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기차 놓치고, 캠프 장소 바뀌고, 그래도 괜찮아

작성자 남현서
독일 NIG05 · ENVI/RENO 2014. 06 - 2014. 07 Lohmen

Teterow II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처음 워크캠프를 신청할 때, 나는 말 그대로 '아무 생각도 없었다.'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서 일단 한 번 해보자고 지원하긴 했지만, 문화 교류도 하고 봉사도 하면 좋은 거겠지 하고 지원했지만, 사실은 그저 유럽여행 가는 김에 끼워 넣은 일정이었다. Teterow를 지원한 이유도 폴란드에서 하는 풍등축제(취소 돼서 보지는 못했지만)를 보고 Berlin 갔다가 나오면 좋겠다 싶어서였다. 그래서 막상 한 달의 자유여행이 끝나고 워크캠프를 가는 날이 다가오자 막막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영어도 잘 못하는데, 3주 동안이나 외국인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게다가 Praha에서 출발했는데 기차를 놓쳐서 미팅 포인트에 한참 늦게 도착한 데다, 캠프 장소가 Lohmen으로 바뀌었다는 것도 기차를 타고 가면서 알게 되었다. 기대감보다는 두려움이 점점 더 커졌다.

Gustrow Station과 캠프 장소는 거리가 있어서, 약 20분 정도 차를 타고 가야했다. 도착해서 처음, 첫날의 낯선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솔직히 '아, 여기서 3주를 어떻게 버티냐.'였다. 그걸 느낀 건 우린 캠프가 섞여서 한국인이 4명이나 있었는데, 다른 한국인 친구들과는 다르게 나는 외국인 친구들에게 아무 것도 궁금한 게 없었고, 영어로 말 걸기도 부담스러웠고, 그냥 시간이나 빨리 갔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는 걸 깨달아서였다. 그렇게 Lohmen workcamp는 시작되었다.

봉사는 많이 힘든 일은 아니었고, ENVI/RENO라는 테마답게 마을을 청소하고 환경을 가꾸는 일이었다. 가로수의 가지를 잘라내고 다듬거나 비온 뒤 도로를 정비하거나 페인트칠을 하는 것이었다. 제일 좋았던 건 유치원에서 봉사했던 것이었는데, 아이들이 정말 잘 따라서 귀여웠다. 나의 서툰 독일어를 알아듣고 대답하는 것도 신기했다.

우리 캠프는 자유 시간이 많은 편이었고 월드컵 기간이 겹쳐서 동네 분들과 교류가 꽤 있었다. 특히 내가 머물렀던 캠프는 2층이 캠프 시설이었고 1층 일부가 풋볼클럽이었기 때문에 독일이 경기가 있을 때마다 내려가서 같이 beer를 마시면서 응원을 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마당에서 풋볼게임을 하기도 했는데 현지인과 함께 봐서 더욱 더 재밌었다. 이 분들을 초대해서 저녁을 대접하거나 바비큐 파티를 하기도 했다.

자유 시간에는 주변에 Lake가 있었기 때문에, 수영을 하거나 발리볼을 하러 가는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구경하는 걸 좋아해서 Store를 찾아다니면서 마을 사람들을 구경하거나 (동네에 있는 게 신기한) Cafe에 앉아있거나 했었다. 한 번은 Day-off가 있어서 멕시칸 친구와 함께 Gustrow의 City center를 구경하러 가기도 했다.

일을 하지 않는 2번의 주말에는 한 번은 Rostock, 한 번은 Berlin으로 함께 여행을 떠났다. 봉사도 그렇지만 여행 기간 동안에도 아이들과 많이 친해진 것 같은데, 저녁마다 펍에 가거나 디스코에 가서 춤을 추기도 하고 beer 하나씩 들고 공원에 둘러 앉아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후에 Berlin을 혼자 여행하기도 했지만,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는 건 또 다른 느낌이어서 좋았다.

봉사활동을 통해서 현지인들과 교류하고 그들이 사는 방식을 체험해본 것도 즐거웠지만, 봉사와 자유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외국인 친구들과의 벽이 많이 허물어진 것도 좋았다. 그전에 나는 한 달 가량 유럽여행을 하면서 외국인들을 많이 접하긴 했지만 단편적이라, 사실 어떤 환상 같은 것이 있었다. 하지만 워크캠프를 하면서 그런 환상들은 다 깨졌다. 그들은 여전히 낯선 존재였지만 나와 같은 사람이었다.

우리는 멕시코 2명, 프랑스 2명, 타이완 1명, 체코 2명, 한국인 4명, 총 11명으로 이루어져 있는 그룹이었다. 처음의 낯섦과 거부감이 점차 친근감으로 바뀌어 간다는 걸 느낀 건, 내가 그들에게 궁금한 것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을 때다. 나는 Deutsch와 Espanol에 관심이 있어서, 캠프 리더인 핸드릭과 마이라라라는 독일어를 좋아하는 멕시칸 친구에게 간단한 언어를 배워서 여행하면서 가끔 써먹었다. 친구들은 심심할 때마다 홀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자기 나라 언어와 문화에 대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우리는 식사를 모두 지어서 먹어야 했는데, 각국의 음식을 먹어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나는 디저트를 좋아해서 멕시칸 캔디와 프랑스 친구가 구워준 빵을 열심히 먹고 레시피를 배우기도 했다. 우리도 Korean day라고 해서 한국 음식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식사를 매일 같이 하니 훨씬 더 친해지는 기분이었다.

외국인들은 아예 나랑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아마도 첫날의 두려움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함께 지내다 보니, 얘들도 그냥 나랑은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는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나는 해외여행도 처음이었고 외국인들과 함께 오래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나와 같은 존재라는 것이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그렇지만 얘들도 남자친구 문제로 고민하기도 하고, 누군가를 좋아하기도 싫어하기도 하고, 비슷한 농담에 웃고, 슬플 때 위로해주는 똑같은 인간이구나 하는 걸 알게 되니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하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최근에 말레이시아 항공 사고와 가자지구 폭격을 보면서 더욱 슬펐던 건, 워크캠프에서 했던 이 경험을 통해서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5주간의 여행과 3주간의 워크캠프, 총 2달간의 경험을 통해서 참 많은 성장을 했다. 워크캠프 덕분에 내가 가지고 있던 환상, 다른 의미로는 편견이 많이 깨졌고, 여행 하면서 (도와주지 않아도 됐을 텐데) 날 도와줬던 많은 외국인들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두 달 간의 경험으로 내 모든 것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넓다는 것도 알게 되고, 그동안 내가 살아온 방식에 한 번 질문을 던지게 만든 이 경험을 결코 잊지는 못할 것 같다. 다음에는 스페인 쪽으로 여행을 가볼까 하는데, 그때는 나와 좀 더 잘 맞는 워크캠프를 지원해서 또 새로운 깨달음을 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