐기기를 바랬다. 그들과 함께하면서 다른 배경의 사람을 알 수 있는 계기어서 색다르기도 했지만, 작업하는 것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특히나 외국의 남자들 중에는 구제 불능인 영혼들이 많은데, 더구나 정신연령이 어린 것이 남자라고 하는 데다가, 언어도 모국어가 아닌 외국 언어를 사용해야 했으니, 그들은 더더욱 애처럼 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난 태어나 처음으로 인내심의 한계를 체험했다. 30세가 넘은 남자가 책임감 없이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행색인지도 두 눈으로 보고, 다른 참가자들의 조언을 통해 쓸데 없는 감정 낭비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인지를 배웠고,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실망감을 쉽게 잘 다룬다는 것을 보았다. 세상에는 감정 조절, 관계 조절을 잘 하는 사람이 참 많은 것 같다. 어떤의미에서는 나는 아직 그런 것에는 익숙치가 않아서 참 부러울 따름이다.
첨부하는 홈페이지는 같이 작업했던 비주얼 아트(-라고 하기엔 전문성이 떨어지지만) 를 올린 홈페이지로 참가자들이 작업 한 것들을 리더들이 후작업을 잘 해서 그럴싸하게 입혀놨다고 하는 것이 옳다. 어찌되었건 완성이 된 것을 보니 기분은 후련하다. 해가 지날 수록 더욱 발전하고 보다 뜻깊은 활동을 할 수 있는 world wide friend가 되었으면 좋겠다. 난 좀 실망을 했으니, 보다 천천히 나아질 것이라고, 발전할 수 있는 방향은 아주 많이 열려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해외에 처음 나가 있는 경험으로 새로운 감각들을 많이 익혔던 계기였다. 어떤날은 영어에 익숙하지 않은 나의 상태에 너무 상심해서 울기도 하고, 다른사람이 손수 만든 엄청난 요리를 먹을 수 있게 된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인지를 알게 되었고, ..디자인적으로 뭔가 영감을 받는 계기라거나 기억에 남을 훌륭한 작업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잊지 못할 기억이 되리란 것은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