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두려움에서 자신감으로, 유럽 워크캠프

작성자 고현선
체코 SDA 101 · ENVI/RENO 2014. 04 - 2014. 05 트바로슈나 르호타 Tvarožna Lhota

Moravian countryside Spring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4월 16일 인천에서 런던으로 가는 비행기, 혼자라는 두려움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42일 후 5월 27일 로마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 아쉬움과 기대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유럽을 떠난다는 아쉬움과 나는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아쉬움이 유럽여행에 대한 감정이었다면 기대감은 워크캠프에 대한 감정이었다. 한국에 돌아가서 내게 주어진 책임과 업무를 잘해낼것이라는 기대감과, 언젠든지 어디에서든지 워크캠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었다.
나의 여행은 워크캠프 전후를 기점으로 확연하게 달라진다. 워크캠프 전 런던, 파리, 암스테르담에서 나는 맥도날드에서 주문도 못할 정도로 영어에 자신감이 없었다. 하지만 워크캠프 이후 맥도날드 주문은 물론 레스토랑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합석하며 2시간씩 대화를 할 수 있게되었다. 나의 영어 '실력'을 그대로 였지만 '자신감'을 얻게된 것이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영어뿐만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던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강한 원동력이 되었다. '자신감'을 선물해준것은 바로 워크캠프에서 만난 9명의 친구들이었다.

나에게 '자신감'을 선물해준 소중한 친구들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고 싶다. 먼저 체코인 리더 마틴, 선생님같은 엄격함으로 봉사자들에게 인기는 없었지만 꼭 필요했던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두번째 체코인 리더 루카스, 22살의 어린나이임에도 다양한 국적의 봉사자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해주었다. 나와 동갑이었는데 정말 배울 것이 많은 친구였다. 우르크라이나에서 온 레이샤와 나샤는 우리 워크캠프의 분위기메이커로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로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다. 프랑스에서 온 장은 낮에는 책을 읽거나 낮잠을 자며 에너지를 비축해두었다가,밤에는 신나게 춤을 추는 흥이 많은 친구였다. 멕시코에서 온 니콜라스는 우리 중 가장 스타일리시한 패션센스를 가졌고, 누구보다 상대방에 이야기에 귀를 귀울이는 진지한 친구였다. 알바니아에서 온 델리나는 나를 동생같이 귀여워해주며,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준 친구였다. 일본인 사토미는 나와같은 유일한 아시아인으로 서로 많이 의지를 했었다. 마지막으로 조지아에서 온 토코는 매일 클럽음악을 들으며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라고 매일 이야기하는 친구였다. 오전9시부터 오후3시까지 주어진 업무를 마친 후, 각자의 휴식시간을 가진 뒤 저녁을 먹고 매일 파티를 했었다. 그때마다 토코가 건배를 외치며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라고 함께 건배했다.
'젊음' 한국에서 내가 잊고 살았던 단어를 워크캠프기간동안 매일매일 느끼며 살아왔다. 한국나이로 24살, 한국에서는 취업준비생 혹은 어디학교 학생이었던 내가 그곳에서는 22살, 이름앞에 아무런 수식도 붙지않는 '젊은이'였다. 함께 일을 하고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고, 함께 잔디밭에 누워 낮잠도 자고, 카누도 하며 수영도 하고, 저녁마다 파티를 열고 춤을 추었다. 단순히 일하고 먹고 자는 일상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 안에는 국적과 연령 성별이 모두 다른 9명의 친구들의 스토리와 세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가치관들이 존재하고 있었다.그 가운데 나도 내가 젊음을 다시한번 깨닫고, 젊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인 기회와 도전이라는 자신감을 얻어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워크캠프 기간동안 나에게 두번의 힘든 도전의 상황이 있었다. 첫번째는 콥티바라는 식물을 채집하는 일이었다. 체코어로 콥티바라고 불리는 이 식물은 햇빛에 건조시킨 후 삼푸로 사용되는 향이 매우 강한 식물이었다. 문제는 이 콥티바라는 식물이 맨손에 닿으면 빨갛게 두드러기가 올라오면서 손이 타는 것같이 아프기 때문에 꼭 장갑을 끼고 작업해야하는 것이다. 매일 일을 마치고 내려오면 우리가 했던 말은 "I really hate this plant!" 였다. 두번째는 한일관계에대해 설명을 했던 순간이었다. 아무리 강남스타일이 유트브에서 대히트를 쳤다 한들,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아직 생소한 국가였다. 현대, 기아, 삼성 한국의 대부분의 기업들을 일본기업으로 알고있었으며 일본에대한 이미지는 매우 긍정적이었다. 워크캠프 중에도 아시아인이 나와 일본인 사토미뿐이었기 때문에 한국과 일본을 비교해서 아시아문화에 대한 질문을 받았었다. 그러던 중 남한과 북한에대한 이야기가 나왔고,일본의 침략과 지배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영어로 설명하는 두려움도 컸지만 바로 옆에 일본인 사토미가 있었기 때문에 질문에 답하기가 걸끄러웠다. 하지만 오히려 사토미는 나의 설명을 도와주었고 나는 천천히 그리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말하려고 노력했다. 여행 첫날 맥도날드에서 주문도 못하던 내가, 한일관계와 그 역사를 영어로 설명하고 있었고 나 이야기를 귀기울여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나는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있었다.

그 순간에는 당황스럽고 힘들었던 일들이 시간이 지나고나니 하나의 추억으로 남게되었다. 무엇보다 추억으로 남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2주동안 동거동락했던 9명의 친구들이 있었기때문이다. 유럽에 오기전, 내가 걱정했던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면서 워크캠프 이후 나는 나의 여행이 내 젊음의 시절가운데 가장 행복한 도전이자 기회임을 알게되었다. 나의 마음임 변화하자 나의 행동이 변화했고,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지금 나는 유럽이 아니라 한국, 내 방 책상 컴퓨터 앞에서 이 체험보고서를 쓰고 있다. 42일전 유럽여행과 워크캠프를 준비하면서 같은 책상에서 나는 걱정과 두려움에 괴로워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난 나의 젊은날을 추억하며, 또 다시 다가올 젊음의 날을 준비하는데 있어 전혀 두렵지않다. 워크캠프 2주동안 동거동락한 친구들이있었다면, 이곳에는 가족을 비롯하여 더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이 나를 응원해 주고 있기때문이다. 내가 잊고 살았던 나의 젊음을 깨닫게 해주었으며, 기회와 도전을 즐길 수 있는 자신감을 선물해준 2014년 4월의 체코, 그리고 20대 친구들과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이 너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