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아프리카, 나를 부르다
Nyabosongo Bena Academy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 참가동기
대학교 1학년 때 한 친구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워크캠프. 그 이후로 나는 대학생 때 한 번 쯤 워크캠프를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해왔고, 3학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워크캠프를 준비하게 되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당연히 유럽으로 워크캠프를 가서 활동이 끝나면 여행도 두루두루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워크캠프를 갈 국가를 고르고 있던 어느 날, 내 머릿속에 갑자기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유럽국가가 아니면 클릭해 보지도 않았던 나였는데, 순간 '아프리카에 가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는지는 설명할 수가 없다. 아프리카라니. 그 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곳이었다. 유럽과 아프리카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은 나에게 대단히 어려웠다. 사실 하는 일은 아프리카에서의 활동들이 더 끌렸지만, 워크캠프 홈페이지에 아프리카는 신중히 선택하라며 잔뜩 겁을 주어서 굉장히 갈팡질팡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결국! 나는 아프리카를 선택했고 날짜와 활동들을 비교해보고 고민한 결과 케냐로의 길을 택했다.
* 활동내용
우리 활동의 큰 주제는 FGM(여성할례)예방 인 줄 알았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팀 대부분이 불만을 가졌다. 인포싯에서는 FGM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이야기하고 주요 활동인 듯 적어 놓았으나, 실제로 우리의 주된 일은 벽돌 만들기였다. 인포싯에 벽돌 만들기도 할 거라고 적혀있기는 했지만, 3주 내내 벽돌을 만들 줄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FGM에 대한 일은 별로 하지 않아 처음에는 적지 않은 실망을 했다.
이런 봉사활동을 할 때에는 마음가짐이 참 중요한 것 같다. 인포싯에 적힌 것과는 많이 달랐지만 내가 케냐에 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난 감사할 게 많았다. 케냐에서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 좋은 팀을 만난 것, 좋은 마을을 만난 것, 우리 자체만으로 이 마을 아이들의 시각을 넓혀줄 수 있는 것, 시골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것, 벽돌을 만드는 것을 도와 이 마을의 일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것 등. 생각해보면 하나하나 감사할 게 넘쳤다. 그렇게 나는 초반의 실망스러운 마음을 조금씩 바꿔나가면서 나중에는 완벽하게 극복을 했다! 이 보고서를 보고 워크캠프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준비할 것을 조언하고 싶다 :)
* 한국을 알리다!
케냐에서 기억에 남았던 일들 중 하나는 한국을 열.심.히 알리고 왔다는 점이다. 한복, 태극기, 우리나라지도. 짐을 쌀 때 뭐하러 이런 것들까지 가져가냐며 부모님께 한 소리 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제일 먼저 챙겨 넣었던 것들이다. 한복을 보여주었을 때는 모두의 반응이 뜨거웠다. 우선 같은 팀 친구들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한복의 아름다움을 감탄했다. 초등학교로 가는 길에 마을 사람들도 신기한 듯 쳐다보았고, 그 때마다 나는 한국의 전통옷이라고 소개를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반에 들어가 한복을 보여주었을 때도 학생들은 굉장히 흥미로워했다. 이 옷은 언제 입느냐, 한국의 추수감사절은 어떻게 보내느냐, 무엇을 기념하는 날이냐 등 한복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해서 아이들은 여러가지 질문들을 쏟아냈다. 사실 한복을 보고 학생들이 별 말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질문을 해 주어서 참 고마웠다. 학교 선생님들도 한복을 보고 좋아하셨고 내가 쓰고 있던 머리장식을 직접 써보기까지 했다! 운동장의 어린 학생들도 한복을 쓰다듬고 만져보고 꽃문양을 찾아보고... 초등학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 팀 친구들에게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어서 매우 뿌듯했다 (:
한가했던 두 번째 주 일요일에는 초등학교 고학년 반 아이들과 한국에 대해 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때도 정말 많은 질문을 쏟아내 주어서 고마웠다. 우리의 이야기는 어쩌다보니 국기로 흘러갔는데, 그 때 내가 갖고 온 태극기와 지도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이번에 나는 태극기와 지도를 들고 학교를 갔다. 케냐의 친구들이 저마다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으며 좋아했다. 지도를 보면서는 수도를 찾아보고, 왜 지역이름들이 끝마다 '-도'로 끝나냐고 물어보는 등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다. 태극기와 지도는 그 학교에 기념선물로 남기고 왔다. 사실 한국지폐도 보고 싶다고 해서 만 원 짜리를 가져갔는데, 만 원은 선물로 주지 못했다(집에 돌아 갈 교통비였기 때문이다). 다음 참가자들은 괜찮다면 작은 단위의 한국화폐를 가져가 기념품으로 나누어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사실 세계에서 한국의 인지도는 그렇게 높지 않은 것 같았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어느 사람이나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이, 남쪽에서 왔냐 북쪽에서 왔냐였다. 가슴아픈 현실이었다. 그리고 일본 인사는 알고 중국 인사는 알아도, 한국 인사는 모르는 것도 뭔가 속상했다. 이번 기회에 한국을 마음껏 알리고 올 수 있어서 참 뿌듯했다. 적어도 그 초등학교 학생들은 한국을 조금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케냐에 다녀온 지금
한국에 있는 지금, 케냐가 너무너무 그립다. 막상 벽돌을 만들고 했을 때는 몸이 피곤했지만, 돌아보면 그 때가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쿠리아 마을에서 받은 사랑과 관심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사실 같이 활동을 한 현지인 친구들 생각이 가장 많이 난다. 우리 음식과 빨래를 도와주고 매일 물을 길러다 주고... 그 친구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며칠도 버티질 못했을 것이다. 다시 케냐에 가고 싶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케냐를 다시 한 번 가고 싶다. 그리고 쿠리아 마을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 내 몸은 지금 한국에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케냐, 쿠리아 마을에 있다. 매일 핸드폰으로 케냐의 날씨와 시간을 보며 '이 때쯤이면 저녁을 먹을 시간이지' 하고 케냐에서의 시간을 회상하곤 한다.
케냐 공항 면세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스티커가 있는데, Somebody in Kenya loves me 라고 적힌 스티커이다. 그 한 구절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케냐에는 나와 인연을 맺은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과 나는 마음을 나누었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케냐가 나의 두 번째 고향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케냐에서의 시간을 통해 나는 한 걸음이 아닌 두 걸음 더 성장한 듯하다. 그만큼 케냐는 나에게 많은 경험들을 허락해주었고 동시에 새로운 도전들도 던져주었다. 나의 다음 도전이 언제 어디에서 시작할 지 기대되는 순간이다.
* 더 궁금한 내용이 있다면 dbsghk7694@hanmail.net 으로 연락주세요 :)
대학교 1학년 때 한 친구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된 워크캠프. 그 이후로 나는 대학생 때 한 번 쯤 워크캠프를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해왔고, 3학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워크캠프를 준비하게 되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당연히 유럽으로 워크캠프를 가서 활동이 끝나면 여행도 두루두루 하고 와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렇게 워크캠프를 갈 국가를 고르고 있던 어느 날, 내 머릿속에 갑자기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유럽국가가 아니면 클릭해 보지도 않았던 나였는데, 순간 '아프리카에 가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왜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었는지는 설명할 수가 없다. 아프리카라니. 그 동안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곳이었다. 유럽과 아프리카 둘 중 하나를 고르는 일은 나에게 대단히 어려웠다. 사실 하는 일은 아프리카에서의 활동들이 더 끌렸지만, 워크캠프 홈페이지에 아프리카는 신중히 선택하라며 잔뜩 겁을 주어서 굉장히 갈팡질팡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결국! 나는 아프리카를 선택했고 날짜와 활동들을 비교해보고 고민한 결과 케냐로의 길을 택했다.
* 활동내용
우리 활동의 큰 주제는 FGM(여성할례)예방 인 줄 알았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팀 대부분이 불만을 가졌다. 인포싯에서는 FGM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이야기하고 주요 활동인 듯 적어 놓았으나, 실제로 우리의 주된 일은 벽돌 만들기였다. 인포싯에 벽돌 만들기도 할 거라고 적혀있기는 했지만, 3주 내내 벽돌을 만들 줄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FGM에 대한 일은 별로 하지 않아 처음에는 적지 않은 실망을 했다.
이런 봉사활동을 할 때에는 마음가짐이 참 중요한 것 같다. 인포싯에 적힌 것과는 많이 달랐지만 내가 케냐에 와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난 감사할 게 많았다. 케냐에서 안전하게 생활하고 있는 것, 좋은 팀을 만난 것, 좋은 마을을 만난 것, 우리 자체만으로 이 마을 아이들의 시각을 넓혀줄 수 있는 것, 시골 마을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것, 벽돌을 만드는 것을 도와 이 마을의 일을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것 등. 생각해보면 하나하나 감사할 게 넘쳤다. 그렇게 나는 초반의 실망스러운 마음을 조금씩 바꿔나가면서 나중에는 완벽하게 극복을 했다! 이 보고서를 보고 워크캠프를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준비할 것을 조언하고 싶다 :)
* 한국을 알리다!
케냐에서 기억에 남았던 일들 중 하나는 한국을 열.심.히 알리고 왔다는 점이다. 한복, 태극기, 우리나라지도. 짐을 쌀 때 뭐하러 이런 것들까지 가져가냐며 부모님께 한 소리 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제일 먼저 챙겨 넣었던 것들이다. 한복을 보여주었을 때는 모두의 반응이 뜨거웠다. 우선 같은 팀 친구들도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한복의 아름다움을 감탄했다. 초등학교로 가는 길에 마을 사람들도 신기한 듯 쳐다보았고, 그 때마다 나는 한국의 전통옷이라고 소개를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반에 들어가 한복을 보여주었을 때도 학생들은 굉장히 흥미로워했다. 이 옷은 언제 입느냐, 한국의 추수감사절은 어떻게 보내느냐, 무엇을 기념하는 날이냐 등 한복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해서 아이들은 여러가지 질문들을 쏟아냈다. 사실 한복을 보고 학생들이 별 말이 없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질문을 해 주어서 참 고마웠다. 학교 선생님들도 한복을 보고 좋아하셨고 내가 쓰고 있던 머리장식을 직접 써보기까지 했다! 운동장의 어린 학생들도 한복을 쓰다듬고 만져보고 꽃문양을 찾아보고... 초등학교 학생들뿐만 아니라 선생님들, 팀 친구들에게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릴 수 있어서 매우 뿌듯했다 (:
한가했던 두 번째 주 일요일에는 초등학교 고학년 반 아이들과 한국에 대해 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때도 정말 많은 질문을 쏟아내 주어서 고마웠다. 우리의 이야기는 어쩌다보니 국기로 흘러갔는데, 그 때 내가 갖고 온 태극기와 지도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이번에 나는 태극기와 지도를 들고 학교를 갔다. 케냐의 친구들이 저마다 태극기를 들고 사진을 찍으며 좋아했다. 지도를 보면서는 수도를 찾아보고, 왜 지역이름들이 끝마다 '-도'로 끝나냐고 물어보는 등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다. 태극기와 지도는 그 학교에 기념선물로 남기고 왔다. 사실 한국지폐도 보고 싶다고 해서 만 원 짜리를 가져갔는데, 만 원은 선물로 주지 못했다(집에 돌아 갈 교통비였기 때문이다). 다음 참가자들은 괜찮다면 작은 단위의 한국화폐를 가져가 기념품으로 나누어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사실 세계에서 한국의 인지도는 그렇게 높지 않은 것 같았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어느 사람이나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이, 남쪽에서 왔냐 북쪽에서 왔냐였다. 가슴아픈 현실이었다. 그리고 일본 인사는 알고 중국 인사는 알아도, 한국 인사는 모르는 것도 뭔가 속상했다. 이번 기회에 한국을 마음껏 알리고 올 수 있어서 참 뿌듯했다. 적어도 그 초등학교 학생들은 한국을 조금 더 친근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케냐에 다녀온 지금
한국에 있는 지금, 케냐가 너무너무 그립다. 막상 벽돌을 만들고 했을 때는 몸이 피곤했지만, 돌아보면 그 때가 내 생애 가장 행복한 순간들이었다. 쿠리아 마을에서 받은 사랑과 관심은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사실 같이 활동을 한 현지인 친구들 생각이 가장 많이 난다. 우리 음식과 빨래를 도와주고 매일 물을 길러다 주고... 그 친구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며칠도 버티질 못했을 것이다. 다시 케냐에 가고 싶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어떤 방법으로든 케냐를 다시 한 번 가고 싶다. 그리고 쿠리아 마을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 내 몸은 지금 한국에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케냐, 쿠리아 마을에 있다. 매일 핸드폰으로 케냐의 날씨와 시간을 보며 '이 때쯤이면 저녁을 먹을 시간이지' 하고 케냐에서의 시간을 회상하곤 한다.
케냐 공항 면세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스티커가 있는데, Somebody in Kenya loves me 라고 적힌 스티커이다. 그 한 구절은 지금까지도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다. 케냐에는 나와 인연을 맺은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 사람들과 나는 마음을 나누었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케냐가 나의 두 번째 고향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케냐에서의 시간을 통해 나는 한 걸음이 아닌 두 걸음 더 성장한 듯하다. 그만큼 케냐는 나에게 많은 경험들을 허락해주었고 동시에 새로운 도전들도 던져주었다. 나의 다음 도전이 언제 어디에서 시작할 지 기대되는 순간이다.
* 더 궁금한 내용이 있다면 dbsghk7694@hanmail.net 으로 연락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