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나폴리, 가슴 뛰는 봉사와의 만남
NAPLES-GIS 2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참가동기>
대학원에 진학한 2011년 여름, 다시 오지 않을 여유와 시간들을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친 동생을 통해 해외 워크캠프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동생과 나는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40일 간의 긴 여정은 따분하고 지치고, 힘든 날이 올 것이라는 예상도 했다. 그래서 선택 한 것이 바로!! 워크캠프이다. 하지만 동생과 나는 각자의 관심 분야에 따라 각자 다른 캠프를 신청했다.
동생은 스페인 시골의 파티 준비를, 나는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에서 교육봉사를 선택했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봉사와 새로운 경험을 좋아했다. 특히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고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것이 기쁘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당신은 당신의 가슴을 뛰게하는, 당신의 피를 끓게 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까?” 이 말은 나날이 발전하고자 하고, 나날이 가슴 뛰는 일을 찾고 싶은 나의 가치관을 잘 나타내 주고, 언제 들어도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그런 일을 하고 싶었고, 열정이 넘치고 무서울 것 없는 24살의 어린 대학원 생이었기에 가능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탈리아, 나폴리에서의 워크캠프는 정말 진하고 진한 기억과 여운을 남겼다.
<캠프 이야기>
미국, 호주, 일본, 중국 등 여러 나라를 많이 다녀왔지만, 유럽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잘 알려진 이탈리아가 아닌가. 어디 오지도 아닌.
여행도 많이 했고, 경험도 많았는데 왠지 모르게 무서웠다. 뭔가 낯선 곳에 떨어져 두려운 느낌이 었다. 마냥 즐겁고 행복하고 신~~날 것 같았는데…. 막상 닥치니 그게 아니었다
캠프기간 내내 썼던 일기를 보면 내 심정을 잘 반영하는 것 같다.
힘들면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서 썼던 일기인데 지금 다시 보니까 너무 웃기다.
캠프를 함께할 친구들은 나 포함 6명으로 모두 다른 국적의 친구들이었다. 5명의 여자, 1명의 남자. 16세기에 지어진 아주 오래된 아파트에 2주간 머물면서 출퇴근 하며 아이들을 보살피는 봉사와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 하게 된다.
(2011.07.16)
출국한지 일주일, 캠프사람들을 만났다. 일주일 지났는데 한달 지난 것처럼 이상하다. 내 앞에 나타나는 많은 낯선 사람들, 다른 음식, 다른 언어, 다른 문화. 아직까지는 내가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데 사실 좀 정신 없다. 그냥 너무 낯설어서 그냥 좀 놓고 울고 싶다. 내가 나를 어떻게 컨트롤 할까. 순간순간 즐기자. 안되도 노력하자. 재미있을꺼야. 이제 시작이니까. OKAY!!
(2011.07.17)
아침에 나와서 크로와상과 카푸치노를 마시고, 카프리 섬으로 떠난다. 카프리. 이탈리아 남부의 정말 아름다운 휴양지이자 섬이다. 카프리 섬에 모든 것이 비싸다고 해서 먹을 빵, 물, 과일, 치즈, 햄을 사서 보트를 타고 출발했다. 이틀 동안 한국어 한마디도 안하고 영어만 쓰다 보니 내가 한국인인지도 모르겠다. 휴. 그래도 이제 조금 괜찮다. 카프리는 너무 예뻤다. 나와 여기 있는 친구들 모두 함께 울고 웃고 즐기고, 이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고 배려하는 Nice한 친구가 되자.
아, 세르비안 여자 아이가 왔다. 조금 늦은 저녁을 먹고 간단히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는 아주 friendly했다. 우리는 그래서 이탈리아인 사라, 러시아인 나탈랴, 독인인 리나, 세르비아인 밀리카, 나 그리고 멕시코 남자 이람. 이렇게 여섯이다. 우리의 일을 분담하고 앞으로 계획에 대해 토론하고 잠들었다.
(2011.07.18)
일 시작한날.
아이들도 착하고 아이들 돌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병원에 딸려있는 유치원에서 병원에 직장이 있는 간호사나 의사의 자식들을 돌보는 일이다. 뭔가 이 세상에서, 아니 이 먼 곳 유럽에 와서 의미있는 일을 한다는 것이 보람있다. 그래, 봉사는 봉사답게 ^^ 일 끝나고 나폴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정원을 둘러봤다. 맞다! 우리에게 개인 운전사(personal driver)도 있다.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유머스러운 이탈리아 친구다. 오늘 밤은 이탈리아 진짜! 카르보나라를 맛봤다. (직접 사라가 만들어 줬다) 우리가 한국에서 늘 먹던 것이랑 달랐는데 맛있었다.
(2011.07.19)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아파트에서 옷을 갈아입고 역사적인 장소를 보러 다같이 나갔다. 많은 샵들에 우리는 눈이 갔고, 버스도 기다렸고, 사진을 찍었고, 젤라또도 먹었다. 그리고 미모를 만났다. 미모는 우리의 director이다. 미모가 우리를 위해 가이드를 해주셨다. 왕궁이 있었는데 이탈리아의 역사를 들었다. 꽤 흥미로웠다. 여러 장소를 보면서 지난 학기에 들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내가 딱 그 장소에 서있는 것이었다. 내가 이 곳에서 그리스 신화 얘기를 들을 줄이야. 행복했다.
(2011.07.20)
이제 이탈리아 음식도 적응 되었고, 이탈리아 음식을 먹는 순서도 알았고, 나폴리 시내도 거의 꿰뚫었다. 미모가 오페라 티켓이 생겨 우리에게 2장을 주었다. 내가 오페라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친구들이 양보해 줬고, 밀리카와 함께 보러갔다.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은… 내가 영화속에 있는 것 처럼 올드하고 화려했다. 미모가 밀리카에게 스페인어로 설명하고, 밀리카가 다시 나에게 영어로 설명해 줬다. 정말 웃긴 상황. 끝나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해산물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 즐거웠고 너무 행복했다.
(2011.07.21)
일을 마친 후 나탈리아와 이람과 인터넷 카페에 갔다. 친구에게 메일도 보내고 일상 얘기도 해줬다.
저녁에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와 스파게티 튀김을 먹었다. 어제 너무 늦게자서 피곤했지만 지금 나는 좀 행복한 것 같다. Anyway! Good night!
(2011.07.22)
시간은 많은 것을 얻게 한다. 외로웠고 무서웠고 낯설었는데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주었다. 시간이 이 모든 것을 의미 있는 일로 바꿔주었고 내가 적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이탈리아가 너무 낡고 불편하다. 하지만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 있고, 예술이 존재하고, 로맨스가 있다. 그리고 내가 아주 오래 전 시대로 돌아온 느낌도 든다. 16세기에 지어진 아파트에 머무는 것도 꽤 멋진 일상이고, 2주동안 이탈리안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도 꽤 보람있는 일이다. 내 인생에서 지금 현재 너무 귀중한 시간들을 보내는 것 같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뭔가 많은 걸 얻어서 배가 부를 것 같은, 그런 느낌 받을 것 같다.
친구들에게 나는 나중에 엄한 선생님이 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고 말하는 중에 나탈리아가 자기는 절대 친근한 선생님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랑 나랑 반대다. 우리 둘 다 전공이 같고, 후에 영어 선생님이 되겠지만, 아마 확연하게 다른 선생님일 것이다. 나는 날카롭고 카리스마 있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부럽고, 그녀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2011.07.23)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오늘은 소렌토, 아말피에 가기로 계획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아침먹고 일단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계획을 바꿔서 폼페이를 갔다. 폼페이에 도착했을 때 너무 배고파서 힘이 하나도 없었다. 더위를 먹은건지 배고픈건지. 여튼 폼페이는 고대에 하루아침에 마그마에 덮인 도시이다. 밀리카는 사진을 너무 많이 찍어서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일본인 관광객’ 그녀는 사진 찍는 것을 너무 사랑하고, 기념품 사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리나와 나는 밀리카 때문에 하루종일 웃었다.
(2011.07.24)
포지타노를 지나 아말피로 가는 길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너무 멀미나서 죽을 뻔 했기 때문이다. 밀리카 또한 멀미를 해서 둘이서 먹지도 못하고 바다만 멍하니 바라보아야 했다. 더 최악인 것은 파도가 다리를 덮쳐서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떨었다. 너무 춥고 어지럽고. 하지만 이 순간에도 밀리카는 사진을 찍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를 말릴 수 없다. 너무 아름다운 곳인데 너무 힘든 여정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화장실 변기 고장으로 우리는 내일부터 씻지 못한다. 으..disaster.
(2011.07.25)
International night이 있는 날.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사무실에 갔다. 먼저 한국에 대해 설명한 적이 한번도 없어서 일단 무엇을 소개할 지 생각했다. 지도, 국기, 서울, 음식, 한옥, 회사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한국도 독특하고 다양하고 좀 멋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한국인으로서 이탈리아에서 한국을 소개한다는 것이 정말 멋진 일이 될 것 같다.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첨단 기계와 컴퓨터에 익숙한 한국인으로 빠르고 간단하게 파워포인트로 준비했다. (다른아이들은 손으로 그리더라..) 오늘 저녁은 아이들을 위해 짜파게티를 해줬다. 애들이 너무 좋아했다.
(2011.07.26)
오늘 하루 종일 밀리카와 리나가 한국말을 연습했다. 안녕. 사랑해. 감사합니다. 고마워. 그리고 어른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는 법도 알려줬다. 내가 아시아에서 와서 아이들이 나 자체를 신기해 한다. 사실 밀리카는 나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내 눈, 코, 입을 뚫어져라 보고 비행기는 몇 시간 탔는지, 아주 생각지도 못한 질문들을 했었다. 그들이 내가 쓰는 글자를 보면 그림 같다고 하고 끊임없는 질문을 한다. 재미있나 보다.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따라 하고 웃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내일은 비빔밥을 만들 것이다.
(마지막날)
발표를 준비하면서 역사, 경제, 산업, 문화 등을 함께 공유하고 알아갔던 것이 정말 의미있었던 것 같다. 캠프 2주 동안 공부한 것 같다. 너무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기쁘고, 또 그들로부터 많이 배워서 기쁘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정식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님을 알았으며,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 속에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좀 생각해 봐야겠다. 무엇보다. 여기와서 큰 세상을 느끼고, 뭔가 모를 자신감을 얻었다. 나는 만족한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어. 행복하다.
모든 경험도 당시에는 즐겁기도 하고, 힘들기도 한 순간이 있지만, 모든 경험이 내 사고를 풍부하게 하고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되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고, 헛된 경험이 하나도 없었음을 배웠다.
큰 도전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작은 도전들이 지속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것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꼭 도전하세요. 인생에 진한 기억과 여운으로 남을 것입니다.
대학원에 진학한 2011년 여름, 다시 오지 않을 여유와 시간들을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었다.
친 동생을 통해 해외 워크캠프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동생과 나는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으나, 40일 간의 긴 여정은 따분하고 지치고, 힘든 날이 올 것이라는 예상도 했다. 그래서 선택 한 것이 바로!! 워크캠프이다. 하지만 동생과 나는 각자의 관심 분야에 따라 각자 다른 캠프를 신청했다.
동생은 스페인 시골의 파티 준비를, 나는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에서 교육봉사를 선택했다.
나는 대학 시절부터 봉사와 새로운 경험을 좋아했다. 특히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내가 누군가를 가르치고 내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것이 기쁘고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당신은 당신의 가슴을 뛰게하는, 당신의 피를 끓게 하는 일을 하고 계십니까?” 이 말은 나날이 발전하고자 하고, 나날이 가슴 뛰는 일을 찾고 싶은 나의 가치관을 잘 나타내 주고, 언제 들어도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그런 일을 하고 싶었고, 열정이 넘치고 무서울 것 없는 24살의 어린 대학원 생이었기에 가능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탈리아, 나폴리에서의 워크캠프는 정말 진하고 진한 기억과 여운을 남겼다.
<캠프 이야기>
미국, 호주, 일본, 중국 등 여러 나라를 많이 다녀왔지만, 유럽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잘 알려진 이탈리아가 아닌가. 어디 오지도 아닌.
여행도 많이 했고, 경험도 많았는데 왠지 모르게 무서웠다. 뭔가 낯선 곳에 떨어져 두려운 느낌이 었다. 마냥 즐겁고 행복하고 신~~날 것 같았는데…. 막상 닥치니 그게 아니었다
캠프기간 내내 썼던 일기를 보면 내 심정을 잘 반영하는 것 같다.
힘들면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서 썼던 일기인데 지금 다시 보니까 너무 웃기다.
캠프를 함께할 친구들은 나 포함 6명으로 모두 다른 국적의 친구들이었다. 5명의 여자, 1명의 남자. 16세기에 지어진 아주 오래된 아파트에 2주간 머물면서 출퇴근 하며 아이들을 보살피는 봉사와 문화 교류 프로그램을 진행 하게 된다.
(2011.07.16)
출국한지 일주일, 캠프사람들을 만났다. 일주일 지났는데 한달 지난 것처럼 이상하다. 내 앞에 나타나는 많은 낯선 사람들, 다른 음식, 다른 언어, 다른 문화. 아직까지는 내가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런데 사실 좀 정신 없다. 그냥 너무 낯설어서 그냥 좀 놓고 울고 싶다. 내가 나를 어떻게 컨트롤 할까. 순간순간 즐기자. 안되도 노력하자. 재미있을꺼야. 이제 시작이니까. OKAY!!
(2011.07.17)
아침에 나와서 크로와상과 카푸치노를 마시고, 카프리 섬으로 떠난다. 카프리. 이탈리아 남부의 정말 아름다운 휴양지이자 섬이다. 카프리 섬에 모든 것이 비싸다고 해서 먹을 빵, 물, 과일, 치즈, 햄을 사서 보트를 타고 출발했다. 이틀 동안 한국어 한마디도 안하고 영어만 쓰다 보니 내가 한국인인지도 모르겠다. 휴. 그래도 이제 조금 괜찮다. 카프리는 너무 예뻤다. 나와 여기 있는 친구들 모두 함께 울고 웃고 즐기고, 이들도 나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기억하고 배려하는 Nice한 친구가 되자.
아, 세르비안 여자 아이가 왔다. 조금 늦은 저녁을 먹고 간단히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녀는 아주 friendly했다. 우리는 그래서 이탈리아인 사라, 러시아인 나탈랴, 독인인 리나, 세르비아인 밀리카, 나 그리고 멕시코 남자 이람. 이렇게 여섯이다. 우리의 일을 분담하고 앞으로 계획에 대해 토론하고 잠들었다.
(2011.07.18)
일 시작한날.
아이들도 착하고 아이들 돌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병원에 딸려있는 유치원에서 병원에 직장이 있는 간호사나 의사의 자식들을 돌보는 일이다. 뭔가 이 세상에서, 아니 이 먼 곳 유럽에 와서 의미있는 일을 한다는 것이 보람있다. 그래, 봉사는 봉사답게 ^^ 일 끝나고 나폴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정원을 둘러봤다. 맞다! 우리에게 개인 운전사(personal driver)도 있다. 잘 생기지는 않았지만 유머스러운 이탈리아 친구다. 오늘 밤은 이탈리아 진짜! 카르보나라를 맛봤다. (직접 사라가 만들어 줬다) 우리가 한국에서 늘 먹던 것이랑 달랐는데 맛있었다.
(2011.07.19)
아이들과 시간을 보낸 후 아파트에서 옷을 갈아입고 역사적인 장소를 보러 다같이 나갔다. 많은 샵들에 우리는 눈이 갔고, 버스도 기다렸고, 사진을 찍었고, 젤라또도 먹었다. 그리고 미모를 만났다. 미모는 우리의 director이다. 미모가 우리를 위해 가이드를 해주셨다. 왕궁이 있었는데 이탈리아의 역사를 들었다. 꽤 흥미로웠다. 여러 장소를 보면서 지난 학기에 들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가 생각났다. 그러고 보니 내가 딱 그 장소에 서있는 것이었다. 내가 이 곳에서 그리스 신화 얘기를 들을 줄이야. 행복했다.
(2011.07.20)
이제 이탈리아 음식도 적응 되었고, 이탈리아 음식을 먹는 순서도 알았고, 나폴리 시내도 거의 꿰뚫었다. 미모가 오페라 티켓이 생겨 우리에게 2장을 주었다. 내가 오페라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 친구들이 양보해 줬고, 밀리카와 함께 보러갔다. 이탈리아 오페라 극장은… 내가 영화속에 있는 것 처럼 올드하고 화려했다. 미모가 밀리카에게 스페인어로 설명하고, 밀리카가 다시 나에게 영어로 설명해 줬다. 정말 웃긴 상황. 끝나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해산물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너무 즐거웠고 너무 행복했다.
(2011.07.21)
일을 마친 후 나탈리아와 이람과 인터넷 카페에 갔다. 친구에게 메일도 보내고 일상 얘기도 해줬다.
저녁에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피자와 스파게티 튀김을 먹었다. 어제 너무 늦게자서 피곤했지만 지금 나는 좀 행복한 것 같다. Anyway! Good night!
(2011.07.22)
시간은 많은 것을 얻게 한다. 외로웠고 무서웠고 낯설었는데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주었다. 시간이 이 모든 것을 의미 있는 일로 바꿔주었고 내가 적응할 수 있게 해주었다. 나는 이탈리아가 너무 낡고 불편하다. 하지만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 있고, 예술이 존재하고, 로맨스가 있다. 그리고 내가 아주 오래 전 시대로 돌아온 느낌도 든다. 16세기에 지어진 아파트에 머무는 것도 꽤 멋진 일상이고, 2주동안 이탈리안 아이들을 보살피는 일도 꽤 보람있는 일이다. 내 인생에서 지금 현재 너무 귀중한 시간들을 보내는 것 같다. 내가 한국에 돌아가면 뭔가 많은 걸 얻어서 배가 부를 것 같은, 그런 느낌 받을 것 같다.
친구들에게 나는 나중에 엄한 선생님이 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된다고 말하는 중에 나탈리아가 자기는 절대 친근한 선생님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랑 나랑 반대다. 우리 둘 다 전공이 같고, 후에 영어 선생님이 되겠지만, 아마 확연하게 다른 선생님일 것이다. 나는 날카롭고 카리스마 있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부럽고, 그녀는 내가 부럽다고 했다.
(2011.07.23)
아침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오늘은 소렌토, 아말피에 가기로 계획했는데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아침먹고 일단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계획을 바꿔서 폼페이를 갔다. 폼페이에 도착했을 때 너무 배고파서 힘이 하나도 없었다. 더위를 먹은건지 배고픈건지. 여튼 폼페이는 고대에 하루아침에 마그마에 덮인 도시이다. 밀리카는 사진을 너무 많이 찍어서 새로운 별명이 생겼다. ‘일본인 관광객’ 그녀는 사진 찍는 것을 너무 사랑하고, 기념품 사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 리나와 나는 밀리카 때문에 하루종일 웃었다.
(2011.07.24)
포지타노를 지나 아말피로 가는 길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너무 멀미나서 죽을 뻔 했기 때문이다. 밀리카 또한 멀미를 해서 둘이서 먹지도 못하고 바다만 멍하니 바라보아야 했다. 더 최악인 것은 파도가 다리를 덮쳐서 수건으로 몸을 감싸고 떨었다. 너무 춥고 어지럽고. 하지만 이 순간에도 밀리카는 사진을 찍는 것을 잊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를 말릴 수 없다. 너무 아름다운 곳인데 너무 힘든 여정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화장실 변기 고장으로 우리는 내일부터 씻지 못한다. 으..disaster.
(2011.07.25)
International night이 있는 날.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사무실에 갔다. 먼저 한국에 대해 설명한 적이 한번도 없어서 일단 무엇을 소개할 지 생각했다. 지도, 국기, 서울, 음식, 한옥, 회사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한국도 독특하고 다양하고 좀 멋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한국인으로서 이탈리아에서 한국을 소개한다는 것이 정말 멋진 일이 될 것 같다.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첨단 기계와 컴퓨터에 익숙한 한국인으로 빠르고 간단하게 파워포인트로 준비했다. (다른아이들은 손으로 그리더라..) 오늘 저녁은 아이들을 위해 짜파게티를 해줬다. 애들이 너무 좋아했다.
(2011.07.26)
오늘 하루 종일 밀리카와 리나가 한국말을 연습했다. 안녕. 사랑해. 감사합니다. 고마워. 그리고 어른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는 법도 알려줬다. 내가 아시아에서 와서 아이들이 나 자체를 신기해 한다. 사실 밀리카는 나를 처음 본 순간부터 내 눈, 코, 입을 뚫어져라 보고 비행기는 몇 시간 탔는지, 아주 생각지도 못한 질문들을 했었다. 그들이 내가 쓰는 글자를 보면 그림 같다고 하고 끊임없는 질문을 한다. 재미있나 보다.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따라 하고 웃으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내일은 비빔밥을 만들 것이다.
(마지막날)
발표를 준비하면서 역사, 경제, 산업, 문화 등을 함께 공유하고 알아갔던 것이 정말 의미있었던 것 같다. 캠프 2주 동안 공부한 것 같다. 너무 좋은 친구들을 만나서 기쁘고, 또 그들로부터 많이 배워서 기쁘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정식인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님을 알았으며, 정말 다양한 사람들과 그들 속에 다양한 삶의 방식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지 좀 생각해 봐야겠다. 무엇보다. 여기와서 큰 세상을 느끼고, 뭔가 모를 자신감을 얻었다. 나는 만족한다. 내가. 지금. 여기에 있어. 행복하다.
모든 경험도 당시에는 즐겁기도 하고, 힘들기도 한 순간이 있지만, 모든 경험이 내 사고를 풍부하게 하고 내 인생의 길잡이가 되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기억에 남고, 헛된 경험이 하나도 없었음을 배웠다.
큰 도전도 중요하지만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작은 도전들이 지속 가능하고, 지속 가능한 것이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분도 꼭 도전하세요. 인생에 진한 기억과 여운으로 남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