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새로운 도전을 향한 설렘, Gerola alta
Gerola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처음 워크캠프를 알게 된 것은 학교 대외협력과의 공문을 통해서다. 평소 대외활동에 관심이 많았던지라 일주일에 두 세 번씩 학교 공문을 확인하곤 하는데, 마침 워크캠프 참가 모집 공문을 보게 된 것이다. 신청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이뤄졌다. 학교에서 보조해 주는 금액은 참가비밖에 없었고, 모든 활동 준비는 스스로 해야 하는 것이어서 걱정이 될 만도 했지만 그 모든 것이 워크캠프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을 막지는 못했다.
시험기간 무렵 참가신청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참가자가 없어서였던 것인지 운 좋게 합격했다. 그리고 ‘이제 됐구나!’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학교에서 신청서를 작성하여 참가자를 선발하는 것 이외에 국제 워크캠프 기구에 직접 참가신청서를 제출하고 선발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신청서를 영어로 작성해야함은 물론, 학교 참가자라서 우선권을 부여한다고는 하나 워크캠프에 참가를 희망하는 전 세계 청년들 중 다시 한 번 선발 과정을 거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과연 내가 그들과의 경쟁에서 경쟁력이 있는가’ 하는 불안함 때문에 사실, 두 번째의 신청서를 작성하고 난 후에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그 형편없는 작문으로 만들어진 신청서가 다행히 받아들여졌고, 7월 초 2주간의 이탈리아 Gerola alta라는 지역에서의 워크캠프 참가 합격을 통보받았다.
내게 이탈리아 워크캠프 합격은 특히 큰 의미가 있는데,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이 끝난 후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무조건 해외여행을 다녀오자는 마음을 먹고, 그해 겨울방학에는 친구와 함께 동유럽 여행을,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는 엄마와 터키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올해 목표로는 여름방학에 이탈리아로 배낭여행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었다. 정말 막연한 것이어서 어느덧 학기가 시작하자 여행을 계획할 틈도 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워크캠프 활동을 통해 정말로 이탈리아 배낭여행을 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스스로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 가능해진 것이다. 이래서 ‘꿈꾸는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고 하는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Gerola alta 지역에서의 Environment 활동이라는 내용을 접했을 때문 적잖이 당황했다. 전혀 처음 들어본 이탈리아 북부 어딘가의 도시가 구글맵에 그려졌고, 육체적인 활동도 잘 할 수 있다고 참가 신청서에는 적었으나, 숲속에서의 산책로 조성이 주 활동이 될 것이라는 글에 걱정이 되었다. 등산도 가끔 하고, 환경 미화 활동에 관심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 방면에 전문성이 전혀 없는 내가 그런 활동을 할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은 되었지만 두려움은 없었기에 7월 3일 커다란 배낭을 메고 비행기에 몸을 싣고 파리로 홀연히 떠났다.
활동 국가는 이탈리아였지만, 조금 더 저렴한 티켓을 구입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 행으로 끊었기 때문에 파리에서 미팅장소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밀라노까지 고속철도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그리고 밀라노 중앙역에서 철도를 갈아타고 북부 산간지역으로 더 이동을 했다. 장거리 이동에 처음 가는 국가와 도시였지만, 자세하게 적혀진 인포짓 덕분에 미팅 포인트로 찾아가는 길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우리나라 시골의 조그마한 간이역 같은 역에서 내리자 해당 지역의 주최측에서 마중을 나왔고 30여 분 간을 차로 더 들어가자 마침내 Gerola alta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다.
해발 1000m가 넘는 곳에 위치한 마을로 처음 느낌은 우리나라의 평창과도 같았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맥의 봉우리에는 저마다 만년설을 품고 있다는 것과, 여름인데도 아침, 저녁으로는 입김이 날 정도로 쌀쌀했다는(사실 굉장히 추웠다) 것이다.
처음 이곳에 도착한 후 사흘간은 비가 오락가락 했는데, 때문에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해야 하는 주 초반에는 마을 주변을 돌아보며 앞으로 일하게 될 장소를 답사하거나, 숙소 바로 앞에 있던 교회를 청소하며 활동을 대신했다. 교회 청소라 처음에는 그냥 빗자루로 쓸고 물걸레로 닦는 정도의 간단한 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교회의 규모가 크고, 청소방법이 복잡해 고된 작업이었다. 나무로 된 교회 바닥을 고체 왁스 가루를 뿌려 일일이 솔로 문지르고 치우는 일이 우리가 없었으면 도대체 교회사람들 끼리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주 중반이 되자 날이 서서히 개기 시작했고 따라서 사흘째에 본격적인 환경조경 활동에 돌입했다. 답사를 했던 둘째 날부터 캠프를 떠나기 바로 전날까지 단 한 번도 산을 오르지 않은 날이 없었을 정도로 활동은 빡빡하게 진행 되었다. 하루는 숙소에서 계곡 건너편에 위치한 산을 오르며 산책로를 조성하고, 다음날은 마을을 가로질러 올라가면 있는 산을 오르며 산책로를 조성하고, 그 다음날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있는 산의 산책로를 조성하고, 또 그 다음날은 이전에 갔던 산의 다른 길로 오르는 산책로를 조성하고....언제나 가는 산은 달랐지만 하는 일은 모두 산책로 조성이었다. 이 활동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자면, 참가자들이 각자 괭이나 곡괭이, 톱 그리고 칼 따위를 들고 산에 오르면서 우리나라로 치면 둘레길처럼 가꿔진 산책로에 쌓인 낙엽을 치우고 망가진 길을 정비하는 등의 활동이다. 쉽게 설명하면 환경 미화원과 같은 활동을 산에서 진행했다고 보면 된다.
처음 활동을 시작하고 나흘간은 꽤나 패기 있게 활동을 했다. 평소에 가끔씩 등산을 가기도 했고, 스포츠를 좋아하여 이런저런 운동을 통해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 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동에 임할 수 있었다. 여자 팀원들은 간혹 힘에 부쳐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최선을 다해 활동했고, 남자 팀원들 또한 익숙하지 않은 등산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여자 팀원을 배려하며 활동에 임했다. 그러나 매일같이 이어지는 등산과 괭이질 그리고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과 아침저녁으로 계속 되는 추위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지속되자 나를 비롯한 여타 팀원들도 첫째 주 후반쯤에는 서서히 체력에 한계가 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첫째 주 중반이 넘어가자 날씨가 조금 풀리고 기온이 올랐으며, 다행히 여분의 담요를 더 받게 되면서 밤에 잠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팀리더 할머니의 방문으로 식사의 퀄리티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체력을 회복하는 계기가 된 것이 앞으로의 활동을 무사히 마치게 한 가장 큰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안나’(팀리더 할머니의 이름)는 이탈리아 전통 음식을 손수 만들어 주었으며, 파스타 이외에도 샐러드, 리조또 등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녀 덕분에 그동안 주렸던 배를 든든하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캠프생활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자 마음의 여유가 생기며 주위 환경에 익숙해져 갔고, 팀 동료들과도 서서히 친해지면서 어느덧 활동을 즐기게 되었다.
캠프 참가 전 참가자들의 수기를 읽어보면 하루 6시간 활동이 생각보다 부담스럽고 힘들었다고 하는 글을 많이 봤다. 그러나 나의 경우 하루 6시간 활동이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르게 빠르게 지나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을 오르고 괭이질을 하다 보면 하루 6시간의 활동시간이 금세 지나갔고, 어느덧 활동을 마치고 숙소에 내려오면 느긋한 오후의 휴식과 안나의 맛있는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했던 아르바이트의 경우 하루 10-12시간을 꼬박 밖에서 서서 일하고 집에 가면 씻고 자기 바빴던 것과 비교하면 워크캠프에서의 활동은 사실 내겐 여유 있게 느껴질 정도였다. 처음 며칠간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낯선 사람과의 접촉으로 힘들었지만, 그것을 제외한다면 활동 기간 동안 머물렀던 지역은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이 오롯이 이곳에서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정말 좋았다. 특히 첫째주의 경우 아직 월드컵 기간 중이었던 터라 저녁에는 카페 겸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축구 경기를 관람하며 시간을 보냈다.
첫째주 주말 중 토요일은 반납해야 했다. 비가 오느라 하지 못했던 주 초의 작업 시간을 채워야 했고, 지역주민의 의뢰로 새로운 지역의 산책로 조성 활동에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원들은 흔쾌히 활동에 임했고 점심도 먹지 못하고 아침 일찍부터 오후 2시까지 이어진 일에도 열심히 작업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 덕분에 활동이 조금 일찍 끝나는 행복을 누리기도 했다. 사전교육 당시 주말에는 쉴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주말동안 관광을 다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토요일 오후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너무 피곤하기도 하거니와 내가 있던 지역에서 시내로 나가거나 다른 관광지로 이동하는 것이 꽤나 먼 거리였기 때문에 일찌감치 관광은 포기하고 숙소에서의 휴식을 택했다. 그 대신 일요일은 모두 함께 활동 지역 인근의 호수를 끼고 있는 산에 오르기로 했는데, 그동안 일을 하기 위해 산에 오른 것과는 다르게 오롯이 산위에서의 휴식을 즐기기 위해 등산을 했고, 산 정상에서 만년설을 보며 호숫가에서 점심을 먹는 등 느긋한 주말을 보낼 수 있었다.
둘째주는 그 전주에 비해 훨씬 빠르게 지나갔다. 첫째주에 이미 힘든 코스들을 마쳐놓은 후여서 둘째주의 활동은 훨씬 수월하기도 하거니와, 일을 마치고 돌아온 오후에는 마을사람들과 어울리며 파티를 즐기기도 하고 저녁식사를 함께하다 보니 하루가 정말 빨리 갔다.
주 후반에는 그동안 우리가 한 활동의 보고회와 함께 마을사람들과의 저녁식사가 크게 있었고, 또 한 번의 파티가 있었다. 파티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숙소 인근의 카페 겸 바에서 이뤄지는 클러빙 같은 것에 불과했지만, 나름 춤도 추고 술도 마시며 팀원 간 그리고 마을의 청년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캠프를 떠나기 이틀 전에는 어떤 방송사에서 나와서 우리를 인터뷰 하고 가기도 했다. 사전 오리엔테이션 당시 프랑스의 어떤 캠프에서는 지역 신문에 그들을 취재하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혹시 우리 팀에게도 그런 일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우리에게도 어떤 방송국에서 찾아온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정확히 무얼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촬영하기도 하고, 팀리더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는데, 한국에서 왔다는 동양인이 눈에 띄었는지 마지막 엔딩 컷을 촬영할 때 내 얼굴 바로 앞에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앵커가 바로 옆에 서서 어깨동무를 하며 촬영을 마쳤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떠나기 전에 방송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어느덧 캠프를 떠나기 하루 전, 원래는 아침 일찍 이탈리아 국가대표 여성 배구팀과의 기념촬영이 잡혀있어 그날은 활동을 하지 않기로 되어있었는데, 돌연 그날 아침 그들이 피지컬 테라피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통지하여 우리는 뜻밖의 자유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주말이고 평일이고 할 것 없이 산행을 했던 지라 그날은 절대 산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숙소에서 쉬려고 했느나, 그러기에는 그 주 날씨가 너무나도 완벽했고 다음 날이면 이곳을 떠난다는 아쉬움으로 나 역시 다른 팀원과 함께 숙소 바로 앞에 있는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캠프를 떠나는 날은 제각기 달랐는데, 나와 언니(같은 학교에서 온)의 경우 여행 일정상 아침 일찍 떠나야 했다. 따라서 금요일 밤 팀원들과 간단히 인사를 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마을을 떠났다.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당시에는 길기만 하던 2주가 너무나도 빨리 지나간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팀원들과 빨리 친해지지 못했던 것에 아쉬움이 큰데, 평소에도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커서 친구사귀기를 어려워하는 나로서는 그나마 그 전보다는 진보가 있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싶다. 처음 팀원들을 만났을 때는 나와 같은 학교에서 온 언니만 동양인이고, 나머지는 스페인, 프랑스, 체코, 터키, 러시아 등 유럽권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여서 친해지기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나고 2주간 함께 지내며 비로소 팀원들과 친해졌나 싶었을 때 캠프를 떠나게 되었다. 특히 ‘아나스타시아’라는 러시아에서 온 친구와 친해졌었는데 캠프를 떠나기 전날 그녀가 나와의 이별을 가장 아쉬워해 기억에 남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물론 모두 기억에 남을 것 같지만, ‘불운의 하루’ 혹은 ‘필로포(팀 리더의 이름)의 수난’이라고 명명할 법한 ‘그날’일이 가장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다. 첫째주의 금요일 이었던 것 같다. 그 전날 활동을 위해 산을 오르던 중 탄탄한 몸매의 소유자였던 프랑스에서 온 ‘마리온’이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켰었다. 그 때문에 그녀를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팀 리더와 마리온이 자리를 비웠고 부팀장과 팀원들은 작업을 위해 산을 올랐다. 팀장도 없고 그날 날씨가 유독 더워 모두 조금은 늘어진 채로 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밑에서 비명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help”라는 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놀란 부팀장은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고, 나 또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그의 뒤를 쫒았다. 알고보니 칼로 나무를 베던 중 스페인에서 온 ‘마틴’이 그의 친구인 ‘디에고’의 손을 칼로 내리친 것 이었다. 그 둘과 부팀장인 ‘존’은 병원을 가기 위해 황급히 내려갔고, 현장에 있던 다른 팀원들이 그들의 사고 소식을 전해 주었다. 다행히 심하게 다치지 않아 꿰매고 붕대를 감는 정도로 일이 정리되긴 했지만, 오후에 일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갔을 때 ‘마리온’과 ‘디에고’와 함께 있는 ‘필로포’의 모습은 정말이지 안쓰러울 정도로 핼쑥해져 있었다. 둘 다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 날은 팀원 모두에게 긴장의 연속이었던 날로 기억되었다.
그리고 하나 더, 사전 교육당시 캠프 내에서 미묘한 연애기류가 감지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났다. 팀원 가운데 터키에서 온 ‘우트크’와 ‘부슈라한’ 커플 외에는 나머지 팀원들은 개인이서 혹은 친구끼리 참가했었는데, 부상사건으로 병원을 함께 다녀온 ‘그날’ 이후 마리온과 디에고가 커플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나는 둘째주 내내 맘편히 내 방을 쓰지도 못하고 밤에 쉬이 잠들지 못했더랬다. 마리온은 내 룸메이트기도 해서 그녀와 디에고가 함께 방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밤늦게까지 애정행각을 벌이는 탓에 애꿎은 내가 밤잠을 설쳤더랬다.
어느덧 워크캠프에 다녀온 지 2주차가 되어간다. 캠프 이후에 바로 배낭여행을 다니느라 여전히 여행의 향수에 젖어 있지만, 오히려 배낭여행 동안의 기억보다 워크캠프에서의 기억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좋은 친구들과 좋은 장소에서 좋은 활동을 하며 의미있는 시간을 보낸 것에 기쁘고 감사함을 느낀다. 만약 다시 한 번 워크캠프에 참가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금전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면 ‘당연하지’라고 답할 것이다. 그만큼 이 캠프는 스스로에게 값진 경험을 선물해 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이 활동을 통해 변화한 나를 인지하지 못하지만, 언젠가 이 경험이 나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하게하고 그동안 가던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만약 워크캠프를 단순히 스펙을 위해서, 혹은 자기소개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쓸 말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활동을 추천하지 않는다. 화려한 스펙을 원한다면 그 시간동안 영어공부나 자격증 공부를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리라. 그러나 만약 새로운 모험을 찾고 있거나, 학교와 집 혹은 학업과 취업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즐거움을 맞보고자 하는 누군가에게는 당장 짐을 싸서 떠나라고 하고 싶다. 그 만큼 워크캠프는 당신에게 소중한 경험을 줄 것이고, 그 경험은 당신의 현재를 미래를 변화시킬 충분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리라.
청년이란 시간을 짧고 불확실하여 확신이 드는 어떤 것을 갈망하느라 도전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청년이여 모험을 떠나라’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많고, 세상엔 즐길거리가 넘쳐나며, 세상 밖으로 나갔을 때 내가 있던 곳이, 내가 하던 사고가 얼마나 비좁은 것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바로 앞의 미래를 걱정하며 망설이지 말고 일단 한번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시험기간 무렵 참가신청이 진행되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참가자가 없어서였던 것인지 운 좋게 합격했다. 그리고 ‘이제 됐구나!’라고 생각한 것도 잠시, 학교에서 신청서를 작성하여 참가자를 선발하는 것 이외에 국제 워크캠프 기구에 직접 참가신청서를 제출하고 선발을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신청서를 영어로 작성해야함은 물론, 학교 참가자라서 우선권을 부여한다고는 하나 워크캠프에 참가를 희망하는 전 세계 청년들 중 다시 한 번 선발 과정을 거치는 것이었기 때문에 ‘과연 내가 그들과의 경쟁에서 경쟁력이 있는가’ 하는 불안함 때문에 사실, 두 번째의 신청서를 작성하고 난 후에는 크게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나의 그 형편없는 작문으로 만들어진 신청서가 다행히 받아들여졌고, 7월 초 2주간의 이탈리아 Gerola alta라는 지역에서의 워크캠프 참가 합격을 통보받았다.
내게 이탈리아 워크캠프 합격은 특히 큰 의미가 있는데,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이 끝난 후 일 년에 한 번 이상은 무조건 해외여행을 다녀오자는 마음을 먹고, 그해 겨울방학에는 친구와 함께 동유럽 여행을,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에는 엄마와 터키여행을 다녀왔다. 그리고 올해 목표로는 여름방학에 이탈리아로 배낭여행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고 있었다. 정말 막연한 것이어서 어느덧 학기가 시작하자 여행을 계획할 틈도 없이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워크캠프 활동을 통해 정말로 이탈리아 배낭여행을 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스스로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 가능해진 것이다. 이래서 ‘꿈꾸는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고 하는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Gerola alta 지역에서의 Environment 활동이라는 내용을 접했을 때문 적잖이 당황했다. 전혀 처음 들어본 이탈리아 북부 어딘가의 도시가 구글맵에 그려졌고, 육체적인 활동도 잘 할 수 있다고 참가 신청서에는 적었으나, 숲속에서의 산책로 조성이 주 활동이 될 것이라는 글에 걱정이 되었다. 등산도 가끔 하고, 환경 미화 활동에 관심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 방면에 전문성이 전혀 없는 내가 그런 활동을 할 수 있을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은 되었지만 두려움은 없었기에 7월 3일 커다란 배낭을 메고 비행기에 몸을 싣고 파리로 홀연히 떠났다.
활동 국가는 이탈리아였지만, 조금 더 저렴한 티켓을 구입하기 위해 프랑스 파리 행으로 끊었기 때문에 파리에서 미팅장소까지 이동하기 위해서는 밀라노까지 고속철도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그리고 밀라노 중앙역에서 철도를 갈아타고 북부 산간지역으로 더 이동을 했다. 장거리 이동에 처음 가는 국가와 도시였지만, 자세하게 적혀진 인포짓 덕분에 미팅 포인트로 찾아가는 길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우리나라 시골의 조그마한 간이역 같은 역에서 내리자 해당 지역의 주최측에서 마중을 나왔고 30여 분 간을 차로 더 들어가자 마침내 Gerola alta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 도착하게 되었다.
해발 1000m가 넘는 곳에 위치한 마을로 처음 느낌은 우리나라의 평창과도 같았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면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맥의 봉우리에는 저마다 만년설을 품고 있다는 것과, 여름인데도 아침, 저녁으로는 입김이 날 정도로 쌀쌀했다는(사실 굉장히 추웠다) 것이다.
처음 이곳에 도착한 후 사흘간은 비가 오락가락 했는데, 때문에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해야 하는 주 초반에는 마을 주변을 돌아보며 앞으로 일하게 될 장소를 답사하거나, 숙소 바로 앞에 있던 교회를 청소하며 활동을 대신했다. 교회 청소라 처음에는 그냥 빗자루로 쓸고 물걸레로 닦는 정도의 간단한 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교회의 규모가 크고, 청소방법이 복잡해 고된 작업이었다. 나무로 된 교회 바닥을 고체 왁스 가루를 뿌려 일일이 솔로 문지르고 치우는 일이 우리가 없었으면 도대체 교회사람들 끼리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주 중반이 되자 날이 서서히 개기 시작했고 따라서 사흘째에 본격적인 환경조경 활동에 돌입했다. 답사를 했던 둘째 날부터 캠프를 떠나기 바로 전날까지 단 한 번도 산을 오르지 않은 날이 없었을 정도로 활동은 빡빡하게 진행 되었다. 하루는 숙소에서 계곡 건너편에 위치한 산을 오르며 산책로를 조성하고, 다음날은 마을을 가로질러 올라가면 있는 산을 오르며 산책로를 조성하고, 그 다음날은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있는 산의 산책로를 조성하고, 또 그 다음날은 이전에 갔던 산의 다른 길로 오르는 산책로를 조성하고....언제나 가는 산은 달랐지만 하는 일은 모두 산책로 조성이었다. 이 활동에 대해 자세히 소개하자면, 참가자들이 각자 괭이나 곡괭이, 톱 그리고 칼 따위를 들고 산에 오르면서 우리나라로 치면 둘레길처럼 가꿔진 산책로에 쌓인 낙엽을 치우고 망가진 길을 정비하는 등의 활동이다. 쉽게 설명하면 환경 미화원과 같은 활동을 산에서 진행했다고 보면 된다.
처음 활동을 시작하고 나흘간은 꽤나 패기 있게 활동을 했다. 평소에 가끔씩 등산을 가기도 했고, 스포츠를 좋아하여 이런저런 운동을 통해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 보다는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동에 임할 수 있었다. 여자 팀원들은 간혹 힘에 부쳐하기도 했지만 그들의 최선을 다해 활동했고, 남자 팀원들 또한 익숙하지 않은 등산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여자 팀원을 배려하며 활동에 임했다. 그러나 매일같이 이어지는 등산과 괭이질 그리고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과 아침저녁으로 계속 되는 추위에 잠 못 이루는 밤이 지속되자 나를 비롯한 여타 팀원들도 첫째 주 후반쯤에는 서서히 체력에 한계가 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첫째 주 중반이 넘어가자 날씨가 조금 풀리고 기온이 올랐으며, 다행히 여분의 담요를 더 받게 되면서 밤에 잠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팀리더 할머니의 방문으로 식사의 퀄리티가 급격히 상승하면서 체력을 회복하는 계기가 된 것이 앞으로의 활동을 무사히 마치게 한 가장 큰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안나’(팀리더 할머니의 이름)는 이탈리아 전통 음식을 손수 만들어 주었으며, 파스타 이외에도 샐러드, 리조또 등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녀 덕분에 그동안 주렸던 배를 든든하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캠프생활이 안정적으로 이루어지자 마음의 여유가 생기며 주위 환경에 익숙해져 갔고, 팀 동료들과도 서서히 친해지면서 어느덧 활동을 즐기게 되었다.
캠프 참가 전 참가자들의 수기를 읽어보면 하루 6시간 활동이 생각보다 부담스럽고 힘들었다고 하는 글을 많이 봤다. 그러나 나의 경우 하루 6시간 활동이 어떻게 지나가는 지도 모르게 빠르게 지나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을 오르고 괭이질을 하다 보면 하루 6시간의 활동시간이 금세 지나갔고, 어느덧 활동을 마치고 숙소에 내려오면 느긋한 오후의 휴식과 안나의 맛있는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그동안 한국에서 했던 아르바이트의 경우 하루 10-12시간을 꼬박 밖에서 서서 일하고 집에 가면 씻고 자기 바빴던 것과 비교하면 워크캠프에서의 활동은 사실 내겐 여유 있게 느껴질 정도였다. 처음 며칠간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낯선 사람과의 접촉으로 힘들었지만, 그것을 제외한다면 활동 기간 동안 머물렀던 지역은 너무나도 아름다웠고, 아무것도 신경 쓸 필요 없이 오롯이 이곳에서의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정말 좋았다. 특히 첫째주의 경우 아직 월드컵 기간 중이었던 터라 저녁에는 카페 겸 바에서 맥주를 마시며 축구 경기를 관람하며 시간을 보냈다.
첫째주 주말 중 토요일은 반납해야 했다. 비가 오느라 하지 못했던 주 초의 작업 시간을 채워야 했고, 지역주민의 의뢰로 새로운 지역의 산책로 조성 활동에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팀원들은 흔쾌히 활동에 임했고 점심도 먹지 못하고 아침 일찍부터 오후 2시까지 이어진 일에도 열심히 작업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 덕분에 활동이 조금 일찍 끝나는 행복을 누리기도 했다. 사전교육 당시 주말에는 쉴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주말동안 관광을 다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토요일 오후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너무 피곤하기도 하거니와 내가 있던 지역에서 시내로 나가거나 다른 관광지로 이동하는 것이 꽤나 먼 거리였기 때문에 일찌감치 관광은 포기하고 숙소에서의 휴식을 택했다. 그 대신 일요일은 모두 함께 활동 지역 인근의 호수를 끼고 있는 산에 오르기로 했는데, 그동안 일을 하기 위해 산에 오른 것과는 다르게 오롯이 산위에서의 휴식을 즐기기 위해 등산을 했고, 산 정상에서 만년설을 보며 호숫가에서 점심을 먹는 등 느긋한 주말을 보낼 수 있었다.
둘째주는 그 전주에 비해 훨씬 빠르게 지나갔다. 첫째주에 이미 힘든 코스들을 마쳐놓은 후여서 둘째주의 활동은 훨씬 수월하기도 하거니와, 일을 마치고 돌아온 오후에는 마을사람들과 어울리며 파티를 즐기기도 하고 저녁식사를 함께하다 보니 하루가 정말 빨리 갔다.
주 후반에는 그동안 우리가 한 활동의 보고회와 함께 마을사람들과의 저녁식사가 크게 있었고, 또 한 번의 파티가 있었다. 파티에 대해 설명을 덧붙이자면 숙소 인근의 카페 겸 바에서 이뤄지는 클러빙 같은 것에 불과했지만, 나름 춤도 추고 술도 마시며 팀원 간 그리고 마을의 청년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캠프를 떠나기 이틀 전에는 어떤 방송사에서 나와서 우리를 인터뷰 하고 가기도 했다. 사전 오리엔테이션 당시 프랑스의 어떤 캠프에서는 지역 신문에 그들을 취재하고 갔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혹시 우리 팀에게도 그런 일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우리에게도 어떤 방송국에서 찾아온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정확히 무얼 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촬영하기도 하고, 팀리더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는데, 한국에서 왔다는 동양인이 눈에 띄었는지 마지막 엔딩 컷을 촬영할 때 내 얼굴 바로 앞에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앵커가 바로 옆에 서서 어깨동무를 하며 촬영을 마쳤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떠나기 전에 방송을 확인하지는 못했다.
어느덧 캠프를 떠나기 하루 전, 원래는 아침 일찍 이탈리아 국가대표 여성 배구팀과의 기념촬영이 잡혀있어 그날은 활동을 하지 않기로 되어있었는데, 돌연 그날 아침 그들이 피지컬 테라피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통지하여 우리는 뜻밖의 자유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동안 주말이고 평일이고 할 것 없이 산행을 했던 지라 그날은 절대 산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고 숙소에서 쉬려고 했느나, 그러기에는 그 주 날씨가 너무나도 완벽했고 다음 날이면 이곳을 떠난다는 아쉬움으로 나 역시 다른 팀원과 함께 숙소 바로 앞에 있는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겼다.
캠프를 떠나는 날은 제각기 달랐는데, 나와 언니(같은 학교에서 온)의 경우 여행 일정상 아침 일찍 떠나야 했다. 따라서 금요일 밤 팀원들과 간단히 인사를 하고 다음날 아침 일찍 마을을 떠났다.
이렇게 글을 쓰고 보니 당시에는 길기만 하던 2주가 너무나도 빨리 지나간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팀원들과 빨리 친해지지 못했던 것에 아쉬움이 큰데, 평소에도 처음 만나는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커서 친구사귀기를 어려워하는 나로서는 그나마 그 전보다는 진보가 있었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고 싶다. 처음 팀원들을 만났을 때는 나와 같은 학교에서 온 언니만 동양인이고, 나머지는 스페인, 프랑스, 체코, 터키, 러시아 등 유럽권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여서 친해지기 어려웠지만, 시간이 지나고 2주간 함께 지내며 비로소 팀원들과 친해졌나 싶었을 때 캠프를 떠나게 되었다. 특히 ‘아나스타시아’라는 러시아에서 온 친구와 친해졌었는데 캠프를 떠나기 전날 그녀가 나와의 이별을 가장 아쉬워해 기억에 남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다면, 물론 모두 기억에 남을 것 같지만, ‘불운의 하루’ 혹은 ‘필로포(팀 리더의 이름)의 수난’이라고 명명할 법한 ‘그날’일이 가장 기억에 남지 않을까 싶다. 첫째주의 금요일 이었던 것 같다. 그 전날 활동을 위해 산을 오르던 중 탄탄한 몸매의 소유자였던 프랑스에서 온 ‘마리온’이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켰었다. 그 때문에 그녀를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팀 리더와 마리온이 자리를 비웠고 부팀장과 팀원들은 작업을 위해 산을 올랐다. 팀장도 없고 그날 날씨가 유독 더워 모두 조금은 늘어진 채로 일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밑에서 비명치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help”라는 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놀란 부팀장은 소리가 난 곳으로 달려갔고, 나 또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그의 뒤를 쫒았다. 알고보니 칼로 나무를 베던 중 스페인에서 온 ‘마틴’이 그의 친구인 ‘디에고’의 손을 칼로 내리친 것 이었다. 그 둘과 부팀장인 ‘존’은 병원을 가기 위해 황급히 내려갔고, 현장에 있던 다른 팀원들이 그들의 사고 소식을 전해 주었다. 다행히 심하게 다치지 않아 꿰매고 붕대를 감는 정도로 일이 정리되긴 했지만, 오후에 일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갔을 때 ‘마리온’과 ‘디에고’와 함께 있는 ‘필로포’의 모습은 정말이지 안쓰러울 정도로 핼쑥해져 있었다. 둘 다 큰 문제는 없었지만 그 날은 팀원 모두에게 긴장의 연속이었던 날로 기억되었다.
그리고 하나 더, 사전 교육당시 캠프 내에서 미묘한 연애기류가 감지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지만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났다. 팀원 가운데 터키에서 온 ‘우트크’와 ‘부슈라한’ 커플 외에는 나머지 팀원들은 개인이서 혹은 친구끼리 참가했었는데, 부상사건으로 병원을 함께 다녀온 ‘그날’ 이후 마리온과 디에고가 커플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덕분에 나는 둘째주 내내 맘편히 내 방을 쓰지도 못하고 밤에 쉬이 잠들지 못했더랬다. 마리온은 내 룸메이트기도 해서 그녀와 디에고가 함께 방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밤늦게까지 애정행각을 벌이는 탓에 애꿎은 내가 밤잠을 설쳤더랬다.
어느덧 워크캠프에 다녀온 지 2주차가 되어간다. 캠프 이후에 바로 배낭여행을 다니느라 여전히 여행의 향수에 젖어 있지만, 오히려 배낭여행 동안의 기억보다 워크캠프에서의 기억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난다. 좋은 친구들과 좋은 장소에서 좋은 활동을 하며 의미있는 시간을 보낸 것에 기쁘고 감사함을 느낀다. 만약 다시 한 번 워크캠프에 참가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마’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금전적인 문제가 해결된다면 ‘당연하지’라고 답할 것이다. 그만큼 이 캠프는 스스로에게 값진 경험을 선물해 줄 것이다. 지금 당장은 이 활동을 통해 변화한 나를 인지하지 못하지만, 언젠가 이 경험이 나로 하여금 다른 생각을 하게하고 그동안 가던 길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것이다.
만약 워크캠프를 단순히 스펙을 위해서, 혹은 자기소개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쓸 말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원하는 사람이라면 이 활동을 추천하지 않는다. 화려한 스펙을 원한다면 그 시간동안 영어공부나 자격증 공부를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리라. 그러나 만약 새로운 모험을 찾고 있거나, 학교와 집 혹은 학업과 취업의 굴레에서 벗어나 새로운 즐거움을 맞보고자 하는 누군가에게는 당장 짐을 싸서 떠나라고 하고 싶다. 그 만큼 워크캠프는 당신에게 소중한 경험을 줄 것이고, 그 경험은 당신의 현재를 미래를 변화시킬 충분한 에너지를 지니고 있으리라.
청년이란 시간을 짧고 불확실하여 확신이 드는 어떤 것을 갈망하느라 도전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많다. 특히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청년이여 모험을 떠나라’라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에겐 아직 시간이 많고, 세상엔 즐길거리가 넘쳐나며, 세상 밖으로 나갔을 때 내가 있던 곳이, 내가 하던 사고가 얼마나 비좁은 것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바로 앞의 미래를 걱정하며 망설이지 말고 일단 한번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