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기대 없이 떠나 얻은 행복
Winter Renovation in Reykjavik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한국나이로 24살이 되어서 나는 독일로 교환학생을 가기로 결심했다. 아마도, 이제 살면서 내가 직장을 외국에 갖지 않는 이상, 이렇게 오랫동안 외국에서 지내는 것은 마지막일테니, 외국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다 해봐야지!, 하는 생각에 신입생일 때부터, 외국에 나가면 꼭 참여해야지 했던 워크캠프에 신청하게 되었다. 사실 독일과 가까운 나라로 가고 싶었는데, 겨울에는 열리는 나라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거의 어쩔 수 없이 아이슬란드로 신청하게 되었다. 하지만, 워크캠프가 끝나고 한달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나서 언제 아이슬란드에 가보겠는가?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자연경관 같은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슬란드에 간다고 결정을 했을 때에도 별 생각이 없었다. 물론 오로라를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들뜨기는 했지만, '아이슬란드'라는 국가에 대한 인상은 제로에 가까웠기 때문에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워크캠프를 가기 전에 친구와 삼주 가까이 여행을 했기 때문에 짐이 참 문제였다. 워크캠프에서 한국음식을 해주려고 챙긴 각종 재료들과 엄청 춥다고 이야기만 들었던 아이슬란드의 날씨에 맞춘 옷들이 생각보다 무거웠던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 꾸깃꾸깃 모든 짐을 넣고, 삼주의 여행을 끝냈다. 늘 함께였던 친구가 떠나고 아이슬란드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 비행기에 오르기 이틀전부터 혼자서 영국을 여행하긴 했지만, 혼자 다른 나라로 떠나는 기분은 굉장히 색달랐다. 거기다가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슬란드! 사실 아이슬란드가 어떤 언어를 쓰는지도 몰랐고, 레이캬비크가 수도라는 것도 워크캠프 신청을 한 후에서야 알게 되었다. 하여튼,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케블라비크 공항에 내려지자 나는 멘붕이 왔다. 워크캠프 숙소로 플라이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나의 짧은 영어실력 때문에 내가 버스 타는 것에서 약간 실수를 저질러 종점까지 가게 된 것이다.
다행히 친절하셨던 버스기사 할아버지께서는 내 숙소가 있는 곳까지 다시 데려다주셨고, 그 이후에 마주친 한 여자가 worldwide friends 숙소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었다. 그렇게 긴장한 상태로 월드와이프 프렌즈 숙소의 벨을 누르던 순간이 생각난다. 문이 열리고 안에서 서양인 여자가 튀어나왔다. 사실 그전까지 여행은 삼주가까이 했지만, 이렇게 외국인들과 직접 대면할 일은 많지 않아서 매우 당황했다. 내 영어가 너무 짧고, 그들의 말을 잘 못 알아 듣겠어서 멘붕에 멘붕을 연속으로 겪었다. 거기다가 내가 갔던 날은 그 캠프 안에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서양인이었다. 가뜩이나 영어도 못 알아 듣겠는데, 처음 대면하게 된 외국인이 서양인이라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물론 그들은 내 맘을 편하게 해주려고, 말도 자꾸 걸고 농담도 걸었지만, 그때 나는 정말 당황했다는 말로밖에 표현이 되지 않았다. 나의 캠프리더였던 제이콥의 첫인상은 정말 내가 생각했던 미국인 그 자체였다.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제이콥 덕분에 뭔가 내 마음이 놓였던 것 같다. 뭔가 내가 영어를 못해도 다 받아줄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고 2월 4일! 정말로 내가 지낼 워크캠프가 시작될 날이 다가왔다. 그런데 점심을 먹는데도 나와 같은 캠프를 하는 그 누구도 오지 않는 거다. 당황스러웠지만 곧 이어, 일본인인 쇼, 대만인인 애니, 일본인 미호, 그리고 대만인이고 서로 친구인 캐시, 캐서린, 이디가 왔다! 어제는 다들 서양인이라 당황했는데 우리 캠프는 다들 동양인이었다. 하여튼, 쇼를 제외한 우리 모두는 나이가 매우 비슷했다. 그래서 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첫날 첫미팅, 제이콥과 우리 캠프 모든 사람이 모여 우리가 할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가 할 일은 낡은 워크캠프 숙소를 레노베이트하는 것! 생각보다 쉬웠다. 방마다 페인트칠을 하고 깨끗이 청소하면 되는 것이었다. WF캠프는 보통 쉬는 시간이 많이 주어진다더니 그것이 사실이었다. 첫날에는 미팅만 하고 자유시간이 주어져 우리는 다같이 숙소를 나가 레이캬비크 시내를 돌아다녔다. 아이슬란드에 여행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동양인을 볼 일이 많지 않았는데, 그래서 우리가 다같이 몰려다니면 쳐다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여타 다른 국가와 달리 동양인이라고 비하하거나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친절하다더니, 그게 맞는 것 같았다.
이 글을 쓰면서 그때의 기억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는데, 레이캬비크의 시내 모습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오페라하우스, 카페 레몬의 생과일주스, 보너스 마트, 빈부 등등. 그리고 가장 큰 거리라고 해서 놀라웠던, 작은 레이캬비크의 거리들. 너무 아련하고, 그 모습이 한달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워크캠프 첫날 이후부터 우리는 방들과 복도를 청소하고 도배하고는 했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면 페인트가 잔뜩 뭍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 시내를 구경하고 카페에 가서 다같이 수다를 떨거나 멍을 때리기도 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밥을 해서 먹고 저녁에 잠들기 전까지 수다에 수다를 떨었다.
사실 우리 캠프에 한국인은 나 혼자로 유일했기 때문에 친구들이 외롭지 않냐고 가끔 카톡을 하기도 했었는데, 단언컨대 나는 절대로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혹여나 외로울까봐 다른 나라 친구들이 한국에 대한 질문도 많이 하고, 한국에 대해 아는 것도 많이 이야기해서 오히려 더 신나고, 내가 유일한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감사하기도 했다.
우리는 보통 각국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드라마나 가요, 만화 같은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아무래도 가까운 국가라 그런지 서로의 나라에 대해 아는 점이 많아서 재미있었다. 그리고 때때로 각자의 남자친구,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 때때로는 가족사에 관한 이야기도 하곤 했는데,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것이 역시 언어는 달라도 마음은 통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화나는 미묘한 포인트를 그들이 캐치하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더불어 나도 그들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친해지는 과정이나 서로 놀리면서 재밌게 노는 것도 내 한국친구들과 너무 비슷해서 매일매일 신기함을 느꼈다. 물론 모든 게 똑같은 것은 아니니, 가끔씩 다른 점도 느꼈지만, 그 점은 오히려 나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나에게 방해가 되는 정도가 아니고, 작은 충격정도?
우리는 평일에는 일을 하고, 시내를 구경하고, 수영장에 갔다. 그리고 주말에는 익스커젼을 떠났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자연경관에 큰 관심은 없다. 그렇지만 아이슬란드에서 보았던 경치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가끔씩 미니버스를 타고 밖을 둘러보면 햇살이 내리쬐는 풍경들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것 같을 때가 있었다. 그럴때면 이 광경을 절대 잊고 싶지 않아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 풍경에 대한 글을 쓸 때도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벅찬다는 것이 이런거구나 싶었다. 더불어서 운이 아주 좋았던 우리 캠프팀은 2주 동안 오로라를 세 번 이상 보았다. 한 번은 익스커젼에 떠나서 보았지만 두번은 레이캬비크에 있는 우리 숙소에서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 오로라를 보지 못할텐데 우리팀들은 정말 오로라가 나오면 또 오로라야? 난 그냥 잘래 소리가 나올 정도로 오로라를 자주 봤으니, 아이슬란드를 정말 완벽하게 즐겼다고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숙소를 레노베이트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다른 봉사활동도 했다. 바로 아이슬란드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는 뮤직페스티벌의 자원봉사자로 참가하게 된 것이다. 사실 내가 하고 싶었던 봉사활동은 페스티벌이여서, 처음에 캠프 담당자인 심이 그 제안을 할 때 너무나 기뻤다.
우리는 거의 삼일 가까이 저녁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페스티벌에서 일했다. 너무 피곤하긴 했지만, 가끔씩 자유시간이 주워져서 Diplo를 비롯한 유명뮤지션들의 공연을 공짜로 볼 수도 있었다. 사실 나는 음악은 잘 모르지만, 그 페스티벌에서 유명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고서는 여러 음악을 찾아듣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씩 자원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와서 말을 걸기도 했는데, 한 번은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뮤지션이 나에게 말을 걸기도 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자원봉사 이외에도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다. 바로 워크캠프 활동 중에 있었던 애니의 생일파티! 우리는 애니 몰래 초콜릿 케익을 준비해 깜짝 생일파티를 해주었다. 애니가 감동받았던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또, 한국음식을 준비했던 날도 기억에 남는다. 애초에 나는 우리 캠프만 먹을 줄 알고 8명 정도의 식사분을 준비해갔는데 캠프에 거의 열다섯명 가까운 사람이 있어서 음식을 하나 더 추가해야했다. 그래서 나는 불고기, 찜닭, 짜파게티를 준비했다. 물론 나혼자 그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너무 벅찼기 때문에 같은 워크캠프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었다. 한국음식을 배우고 싶다면서. 너무나 감동이었다. 여튼 다같이 준비한 한국음식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사람들은 음식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그리고 다들 너무나 맛있었다고 이야기해주었고, 레시피북에도 나의 찜닭 레시피를 남기고 왔다. 뿌듯했던 그날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사실 워크캠프동안 있었던 추억을 몇개만 뽑기는 너무 힘들다. 지금도 그때 썼던 일기를 보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그때 그순간이 생생하다.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일기에 써놨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 마지막날, 월드와이드프렌즈 화이트 하우스 앞에서 헤어질 때 나랑 캐시, 캐서린, 이디는 엉엉 울었다. 사실 우리들은 가까운 나라에 살 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만나려면 만날 수 있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붙어있지 못한다는 게 너무 슬펐다.
오기 전까지는 내가 과연 다른 나라애들이랑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가식적으로 생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는데, 정말 너무나 친해졌고, 내 마음을 진심으로 털어놓을 수 있었던 정말 좋은 친구들이었다. 비록 내 영어는 여전히 짧지만, 그들은 내 말을 마음으로 이해해주었고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수다를 떨 수 있었다.
헤어지고 난 후 우리는 곧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내가 독일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마친 후 한국에 들어간 다음, 대만친구들은 한국에 오기로 했다. 더불어서 나도 내 한국친구와 함께 대만에 놀러가서 대만아이들을 함께 만나기로 했다. 더불어서 일본인 미호도 우리나라에 오면 내가 꼭 대접하기로 했다.
정말 꿈만 같던 2주일이었다. 한달이 지났지만, 방금 전에도 워크캠프 친구들과 메신저를 주고 받았다. 한 달 전과 똑같이, 우리는 서로를 아주 친한 친구처럼 여기며, 장난도 서스럼 없이 치고, 보고싶다는 말, 곧 만나자는 말도 한다.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 외국에 있는 나의 안부를 묻고, 나를 보고싶어하는 친구들이 여럿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나 꿈만 같다. 워크캠프에서의 경험으로 지금 독일에서도 더 열린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언어는 달라도 진심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으므로. 진부한 말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맞는 말이었다. 언어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었다.
정말 소중한 것을 많이 얻을 수 있었던 나의 첫번째 워크캠프, 정말 고맙습니다!
워크캠프를 가기 전에 친구와 삼주 가까이 여행을 했기 때문에 짐이 참 문제였다. 워크캠프에서 한국음식을 해주려고 챙긴 각종 재료들과 엄청 춥다고 이야기만 들었던 아이슬란드의 날씨에 맞춘 옷들이 생각보다 무거웠던 것이다. 그래도 어떻게 꾸깃꾸깃 모든 짐을 넣고, 삼주의 여행을 끝냈다. 늘 함께였던 친구가 떠나고 아이슬란드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사실 비행기에 오르기 이틀전부터 혼자서 영국을 여행하긴 했지만, 혼자 다른 나라로 떠나는 기분은 굉장히 색달랐다. 거기다가 내가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슬란드! 사실 아이슬란드가 어떤 언어를 쓰는지도 몰랐고, 레이캬비크가 수도라는 것도 워크캠프 신청을 한 후에서야 알게 되었다. 하여튼,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케블라비크 공항에 내려지자 나는 멘붕이 왔다. 워크캠프 숙소로 플라이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데, 나의 짧은 영어실력 때문에 내가 버스 타는 것에서 약간 실수를 저질러 종점까지 가게 된 것이다.
다행히 친절하셨던 버스기사 할아버지께서는 내 숙소가 있는 곳까지 다시 데려다주셨고, 그 이후에 마주친 한 여자가 worldwide friends 숙소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었다. 그렇게 긴장한 상태로 월드와이프 프렌즈 숙소의 벨을 누르던 순간이 생각난다. 문이 열리고 안에서 서양인 여자가 튀어나왔다. 사실 그전까지 여행은 삼주가까이 했지만, 이렇게 외국인들과 직접 대면할 일은 많지 않아서 매우 당황했다. 내 영어가 너무 짧고, 그들의 말을 잘 못 알아 듣겠어서 멘붕에 멘붕을 연속으로 겪었다. 거기다가 내가 갔던 날은 그 캠프 안에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서양인이었다. 가뜩이나 영어도 못 알아 듣겠는데, 처음 대면하게 된 외국인이 서양인이라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물론 그들은 내 맘을 편하게 해주려고, 말도 자꾸 걸고 농담도 걸었지만, 그때 나는 정말 당황했다는 말로밖에 표현이 되지 않았다. 나의 캠프리더였던 제이콥의 첫인상은 정말 내가 생각했던 미국인 그 자체였다. 자유로운 영혼을 소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던 제이콥 덕분에 뭔가 내 마음이 놓였던 것 같다. 뭔가 내가 영어를 못해도 다 받아줄 것만 같은 느낌?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고 2월 4일! 정말로 내가 지낼 워크캠프가 시작될 날이 다가왔다. 그런데 점심을 먹는데도 나와 같은 캠프를 하는 그 누구도 오지 않는 거다. 당황스러웠지만 곧 이어, 일본인인 쇼, 대만인인 애니, 일본인 미호, 그리고 대만인이고 서로 친구인 캐시, 캐서린, 이디가 왔다! 어제는 다들 서양인이라 당황했는데 우리 캠프는 다들 동양인이었다. 하여튼, 쇼를 제외한 우리 모두는 나이가 매우 비슷했다. 그래서 더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첫날 첫미팅, 제이콥과 우리 캠프 모든 사람이 모여 우리가 할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우리가 할 일은 낡은 워크캠프 숙소를 레노베이트하는 것! 생각보다 쉬웠다. 방마다 페인트칠을 하고 깨끗이 청소하면 되는 것이었다. WF캠프는 보통 쉬는 시간이 많이 주어진다더니 그것이 사실이었다. 첫날에는 미팅만 하고 자유시간이 주어져 우리는 다같이 숙소를 나가 레이캬비크 시내를 돌아다녔다. 아이슬란드에 여행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동양인을 볼 일이 많지 않았는데, 그래서 우리가 다같이 몰려다니면 쳐다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여타 다른 국가와 달리 동양인이라고 비하하거나 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친절하다더니, 그게 맞는 것 같았다.
이 글을 쓰면서 그때의 기억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는데, 레이캬비크의 시내 모습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오페라하우스, 카페 레몬의 생과일주스, 보너스 마트, 빈부 등등. 그리고 가장 큰 거리라고 해서 놀라웠던, 작은 레이캬비크의 거리들. 너무 아련하고, 그 모습이 한달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워크캠프 첫날 이후부터 우리는 방들과 복도를 청소하고 도배하고는 했다. 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면 페인트가 잔뜩 뭍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 시내를 구경하고 카페에 가서 다같이 수다를 떨거나 멍을 때리기도 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밥을 해서 먹고 저녁에 잠들기 전까지 수다에 수다를 떨었다.
사실 우리 캠프에 한국인은 나 혼자로 유일했기 때문에 친구들이 외롭지 않냐고 가끔 카톡을 하기도 했었는데, 단언컨대 나는 절대로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혹여나 외로울까봐 다른 나라 친구들이 한국에 대한 질문도 많이 하고, 한국에 대해 아는 것도 많이 이야기해서 오히려 더 신나고, 내가 유일한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감사하기도 했다.
우리는 보통 각국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드라마나 가요, 만화 같은 이야기도 많이 했는데, 아무래도 가까운 국가라 그런지 서로의 나라에 대해 아는 점이 많아서 재미있었다. 그리고 때때로 각자의 남자친구,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 때때로는 가족사에 관한 이야기도 하곤 했는데,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것이 역시 언어는 달라도 마음은 통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화나는 미묘한 포인트를 그들이 캐치하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다. 더불어 나도 그들의 마음을 잘 읽을 수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그리고 친구들과 친해지는 과정이나 서로 놀리면서 재밌게 노는 것도 내 한국친구들과 너무 비슷해서 매일매일 신기함을 느꼈다. 물론 모든 게 똑같은 것은 아니니, 가끔씩 다른 점도 느꼈지만, 그 점은 오히려 나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나에게 방해가 되는 정도가 아니고, 작은 충격정도?
우리는 평일에는 일을 하고, 시내를 구경하고, 수영장에 갔다. 그리고 주말에는 익스커젼을 떠났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나는 자연경관에 큰 관심은 없다. 그렇지만 아이슬란드에서 보았던 경치들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가끔씩 미니버스를 타고 밖을 둘러보면 햇살이 내리쬐는 풍경들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눈물이 날 것 같을 때가 있었다. 그럴때면 이 광경을 절대 잊고 싶지 않아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그 풍경에 대한 글을 쓸 때도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벅찬다는 것이 이런거구나 싶었다. 더불어서 운이 아주 좋았던 우리 캠프팀은 2주 동안 오로라를 세 번 이상 보았다. 한 번은 익스커젼에 떠나서 보았지만 두번은 레이캬비크에 있는 우리 숙소에서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 오로라를 보지 못할텐데 우리팀들은 정말 오로라가 나오면 또 오로라야? 난 그냥 잘래 소리가 나올 정도로 오로라를 자주 봤으니, 아이슬란드를 정말 완벽하게 즐겼다고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숙소를 레노베이트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다른 봉사활동도 했다. 바로 아이슬란드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리는 뮤직페스티벌의 자원봉사자로 참가하게 된 것이다. 사실 내가 하고 싶었던 봉사활동은 페스티벌이여서, 처음에 캠프 담당자인 심이 그 제안을 할 때 너무나 기뻤다.
우리는 거의 삼일 가까이 저녁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페스티벌에서 일했다. 너무 피곤하긴 했지만, 가끔씩 자유시간이 주워져서 Diplo를 비롯한 유명뮤지션들의 공연을 공짜로 볼 수도 있었다. 사실 나는 음악은 잘 모르지만, 그 페스티벌에서 유명 뮤지션들의 공연을 보고서는 여러 음악을 찾아듣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씩 자원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면 사람들이 와서 말을 걸기도 했는데, 한 번은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뮤지션이 나에게 말을 걸기도 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다.
자원봉사 이외에도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추억이 있다. 바로 워크캠프 활동 중에 있었던 애니의 생일파티! 우리는 애니 몰래 초콜릿 케익을 준비해 깜짝 생일파티를 해주었다. 애니가 감동받았던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또, 한국음식을 준비했던 날도 기억에 남는다. 애초에 나는 우리 캠프만 먹을 줄 알고 8명 정도의 식사분을 준비해갔는데 캠프에 거의 열다섯명 가까운 사람이 있어서 음식을 하나 더 추가해야했다. 그래서 나는 불고기, 찜닭, 짜파게티를 준비했다. 물론 나혼자 그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너무 벅찼기 때문에 같은 워크캠프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었다. 한국음식을 배우고 싶다면서. 너무나 감동이었다. 여튼 다같이 준비한 한국음식은 아주 성공적이었다. 사람들은 음식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그리고 다들 너무나 맛있었다고 이야기해주었고, 레시피북에도 나의 찜닭 레시피를 남기고 왔다. 뿌듯했던 그날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
사실 워크캠프동안 있었던 추억을 몇개만 뽑기는 너무 힘들다. 지금도 그때 썼던 일기를 보면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그때 그순간이 생생하다. 마지막 헤어지는 순간까지도 일기에 써놨는데,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슬프다. 마지막날, 월드와이드프렌즈 화이트 하우스 앞에서 헤어질 때 나랑 캐시, 캐서린, 이디는 엉엉 울었다. 사실 우리들은 가까운 나라에 살 수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만나려면 만날 수 있지만, 그래도 지금처럼 붙어있지 못한다는 게 너무 슬펐다.
오기 전까지는 내가 과연 다른 나라애들이랑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가식적으로 생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의심이 들었는데, 정말 너무나 친해졌고, 내 마음을 진심으로 털어놓을 수 있었던 정말 좋은 친구들이었다. 비록 내 영어는 여전히 짧지만, 그들은 내 말을 마음으로 이해해주었고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수다를 떨 수 있었다.
헤어지고 난 후 우리는 곧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내가 독일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마친 후 한국에 들어간 다음, 대만친구들은 한국에 오기로 했다. 더불어서 나도 내 한국친구와 함께 대만에 놀러가서 대만아이들을 함께 만나기로 했다. 더불어서 일본인 미호도 우리나라에 오면 내가 꼭 대접하기로 했다.
정말 꿈만 같던 2주일이었다. 한달이 지났지만, 방금 전에도 워크캠프 친구들과 메신저를 주고 받았다. 한 달 전과 똑같이, 우리는 서로를 아주 친한 친구처럼 여기며, 장난도 서스럼 없이 치고, 보고싶다는 말, 곧 만나자는 말도 한다.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 외국에 있는 나의 안부를 묻고, 나를 보고싶어하는 친구들이 여럿 생겼다는 사실이 너무나 꿈만 같다. 워크캠프에서의 경험으로 지금 독일에서도 더 열린 마음으로 생활할 수 있게 되었다. 언어는 달라도 진심은 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으므로. 진부한 말이라 생각했는데, 정말 맞는 말이었다. 언어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마음이었다.
정말 소중한 것을 많이 얻을 수 있었던 나의 첫번째 워크캠프, 정말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