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기다림 끝에 만난 프랑스 남부의 낭만
Festival Salat'n Co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기다림은 길고, 즐거움은 짧다.내 생의 첫 워크캠프 14일간의 기록
나의 워크캠프는 그곳으로 가기위한 첫 날부터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새벽 3시30분에 일어났으나 이른시간이라 운행하지 않던 지하철을 기다려야했고, 한번 더 기차를 타기위해 모르는역에서 배회했으며, 기차에서 버스를 갈아타 오랜시간이 걸려 약속장소에 도착했지만 모두를 만나기까지 2시간이 더 걸렸다.
그리고 그 많은 기다림 끝에 마침내 리더 Marion을 만날 수 있었다.
프랑스 중심가와 너무 떨어져있어서인지 아님 시기가 그래서인지 인원미달이었고 오기로 했던 유일한 남자도 오지 않아서 결국 남은 사람들을 보니 여자7명이였다.
유일한 동양인인 미키언니와 민혜, 나 셋을 제외하고는 모두 프랑스사람들이었다.
이제껏 살면서 한번도 접해본 적 없었던 불어를 눈을 떠서 눈을 감는 14일 동안 듣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우리가 있었던 캠핑장은 프랑스 남부 중에서도 남부, 스페인의 국경에 가깝게 있던 지역이었다. 물론 너무 외진 곳이어서 와이파이는 생각할 수도 없었고 가족들과 연락하기위해 우리는 위피(불어로)를 외치며 차로 한 두시간을 들여 마을로 가야만했다.
처음에는 그 먼거리를 와이파의 노예가 된 듯 목숨처럼 갔는데 어느 순간 이런생각이 들었다. 지금 집에있는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고 어떤 친구는 남자친구와 서울에 여행을 갔지만, 나는 여기 프랑스에 있다.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것들을 보고있다. 여기도 충분히 재밌다.그리고 그 때부터 이곳에서의 시간이 값지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축제준비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아침에 일어나 씨리얼과 핫초코, 빵을 먹고 마을로 나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베스트드라이버 마리온을 따라 큰 마트에서 점심저녁으로 먹을 재료들을 사기도하고, 산지에라는 곳을 구경하고 자기 국가의 음식들을 나눴다.
크게 표현을 안하는 멤버 쎄고도 맛있다며 호떡을 몇 개나 먹은지 모르겠다.
오후에는 산지홍에서 열린 큰 마켓을 갔다.
지역마켓이라 그런지 동양인은 우리외에 전혀 보이지 않았고 몇일을 지내다보니 신기하게 쳐다보는 눈길이나 물음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물론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지나가는 프랑스인이, 그리고 불어또한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있었다.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본일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허허벌판에 천막을 세우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15kg의 밥을 해보고 몇십줄의 김밥을 싸봤다.
페스티벌 당일에는 장대비가 쏟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고생고생해서 만들고 지었는데 많이 와서 즐기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걱정도 잠시 저녁시간이 되자 어디선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문화도 서로의 언어도 다 다르지만 음악과 분위기로 하나가 되는 모습들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다음날이되자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에 텐트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며 텐트촌이 되었다. 이런 광경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도 페스티벌이 끝나면서 그 많던 텐트촌들도 함께 사라졌다. 마치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이 워크캠프를 기다린 시간도, 이 축제를 기다린 시간도 길었지만 축제는 주말이 지나자 끝이 났다.
페스티벌을 통해 만나고 헤어진 모든 이들은 이 특별한 주말에 대해 서로 신기하게 생각했다. 물론 나또한 프랑스의 시골도시에서의 이런 만남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만약 내가 오늘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평생 못만났을 가능성이 높은 나의 인연들, 사랑하고 또 추억하고 싶다.
나의 워크캠프는 그곳으로 가기위한 첫 날부터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새벽 3시30분에 일어났으나 이른시간이라 운행하지 않던 지하철을 기다려야했고, 한번 더 기차를 타기위해 모르는역에서 배회했으며, 기차에서 버스를 갈아타 오랜시간이 걸려 약속장소에 도착했지만 모두를 만나기까지 2시간이 더 걸렸다.
그리고 그 많은 기다림 끝에 마침내 리더 Marion을 만날 수 있었다.
프랑스 중심가와 너무 떨어져있어서인지 아님 시기가 그래서인지 인원미달이었고 오기로 했던 유일한 남자도 오지 않아서 결국 남은 사람들을 보니 여자7명이였다.
유일한 동양인인 미키언니와 민혜, 나 셋을 제외하고는 모두 프랑스사람들이었다.
이제껏 살면서 한번도 접해본 적 없었던 불어를 눈을 떠서 눈을 감는 14일 동안 듣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우리가 있었던 캠핑장은 프랑스 남부 중에서도 남부, 스페인의 국경에 가깝게 있던 지역이었다. 물론 너무 외진 곳이어서 와이파이는 생각할 수도 없었고 가족들과 연락하기위해 우리는 위피(불어로)를 외치며 차로 한 두시간을 들여 마을로 가야만했다.
처음에는 그 먼거리를 와이파의 노예가 된 듯 목숨처럼 갔는데 어느 순간 이런생각이 들었다. 지금 집에있는 아이들은 학교를 다니고 어떤 친구는 남자친구와 서울에 여행을 갔지만, 나는 여기 프랑스에 있다. 다른 경험을 하고 다른 것들을 보고있다. 여기도 충분히 재밌다.그리고 그 때부터 이곳에서의 시간이 값지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축제준비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아침에 일어나 씨리얼과 핫초코, 빵을 먹고 마을로 나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베스트드라이버 마리온을 따라 큰 마트에서 점심저녁으로 먹을 재료들을 사기도하고, 산지에라는 곳을 구경하고 자기 국가의 음식들을 나눴다.
크게 표현을 안하는 멤버 쎄고도 맛있다며 호떡을 몇 개나 먹은지 모르겠다.
오후에는 산지홍에서 열린 큰 마켓을 갔다.
지역마켓이라 그런지 동양인은 우리외에 전혀 보이지 않았고 몇일을 지내다보니 신기하게 쳐다보는 눈길이나 물음에 익숙해져가고 있었다.
물론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점점 지나가는 프랑스인이, 그리고 불어또한 나도 모르게 익숙해져있었다.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본일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허허벌판에 천막을 세우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15kg의 밥을 해보고 몇십줄의 김밥을 싸봤다.
페스티벌 당일에는 장대비가 쏟아졌다. 많은 사람들이 고생고생해서 만들고 지었는데 많이 와서 즐기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걱정도 잠시 저녁시간이 되자 어디선가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문화도 서로의 언어도 다 다르지만 음악과 분위기로 하나가 되는 모습들이 너무 좋았다.
그리고 다음날이되자 아무것도 없었던 공간에 텐트들이 하나둘씩 생겨나며 텐트촌이 되었다. 이런 광경도 즐기는 사람들의 모습도 페스티벌이 끝나면서 그 많던 텐트촌들도 함께 사라졌다. 마치 신데렐라 이야기처럼.
이 워크캠프를 기다린 시간도, 이 축제를 기다린 시간도 길었지만 축제는 주말이 지나자 끝이 났다.
페스티벌을 통해 만나고 헤어진 모든 이들은 이 특별한 주말에 대해 서로 신기하게 생각했다. 물론 나또한 프랑스의 시골도시에서의 이런 만남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만약 내가 오늘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면 평생 못만났을 가능성이 높은 나의 인연들, 사랑하고 또 추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