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세상 속의 나를 찾아 떠난 용기
Pekalongan Street Childre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인생은 곧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가는 과정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항상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언제 가장 행복한지 궁금해 했다. 이번 워크캠프 또한 나를 알기위한 큰 도전이었다.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의존적인 내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상황에 닥쳤을 때 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 내 한계를 알아보고 싶었다. 해외여행 경험도 거의 없는 나는 비행기 표를 구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자유여행 일정, 숙소, 이동수단, 문화, 주의할 점 등을 준비하는데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 중에서도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주변사람들의 응원보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더 많이 들리자, 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커지기 시작했다. 출발 직전까지 많이 흔들렸지만 나와 한 약속이었기에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에 다녀와 일기를 보니 바보같이 왜 망설였을까 싶다.
자유여행을 가장한 3일간의 이동이 끝나고 워크캠프가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한국인 2명(나, 성희), 일본인 3명(마사타카, 나나, 카나에), 인도네시아인 1명(우리), 독일인 1명(한나) 이렇게 총 7명이었고, 독일인 캠프리더 1명(타냐), 인도네시아인 캠프리더 1명(디까) 그리고 4명의 독일인 LMTV(도린, 베키, 노라, 요요)와 함께 생활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색했고 내가 여기에 왜 와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특히 대학에 들어와 영어로 대화할 일이 거의 없었기에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영어의 장벽도 잠시, 만국의 언어라는 표정과 바디랭귀지로 얼마든지 대화를 나눴고 회의, 준비, 진행도 원활하게 할 수 있었다.
캄보디아 해외봉사 이후 두 번째로 한 Kids/Education. 당시 가장 많이 깨달았던 점이 지식을 알려주는 것도 교육이지만, 사랑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한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올 수 있었다. 이전에 했던 해외봉사와 달리 워크캠프에서는 활동 내용도 매번 다함께 회의를 통해 정하고 함께 재료를 사서 준비를 했다. 또한 참가자들과 한 방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서로의 문화에 대해 궁금했던 것부터 진로, 연애상담까지. 우리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한 가족이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귀요미송’과 ‘한국음식의 인기’다. 외식경영을 전공하는 성희가 갖은 양념과 재료를 모두 가져온 덕에 불고기, 잡채, 비빔면, 비빔밥, 김밥, 호떡을 만들 수 있었다.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매번 싹싹 비운 그릇을 보며 뿌듯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인 캠프리더인 디까의 제안에 아이들에게 ‘귀요미송’을 알려줬는데 아이들뿐 아니라 참가자들과 인도네시아 친구들까지 정말 좋아했다. 귀요미송뿐 아니라 culture night때 아리랑과 태권도, 강남스타일과 함께 곰 세마리 율동도 알려줬는데 이것도 정말 좋아했다. 한국 드라마와 k-pop, 한국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북한에 정말 많은 관심을 가지는 외국인들을 보며 한국인으로서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왔다. 눈 깜짝할 사이 14일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과 이 공간 그리고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울지 않기로 약속하고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4학년을 앞둔 마지막 방학, 수많은 고민거리를 해결하지 못한 채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고 떠났던 워크캠프. 워크캠프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과 경험, 무엇보다 앞으로 이 고민들과 걱정거리를 해결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나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을 주었다. 그동안 상상하지 못한 더 넓었던 내 세상과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세상 속의 나를 알게 해 준 이 기회에 감사하다.
자유여행을 가장한 3일간의 이동이 끝나고 워크캠프가 시작됐다. 참가자들은 한국인 2명(나, 성희), 일본인 3명(마사타카, 나나, 카나에), 인도네시아인 1명(우리), 독일인 1명(한나) 이렇게 총 7명이었고, 독일인 캠프리더 1명(타냐), 인도네시아인 캠프리더 1명(디까) 그리고 4명의 독일인 LMTV(도린, 베키, 노라, 요요)와 함께 생활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어색했고 내가 여기에 왜 와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특히 대학에 들어와 영어로 대화할 일이 거의 없었기에 커뮤니케이션을 하는데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영어의 장벽도 잠시, 만국의 언어라는 표정과 바디랭귀지로 얼마든지 대화를 나눴고 회의, 준비, 진행도 원활하게 할 수 있었다.
캄보디아 해외봉사 이후 두 번째로 한 Kids/Education. 당시 가장 많이 깨달았던 점이 지식을 알려주는 것도 교육이지만, 사랑을 알려주는 것도 중요한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고 올 수 있었다. 이전에 했던 해외봉사와 달리 워크캠프에서는 활동 내용도 매번 다함께 회의를 통해 정하고 함께 재료를 사서 준비를 했다. 또한 참가자들과 한 방에서 생활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눴다. 서로의 문화에 대해 궁금했던 것부터 진로, 연애상담까지. 우리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한 가족이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귀요미송’과 ‘한국음식의 인기’다. 외식경영을 전공하는 성희가 갖은 양념과 재료를 모두 가져온 덕에 불고기, 잡채, 비빔면, 비빔밥, 김밥, 호떡을 만들 수 있었다. 폭발적인 반응과 함께 매번 싹싹 비운 그릇을 보며 뿌듯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인 캠프리더인 디까의 제안에 아이들에게 ‘귀요미송’을 알려줬는데 아이들뿐 아니라 참가자들과 인도네시아 친구들까지 정말 좋아했다. 귀요미송뿐 아니라 culture night때 아리랑과 태권도, 강남스타일과 함께 곰 세마리 율동도 알려줬는데 이것도 정말 좋아했다. 한국 드라마와 k-pop, 한국 애니메이션을 좋아하고 북한에 정말 많은 관심을 가지는 외국인들을 보며 한국인으로서 복잡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왔다. 눈 깜짝할 사이 14일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마지막 날이 찾아왔다. 우리가 함께 한 시간과 이 공간 그리고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울지 않기로 약속하고 다음의 만남을 기약하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4학년을 앞둔 마지막 방학, 수많은 고민거리를 해결하지 못한 채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고 떠났던 워크캠프. 워크캠프는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과 경험, 무엇보다 앞으로 이 고민들과 걱정거리를 해결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나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을 주었다. 그동안 상상하지 못한 더 넓었던 내 세상과 미처 깨닫지 못했던 세상 속의 나를 알게 해 준 이 기회에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