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러시아, 잊지 못할 나의 3주

작성자 조현국
러시아 W4U-02 · KIDS 2014. 06 야로슬라블(Yaroslavl) / 미쉬킨(Myshkin)

Myshkin 1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대학교를 1학년을 마치고 20대 초반에 직장을 구하게 된 나는 일을 시작하기 전 내 남은 인생에서 경험하지 못할 일을 찾아서 해보기로 했다. 일을 시작하면 장기적으로 내 시간을 가질 수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땅한 것이 없어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하던 도중 친구의 소개로 해외로 봉사활동을 가는 워크캠프를 알게 되었다. 영어로 대화하는 것은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워크캠프를 떠나는 것에 거부감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영어권 국가가 아닌 다른 국가를 찾았다.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내 남은 인생에서 경험하지 못할 일’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도중 일정도 맞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들과 활동할 수 있는 ‘러시아 W4U’ 프로젝트를 찾았다. 나는 러시아에 대해 재미있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탠딩 코미디 비디오가 바로 러시아인을 재미있게 묘사한 것이다. 그런 러시아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었고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처음 지원할 때는 패기를 가지고 신청했지만 막상 비행기를 탈 날짜가 다가오니 인포싯도 예정 된 날짜보다 늦게 오고, 러시아어 알파벳조차 모른다는 것이 걱정되었다. 또 하나 걱정된 부분은 비자와 관련 된 것이었다. 부랴부랴 러시아어 알파벳을 공부할 수 있는 책도 사서 공부하고 워크캠프 측에 전년도 인포싯을 요청했었다. 처음 한-러 비자를 검색했을 때에 10만원이 넘어간다는 이야기도 들어 실망했지만 2014년 1월 1일부터 비자면제 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에 관광객은 제한 기간 동안 비자 필요 없이 러시아를 방문할 수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를 간다고 잘 알고 지내던 교수님과 어른들께 말씀 드렸을 때에 러시아에서 옛 소련을 떠올리기도 하시고 체르노빌을 떠올리기도 하셨다. 나도 그런 것을 생각해본 것은 아니지만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면서 몇 년 정도 알게 된 러시아 친구들이 공항까지 마중 나와서 그 중 한 명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물도록 배려해주겠다고 했었고 캠프 모임 집결 지까지 가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지만 직접 만나본 적도 없는 친구들이었고, 그러한 소문을 듣고 있었기 때문에 무서운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번 워크캠프의 목적을 생각하며 다시 한 번 의지를 다졌다.

워크캠프 집결 지로 가는 길은 길었지만 결론적으로는 힘들지 않았다. 중국 상해에서 갈아타고 모스크바로 가는 시간은 총 14시간, 모스크바에서 워크캠프 집결 지까지 기차로 4시간, 집결 지에서 워크캠프까지 2시간…... 지쳐있는 몸이었지만 도착하고 만난 친구, 러시아 사람들은 ‘천사’였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 손짓 발짓 섞어가며 최대한 도와주려고 했던 러시아인들을 만났을 때에는 ‘아,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러시아로 떠나기 전에는 인포싯에 나와있는 캠프리더의 메일주소를 페이스북에서 검색해보았다. 운 좋게도 리더는 페이스북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고 출발하기 이틀 전 이것 저것 물어볼 수 있었다. 캠프 내에서 노트북은 사용할 수 있는지, 스마트폰을 가져 갔을 때 인터넷은 사용할 수 있는지, 샤워는 매일 매일 할 수 있는지...... 가는 방법으로는, 혹시 몰라 처음 내리고서부터 미팅 포인트까지 가는 방법 구글 로드뷰로 일일이 다 검색했었다. 혼자서, 특히 해외여행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러시아에서 움직일 동선들을 다 정하고 움직였었다. 사실 나는 러시아 사람들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영어를 잘 할 수 있겠지 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러시아 사람들은 영어와 전혀 친숙하지 않았다. 기차역까지 마중 나온 리더와 친구, 그리고 준비해뒀던 동선들 덕분에 힘들지는 않았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면 미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리더를 만나 캠프에 같이 참가하는 봉사자들이 궁금해 리더에게 참가 인원을 물어봤을 때(총 예정 모집인원 4명) 나 말고 터키에서 오는 친구가 있다고 했지만 워크캠프 시작 전 하루 전에 취소했다고 했다. 이 외에 단체 소속 선생님들이 있는데 한 명은 러시아인, 한 명은 스코틀랜드인이라고 했다. 워크캠프에서 봉사자가 나 혼자 뿐이라는 생각에 조금 실망했지만 캠프 리더가 오히려 나에게 집중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나쁘지는 않았다. 리더는 여름이라 해가 21시까지 지지 않는 미팅 포인트의 도시를 구경시켜주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내가 도착한 날은 도시의 탄생 기념일이었고 우리는 축제를 즐겼다. 다음 날 아침 캠프리더와 함께 해당 단체에서 대절한 버스를 타고 아이들을 픽업하러 다니며 웃으면서 인사하니 비로소 내가 워크캠프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눈 앞에서 동양인을 만나는 것이 처음이었는지 많이 신기해 했다. 사실 나는 인포싯에서 ‘영어캠프’라 적혀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 초/중학생의 영어실력을 기대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영어는 몇몇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인 인사도 할 줄 몰랐다. 그래도 아이들은 용기를 가지고 계속 나에게 말을 걸었고 나도 그런 아이들이 귀여워 웃으면서 대답해주었다.
버스를 타고 숲 속에 있는 캠프에 도착하고 내 방에서 짐을 풀었을 때 거기서 룸메이트를 만났다. 룸메이트 역시 영어를 거의 하지 못했는데 우리는 손짓 발짓, 짧은 영어 단어로 소통을 했었다.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나중에는 러시아어-영어 사전을 사전을 사서 나와 대화하려고 노력했었다.

아이들은 캠프에 들어오고 나서 주말에 부모님이 오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루 종일 캠프에서 지냈다. 아이들의 하루는 이랬다.

8시 기상 -> 기상운동, 아침 식사, 휴식 -> 10시 수업 시작 -> 12시 휴식 -> 1시 30분 점심식사 -> 오락 시간 -> 7시 30분 저녁 식사 -> 휴식 -> 11시 취침

나는 아침을 먹지 않았기 때문에 9시에 일어나 수업준비를 했다. 수업 시간에 나는 아이들이 활동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아주 기초적인 영어 회화를 활동을 통해서 배우니 아이들은 흥미를 느끼고 집중을 잘 했다. 중간중간 말썽부리는 아이들이 있었지만(사실 우리나라 같았으면 매를 들어 일찍 해결했을지도 모르겠다) 서양에서는 매를 들지 않는다고 하여 내 감정을 꾹꾹 억누르는 연습도 할 수 있었다. 영어 수업 이외에도 스코틀랜드 선생님이 가르치는 스페인어 수업, 캠프 리더가 가르치는 세계 문화 수업이 있었다. 하루는 캠프리더가 우리나라에 대해 소개를 해달라고 해 외국인은 알 수 없는 우리나라의 이야기를 해주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숲 속이다 보니 저녁엔 추워져 군대에서 지급받은 ‘깔깔이’를 입고 잤음에도 불구하고 목감기에 걸리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들과 놀고 활동하다 보니 어느새 감기는 까맣게 있고 지내게 되었다.

그렇게 내 약 3주동안의 워크캠프는 끝났다. 공식 캠프 종료 일자는 6월 21일이었다. 그런데 캠프의 모든 선생님들은 이틀간의 휴가를 가질 수 있었는데 보통 봉사자들이 여러 명이 있으면 봉사자들끼리 시간을 맞춰 근처 도시 구경을 한다고 인포싯에 적혀있었다. 하지만 나는 유일한 봉사자였고, 또 이미 리더가 주변 도시 구경을 시켜주었기 때문에 단체에 요청해 나만 따로 19일에 마쳤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캠프를 떠날 때 아이들 중 한 어머니께서 그 동안 고생했다며 시내까지 나가는 버스 비를 주셨었다. 안 그래도 여행 경비가 빡빡했던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천 원짜리와 백 원짜리를 드렸다.

남은 기간 러시아를 여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워크캠프에서 만났던 아이들처럼 순수했었다. 비록 내가 러시아의 밝은 면만 보았다고 해도 밝은 면만 다시 느껴보기 위해 다시 한 번 더 가고 싶은 나라가 되었다. 그리고 워크캠프를 통해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내 남은 인생에서 경험하지 못할 일’을 해낸 것 같아 기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