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생 제니스 드 생통주, 6시간의 기다림
SAINT GENIS DE SAINTONGE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친구와 파리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각자의 워크캠프로 가기 위해 우리는 다른 기차를 타고 떠났다. 프랑스 기차값은 시간이 갈수록 가격이 오르기때문에 미리 기차를 예매해놓았다. 기차를 먼저 예약해놓고 나중에 인포싯이 도착해서 미팅포인트를 확인해보니 내가 가는 기차역에서 6시에 만나는 것이었다. 내가 기차역에 도착하는 시간은 12시였기때문에 나는 6시간동안 할게 없기때문에 기차역이 도착하자 마자 인포싯에 나온 번호로 "나는 이번 프로그램 참가자인데, 내가 지금 기차역에 도착했다. 혹시 데리러 나와줄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렇게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데 한시간이 지나도 두시간이 지나도 답장은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결국 답장이 없어서 나를 일찍 데리러오지는 않나보다 하고선 6시까지 기다렸다. 기다리면서 먼저 프로그램 리더에게 메일이라도 보내놓을걸 이라고 생각했다. 6시에 모두 만나서 주민들의 차를 타고 우리들의 숙소로 갔다. 우리가 머물던 숙소는 유치원이었다. 식탁도 아기자기하고 책상도 아기자기했다. 유치원에 모여서 모두 자기소개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자기소개 할 때 들어보니, 일본사람, 독일사람, 스페인사람, 캐나다사람 등등등 정말 여러 국적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모두다 자기 소개를 하고나서 와인을 한잔 마시고 자신이 이 워크캠프에 어떻게 왓는지 도화지에 그림을 그려서 설명을 하는 시간을 가지고 다음날부터 우리는 무슨일을 할것이며 각 날마다 누가 식사당번을 할것인지 정했다. 다른캠프에서 만난 스페인사람들이 성격도 좋고 쾌활했기때문에 이번 캠프에 온 스페인친구 옆에 앉아서 주저리주저리 얘기를 하다가 스페인친구와 친해지게되었다.
내가 참가했던 다른 캠프보다 이 캠프는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나는 자전거를 타지 못해서 걱정을 매우 많이 했다. 하지만 독일에서 온 사라가 매일 저녁 나를 데리고 옥수수밭 옆 도로에서 자전거 연수를 시켜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일을 자전거타는 연습을 하다보니 드디어 나도 자전거를 꽤 타게 되었다. 그때 자전거를 배운 후로 한국에서도 여러번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다니게되었다.
우리들이 할 일은 한 정신병원 앞의 담 쌓기! 시멘트도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했고, 시멘트 날라서 시멘트칠까지, 어느하나 우리손이 안닿는곳이 없었다. 시멘트를 만드는 일을 대부분 남자들이 담당하고있었는데, 어느날 남자들이 자기들은 더이상 시멘트를 만들기 싫다고 파업을 해버려서 여자들이 시멘트를 만들고 남자들이 시멘트를 나르고 칠하기로했다. 자기가 하던일이 싫다고 다른사람에게 맡겨버려서 싫어할만도 할법한데, 여자애들이 군말않고 바꿔주고 그날 하루종일 시멘트를 나르고 칠하다보니 원래 자기들이 하던 시멘트를 만드는 일이 낫다고 해서 시멘트를 만들지 않겠다는 파업은 끝나게되었다.
워크캠프가 거의 끝나갈 무렵, 우리는 마을 주민들의 가족들과 밥을 먹게 되었다. 한 가정당 3명씩 가서 그 가족과 밥을 먹는건데, 나와 이레네, 사라는 한 노부부의 집에 가서 밥을 먹게되었다. 할머니가 요리를 엄청~ 잘하셨고, 음식이 코스요리처럼 한접시 끝나면 다른 접시가 나오는 식으로 해서 8접시는 먹은것 같았다. 먹을땐 몰랐는데, 다 먹고나니 배가 엄청 빵빵해져서 밥을 다 먹고 나와 사라는 자전거를 타고 해바라기꽃밭 주변을 돌아다녔다.
워크캠프가 끝나기 2일전 우리는 드디어 담을 다 만들었고, 마을 주민들과 담 앞에서 사진도 찍었고, 그날 저녁 우리는 각자 나라의 음식을 만들어서 주민들과 함께 나눠먹으면서 와인과 꼬냑을 나눠먹었다 :) 마지막날엔 다들 비행기를 타러 시간을 맞춰 떠나는데 뭐가 또 그렇게 아쉬웠는지 눈물이 났다. 그렇게 나의 마지막 워크캠프는 끝이 났다.
내가 참가했던 다른 캠프보다 이 캠프는 자전거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많았는데, 나는 자전거를 타지 못해서 걱정을 매우 많이 했다. 하지만 독일에서 온 사라가 매일 저녁 나를 데리고 옥수수밭 옆 도로에서 자전거 연수를 시켜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일을 자전거타는 연습을 하다보니 드디어 나도 자전거를 꽤 타게 되었다. 그때 자전거를 배운 후로 한국에서도 여러번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다니게되었다.
우리들이 할 일은 한 정신병원 앞의 담 쌓기! 시멘트도 우리가 직접 만들어야했고, 시멘트 날라서 시멘트칠까지, 어느하나 우리손이 안닿는곳이 없었다. 시멘트를 만드는 일을 대부분 남자들이 담당하고있었는데, 어느날 남자들이 자기들은 더이상 시멘트를 만들기 싫다고 파업을 해버려서 여자들이 시멘트를 만들고 남자들이 시멘트를 나르고 칠하기로했다. 자기가 하던일이 싫다고 다른사람에게 맡겨버려서 싫어할만도 할법한데, 여자애들이 군말않고 바꿔주고 그날 하루종일 시멘트를 나르고 칠하다보니 원래 자기들이 하던 시멘트를 만드는 일이 낫다고 해서 시멘트를 만들지 않겠다는 파업은 끝나게되었다.
워크캠프가 거의 끝나갈 무렵, 우리는 마을 주민들의 가족들과 밥을 먹게 되었다. 한 가정당 3명씩 가서 그 가족과 밥을 먹는건데, 나와 이레네, 사라는 한 노부부의 집에 가서 밥을 먹게되었다. 할머니가 요리를 엄청~ 잘하셨고, 음식이 코스요리처럼 한접시 끝나면 다른 접시가 나오는 식으로 해서 8접시는 먹은것 같았다. 먹을땐 몰랐는데, 다 먹고나니 배가 엄청 빵빵해져서 밥을 다 먹고 나와 사라는 자전거를 타고 해바라기꽃밭 주변을 돌아다녔다.
워크캠프가 끝나기 2일전 우리는 드디어 담을 다 만들었고, 마을 주민들과 담 앞에서 사진도 찍었고, 그날 저녁 우리는 각자 나라의 음식을 만들어서 주민들과 함께 나눠먹으면서 와인과 꼬냑을 나눠먹었다 :) 마지막날엔 다들 비행기를 타러 시간을 맞춰 떠나는데 뭐가 또 그렇게 아쉬웠는지 눈물이 났다. 그렇게 나의 마지막 워크캠프는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