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호치민, 쉼표로 시작된 봉사 입시 스트레스, 호치민에서

작성자 홍수민
베트남 VPVS12-14 · KIDS/MANU 2014. 06 - 2014. 07 호치민

Vinh Son school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워크캠프를 참가하게 된 배경
나는 현재 해외에서 IB diploma를 공부하고 있는 고등학생이다. 한국으로 친다면 고3된 나는 대학입시며 파이널 시험대비에 대한 중압감으로 주위 모든 것에 대한 신경이 무감각해졌고 그 어떤 것도 편하게 마음을 놓으며 즐길 여유가 없었다. 비록 내가 입시준비로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나는 이런 여유가 없는 삶을 잠깐이라도 벗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지역봉사에서는 겪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쌓고자 했다.

*봉사활동 및 베트남에서의 생활
여행이나 캠프 혹은 프로젝트를 참여할 때라면 사전계획을 철저하게 준비하던 나였지만 이번 베트남워크캠프는 마음을 다르게 잡았다. “상황을 마주치고 보자” 라고 말이다. 따라서 (뉴질랜드에서 한국으로 저녁때 도착한 바로 그 다음날 아침에 출국이라 철저히 챙길 시간도 없었지만) 나의 짐 가방도 모기퇴치약, 스포츠용품(manual work용), 다른 봉사자들에게 나눠줄 한국 기념품들 그리고 한 두벌의 일상복으로 구성될 정도로 매우 간소하였다.

늘 과제준비로 컴퓨터를 달고 살았던 내가 모든 매체에서 벗어나고 해외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익히고 보겠다라는 욕심을 버리고 나니 왠지 모를 해방감과 여유을 느낄수 있었었다. 처음 베트남공항에 도착한 순간부터 나는 타지에 홀로 남겨졌다는 불안감대신 세계각국의 다양한 국가에서 온 봉사자들을 만나고 vinh son 학교의 어린 아이들과 함께할 생각에 설레임이 가득하였었다.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버스를 타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오후 수작업을 할 vinh son school로 가는 길의 모습과 길거리 곳곳에서 보여지는 외국인 대상으로 구걸하는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다. 베트남 호치민 중심 도시 지역 외의 지역에는 하나같이 쓰러져 가는 집들과 한국의 약 1960년대를 연상케 하는 오래된 상점들, 그리고 쓰레기가 즐비하였다. 워크캠프를 할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지만 한국으로 돌아와 시골을 방문을 하고 보니 내가 갔었던 지역이 얼마나 열악한 곳이었는지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또한 벤또 마켓이며 다른 봉사자들과 함께 쉬는 시간에 놀러 간 몇몇의 관광지에서 종종 어린아이들이 서로 잃지 않으려고 손을 잡으며 외국인 관광객 대상으로 껌을 파는 데 안쓰러웠다. 그 아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전부일거라 생각하기에 자신의 일을 일상으로 치부할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입장에서 그 나이 또래에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며 가족과 함께 있지 못하고 위험하게 도로와 밤길을 돌아다니며 낯선 사람들에게 물건을 파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안타까움을 느꼈다.

*워크캠프 활동 (오전)
기상은 6시로 아침 식사 후 7시 즈음에 단체로 vinh son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까지 도보로 약 20분을 걷는다. 오전반이 세 개 이기에 우리 맴버들 또한 세 개의 그룹으로 나누기로 했다. 나와 2주를 함께 24명의 5살의 아이들을 가르친 나 외의 다른 봉사자들의 국적은 베트남,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이었다. (캠프 참가자들 국적은 베트남, 한국,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으로 구성되었다.)
물론 첫날에는 아이들이며 학교에 대한 그 어떤 정보가 없었기에 아이들을 교실에서 마주할 때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 매우 당황스러웠다. 첫날부터 아이들을 가르치기에는 아이들에 대한 정보가 매우 부족하여 수업진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아이들 또한 준비가 안된 우리를 보며 가르침을 받기에는 무리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지 단체로 나가서 놀자는 신호를 보냈다. 우리는 사전에 수업 준비한 것 없기에 아이들을 따라 밖 마당으로 나와 간신히 즉석으로 생각해낸 터치볼 게임으로 첫 수업시간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우리 그룹은 이 첫날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수업시작전 주어진 30분간의 여유시간을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지에 대한 수업내용을 계획하고 의논하는 시간으로 활용했다.
무엇보다 그 나이 또래에 아이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요소들을 파악하고 활용도가 높은 것들을 위주로 가르치기로 했다. 그래서 먼저 생각해 낸 것은 hello how are you what is your name? My name is.. 등의 기본인사예절과 자기소개였다. 아이들이 초반엔 수줍어하며 작은 목소리로 따라 불렀지만 우리모두가 하나같이 격려를 하며 열띤 모습으로 수업을 진행해서인지 곧잘 앵무새처럼 정확한 발음으로 자기들끼리 연습하는 모습을 볼 수 가 있었다. 그 날 이후로 우리의 수업준비는 더욱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ABC 등의 영어의 기본이 전혀 안되어있는 5살짜리의 어린 아이들이 2주체 안 되는 그 짧은 기간 동안에 ABC며 7가지의 무지개 색상, 가축동물, 눈코입 등의 수업내용을 전부 이해하고 외울지를 누가 상상이라도 했었을까? 정말 아이들의 순수함과 배우려는 의지와 열정이 담긴 눈들을 보면 manual work로 인한 피로도 싹 가시는 기분이 든다. 비록 초반엔 잘 따르지 않았던 아이들이 있어 힘들었던 적도 없지 않았지만 몇번의 수업이후 아이들 하나하나가 서서히 마음을 열고 열심히 따라와 주며 먼저 다가와주어 너무 고마웠었다.

*워크캠프 활동 (오후)
캠프의 1주째의 오후는 뒷마당의 나무토막들이며 철판들을 가지런하게 정리하고, 뜰에 나가 언덕진 모래 섬을 가지런하게 정리하여 보기 좋게 평지로 만드는 작업을 하였다.물론 습기며 살을 그을리는 햇볕을 견뎌야 하는 것은 고통스러웠고 그 어떤 경제적인 대가가 없는 일이지만 다른 멤버들과 함께하였기에 일이 즐거웠고 나아가 목표로 하였던 것이 여러 힘이 모여 짧은 기간 내에 이뤄졌다는 것 자체가 보상이었다. 2주째의 manual work는 실내에 위치한 거대한 물 탱크를 닦는 것이라 첫째주에 비해 덜 힘이 들었었다. 무엇보다 다같이 긍정적인 마인드로 협력을 하였기에 즐거웠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마치고 물호스로 몸을 식히고 피스하우스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예상과는 달리 가볍기만 하였었다. 고된 노동끝에 피로에 지쳐 제대로 걷지 못할지도 모른 다는 걱정을 해왔지만 뜻밖에도 돌아가는 길은 학교로 올때보다 정신이 더 맑고 몸이 가벼워진 기분이었다.

*워크캠프 봉사자들과
전반적으로 유럽과 아시아사이의 문화차이가 컸음에도 불구하고 웃음과 쾌활한 분위기가 단 한번도 끊인 적이 없었다.
비록 난 고등학생 신분이었지만 당차게 먼저 접근하면서 대화를 이어갔었고 그 어느 누구도 내가 나이가 가장 어리다고 해서 대화에서 단절시키거나 제외시키는 일이 일절 없었었다.
서로들 vinh son school에서 가르치는 아이들과 함께 있었던 일들 말고도 각각의 대학생, 대학원생, 직장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서 나아가 후엔 미래계획과 각각의 철학관과 역사, 예술 및 정치에 관한 개인적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주중 일이 모두 끝난 뒤에는 같이 주변 도시며 관광지를 놀러 다니고 주말에는 같이 메콩강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나 정말 잊지 못할 추억들을 남기고 왔다.비록 짧은 2주였지만 함께한 세계각국의 봉사자들과의 사이는 화목한 가족과도 같았다. 그동안 많은 정이 들어서인지 마지막날 이별할 때에는 아쉬운 마음이 컸다.우리 모두 다음날 다른 워크캠프에서나 나라를 방문하면서 만나기를 기약하고 어려운 이별을 하였다.

아무런 큰 포부 없이 열린 마음으로 참여한 베트남 워크캠프. 아직까지도 그 지역 사람들과 아이들과 그리고 2주를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함께한 세계각국의 봉사자들과 함께한 소중한 기억이 마음 깊숙이 남아있다. 물론 이번 베트남 vinh son school 워크 캠프는 내가 배움의 기회가 부족한 아이들에게 배움의 즐거움과 열정을 전달하고 열악한 학교 주변지역을 개선하러 참여한 봉사 프로그램이지만 나에게도 또한 정신적 행복을 가져다 주고 치유를 도맡은 힐링 캠프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