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우간다, 6년의 꿈을 새기다
International Workcamp on Promoting Traditional Music, Dance and drama Skills and Productio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20살이 되던 해 TV에서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계획을 하는 대학생이던 나는 많은 핑계를 대면서 계획만 하는 시간을 보내다 6년이 흘러 26살이 되던 14년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실행으로 옮기기 시작한다.
아프리카 봉사활동의 초행길은 시작부터 역경으로 다가왔다. 회사를 다니면서 아프리카 정보와 준비를 하기엔 힘든 시간 이였고, 내 주위에는 아프리카로 여행을 갔던 친구도 지인도 없는 상황이였다. 평소 남는 시간에 모든걸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으며 움직여야 했던 어려운 준비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고, 나의 최선은 아프리카를 다녀온 많은 사람들의 경험담을 읽고 질문하며 정보를 최대한 습득하는 거였다. 워크캠프 합격 후 시간이 지날수록 애타는 마음은 점점 커져갔고 기대와 설렘 그리고 불안 또한 함께 커져나갔다. 실제로 아프리카로 워크캠프를 다녀온 분들의 이야기를 보면 걱정은 없다고 하지만 내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걱정을 하지 않겠는가? 모두가 떠나기 전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막상 출국하는 날이 다가오고 비행기를 타는 순간 머리는 백지가 되었고 난 머리 속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간다의 첫 느낌은 무서웠다. 공항 밖의 많은 픽업 드라이버들의 시선이 날 압도해서 나는 기가 죽어버렸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를 픽업시켜줄 UPA드라이버를 찾는데 안보여서 그 장소를 계속 돌다 티셔츠에 에펠탑처럼 생긴 로고가 박힌 분들이 도와줘서 UPA OFFICE에 전화를 한 후에 픽업 담당 드라이버와 통화를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내가 도착했다 한다. 그리고 나서 도착한 UPA! 한국에서 겁먹었던 느낌은 전부 사라지고 난 모든 것에 흥미를 느끼고 들떠버렸다. 솔직히 너무 즐거워서 나한테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고 많은 우간다 친구들과 아시아 친구와 만나게 되었다. 아시아 구성인원은 한국인 3명, 일본인 1명 이렇게 구성되었고 다른 인원은 현지 우간다 친구들이 되었다. 내가 참여한 프로그램은 전통 악기를 배우고, 액세서리를 만들며 춤을 배우는 거였다. 모든 작업이 완성 되면 3번의 퍼포먼스를 통해 UPA를 홍보하여 봉사자들을 모집하는 거였다. 오리엔테이션에서 3개의 조가 나뉘어지고 나서 다양한 시간을 보내며 춤도 배우고 악기도 접하며 우간다 친구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우간다 현지인이 되어가고 있었고 피부 또한 점점 타 들어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지 친구들과도 가까워져서 서로 장난을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춤을 배워야 하는데 프로그램이 느슨하게 진행되어 불안하기도 했다. 우간다 문화? 인지는 확답을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중요한 일이 코앞에 있어도 현지 친구들은 걱정을 안하며 여유가 넘쳤다. 왠지 이 나라 사람들 모두가 그런거 같다. 우리 나라였으면 밥 먹고 쉬는 시간 빼면 하루 종일 연습해도 모자를 텐데 이들의 여유는 정말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춤을 알려주는 선생님 또한 매일 오는 것이 아닌 일주일에 2~3번정도 와서 3~4시간정도 알려주고 가셨기에 수업이 없는 날에는 아시아 친구들끼리 모여 춤을 잘 추는 현지 친구를 통해 춤을 배우는 시간을 따로 가지며 연습했고 나름 즐거운 시간을 조율해 나아갔다. 다양한 악기를 배우고 만져보고 직접 알아가는 것 또한 즐거움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액세서리를 만드는 방법에는 아프리카의 오랜 삶이 묻어 나왔다. 만드는 방법이 신기하고 아름다워서 나중에는 더 열심히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문화충격은 시간이 지나면서도 꾸준히 받았고 그 문화충격은 우리나라 에서는 상상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화장실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 오래 된 시골과 닮아서 신경은 쓰지 않았는데 주방의 문화는 3주간의 생활을 하면서도 이해 할 수 없고 교육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나랑 문화가 다르다고 친구들을 교육을 한다는 것은 자존심과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기에 조용히 한국 친구들과 실천을 해서 위생을 하라는 것을 보여주곤 했다. 이러고 나면 왜 이렇게 했는지 묻는 친구가 생겼기 때문! 다만 현지 친구들은 열심히 하려는 친구와 의욕이 없는 친구가 많이 나뉘어서 요리를 할 때는 매번 하는 인물들 위주로만 요리를 하게 되어 관리가 힘들기도 했다. 뭐, 이런 덕분에 다양한 친구들과 친해지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퍼포먼스를 할 무렵 헤어스타일을 레게로 바꾸고 나니 현지 친구들 모두 나를 라스타 라고 부르게 되어 난 라스타 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3번의 퍼포먼스를 하며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리고 가까워졌으며 내 자신이 현지인이 되가는 느낌을 얻어 행복한 시간을 보낸 거 같아 좋았다. 비록 한국처럼 다양한 음식을 많이 먹거나, 물을 쉽게 먹고 물을 펑펑 쓰지 못할뿐더러 매연이 심한 거리를 횡보해야 하고 가끔 물을 뜨러 지하수가 나오는 산 아래까지 가서 길러야 하는 힘든 고생도 해야 했다. 그리고 문화차이로 인해 위생이 낮은 환경에서 식사를 하거나 잠을 자는 고생도 해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 생활을 견디며 시간을 보낸 것을 보상해주듯 아프리카의 자연과 삶은 나에게 행복을 안겨 주었다. 이 글을 읽고 걱정으로 가득찬 미래의 봉사 지원자에게 이렇게 전해 주고 싶습니다. 아프리카의 현실은 치안이 낮고 위생도 좋지 못할뿐더러 한국에서 지낸 삶은 잊고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일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선물을 해줄 겁니다. 가난하지만 아이들의 행복한 미소와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삶의 소중함을 선물 받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직접 걷고 체험하며 느끼지 못한다면 모든 세상은 똑같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는 나쁜 것들도 많지만 좋은 것들도 많다는 걸 기억하세요.
아프리카를 통해 나 자신을 기억하지 말고 나를 통해 아프리카를 기억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용기를 내세요.
워크캠프 관계자가 현지와 교류가 필요한 부분
1.UPA 관계자는 봉사를 오는 해외 사람들에 대한 안전과 불편함을 신경 쓰는 책임감과 의무가 필요. (UPA OFFICE에서 캠프리더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큰 것 같고 말로만 묻는 것이 아닌 3주라는 시간 동안 정기적인 상담을 통해 불편사항 및 상황 체크가 필요하다고 생각 됨)
2.워크캠프가 끝나고 UPA에서 공항까지 픽업해주는 것에 대해 UPA 관계자가 책임지고 인솔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생각 됨. *UPA관계자를 통해 가면 얼마에 보내주겠다는 표시를 OFFICE직원이 직접 해결해 주었으면 함 (기존에 공항 도착했을 때 픽업해준 드라이버를 통해 가려 했으나 무리한 돈을 요구하여 UPA GUEST HOUSE담당자의 친구를 통해 그나마 할인된 가격으로 공항에 도착함. UPA OFFICE관계자는 선뜻 나서서 도와줄 생각이 없고 외부인에 대한 책임이 끝났다는 듯한 태도를 보여 인상을 찌푸리게 함).
3.아프리카 참여비 250유로에 대한 투명성 필요. (개인적 의견이지만 250유로가 UPA OFFICE or GUEST HOUSE에 투자 되고 있다고 생각을 갖게 함, 음식과 물, 숙식비로 제공한다 했지만 물은 결국 사비로 사먹게 되었다. 물탱크에 있는 물은 현지인도 먹으면 안 되는걸 아는지 단 1명도 먹지 않았다. 이물은 끓였을 때만 모두 먹었다. 또한 현지인도 물을 사먹는 사람이 많았음)
4.아프리카 봉사활동을 갔는데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낼 거라는 생각도 안하고 갔나? 라는 생각을 하는 분을 위해 적습니다.
"아프리카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이 많고 문화차이로 인해 우리나라와 달리 위험에 많이 취약해 있습니다. 그런 삶에 일부분 중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좋지 않은 습관을 올바르게 인도해줘야 하는 것이 우리 자원봉사자의 임무라 생각 됩니다. 봉사는 헌신적인 마음으로 다가가야 하며 작은 일에도 귀를 기울여 그들의 삶의 질을 보장해 줘야 한다 생각 됩니다. 제 의견이 수립되어 많은 뜻을 가지고 떠난 봉사자 들과 도움이 필요한 현지 사람들이 질 높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프리카 봉사활동의 초행길은 시작부터 역경으로 다가왔다. 회사를 다니면서 아프리카 정보와 준비를 하기엔 힘든 시간 이였고, 내 주위에는 아프리카로 여행을 갔던 친구도 지인도 없는 상황이였다. 평소 남는 시간에 모든걸 인터넷으로 정보를 찾으며 움직여야 했던 어려운 준비 작업이 기다리고 있었고, 나의 최선은 아프리카를 다녀온 많은 사람들의 경험담을 읽고 질문하며 정보를 최대한 습득하는 거였다. 워크캠프 합격 후 시간이 지날수록 애타는 마음은 점점 커져갔고 기대와 설렘 그리고 불안 또한 함께 커져나갔다. 실제로 아프리카로 워크캠프를 다녀온 분들의 이야기를 보면 걱정은 없다고 하지만 내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걱정을 하지 않겠는가? 모두가 떠나기 전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하지만, 막상 출국하는 날이 다가오고 비행기를 타는 순간 머리는 백지가 되었고 난 머리 속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간다의 첫 느낌은 무서웠다. 공항 밖의 많은 픽업 드라이버들의 시선이 날 압도해서 나는 기가 죽어버렸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를 픽업시켜줄 UPA드라이버를 찾는데 안보여서 그 장소를 계속 돌다 티셔츠에 에펠탑처럼 생긴 로고가 박힌 분들이 도와줘서 UPA OFFICE에 전화를 한 후에 픽업 담당 드라이버와 통화를 했다. 나중에 물어보니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내가 도착했다 한다. 그리고 나서 도착한 UPA! 한국에서 겁먹었던 느낌은 전부 사라지고 난 모든 것에 흥미를 느끼고 들떠버렸다. 솔직히 너무 즐거워서 나한테 뭐라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오리엔테이션이 시작되고 많은 우간다 친구들과 아시아 친구와 만나게 되었다. 아시아 구성인원은 한국인 3명, 일본인 1명 이렇게 구성되었고 다른 인원은 현지 우간다 친구들이 되었다. 내가 참여한 프로그램은 전통 악기를 배우고, 액세서리를 만들며 춤을 배우는 거였다. 모든 작업이 완성 되면 3번의 퍼포먼스를 통해 UPA를 홍보하여 봉사자들을 모집하는 거였다. 오리엔테이션에서 3개의 조가 나뉘어지고 나서 다양한 시간을 보내며 춤도 배우고 악기도 접하며 우간다 친구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나는 우간다 현지인이 되어가고 있었고 피부 또한 점점 타 들어가 짙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지 친구들과도 가까워져서 서로 장난을 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춤을 배워야 하는데 프로그램이 느슨하게 진행되어 불안하기도 했다. 우간다 문화? 인지는 확답을 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중요한 일이 코앞에 있어도 현지 친구들은 걱정을 안하며 여유가 넘쳤다. 왠지 이 나라 사람들 모두가 그런거 같다. 우리 나라였으면 밥 먹고 쉬는 시간 빼면 하루 종일 연습해도 모자를 텐데 이들의 여유는 정말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춤을 알려주는 선생님 또한 매일 오는 것이 아닌 일주일에 2~3번정도 와서 3~4시간정도 알려주고 가셨기에 수업이 없는 날에는 아시아 친구들끼리 모여 춤을 잘 추는 현지 친구를 통해 춤을 배우는 시간을 따로 가지며 연습했고 나름 즐거운 시간을 조율해 나아갔다. 다양한 악기를 배우고 만져보고 직접 알아가는 것 또한 즐거움의 묘미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액세서리를 만드는 방법에는 아프리카의 오랜 삶이 묻어 나왔다. 만드는 방법이 신기하고 아름다워서 나중에는 더 열심히 만들게 되었다. 하지만 문화충격은 시간이 지나면서도 꾸준히 받았고 그 문화충격은 우리나라 에서는 상상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화장실 같은 경우는 우리나라 오래 된 시골과 닮아서 신경은 쓰지 않았는데 주방의 문화는 3주간의 생활을 하면서도 이해 할 수 없고 교육시키고 싶었다. 하지만 나랑 문화가 다르다고 친구들을 교육을 한다는 것은 자존심과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기에 조용히 한국 친구들과 실천을 해서 위생을 하라는 것을 보여주곤 했다. 이러고 나면 왜 이렇게 했는지 묻는 친구가 생겼기 때문! 다만 현지 친구들은 열심히 하려는 친구와 의욕이 없는 친구가 많이 나뉘어서 요리를 할 때는 매번 하는 인물들 위주로만 요리를 하게 되어 관리가 힘들기도 했다. 뭐, 이런 덕분에 다양한 친구들과 친해지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퍼포먼스를 할 무렵 헤어스타일을 레게로 바꾸고 나니 현지 친구들 모두 나를 라스타 라고 부르게 되어 난 라스타 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3번의 퍼포먼스를 하며 다양한 친구들과 어울리고 가까워졌으며 내 자신이 현지인이 되가는 느낌을 얻어 행복한 시간을 보낸 거 같아 좋았다. 비록 한국처럼 다양한 음식을 많이 먹거나, 물을 쉽게 먹고 물을 펑펑 쓰지 못할뿐더러 매연이 심한 거리를 횡보해야 하고 가끔 물을 뜨러 지하수가 나오는 산 아래까지 가서 길러야 하는 힘든 고생도 해야 했다. 그리고 문화차이로 인해 위생이 낮은 환경에서 식사를 하거나 잠을 자는 고생도 해야 했다. 하지만 이렇게 힘든 생활을 견디며 시간을 보낸 것을 보상해주듯 아프리카의 자연과 삶은 나에게 행복을 안겨 주었다. 이 글을 읽고 걱정으로 가득찬 미래의 봉사 지원자에게 이렇게 전해 주고 싶습니다. 아프리카의 현실은 치안이 낮고 위생도 좋지 못할뿐더러 한국에서 지낸 삶은 잊고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일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선물을 해줄 겁니다. 가난하지만 아이들의 행복한 미소와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삶의 소중함을 선물 받게 될 것입니다.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직접 걷고 체험하며 느끼지 못한다면 모든 세상은 똑같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는 나쁜 것들도 많지만 좋은 것들도 많다는 걸 기억하세요.
아프리카를 통해 나 자신을 기억하지 말고 나를 통해 아프리카를 기억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용기를 내세요.
워크캠프 관계자가 현지와 교류가 필요한 부분
1.UPA 관계자는 봉사를 오는 해외 사람들에 대한 안전과 불편함을 신경 쓰는 책임감과 의무가 필요. (UPA OFFICE에서 캠프리더에게 의지하는 경향이 큰 것 같고 말로만 묻는 것이 아닌 3주라는 시간 동안 정기적인 상담을 통해 불편사항 및 상황 체크가 필요하다고 생각 됨)
2.워크캠프가 끝나고 UPA에서 공항까지 픽업해주는 것에 대해 UPA 관계자가 책임지고 인솔하는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고 생각 됨. *UPA관계자를 통해 가면 얼마에 보내주겠다는 표시를 OFFICE직원이 직접 해결해 주었으면 함 (기존에 공항 도착했을 때 픽업해준 드라이버를 통해 가려 했으나 무리한 돈을 요구하여 UPA GUEST HOUSE담당자의 친구를 통해 그나마 할인된 가격으로 공항에 도착함. UPA OFFICE관계자는 선뜻 나서서 도와줄 생각이 없고 외부인에 대한 책임이 끝났다는 듯한 태도를 보여 인상을 찌푸리게 함).
3.아프리카 참여비 250유로에 대한 투명성 필요. (개인적 의견이지만 250유로가 UPA OFFICE or GUEST HOUSE에 투자 되고 있다고 생각을 갖게 함, 음식과 물, 숙식비로 제공한다 했지만 물은 결국 사비로 사먹게 되었다. 물탱크에 있는 물은 현지인도 먹으면 안 되는걸 아는지 단 1명도 먹지 않았다. 이물은 끓였을 때만 모두 먹었다. 또한 현지인도 물을 사먹는 사람이 많았음)
4.아프리카 봉사활동을 갔는데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낼 거라는 생각도 안하고 갔나? 라는 생각을 하는 분을 위해 적습니다.
"아프리카는 가난한 환경 속에서 어려운 삶을 사는 사람이 많고 문화차이로 인해 우리나라와 달리 위험에 많이 취약해 있습니다. 그런 삶에 일부분 중 생명과 연결되어 있는 좋지 않은 습관을 올바르게 인도해줘야 하는 것이 우리 자원봉사자의 임무라 생각 됩니다. 봉사는 헌신적인 마음으로 다가가야 하며 작은 일에도 귀를 기울여 그들의 삶의 질을 보장해 줘야 한다 생각 됩니다. 제 의견이 수립되어 많은 뜻을 가지고 떠난 봉사자 들과 도움이 필요한 현지 사람들이 질 높은 혜택을 받을 수 있게 기회가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