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알라예르비, 핀란드 건축가의 숨결을 느끼다
World in villages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대학교 3학년을 마치고 졸업작품만을 코앞에 둔 상황에 덜컥 휴학을 했다.
이대로 졸업한다면 더이상 내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기회는 없을 것 만 같았다.
3학년을 마치자마자 반년 정도를 여행 자금을 모으고, 정보를 모아가며 준비를 했다.
전부터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로 핀란드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 때문에 알게 된 워크캠프를 핀란드로 신청해서 여행을 시작해봐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적당한 시기의 핀란드 워크캠프 신청이 뜨기만을 종종거리며 기다렸던 것 같다.
3월 말쯤, 드디어 워크캠프 신청이 시작되어 선택하려고 보니 평소 가장 좋아하던 핀란드의 건축가가 지은 건물을 복원하는 작업을 하는 캠프가 떠 있었다. 그걸 본 순간이 가장 흥분하고 긴장했었던 것 같다:) 합격한 순간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그 이후부터는 그저 여행준비가 즐겁고 기대로 가득 찼었던 것 같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떠난 핀란드. 멀기도 먼 북유럽 먼동네까지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홀로 떠났다.
나는 핀란드 에서도 seinajki라는 작은 시티로 들어가 또 버스를 타고 한시간 가량 들어가야 도착하는 Alajarvi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캠프를 하게 되었다.
처음 인포싯을 보고는 '달랑 이 몇줄의 정보만 가지고 찾아가야하는건가..?'하면서 멘붕상태에 빠지기도 했지만, 긴장해서 정신을 더 바짝차린 탓인지 큰 탈 없이 시골마을까지 찾아갈 수 있었다. 더군다나 내가 가장 먼 곳에서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베이스캠프지에 내가 첫번째로 도착한 멤버였다. 비행기 일정으로 하루를 먼저 도착해 캠프리더와 만나 인사하고, 차차 도착해오는 친구들을 만났다. 그런데 '아시안이 한명쯤은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나를 빼고는 모두 유러피언! 체코, 프랑스, 스페인,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 영어도 잘 못하는 나이기에 괜시리 걱정도 되고 긴장도 했었지만 그건 그저 첫날에 스쳐간 우려에 불과했다. 모두들 아시안인 나를 배려해 내 이야기에 집중해주고,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말해주고,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이해하도록 몸짓과 그림을 동원해가며 챙겨줬었다. 일부러 한국에대해 물어봐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그들의 그런 배려가 하루하루 너무 따뜻하게 다가와 아직도 너무나 기억에 많이 남는다.
우리가 맡은 일은 두 뮤지엄을 복원하는 일과 마지막날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프로젝트 였다. 하지만 굉장히 작은 시티에서 캠프를 했었기 때문에 프로젝트 이외에 동네사람들과 교류도 굉장히 많아서 그 부분이 너무나 좋았다. 그 지역의 대학생들, 청소년들, 할아버지 할머니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뮤지엄 복원을 하는 일에 기자가 찾아와 지역신문에 실리기도하고, 동네사람들과 핀란드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우나를 같이 한 뒤 호수샤워를 하기도 하고, 전통 스포츠를 배워보기도하고, 학교도 찾아가보고, 리더의 별장에 가서 가족들과함께 바베큐파티를 하기도하고.. 그저 하루 하루 드는 생각이 내가 그냥 관광으로, 여행으로 이곳에 왔으면 절대 얻지 못했을 시간, 장소, 기억들이라는 생각이 줄곧 들었다.
캠프 프로그램 자체도 굉장히 좋긴 했지만 워크캠프를 절대 잊을 수 없는건 분명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 때문이다. 2주라면 짧을 수 있는 시간이지만 10명밖에 안되는 친구들이 모두 끈끈하게 빠른속도로 친해졌다. 오히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한 숫자여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다들 국적도 틀리고 피부색도 눈색도 머리색도 틀렸지만 너무나 많은 정이 들어버렸다. 다들 애칭을만들어 애칭을 부르고, 밤늦게까지 노래부르며 수다떨고, 새벽에 급 삼삼오오뭉쳐 호수로가서 수영하고... 백야때문에 늦은 시간까지 하늘이 어둡지 않아서 더 그랬었던 것 같다 :) 내 캠프는 다들 19, 18, 20살 아이들이 많았는데 91년 생인 나로써는 대부분 동생들이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때문에 다들 korean baby, korean grand children이라며 날 챙겨주곤 했다.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매일매일 다른국적의 요리를 맛보는 시간도 너무나 특별한 경험이었다. 딱히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진 않았지만 집에서 만들어먹는 그 음식들이 최고로 좋았다. 쿠키 굽기를 좋아하는 체코와 프랑스의 친구들이 심심하면 '서프라이즈 케이크'를 굽기도 햇고, 함께하는 저녁시간이면 늘 한명도 빠짐없이 자리에 앉아 새끼 손가락을 걸고 "enjoy your meal!" 이라는 구호를 외친 뒤 함께 식사했다. 그런 사소한 하나하나까지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정도로, 너무나 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캠프를 주최한 측이나 리더도 처음 캠프를 이끈 것이었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확실하게 정해진 틀이 아닌 뭔가 더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 질 수 있었다.
계획했던 뮤지엄복원도, 퍼포먼스도 성공적으로 끝내고, 2주의 꿈만같던 시간이 너무나 서로를 정들게 만들어버려서 마지막날 다들 헤어지기가 싫어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그 뒤에도 배낭여행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캠프에서 친해진 체코친구와 프랑스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체코는 갈 계획이 없었지만 그 친구를 보러 되게 안쪽 동네까지 찾아갔었는데, 그 친구의 동네에서 묵었던 일주일이 유럽여행에서 기억에 남는일 중 워크캠프 다음으로 꼽힐 정도로 좋은 인연이 되었다. 프랑스 친구 역시 파리에 살지 않았지만 내가 파리에 갈 일정에 맞춰 파리에 찾아와 가이드는 물론, 너무나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줬다. 이런 기억 때문에 워크캠프의 가장 큰 보물은 무엇보다도 값진 친구들이다. 캠프 이후에 만나러가지 못한 친구들이 아직도 너무 보고싶고, 다들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어 아직도 여전히 연락과 교류중이다. :)
내 영어실력은 정말 말도 못하게 안좋다. 하지만 그걸 핑계대고, 언어의 장벽으로 두려워서 도전하지 못했더라면 지금 이 글을 쓰고있는 순간에도 벅차오르는 이 기억들을 가지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 정말 워크캠프 하나만으로도 값진 휴학이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애매하고 불안한 시기에 덜컥 한 휴학, 그리고 덜컥 떠난 여행이었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절대로, 절대로 잊지못할 그런 2주임은 확실하다.
이대로 졸업한다면 더이상 내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기회는 없을 것 만 같았다.
3학년을 마치자마자 반년 정도를 여행 자금을 모으고, 정보를 모아가며 준비를 했다.
전부터 가장 가보고 싶은 나라로 핀란드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친구 때문에 알게 된 워크캠프를 핀란드로 신청해서 여행을 시작해봐야겠다! 라는 생각으로 적당한 시기의 핀란드 워크캠프 신청이 뜨기만을 종종거리며 기다렸던 것 같다.
3월 말쯤, 드디어 워크캠프 신청이 시작되어 선택하려고 보니 평소 가장 좋아하던 핀란드의 건축가가 지은 건물을 복원하는 작업을 하는 캠프가 떠 있었다. 그걸 본 순간이 가장 흥분하고 긴장했었던 것 같다:) 합격한 순간이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그 이후부터는 그저 여행준비가 즐겁고 기대로 가득 찼었던 것 같다.
그렇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떠난 핀란드. 멀기도 먼 북유럽 먼동네까지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홀로 떠났다.
나는 핀란드 에서도 seinajki라는 작은 시티로 들어가 또 버스를 타고 한시간 가량 들어가야 도착하는 Alajarvi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캠프를 하게 되었다.
처음 인포싯을 보고는 '달랑 이 몇줄의 정보만 가지고 찾아가야하는건가..?'하면서 멘붕상태에 빠지기도 했지만, 긴장해서 정신을 더 바짝차린 탓인지 큰 탈 없이 시골마을까지 찾아갈 수 있었다. 더군다나 내가 가장 먼 곳에서 온 것임에도 불구하고 베이스캠프지에 내가 첫번째로 도착한 멤버였다. 비행기 일정으로 하루를 먼저 도착해 캠프리더와 만나 인사하고, 차차 도착해오는 친구들을 만났다. 그런데 '아시안이 한명쯤은 있겠지..'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나를 빼고는 모두 유러피언! 체코, 프랑스, 스페인, 우크라이나, 에스토니아... 영어도 잘 못하는 나이기에 괜시리 걱정도 되고 긴장도 했었지만 그건 그저 첫날에 스쳐간 우려에 불과했다. 모두들 아시안인 나를 배려해 내 이야기에 집중해주고,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말해주고, 이해하지 못한 부분은 이해하도록 몸짓과 그림을 동원해가며 챙겨줬었다. 일부러 한국에대해 물어봐주고, 관심을 가져주고.. 그들의 그런 배려가 하루하루 너무 따뜻하게 다가와 아직도 너무나 기억에 많이 남는다.
우리가 맡은 일은 두 뮤지엄을 복원하는 일과 마지막날 퍼포먼스를 준비하는 프로젝트 였다. 하지만 굉장히 작은 시티에서 캠프를 했었기 때문에 프로젝트 이외에 동네사람들과 교류도 굉장히 많아서 그 부분이 너무나 좋았다. 그 지역의 대학생들, 청소년들, 할아버지 할머니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뮤지엄 복원을 하는 일에 기자가 찾아와 지역신문에 실리기도하고, 동네사람들과 핀란드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우나를 같이 한 뒤 호수샤워를 하기도 하고, 전통 스포츠를 배워보기도하고, 학교도 찾아가보고, 리더의 별장에 가서 가족들과함께 바베큐파티를 하기도하고.. 그저 하루 하루 드는 생각이 내가 그냥 관광으로, 여행으로 이곳에 왔으면 절대 얻지 못했을 시간, 장소, 기억들이라는 생각이 줄곧 들었다.
캠프 프로그램 자체도 굉장히 좋긴 했지만 워크캠프를 절대 잊을 수 없는건 분명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 때문이다. 2주라면 짧을 수 있는 시간이지만 10명밖에 안되는 친구들이 모두 끈끈하게 빠른속도로 친해졌다. 오히려 많지도 적지도 않은 적당한 숫자여서 더 좋았던 것 같다. 다들 국적도 틀리고 피부색도 눈색도 머리색도 틀렸지만 너무나 많은 정이 들어버렸다. 다들 애칭을만들어 애칭을 부르고, 밤늦게까지 노래부르며 수다떨고, 새벽에 급 삼삼오오뭉쳐 호수로가서 수영하고... 백야때문에 늦은 시간까지 하늘이 어둡지 않아서 더 그랬었던 것 같다 :) 내 캠프는 다들 19, 18, 20살 아이들이 많았는데 91년 생인 나로써는 대부분 동생들이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때문에 다들 korean baby, korean grand children이라며 날 챙겨주곤 했다.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매일매일 다른국적의 요리를 맛보는 시간도 너무나 특별한 경험이었다. 딱히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진 않았지만 집에서 만들어먹는 그 음식들이 최고로 좋았다. 쿠키 굽기를 좋아하는 체코와 프랑스의 친구들이 심심하면 '서프라이즈 케이크'를 굽기도 햇고, 함께하는 저녁시간이면 늘 한명도 빠짐없이 자리에 앉아 새끼 손가락을 걸고 "enjoy your meal!" 이라는 구호를 외친 뒤 함께 식사했다. 그런 사소한 하나하나까지 행복한 기억으로 남을 정도로, 너무나 다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캠프를 주최한 측이나 리더도 처음 캠프를 이끈 것이었는데,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던 것 같다. 확실하게 정해진 틀이 아닌 뭔가 더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이루어 질 수 있었다.
계획했던 뮤지엄복원도, 퍼포먼스도 성공적으로 끝내고, 2주의 꿈만같던 시간이 너무나 서로를 정들게 만들어버려서 마지막날 다들 헤어지기가 싫어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나는 그 뒤에도 배낭여행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캠프에서 친해진 체코친구와 프랑스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체코는 갈 계획이 없었지만 그 친구를 보러 되게 안쪽 동네까지 찾아갔었는데, 그 친구의 동네에서 묵었던 일주일이 유럽여행에서 기억에 남는일 중 워크캠프 다음으로 꼽힐 정도로 좋은 인연이 되었다. 프랑스 친구 역시 파리에 살지 않았지만 내가 파리에 갈 일정에 맞춰 파리에 찾아와 가이드는 물론, 너무나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줬다. 이런 기억 때문에 워크캠프의 가장 큰 보물은 무엇보다도 값진 친구들이다. 캠프 이후에 만나러가지 못한 친구들이 아직도 너무 보고싶고, 다들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어 아직도 여전히 연락과 교류중이다. :)
내 영어실력은 정말 말도 못하게 안좋다. 하지만 그걸 핑계대고, 언어의 장벽으로 두려워서 도전하지 못했더라면 지금 이 글을 쓰고있는 순간에도 벅차오르는 이 기억들을 가지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 정말 워크캠프 하나만으로도 값진 휴학이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애매하고 불안한 시기에 덜컥 한 휴학, 그리고 덜컥 떠난 여행이었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절대로, 절대로 잊지못할 그런 2주임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