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나콘시탐마랏, 낯선 곳에서 찾은 용기
BAAN DON SAI SCHOOL-1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처음부터 워크캠프에 참여하겠다는 마음으로 태국을 간건 아니였다. 단순히 나를 위해 쉬기위한 여행으로 계획을 잡던 중 예전에 인터넷에서 봤던 워크캠프라는 프로그램을 기억해, 한번 나도 참여해볼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신청하게 됐었다.
캠프사람들과 함께 앞으로 우리가 봉사할 학교의 선생님들을 만나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다음날에서야 학생들을 만나게 됐다. 내가 이제껏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은 적이 있었던가, 당황스러웠다. 전교생이 약 60여명이 조금 넘는 작은 시골학교 BANDONSAI에 도착했다. 한국에선 30명도 채 되지 않는 교실에서 발표하는 것도 너무 떨려 얼마나 준비를 하고 또 했었는데 이렇게 많은 이들 앞에 서서 그것도 영어로 말을 하려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먼저 인사를 하자 아이들 역시 수줍은 듯 웃으며 서로 친구 뒤에 숨기 바빴다. 인사가 끝나고 들려오는 소식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라는 내용이였다. 한국에서도 영어라면 과감히 포기할 정도로 자신이 없던 나였는데 심지어 그것을 가르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2인 1조로 조를 짜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는데 나는 벨기에에서 온 한 아저씨와 같은팀이 되었다. 영어공포증이 있는 나는 당장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파트너와 의사소통부터가 걱정이였을 정도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듯 내 파트너의 부인이 선생님인 덕에 그는 그에 맞는 수업자료들을 갖고 있었고 덕분에 나는 많은 도움을 받아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학교의 모든 수업이 마치면 그때부터는 선생과 제자의 역할이 바뀌며 태국어 수업이 진행되었다. 내 수업에 대해 보답하듯 처음에는 수줍어 하던 아이들이 언제 그랬냐는듯 옆에 달라붙어 우리를 끌고다니면서 이것저것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태국어로 알려준다.
한국에서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였다. 오히려 싫어하는쪽에 가까웠지, 그리고 이곳에 와서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먼저 너무나도 순수하고 맑은 마음으로 다가와주는 아이들 덕분이였을 것이다. 그들의 그런 마음을 어느새 나도 모르게 배우고 있었고 표정이 없던 내 얼굴에 웃음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있을때는 좀처럼 나의 웃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랬던 내가 이곳에서 그토록 싫어하던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뛰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다. 처음에 이곳에 온 이유도 어쩌면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왔을지도 모른다. 경험, 혹은 스펙을 조금 더 얻기위해? 그러한 이유들로 찾아왔던 이곳에서 이들에게 많은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바라는 행복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길다고 생각했던 2주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캠프가 끝나기 하루전날 우연치않게 전에 만난적이 있던 한 한생의 할머니를 다시 만나게 됐는데, 그전에 잠시 스쳐가듯 만난 나를 기억하시고 반갑게 맞으며 웃어주셨다. 그러고는 헤어질때 나를 꼭 안아 다독여주시며 "나는 네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곳에서 더 머무르면 안되니?" 라고 말씀하셨다. 비록 내가 태국어를 직접 알아들을 수 없기에 캠프 리더가 통역을 도와주는 덕에 알아들을 수 있었으나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진심이 와닿은듯 마음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나는 아무것도 한것이 없는데 너무나도 나에게 친절한 이들에게 미안할 따름이였다.
낯선이들과 낯선곳에서 서로 다른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소통한다는것이 쉽지는 않았으나 그랬기에 더욱 값진 시간들이였던것 같다.
캠프사람들과 함께 앞으로 우리가 봉사할 학교의 선생님들을 만나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다음날에서야 학생들을 만나게 됐다. 내가 이제껏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이들에게 주목받은 적이 있었던가, 당황스러웠다. 전교생이 약 60여명이 조금 넘는 작은 시골학교 BANDONSAI에 도착했다. 한국에선 30명도 채 되지 않는 교실에서 발표하는 것도 너무 떨려 얼마나 준비를 하고 또 했었는데 이렇게 많은 이들 앞에 서서 그것도 영어로 말을 하려니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내가 먼저 인사를 하자 아이들 역시 수줍은 듯 웃으며 서로 친구 뒤에 숨기 바빴다. 인사가 끝나고 들려오는 소식 이곳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라는 내용이였다. 한국에서도 영어라면 과감히 포기할 정도로 자신이 없던 나였는데 심지어 그것을 가르친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2인 1조로 조를 짜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는데 나는 벨기에에서 온 한 아저씨와 같은팀이 되었다. 영어공포증이 있는 나는 당장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파트너와 의사소통부터가 걱정이였을 정도였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듯 내 파트너의 부인이 선생님인 덕에 그는 그에 맞는 수업자료들을 갖고 있었고 덕분에 나는 많은 도움을 받아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학교의 모든 수업이 마치면 그때부터는 선생과 제자의 역할이 바뀌며 태국어 수업이 진행되었다. 내 수업에 대해 보답하듯 처음에는 수줍어 하던 아이들이 언제 그랬냐는듯 옆에 달라붙어 우리를 끌고다니면서 이것저것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태국어로 알려준다.
한국에서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좋아하는 성격은 아니였다. 오히려 싫어하는쪽에 가까웠지, 그리고 이곳에 와서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 나에게 먼저 너무나도 순수하고 맑은 마음으로 다가와주는 아이들 덕분이였을 것이다. 그들의 그런 마음을 어느새 나도 모르게 배우고 있었고 표정이 없던 내 얼굴에 웃음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있을때는 좀처럼 나의 웃는 모습을 보기가 힘들었다. 그랬던 내가 이곳에서 그토록 싫어하던 아이들과 함께 웃으며 뛰놀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다. 처음에 이곳에 온 이유도 어쩌면 나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왔을지도 모른다. 경험, 혹은 스펙을 조금 더 얻기위해? 그러한 이유들로 찾아왔던 이곳에서 이들에게 많은것들을 배우게 되었다. 우리가 흔히 바라는 행복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그리 어려운것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길다고 생각했던 2주라는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캠프가 끝나기 하루전날 우연치않게 전에 만난적이 있던 한 한생의 할머니를 다시 만나게 됐는데, 그전에 잠시 스쳐가듯 만난 나를 기억하시고 반갑게 맞으며 웃어주셨다. 그러고는 헤어질때 나를 꼭 안아 다독여주시며 "나는 네가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어, 이곳에서 더 머무르면 안되니?" 라고 말씀하셨다. 비록 내가 태국어를 직접 알아들을 수 없기에 캠프 리더가 통역을 도와주는 덕에 알아들을 수 있었으나 그 말을 듣는 순간 그 진심이 와닿은듯 마음이 뭉클해짐을 느꼈다. 나는 아무것도 한것이 없는데 너무나도 나에게 친절한 이들에게 미안할 따름이였다.
낯선이들과 낯선곳에서 서로 다른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모여 함께 소통한다는것이 쉽지는 않았으나 그랬기에 더욱 값진 시간들이였던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