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캄보디아, 지친 나를 던지다
Culture and Educatio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대학교 시절 항상 마음에만 담아두었던 워크캠프를 직장인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실천하게 되었다. 워크캠프를 신청하던 당시에는 마음이 많이 지쳐있었던 상태였다. 내가 하는 일이 보람되지 않았고,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기계처럼 살고 있다는 자괴감이 컸다. 그래서 일상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먹고 놀고 사진찍는 그런 뻔한 여행은 하기 싫었다. 무언가 극한의 상태,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곳으로 나 자신을 던져놓고 싶었다. 그리고 나를 시험해보고 싶었다.
캄보디아 시엠립 공항에는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공항에서 비자를 받는데 30분 정도 걸렸으며, 20달러를 내야했고, 사진을 제출하지 않았다며 1달러를 더 요구했다. 입국심사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러나라를 여행해봤지만 공항에서 팁을 (그것도 한국말로) 공공연하게 요구하는 곳은 처음이었다. 비행기가 연착되어 걱정했었는데, 다행이 캠프리더가 보낸 툭툭기사를 공항입구에서 만나서 캠프사이트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길은 정말 무서웠다. 밤이 늦어 온통 깜깜으며, 거리에는 가로등 하나 없었다. 온통 나무가 우거진 수풀 같은 곳을 지나 도착했는데, 처음에는 납치 당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내가 묵었던 곳은 캠프리더의 친척, 가족들이 모두 모여사는 community center였다. 캠프리더의 조부모부터 외가 친척들이 모두 모여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중 방 한개를 빌려서 6명이서 생활했다. 국적은 이탈리아, 스위스, 타이완, 일본, 홍콩 등으로 한국사람은 없었으며 모두 여자였다.
푸세식을 기대하고 갔던 화장실은 그나마 양변기였으나, 변기 옆에 있는 욕조에서 물을 직접 떠나 내려야했다. 샤워할 수 있는 공간은 그 옆에 있었는데, 뜨거운 물과 샤워기는 없고, 그냥 욕조같은 곳에 물을 받아놓고 바가지로 떠서 씻어야했다. 그곳에는 특히 벌레가 많아서 욕조에 벌레가 떠다니기도 했고, 어떤 애가 말하길, 물고기도 있었다고 한다. 모기가 많아서 씻기 전에 몸에 스프레이를 잔뜩 뿌리고 가야했다. 날씨는 덥지만 찬물로 계속 씻다보니 감기에 걸려서 한국와서도 며칠간 고생했다.
앞서 말한 Community center안에 'Khmer Smile School'이라고 해서 우리나라로 치면 무료 공부방 같은 곳이 있는데, 우리는 거기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교실에 못질, 페인트칠을 했다.
교실이 3개에 하루에 3클래스씩 9번의 수업이 진행되었다. 오전 2시간은 7세부터 10세 정도의 아이들, 오후에는 중학생, 저녁에는 고등학생 수업이었다. 오전 클래스에서는 아이들과 전혀 말은 통하지 않았다. 알파벳도 잘 못 읽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수업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정말 열성적으로 참여했으며, 게임에서 지면 노래도 잘 불렀다. 가장 기억에 남는건, 아침에 어느 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서 돈을 걷고 있길래 캠프리더에게 알아보니, 교실의 화이트 보드를 사기 위함이었다. 아이들이 장난치며 놀다가 보드를 망가뜨렸는데, 그 어린 아이들이 그걸 다시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수업이 끝나면 모두 선생님들에게 달라붙어 한명씩 모두 진한 포옹을 나누고 집에 돌아갔다.
점심을 먹고나서는 Construction work 시간으로, 교실에 못질을 하거나 페인트칠을 했다. 우리가 오기 전에는 교실에 벽도 없이 지붕만 있었다고 한다. 그 전 워크캠퍼들이 벽은 거의 만들어 놓았고, 우리는 주로 페인트칠을 했다. 이 때는 오후 2시 정도로 날씨가 너무 더워서 특히 힘들었다. 캠프 내내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날씨였다. 밤에 잘 때 너무 더워서 이불을 안 덮고 자다가 새벽에는 추워져서 꼭 한 두번씩은 깼으며, 낮잠 시간에는 어찌어찌 잠은 들어도 깰 때보면 땀이 흥건했다.
음식은 캠프리더의 어머니가 직접해주셔서 하루 세끼를 먹었다. 주로 밥과 두가지 정도의 반찬이 나왔는데, 모두 기름에 튀기거나 볶은 것들이거나,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치킨 수프 등이어서 느끼한 음식을 잘 못먹는 내 입맛에는 별로 맞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재료를 사오는 로컬마켓에 한번 가보면 그 음식을 먹기가 조금 더 힘들어진다. 생닭을 난잡하게 늘어놓고, 온갖벌레가 날아다니며 냄새가 진동을 한다. 거기서 파는 튀긴 귀뚜라미가 식탁에 올라온적도 있었는데, 나를 비롯한 다른 캠퍼들도 차마 먹지는 못했다. 캠프리더의 가족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이라서 거기선 '치냔'(크메르어로 맛있다는 뜻)을 연발하며 잘 먹긴 했으나, 나를 비롯한 몇몇 캠퍼들에겐 조금 힘들었던 건 사실이다. 어떤 친구는 잘 못먹어서 바지가 헐렁해져서 돌아갔다.
처음 이틀 정도는 내가 왜 여기를 왔을까 후회도 조금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3일정도 지나고 나니, 불편한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해나갔다. 밥먹다가 천장에서 각종 벌레나 도마뱀이 떨어지는 것은 이제 놀랄만한 일도 안되었다. 인터넷이 없어 답답하기 보다는 세상살이에 부대끼지 않아도 되는 그 상태 그대로를 즐겼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보람과 행복을 느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따라서 나도 항상 웃었고, community center안에서 항상 마주치는 캠프리더의 가족들과도 말이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웃으면서 인사했다. 그들의 밝은 미소와 다정함이 내 마음도 따뜻하게 만들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앞서 말한 아이들과 가족들이었고, 이 워크캠프의 오점은 같이 활동했던 일부 워크캠퍼들이었다. 수업의 마지막날, 우리는 아이들에게 팔찌와 직접 그린 그림 등 많은 선물을 받았다. 내가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아이들은 나에게 정말 큰 선물을 주었다. 특히 나는 캄보디아 국기와 한국 국기를 그려놓고 밑에 두 사람이 악수하는 그림을 받았는데, 무척 감동 받았다. 그 외에도 'I love teacher'나 다시 캄보디아에 와달라는 등 편지와 그림을 받고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하면서 많이 울었다. 다른 워크캠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스위스에서 온 워크캠퍼는 교육을 전공하는 아이였는데, 그 애의 행동이 정말 가관이었다. 아이들에게서 팔찌를 받아와서는 이런거 필요없다며 팔아버릴까? 라든지 너 가질래? 라며 다른 워크캠퍼를 경악시켰다. 그 팔찌들은 시장에서 샀다면 그 아이들에게 꽤 큰 돈이었을테고, 직접 만들었다면 엄청난 정성이 들어갔을 그런 것들이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자기가 놀고 있는 사진은 절대 태그하지 말라며 수업시간에도 수업은 뒷전이고 교실 사진을 찍으러 다니기 바빴다. 나중에 자기를 선생으로 채용할 학교에서 실시할 페이스북 검사를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짓밟아버린 그 아이의 행동에 나 또한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스위스 친구는 순수한 마음의 봉사활동이 아닌, 자신의 경력을 채울 수단으로 온 것 같아 아직까지도 분노를 멈출 수가 없다.
마지막날, international night에서 각자 요리를 했는데, 여기에서도 다른 캠퍼들에게 많이 실망했다. 앞서 말한 그 스위스 친구는 장을 보러가서 3달러짜리 파스타가 'So expensive'하다며 밀가루와 우유, 계란만 넣어서 크레페라고 내놓았다. 타이완친구는 인스턴트라면을 끓였으며, 이탈리아친구는 아프다는 핑계로 아예 참여하지도 않았다. 나중에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도 전혀없었다. 일본인 친구는 스시를 만든다길래 보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야채김밥인데 안에 당근과 양파만 넣은 것이었다. 한국에서부터 소스를 가져가 씨엠립 시내 마트에서 소고기와 각종 야채를 사서 불고기를 만든 나는 정말 내가 왜 이렇게까지 했나 싶을 정도였다. 이 글을 보는 예비 워크캠퍼들도 나처럼 실망하지 않으려면 다른 워크캠퍼들과 미리 잘 얘기해서 요리를 하기 바란다.
물론 워크캠퍼 중에 정말 좋은 친구들도 있었지만, 몇몇 친구들 때문에 나의 좋은 기억에 오점을 남겼다. 캠퍼 수가 너무 적은 것도 문제였다. 전체 사람 수가 적으면 작은 오점들이 더 크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마음이 잘 맞는 팀원을 만나는 것은 정말 운이 좋은 일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또한, 우리 워크캠프가 시작되고 나서 1주일 후 , 홍콩에서 13명 정도의 학생들이 단체로 와서 우리 워크캠프와 동시에 진행되었다. 캠프리더는 항상 정신이 없었으며, 우리 워크캠프와 홍콩그룹 간 마찰도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동시에 두 개의 그룹이 워크캠프를 진행하는 것은 지양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워크캠프를 내 인생에 큰 획을 그은 좋은 경험이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많은 것에 감사하게된다. 깨끗한 화장실을 쓸 수 있는 것, 편리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것 등 사소한 것에도도 말이다. 캄보디아는 대중교통이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툭툭이 시내에서는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도로도 잘 정비되지 않아 위험하기 짝이 없다. 신호등도 없어서 길을 건너려면 한참을 기다려야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꼈던 행복감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살면서 그렇게 보람되고 가치있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만약 내가 대학생이었다면, 나는 주저없이 지금, 다음 방학에 참여할 워크캠프를 신청했을 것이다.
캄보디아 시엠립 공항에는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공항에서 비자를 받는데 30분 정도 걸렸으며, 20달러를 내야했고, 사진을 제출하지 않았다며 1달러를 더 요구했다. 입국심사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여러나라를 여행해봤지만 공항에서 팁을 (그것도 한국말로) 공공연하게 요구하는 곳은 처음이었다. 비행기가 연착되어 걱정했었는데, 다행이 캠프리더가 보낸 툭툭기사를 공항입구에서 만나서 캠프사이트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가는 길은 정말 무서웠다. 밤이 늦어 온통 깜깜으며, 거리에는 가로등 하나 없었다. 온통 나무가 우거진 수풀 같은 곳을 지나 도착했는데, 처음에는 납치 당하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내가 묵었던 곳은 캠프리더의 친척, 가족들이 모두 모여사는 community center였다. 캠프리더의 조부모부터 외가 친척들이 모두 모여살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중 방 한개를 빌려서 6명이서 생활했다. 국적은 이탈리아, 스위스, 타이완, 일본, 홍콩 등으로 한국사람은 없었으며 모두 여자였다.
푸세식을 기대하고 갔던 화장실은 그나마 양변기였으나, 변기 옆에 있는 욕조에서 물을 직접 떠나 내려야했다. 샤워할 수 있는 공간은 그 옆에 있었는데, 뜨거운 물과 샤워기는 없고, 그냥 욕조같은 곳에 물을 받아놓고 바가지로 떠서 씻어야했다. 그곳에는 특히 벌레가 많아서 욕조에 벌레가 떠다니기도 했고, 어떤 애가 말하길, 물고기도 있었다고 한다. 모기가 많아서 씻기 전에 몸에 스프레이를 잔뜩 뿌리고 가야했다. 날씨는 덥지만 찬물로 계속 씻다보니 감기에 걸려서 한국와서도 며칠간 고생했다.
앞서 말한 Community center안에 'Khmer Smile School'이라고 해서 우리나라로 치면 무료 공부방 같은 곳이 있는데, 우리는 거기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교실에 못질, 페인트칠을 했다.
교실이 3개에 하루에 3클래스씩 9번의 수업이 진행되었다. 오전 2시간은 7세부터 10세 정도의 아이들, 오후에는 중학생, 저녁에는 고등학생 수업이었다. 오전 클래스에서는 아이들과 전혀 말은 통하지 않았다. 알파벳도 잘 못 읽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수업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정말 열성적으로 참여했으며, 게임에서 지면 노래도 잘 불렀다. 가장 기억에 남는건, 아침에 어느 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서 돈을 걷고 있길래 캠프리더에게 알아보니, 교실의 화이트 보드를 사기 위함이었다. 아이들이 장난치며 놀다가 보드를 망가뜨렸는데, 그 어린 아이들이 그걸 다시 사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정말 사랑스러웠다. 수업이 끝나면 모두 선생님들에게 달라붙어 한명씩 모두 진한 포옹을 나누고 집에 돌아갔다.
점심을 먹고나서는 Construction work 시간으로, 교실에 못질을 하거나 페인트칠을 했다. 우리가 오기 전에는 교실에 벽도 없이 지붕만 있었다고 한다. 그 전 워크캠퍼들이 벽은 거의 만들어 놓았고, 우리는 주로 페인트칠을 했다. 이 때는 오후 2시 정도로 날씨가 너무 더워서 특히 힘들었다. 캠프 내내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날씨였다. 밤에 잘 때 너무 더워서 이불을 안 덮고 자다가 새벽에는 추워져서 꼭 한 두번씩은 깼으며, 낮잠 시간에는 어찌어찌 잠은 들어도 깰 때보면 땀이 흥건했다.
음식은 캠프리더의 어머니가 직접해주셔서 하루 세끼를 먹었다. 주로 밥과 두가지 정도의 반찬이 나왔는데, 모두 기름에 튀기거나 볶은 것들이거나,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치킨 수프 등이어서 느끼한 음식을 잘 못먹는 내 입맛에는 별로 맞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재료를 사오는 로컬마켓에 한번 가보면 그 음식을 먹기가 조금 더 힘들어진다. 생닭을 난잡하게 늘어놓고, 온갖벌레가 날아다니며 냄새가 진동을 한다. 거기서 파는 튀긴 귀뚜라미가 식탁에 올라온적도 있었는데, 나를 비롯한 다른 캠퍼들도 차마 먹지는 못했다. 캠프리더의 가족들이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이라서 거기선 '치냔'(크메르어로 맛있다는 뜻)을 연발하며 잘 먹긴 했으나, 나를 비롯한 몇몇 캠퍼들에겐 조금 힘들었던 건 사실이다. 어떤 친구는 잘 못먹어서 바지가 헐렁해져서 돌아갔다.
처음 이틀 정도는 내가 왜 여기를 왔을까 후회도 조금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3일정도 지나고 나니, 불편한 환경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해나갔다. 밥먹다가 천장에서 각종 벌레나 도마뱀이 떨어지는 것은 이제 놀랄만한 일도 안되었다. 인터넷이 없어 답답하기 보다는 세상살이에 부대끼지 않아도 되는 그 상태 그대로를 즐겼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보람과 행복을 느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따라서 나도 항상 웃었고, community center안에서 항상 마주치는 캠프리더의 가족들과도 말이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웃으면서 인사했다. 그들의 밝은 미소와 다정함이 내 마음도 따뜻하게 만들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앞서 말한 아이들과 가족들이었고, 이 워크캠프의 오점은 같이 활동했던 일부 워크캠퍼들이었다. 수업의 마지막날, 우리는 아이들에게 팔찌와 직접 그린 그림 등 많은 선물을 받았다. 내가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 아이들은 나에게 정말 큰 선물을 주었다. 특히 나는 캄보디아 국기와 한국 국기를 그려놓고 밑에 두 사람이 악수하는 그림을 받았는데, 무척 감동 받았다. 그 외에도 'I love teacher'나 다시 캄보디아에 와달라는 등 편지와 그림을 받고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하면서 많이 울었다. 다른 워크캠퍼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스위스에서 온 워크캠퍼는 교육을 전공하는 아이였는데, 그 애의 행동이 정말 가관이었다. 아이들에게서 팔찌를 받아와서는 이런거 필요없다며 팔아버릴까? 라든지 너 가질래? 라며 다른 워크캠퍼를 경악시켰다. 그 팔찌들은 시장에서 샀다면 그 아이들에게 꽤 큰 돈이었을테고, 직접 만들었다면 엄청난 정성이 들어갔을 그런 것들이었다.
그리고 페이스북에 자기가 놀고 있는 사진은 절대 태그하지 말라며 수업시간에도 수업은 뒷전이고 교실 사진을 찍으러 다니기 바빴다. 나중에 자기를 선생으로 채용할 학교에서 실시할 페이스북 검사를 미리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짓밟아버린 그 아이의 행동에 나 또한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 스위스 친구는 순수한 마음의 봉사활동이 아닌, 자신의 경력을 채울 수단으로 온 것 같아 아직까지도 분노를 멈출 수가 없다.
마지막날, international night에서 각자 요리를 했는데, 여기에서도 다른 캠퍼들에게 많이 실망했다. 앞서 말한 그 스위스 친구는 장을 보러가서 3달러짜리 파스타가 'So expensive'하다며 밀가루와 우유, 계란만 넣어서 크레페라고 내놓았다. 타이완친구는 인스턴트라면을 끓였으며, 이탈리아친구는 아프다는 핑계로 아예 참여하지도 않았다. 나중에 미안하다거나 고맙다는 말도 전혀없었다. 일본인 친구는 스시를 만든다길래 보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야채김밥인데 안에 당근과 양파만 넣은 것이었다. 한국에서부터 소스를 가져가 씨엠립 시내 마트에서 소고기와 각종 야채를 사서 불고기를 만든 나는 정말 내가 왜 이렇게까지 했나 싶을 정도였다. 이 글을 보는 예비 워크캠퍼들도 나처럼 실망하지 않으려면 다른 워크캠퍼들과 미리 잘 얘기해서 요리를 하기 바란다.
물론 워크캠퍼 중에 정말 좋은 친구들도 있었지만, 몇몇 친구들 때문에 나의 좋은 기억에 오점을 남겼다. 캠퍼 수가 너무 적은 것도 문제였다. 전체 사람 수가 적으면 작은 오점들이 더 크게 부각되기 때문이다. 마음이 잘 맞는 팀원을 만나는 것은 정말 운이 좋은 일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또한, 우리 워크캠프가 시작되고 나서 1주일 후 , 홍콩에서 13명 정도의 학생들이 단체로 와서 우리 워크캠프와 동시에 진행되었다. 캠프리더는 항상 정신이 없었으며, 우리 워크캠프와 홍콩그룹 간 마찰도 생길 수 밖에 없었다. 동시에 두 개의 그룹이 워크캠프를 진행하는 것은 지양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워크캠프를 내 인생에 큰 획을 그은 좋은 경험이었다. 한국에 돌아오니 많은 것에 감사하게된다. 깨끗한 화장실을 쓸 수 있는 것, 편리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는 것 등 사소한 것에도도 말이다. 캄보디아는 대중교통이라는 것이 거의 존재하지 않고, 툭툭이 시내에서는 거의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도로도 잘 정비되지 않아 위험하기 짝이 없다. 신호등도 없어서 길을 건너려면 한참을 기다려야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느꼈던 행복감은 절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살면서 그렇게 보람되고 가치있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만약 내가 대학생이었다면, 나는 주저없이 지금, 다음 방학에 참여할 워크캠프를 신청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