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이슬란드, 나를 시험하는 용기
Art and sustainable living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신청서를 작성하고 합격했을 때 나는 너무 기분이 좋졌다.
(사실 신청서 작성하고 합격발표 나기 전부터 비행기표... 아이슬란드에 대해 알아봤다.)
말로만 듣던 백야, 빙하, 온천, 오로라.... 그곳은 어떤 곳일까?
처음 신청하게 된 계기로는 여행도 하고싶었고, 외국인 친구도 사귀고 싶었고 소소한 이유들이 많았지만 가장큰 동기로는 나를 극도로 부딪혀 보고싶었다.
아직까지도 토익한번 안쳐봤고 영어는 기본인사밖에 하지 못하는 나를 한번 시험해 보고싶었고 성숙해 지고 싶었다. 그렇게 신청했던 첫 혼자서의 여행이자 워크캠프였다.
합격하자말자 비행기표를 끊고 블로그 카페 심지어 구글링까지 해서 아이슬란드 워크캠프에 대한 글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혼자 해외나가는 건 처음이였지만 그다지 떨리지 않았다.
영어도 정말 못하는 나 지만 사람은 다 똑같으니까~
인포싯을 기다리면서 매일같이 워크캠프 홈페이지를 오가고.. 그렇게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막상 직전이 되니 너무 긴장이 되고 혼자 어떻하지 하며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이슬란드로 떠날수있는 게트윅 공항 근처에서 숙박을 하고 들뜬마음으로 다시 비행기를 타러 갔다.
티켓팅을 기다리는데 이럴수가? 예약을 실수로 전날로 끊어버렸던것....
눈물이 핑 돌았다... 다시 티켓을 사려는데.... 웬걸 한국에서 런던오는 비행기 편도 가격을 부르는 것...
몇달간 틈틈히 단기알바로 모은돈을 한순간의 실수로 날리고 우울해 하며 그렇게 아이슬란드에 도착했다.
미팅포인트이자 숙박을 하기로 한 곳으로 열심히 찾아 가는데 중간에 만난 프랑스친구 휴고.
함께 같이 숙박에 도착하고 그곳엔 모두가 외국인이였다. 영어가 안통하니 그들이 하는 대화를 멍하니 흘려 듣다가 긴장이 풀렸는지
도착 첫날은 일찍 잠에 들었다. 그때 같은 방을 쓴 캐나다 친구 비아는 영어 못하는 나를 엄청나게 챙겨주었다.
7월 5일 내가 일할곳은 동쪽 작은 항구마을 생선공장을 개조하여 아트스페이스로 쓰이는 곳 그곳에서 열리는 아트페스티벌을 보조하는 것이 나의 임무~ 총 5개의 팀이 순차적으로 이주간격으러 아트 페스티벌을 도우게 된다. 그중 나는 첫번째로 도우게 되는 팀이였다.
아침 10시에 출발했지만 도착하니 밤 11시... 숙소는 망한 은행건물이였다~ 길쭉길쭉 솰롸솰라 하는 서양인들 사이에 영어못하는 동양인 소녀한명 괜히 위축되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스펀지같은 매트리스를 깔고 불편하게 잠을 청했다.
그런 위축됨은 첫날일뿐.... 출발하기전부터 생각한 영어는 못하더라도 적극적이여지자! 굳게 다짐한것을 떠올리며 아침이되고 먼저 모두에서 굿모닝~ 하고 인사를 했다... 그렇게 다시 친해지기 시작했다. 9시가 되고 비안키 라는 이 마을의 화가를 찾아갔다. 비안키는 우리에게 캠프기간동안의 과제를 주었고, 그렇게 그 주 일주일의 반은 못질 톱질 반은 꽃을 따러 다녔다. 그렇게 그 주를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쉬는 토요일이 왔다.
그 날은 정말 최악의 날이였다...
하이킹을 간다고 했다. 난 하이킹이 싫었다.... 정말로!!
그렇게 점심 샌드위치를 싸서 떠난시간은 아침11시였다...
그렇게 높은 경사란 날 너무 힘들게 하였고...
다들 정상에서 보는 풍경이 그렇게 멋지다고 했지만... 난 멋지지않았다!
정상에 도착하자말자 뻗어서 그렇게 30분을 그곳에서 잠들었고,
잠을 깻을 땐 다들 나에게 잘 잤냐며 격려의 한마디를 해주었다...
(사실 내가 제일 힘들어했고 뒤쳐졌기때문일 확율이 높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했을땐 저녁 6시였다... 하이킹만 꼬박 6시간이라니..
지금도 덜덜 떨리는 공포의 산이였고 날이였다...
일을 마친 밤이면 다함께 모여 맥주 한잔을 즐기고, 월드컵 준결승 결승을 보며 함께 응원하고,
커뮤니케이션 센터로 가 풋볼테이블 게임을 하고 탁구를 치며 즐기며 우리는 정말 친해졌다.
정신없이 캠프를 끝내고 돌아섰을 땐 누구나 똑같구나,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지만 각 나라마다의 문화는 다르구나 하지만 마음을 연다면 그 누구든 이해할수도 친해질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외국 친구들은 핸드폰을 가방에 집어 넣었다. 모였을때 절대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았고 대화를 했다. 그 아이들의 교양 수준은 너무나 깊었다. 나는 영어가 깊게는 통하지않아 참여는 못했지만 비 전공자 친구들은 미술전공자인 나만큼의 지식수준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분야 또한 그정도 깊이의 대화를 나누었다.
또한 약간의 실수에도 고마움에도 고마워, 미안해, 괜찮아 를 입에 달고 다녔다. 말뿐일지 몰라도 같이 있으며 왠지모를 묘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또 가고싶다.
그리고 또 경험하고 싶다.
난 그렇게 할것이다.
(사실 신청서 작성하고 합격발표 나기 전부터 비행기표... 아이슬란드에 대해 알아봤다.)
말로만 듣던 백야, 빙하, 온천, 오로라.... 그곳은 어떤 곳일까?
처음 신청하게 된 계기로는 여행도 하고싶었고, 외국인 친구도 사귀고 싶었고 소소한 이유들이 많았지만 가장큰 동기로는 나를 극도로 부딪혀 보고싶었다.
아직까지도 토익한번 안쳐봤고 영어는 기본인사밖에 하지 못하는 나를 한번 시험해 보고싶었고 성숙해 지고 싶었다. 그렇게 신청했던 첫 혼자서의 여행이자 워크캠프였다.
합격하자말자 비행기표를 끊고 블로그 카페 심지어 구글링까지 해서 아이슬란드 워크캠프에 대한 글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혼자 해외나가는 건 처음이였지만 그다지 떨리지 않았다.
영어도 정말 못하는 나 지만 사람은 다 똑같으니까~
인포싯을 기다리면서 매일같이 워크캠프 홈페이지를 오가고.. 그렇게 떠나는 날이 다가왔다.
막상 직전이 되니 너무 긴장이 되고 혼자 어떻하지 하며 런던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아이슬란드로 떠날수있는 게트윅 공항 근처에서 숙박을 하고 들뜬마음으로 다시 비행기를 타러 갔다.
티켓팅을 기다리는데 이럴수가? 예약을 실수로 전날로 끊어버렸던것....
눈물이 핑 돌았다... 다시 티켓을 사려는데.... 웬걸 한국에서 런던오는 비행기 편도 가격을 부르는 것...
몇달간 틈틈히 단기알바로 모은돈을 한순간의 실수로 날리고 우울해 하며 그렇게 아이슬란드에 도착했다.
미팅포인트이자 숙박을 하기로 한 곳으로 열심히 찾아 가는데 중간에 만난 프랑스친구 휴고.
함께 같이 숙박에 도착하고 그곳엔 모두가 외국인이였다. 영어가 안통하니 그들이 하는 대화를 멍하니 흘려 듣다가 긴장이 풀렸는지
도착 첫날은 일찍 잠에 들었다. 그때 같은 방을 쓴 캐나다 친구 비아는 영어 못하는 나를 엄청나게 챙겨주었다.
7월 5일 내가 일할곳은 동쪽 작은 항구마을 생선공장을 개조하여 아트스페이스로 쓰이는 곳 그곳에서 열리는 아트페스티벌을 보조하는 것이 나의 임무~ 총 5개의 팀이 순차적으로 이주간격으러 아트 페스티벌을 도우게 된다. 그중 나는 첫번째로 도우게 되는 팀이였다.
아침 10시에 출발했지만 도착하니 밤 11시... 숙소는 망한 은행건물이였다~ 길쭉길쭉 솰롸솰라 하는 서양인들 사이에 영어못하는 동양인 소녀한명 괜히 위축되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스펀지같은 매트리스를 깔고 불편하게 잠을 청했다.
그런 위축됨은 첫날일뿐.... 출발하기전부터 생각한 영어는 못하더라도 적극적이여지자! 굳게 다짐한것을 떠올리며 아침이되고 먼저 모두에서 굿모닝~ 하고 인사를 했다... 그렇게 다시 친해지기 시작했다. 9시가 되고 비안키 라는 이 마을의 화가를 찾아갔다. 비안키는 우리에게 캠프기간동안의 과제를 주었고, 그렇게 그 주 일주일의 반은 못질 톱질 반은 꽃을 따러 다녔다. 그렇게 그 주를 보냈다.
그리고 드디어 쉬는 토요일이 왔다.
그 날은 정말 최악의 날이였다...
하이킹을 간다고 했다. 난 하이킹이 싫었다.... 정말로!!
그렇게 점심 샌드위치를 싸서 떠난시간은 아침11시였다...
그렇게 높은 경사란 날 너무 힘들게 하였고...
다들 정상에서 보는 풍경이 그렇게 멋지다고 했지만... 난 멋지지않았다!
정상에 도착하자말자 뻗어서 그렇게 30분을 그곳에서 잠들었고,
잠을 깻을 땐 다들 나에게 잘 잤냐며 격려의 한마디를 해주었다...
(사실 내가 제일 힘들어했고 뒤쳐졌기때문일 확율이 높다)
그리고 숙소에 도착했을땐 저녁 6시였다... 하이킹만 꼬박 6시간이라니..
지금도 덜덜 떨리는 공포의 산이였고 날이였다...
일을 마친 밤이면 다함께 모여 맥주 한잔을 즐기고, 월드컵 준결승 결승을 보며 함께 응원하고,
커뮤니케이션 센터로 가 풋볼테이블 게임을 하고 탁구를 치며 즐기며 우리는 정말 친해졌다.
정신없이 캠프를 끝내고 돌아섰을 땐 누구나 똑같구나,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이구나. 하지만 각 나라마다의 문화는 다르구나 하지만 마음을 연다면 그 누구든 이해할수도 친해질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외국 친구들은 핸드폰을 가방에 집어 넣었다. 모였을때 절대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았고 대화를 했다. 그 아이들의 교양 수준은 너무나 깊었다. 나는 영어가 깊게는 통하지않아 참여는 못했지만 비 전공자 친구들은 미술전공자인 나만큼의 지식수준을 가지고 있었고... 다른분야 또한 그정도 깊이의 대화를 나누었다.
또한 약간의 실수에도 고마움에도 고마워, 미안해, 괜찮아 를 입에 달고 다녔다. 말뿐일지 몰라도 같이 있으며 왠지모를 묘한 마음이 많이 들었다.
또 가고싶다.
그리고 또 경험하고 싶다.
난 그렇게 할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