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멕시코, 바다거북과 함께한 용기
Protecting the Marine Turtles at Colola XV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미국으로 떠나기 1년 전부터 멕시코에서 워크캠프를 하고 싶었다. 부모님이 반대하셔서 못하겠구나 하고 마음을 접고 있었는데 워크캠프 목록에서 protecting sea turtles in Mexico를 보는 순간 지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못 갈 줄 알았던 멕시코에 갔다. 굳이 멕시코시티로 들어가는 걸 추천하진 않는다. 여행이 끝나고도 멕시코시티를 여행할 수도 있을뿐더러 멕시코시티에서 워크캠프 장소를 찾아가는 것은 다른 도시에서 찾아가는 것보다 쉽지 않다. 나는 친구랑 과달라하라라는 도시로 들어갔다. 멕시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라고 했지만 여행 정보도 없어서 처음에는 좀 막막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볼 것도 많고 우리나라에 크게 알려지지 않아서 더 매력적인 도시였다. 과달라하라에서 Colola까지 찾아가는 것도 쉽진 않았다. 숙소에서 버스를 타고 버스터미널을 찾아가는데 길도 모르고 말도 안 통하는데 갑자기 고속도로로 들어가서 당황했다. 테코만에 도착해서도 지역버스를 타고 콜로라까지 또 2시간을 가야 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는 더 당황스러웠다. 깜깜하다는 말로도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어두웠다. 모래 위에 서서 급하게 손전등을 꺼내서 겨우 캠프인 것을 확인하고 찾아가는데 내가 지금 어디에서 뭘 하고 있나 싶었다.
Colola 캠프에서의 생활만을 생각하면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다. 가기 전에 사진도 보고 참가보고서도 읽으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상상 그 이상이었다. 도미토리라고 이름 지어진 가건물 안에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서 밖에 나와서 잤다. 밤마다 더위와 습기, 모기와 싸워야 했다. 밤에는 달빛에 깨기도 했고 아침에는 해가 뜨거워서 저절로 눈이 떠졌다. 강제로 2주 동안 채식주의자가 되기도 했고 군것질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고추장 같은 한국 재료들을 충분히 챙겨가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멕시코 음식들을 가리지 않고 잘 먹긴 했으나 문득 영양실조에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Colola에서 떠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2시간 넘게 버스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아서 결국 히치하이킹을 해서 테코만으로 나왔다.
또 한 가지 당시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낮에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해먹에 누워서 낮잠을 자거나 근처 바닷가에 놀러 가는 것이 일이었다. 핸드폰도 안되고 인터넷도 안되니 정말 할 게 없었다. 언제 또 이렇게 여유로운 생활을 해보겠냐며 참긴 했으나 지금 생각해도 정말 지루했다. 그래도 저녁에 2시간 정도씩 하던 일은 정말 인상 깊었다. 그 어떤 워크캠프 보다 가장 값진 경험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노을을 등지고 험한 파도를 헤쳐 백사장으로 기어 나오던 거북이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처음 거북이가 알을 낳는 것을 보았을 때의 경이로움 또한 기억한다. 알을 낳고 나서 내쉬던 거북이의 거친 숨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 같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운 거친 바다를 헤치고 나와 느린 발걸음으로 겨우 모래를 헤쳐 알을 낳고, 돌아갈 힘도 없어 보이던, 알들을 노리는 새들에게서 알을 보호하기 위해 세찬 숨을 내쉬며 마지막 힘을 다해 모래를 뿌리던 거북이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보름달이 환하게 떠 있던 날 300마리가 넘는 새끼 거북이들을 처음으로 맞이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밤을 지새며 이제 그만 나오라고 외치기도 했지만,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모래를 헤치고 나온 새끼 거북이들이 얼마나 대견스러웠는지 모른다. 두려움도 없이 백사장을 지나 바닷가로 향하던 새끼 거북이들이 한 편으로는 걱정되고 한 편으로는 존경스럽기도 했다.
처음 거북이 알을 찾아 나서던 날 같이 일했던 몇 십 년 동안 그 일을 해오셨다는 아저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거북이를 찾으면 아무렇지 않게 모래 사장에 드러누워 거북이가 알을 다 낳기를 기다리시던 아저씨를 보며 처음에 적잖이 당황했다. 새끼 거북이 네스트에서도 노래를 틀어 놓고 앉아 계시던 아저씨도 기억난다. 나에게는 짧디 짧은 2주간의 봉사활동이었지만, 그들에게 거북이를 돕는 일은 일상이자 생활이었다. 내가 그들에 비하면 너무 짧은 기간 동안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나에게는 정말 긴 시간이었다. 이런 내가 아니라 Colola 마을 사람들과 새로운 봉사자들이 지속적으로 거북이를 도와줄 거라는 사실이 참 다행이다.
가로등도 제대로 없고 햇빛을 피할 곳조차 없는 길을 걸어가면 Colola 마을이 나온다. 내가 워크캠프를 하던 당시에는 어머니의 날이라던가 거북이 보호 기념일이 있어서 마을에서 축제도 자주 했고 식자재를 사러 꽤 자주 마을에 갔다. 스페인어를 못해서 아쉽기는 했지만 마을 사람들 하고 접할 기회도 있었다.
마을 봉사자들 하고 이야기를 했었다. 한 번도 Colola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밤새 가슴이 먹먹했다. 나한테 세상은 한국이고 미국이고 멕시코고 혹은 그 보다 더 넓은 곳인데, 그 사람들에게 세상은 작디 작은 Colola 마을이 전부라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들에게도 새로운 시작이 또는 새로운 길이 있기를 바라는 건 내 오만함에서 나온 생각인가 싶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도 스페인어를 못 하는 것이 아쉽다. 마을 사람들이랑 같이 워크캠프를 하던 멕시코 친구들하고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주 동안 같이 지내던 친구들과의 헤어짐, 항상 친절하게 이름을 불러주던 마을 사람들, 바닷가로 향하던 새끼 거북이들과의 헤어짐. 두 번 다시 갈 수 없을 것 같은 Colola를 떠나던 순간을 기억한다. 이제 헤어지면 두 번 다시 못 만날 것 같고 못 볼 것 같은 아쉬움이 생생하다. 하지만 그 아련함과 아쉬움이 내일의 새로운 삶에 대한 징표라고 생각한다. 시작과 끝은 맞닿아 있는 법이니까. 우리가 각자의 길로 떠나는 혹은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그 순간도 새로운 길의 첫 자락과 연결되어 있다고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이것보다 더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을까 싶다. 10개월 동안 외국에 있었다. 남미 여행을 하기도 했고 미국에서 공부하던 두 학기 동안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하지만 지난 10개월 동안 있었던 그 수많은 일 중에서 이번 멕시코 워크캠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엄청나거나 성취감이 큰 일을 한 건 아니지만 지금도 문득 Colola에서 지내던 것이 생각난다. 핸드폰도 인터넷도 쓸 수 없고 텔레비전도 볼 수 없는 시골에서 그것도 멕시코에서 2주 동안 지냈다는 혹은 버텼다는 사실이 기억을 극적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2주 동안의 워크캠프와 같은 경험은 인생에 단 한 번뿐일 것이다.
Colola 캠프에서의 생활만을 생각하면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다. 가기 전에 사진도 보고 참가보고서도 읽으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으나 상상 그 이상이었다. 도미토리라고 이름 지어진 가건물 안에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어서 밖에 나와서 잤다. 밤마다 더위와 습기, 모기와 싸워야 했다. 밤에는 달빛에 깨기도 했고 아침에는 해가 뜨거워서 저절로 눈이 떠졌다. 강제로 2주 동안 채식주의자가 되기도 했고 군것질 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고추장 같은 한국 재료들을 충분히 챙겨가는 것을 추천한다. 나는 멕시코 음식들을 가리지 않고 잘 먹긴 했으나 문득 영양실조에 걸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Colola에서 떠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2시간 넘게 버스를 기다렸으나 오지 않아서 결국 히치하이킹을 해서 테코만으로 나왔다.
또 한 가지 당시에 가장 힘들었던 점은 낮에 할 일이 없다는 것이다. 해먹에 누워서 낮잠을 자거나 근처 바닷가에 놀러 가는 것이 일이었다. 핸드폰도 안되고 인터넷도 안되니 정말 할 게 없었다. 언제 또 이렇게 여유로운 생활을 해보겠냐며 참긴 했으나 지금 생각해도 정말 지루했다. 그래도 저녁에 2시간 정도씩 하던 일은 정말 인상 깊었다. 그 어떤 워크캠프 보다 가장 값진 경험이 되리라고 확신한다.
노을을 등지고 험한 파도를 헤쳐 백사장으로 기어 나오던 거북이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처음 거북이가 알을 낳는 것을 보았을 때의 경이로움 또한 기억한다. 알을 낳고 나서 내쉬던 거북이의 거친 숨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 같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무서운 거친 바다를 헤치고 나와 느린 발걸음으로 겨우 모래를 헤쳐 알을 낳고, 돌아갈 힘도 없어 보이던, 알들을 노리는 새들에게서 알을 보호하기 위해 세찬 숨을 내쉬며 마지막 힘을 다해 모래를 뿌리던 거북이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보름달이 환하게 떠 있던 날 300마리가 넘는 새끼 거북이들을 처음으로 맞이하던 순간을 기억한다. 밤을 지새며 이제 그만 나오라고 외치기도 했지만,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모래를 헤치고 나온 새끼 거북이들이 얼마나 대견스러웠는지 모른다. 두려움도 없이 백사장을 지나 바닷가로 향하던 새끼 거북이들이 한 편으로는 걱정되고 한 편으로는 존경스럽기도 했다.
처음 거북이 알을 찾아 나서던 날 같이 일했던 몇 십 년 동안 그 일을 해오셨다는 아저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거북이를 찾으면 아무렇지 않게 모래 사장에 드러누워 거북이가 알을 다 낳기를 기다리시던 아저씨를 보며 처음에 적잖이 당황했다. 새끼 거북이 네스트에서도 노래를 틀어 놓고 앉아 계시던 아저씨도 기억난다. 나에게는 짧디 짧은 2주간의 봉사활동이었지만, 그들에게 거북이를 돕는 일은 일상이자 생활이었다. 내가 그들에 비하면 너무 짧은 기간 동안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은 거 같기도 하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나에게는 정말 긴 시간이었다. 이런 내가 아니라 Colola 마을 사람들과 새로운 봉사자들이 지속적으로 거북이를 도와줄 거라는 사실이 참 다행이다.
가로등도 제대로 없고 햇빛을 피할 곳조차 없는 길을 걸어가면 Colola 마을이 나온다. 내가 워크캠프를 하던 당시에는 어머니의 날이라던가 거북이 보호 기념일이 있어서 마을에서 축제도 자주 했고 식자재를 사러 꽤 자주 마을에 갔다. 스페인어를 못해서 아쉽기는 했지만 마을 사람들 하고 접할 기회도 있었다.
마을 봉사자들 하고 이야기를 했었다. 한 번도 Colola 밖으로 나가본 적이 없다는 그 말을 듣고 나서 밤새 가슴이 먹먹했다. 나한테 세상은 한국이고 미국이고 멕시코고 혹은 그 보다 더 넓은 곳인데, 그 사람들에게 세상은 작디 작은 Colola 마을이 전부라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들에게도 새로운 시작이 또는 새로운 길이 있기를 바라는 건 내 오만함에서 나온 생각인가 싶기도 하다. 지금 생각해도 스페인어를 못 하는 것이 아쉽다. 마을 사람들이랑 같이 워크캠프를 하던 멕시코 친구들하고도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주 동안 같이 지내던 친구들과의 헤어짐, 항상 친절하게 이름을 불러주던 마을 사람들, 바닷가로 향하던 새끼 거북이들과의 헤어짐. 두 번 다시 갈 수 없을 것 같은 Colola를 떠나던 순간을 기억한다. 이제 헤어지면 두 번 다시 못 만날 것 같고 못 볼 것 같은 아쉬움이 생생하다. 하지만 그 아련함과 아쉬움이 내일의 새로운 삶에 대한 징표라고 생각한다. 시작과 끝은 맞닿아 있는 법이니까. 우리가 각자의 길로 떠나는 혹은 새로운 시간을 맞이하는 그 순간도 새로운 길의 첫 자락과 연결되어 있다고 그리고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앞으로 내 인생에서 이것보다 더 기억에 남는 일이 있을까 싶다. 10개월 동안 외국에 있었다. 남미 여행을 하기도 했고 미국에서 공부하던 두 학기 동안 많은 일을 하고 많은 친구들을 만났다. 하지만 지난 10개월 동안 있었던 그 수많은 일 중에서 이번 멕시코 워크캠프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엄청나거나 성취감이 큰 일을 한 건 아니지만 지금도 문득 Colola에서 지내던 것이 생각난다. 핸드폰도 인터넷도 쓸 수 없고 텔레비전도 볼 수 없는 시골에서 그것도 멕시코에서 2주 동안 지냈다는 혹은 버텼다는 사실이 기억을 극적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2주 동안의 워크캠프와 같은 경험은 인생에 단 한 번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