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스위스, 봉사로 채운 나의 여름

작성자 여근동
스위스 WS13KSL01 · KIDS/MANU 2013. 07 스위스 죽

SCOUT CAMP 1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 ‘Volunteering is not about time, but heart’

모두가 망설인 순간 시간은 지나버리고 없다. 나는 그 순간 2013년 여름방학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단순히 해외여행이랍시고 에펠탑에서 인증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싫었던 나는 국제 워크캠프 기구를 통해 해외 봉사활동을 나가게 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망설일 필요도 없이 지원서를 위하여 한글로 써내려갔고, 부끄러운 실력이지만 하나하나 번역했다. 한 번도 외국을 나가보지 못한 나는 걱정에만 둘러싸여 있었다. 고민 하던 찰나, 내게는 외국인이지만 결국 같은 사람인데 나의 진심이 통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기대를 했다. 첫줄에 써내려간 ‘봉사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다‘. 그들은 나의 마음을 선택하여 뽑았다. 여권 사진을 찍고, 침낭도 구입하고, 국제 친구들을 위한 선물도 사며 모든 준비를 완료했다.

- The scout camp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베이징과 암스테르담을 경유하고 스위스 취리히에 도착했다. 수하물을 찾고 나가는 내게 눈에 익은 ‘work camp’ 라는 피켓이 보였다. 그 담당자와 함께 캠프장으로 향했다. 장시간 비행과 낯선 환경들. 하지만 수학여행의 즐거움처럼 내게는 설렘 역시 매우 컸다. 캠프장에는 선발대 스위스인들이 있었고, 캠프파이어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독일어를 썼고, 지방에 따라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 영어를 사용할 줄 알았다. 문법에 맞지 않는 문장으로 영어를 구사하는 동양인에게 많은 관심을 주었다. 북한에서 왔느냐, 군대 다녀왔느냐, 전쟁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진정성 있게 생각해 본적이 없던 내게 부끄럽지만 어려운 질문이었다.

‘kasola 2013’이란 지역의 아동 스카우트 캠프라는 뜻이다. 산 중턱에 축구운동장 4개만큼 큰 평지가 있는데, 그곳에 각 지역의 어린이 스카우트들을 초대하고 캠핑을 하는 것이다. 나의 역할은 7개국 15명으로 구성된 워크캠퍼로써 학생들을 보호하고, 지도하며 어린이들을 위한 목재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모두는 600여명의 각 지역 보이스카우트, 걸스카우트 학생들을 위함이다.



- 너무나도 달랐던 그들.

평소 ymca 청소년 문화의 집과 로뎀의 집을 통해 꾸준한 봉사활동을 진행해온 터라 특별한 걱정은 없었다. 학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고, 무료로 과외를 해주는 일은 터무니없는 경험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600명의 학생들을 마주하기 전 1주일간의 공사는 내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끊임없이 목재를 나르는 대형트럭들이 들어오더니, 그들은 필요에 따라 길이를 측정하고 전기톱으로 자르기 시작했다. 여성 남성 구분 없이 모두들 열심히 일했다. 서양인에 비해 체구가 작은 내게 그들은 내 몸통만한 전기톱을 권했다. 극구 사양하던 중 그래도 대한민국이란 이미지에 선을 그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남은 목재들을 온종일 자르게 되었고, 난생 처음 나는 헐크가 되는 기분을 느꼈다.

한날 나는 메마른 땅에 구멍을 파라는 지시를 받았다. 군대에서 배운 기술로 어깨에 힘을 가득 넣고 첫 삽을 뜨는 순간 그들은 내게 소리쳤다.
‘No No No!’
무언가 잘못되었다. 옆에 있던 친구는 첫 삽의 흔적 속에서 무성했던 잔디를 뿌리째 가져오더니 옆에다 모셔뒀다. 구멍을 다 파고 미리 잘라둔 통나무를 심고서 그들은 흙으로 다시 메운 뒤 모셔둔 잔디를 올려두고 물을 줬다. 그들은 내게 잔디가 사람이었다면 이미 죽었다고 말했다. 뭐 이런 것으로 그러지 했던 내게 잔잔한 충격을 안겼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은 이러한 곳에서 시작될 것이다.

17미터짜리 타워와 8미터 길이의 대형 다리, 그 외에 많은 건축물들을 완성하고 기다리던 600명의 스카우트 학생들을 맞이했다. 미취학 아동, 장애가 있는 학생들, 중고등학생들까지 다양한 그룹의 스카우트들이 모였다. 다행스럽게도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만든 건축물 마을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너도나도 타워로 올라가고, 다리를 건넜다. 나는 너무 귀여운 아이들과 짤막한 대화를 나누며 같이 사진을 찍었다. 성공적인 개회식 이후 그들은 캠퍼들을 긴급소집하며 알렸다. 더 이상 아이들 앞에서 스마트폰을 꺼내지 마라는 지시였다. 아이들에게는 자연적이고, 좋은 것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한 번 민망하고, 당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이가 울면 스마트폰 영상으로 달래주는 한국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어쩌면 그들이 생각하는 세상과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이 다른 것은 당연할지 모른다. 다른 환경 속에 잘못을 따지듯 편견가지며 다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니지만, 중용을 지켜 수용할 부분을 수용하는 것은 매우 이롭다. 그래서 나는 그들만의 세상 속에서 나의 작은 생각 하나 바꾸는 법을 배웠다.

- 그들만의 스카우트

매일이 다채로운 행사들로 가득했고, 그 스케줄 사이에서도 중앙에서의 강제적인 통제 없이 자율적으로 행했다. 그들의 개방적인 신념을 볼 수 있는 대표적인 대목이었다. 이렇게 매일 뿌듯함을 매일 선사해주는 스카우트 캠프에서 색다른 경험들도 많이 할 수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단연 스카우트 네임이었다. 어린학생들은 자신의 지역에 있는 스카우트 중 들고 싶은 곳에 가입을 할 수 있고, 특별한 의식을 통하여 스카우트 네임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갖는다. 누구나 꿈꿔온 해리포터의 한 장면 같았다.

어느 날 밤, 나는 그 멋진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시간은 밤 11시 30분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들의 미션은 먼저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 앉아 물속에 떠있는 사과를 손대지 않은 채 한 입 베어 무는 것이다. 그 후 밀가루 속에 담긴 초콜릿을 찾아 먹는다. 그러고 나면 얼굴엔 새하얀 밀가루 범벅이 되고 만다. 끝으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숲 속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만나 물풍선을 고르고, 머리 위로 터뜨리면 그 속에 담긴 이름표가 자신의 스카우트 네임이 되는 것이다. 그 스카우트 네임을 확인하고 외치면, 친구들은 박수를 치며 놀리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 스카우트 리더는 그 아이의 이마에 저마다의 네임을 써주었다.

다른 의미라기보다 너무나도 부러웠다. 그 누구도 무슨 뜻인지 알려주지 않고, 스스로 살아가며 알게 하는 닉네임을 가지고 평생 친구들과 서로의 이름을 불러준다. 다섯 살 여섯 살 베기의 아이들에겐 대단한 도전이고, 경험이다. 학원을 보내 영어를 가르치고 수학을 가르치는 것 보다 더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워크캠프 담당자는 내게 이러한 공동체 속 커뮤니티로써 많은 이들을 접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어린아이들에게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왜 굳이 세계 각국의 캠퍼들을 모집하였는지 알게 되었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 대한민국의 작은 외교관, 뉴스와 신문에 오르다!

나는 출발 때부터 그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유난히 일교차가 심한 스위스에서 낮 동안의 직사광선은 너무나 따가웠기에, 미리 준비했던 마스크 팩은 유용하게 쓰였다. 모두에게 나눠주고는 다 같이 팩을 했다. 또한 불고기 소스와 고추장, 라면을 준비했던 나는 한식 디너파티를 열었다. 모두를 초대하여 어설픈 솜씨지만 불고기와, 고추장 불고기, 라면을 만들어 보였다. 맵다며 물을 찾는 친구들, 맛이 너무 좋다는 친구들 모두가 만족하는 저녁이었다. 때마침 지역의 거대한 행사인 kasola 2013을 취재하러온 기자가 내게 영어로 물었다. 나는 당당히 한국 음식임을 알렸고, 결국 신문에 올라갔다. 그리고 지역 라디오에 초대되어 20분간 생방송으로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나는 한국을 알렸다. 분단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 하지만 강한 나라. 짧은 나의 영어 실력 탓에 더욱 자세히 많은 말을 하지 못해서 너무 아쉬웠지만 최선을 다했다.

- 한국으로 돌아오며

꿈같던 시간들이 야속하게도 빠르게 지나갔다. 매일 밤마다 기타 치며 노래를 불렀던 캠프파이어, 그 속에서 서로의 이름과 나이를 물어가며 80여명의 스태프사이에서 여러 주제를 토의했던 비어파티, 봉사활동을 쉬는 휴일엔 초콜릿 공장과 라인폭포 탐방, 스카우트 네임을 부러워하던 캠퍼들에게 선사한 마지막 날 밤의 스카우트 네임 의식, 매일 땀 흘려 일한 뒤엔 근처 강가에서 땀을 식히던 일들까지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난 일들을 모두 회상하기도 전에 마지막 날이 왔다. 그 날은 텐트에서 자지 않고 모두가 침낭을 들고 야외 취침을 했다. 스위스 하늘의 별을 보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다른 피부색과 문화를 가진 이들은 저마다의 특색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음 하나만큼은 같았다. 그저 사회에서 조금 벗어나 자신마다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 도우며 차분해지는 것. 모두는 공감했고, 15명의 친구들은 그렇게 잠이 들었다.

사실 그렇다. 세상의 바쁜 일만을 고집하며 고집을 세우기에 아직은 너무 세상이 아름답다. 직관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할지라도 나는 믿고 싶다. 모두가 살아가는 이 순간 지금이 너무나 행복하고 아름답다. 더 행복할 방법은 나누는 것이라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추구했던 삶의 방향 또한 그러하였다. 단지 내가 공학도여서 필요한 능력을 제고하며 집중하는 것 보다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저 스펙을 쌓기 위해 시간을 채우고 마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도울 수 있어 행복한 나를 발견하고 싶었다. 그 돈 주고 누가 봉사활동 하러 유럽까지 가느냐는 주변인들의 말에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 맡지 못한 향기를 맡았다고. 그들은 내게 단순한 유럽의 풍토만을 보여주지 않았다. 분명 차이가 나는 문화였지만 배울 점은 배워야 하는 것이 진정 직관적인 것이다. 우연치 않게 내게도 열렸던 그 기회는 커다란 전환점과 발전을 안겨주었다.

이렇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는 쉽게들 접할 수 있다. 시간이 없다면 스펙을 쌓기 위한 봉사활동 시간을 쪼개 마음 닿는 봉사활동을 하면 된다. 이처럼 그들 자신의 가치는 내가 이름을 불러주어 꽃이 되는 것처럼 상대방으로부터 알 수 있게 된다. 경험을 위해, 타인을 돕기 위해 떠났던 스위스로의 원정은 결국 내게 도움이 되었다. 처음 통했던 나의 마음은 여전히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남아있다. 봉사는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나는 향기나는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