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후기
터키, 낯선 Ramadan 속 특별한 Gardening
RAMADAN IN THE TOWN
참가 전 준비와 마음가짐
친구와 저는 졸업을 앞두고 학생신분으로 마지막 해외여행을 가고 싶다고 늘 얘기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친구가 인터넷 검색으로 국제워크캠프를 찾아냈고, 서울에서 열리는 워크캠프에 관한 설명회를 듣고 와서 국제워크캠프가 어떤 것인지 자세히 알게 되었고, 우리는 국제워크캠프에서 하는 봉사활동으로 좀 더 의미 있는 학생신분으로서의 마지막 여행을 하기로 했습니다. 어느 나라로 갈까 고민도 많이 했었지만 그 당시 가장 ‘핫’했던 나라인 터키로 결정 했었습니다. 터키에서 실시하는 활동 중에 우리는 주로 밖에서 활동하고, 많이 움직이는 프로그램을 찾다가 Gardening을 하는 프로그램을 찾았고, 마침 우리가 신청 하는 기간이 Ramadan 기간이라서 더욱더 특별한 경험이 될 것 같아서 “Ramadan in the town dursunbey” 란 이름의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터키로 워크캠프를 가기 위해서 영어로 열심히 자기소개서를 적어서 제출했고, 친구와 같이 합격을 해서 우린 기뻤습니다. 그리고 워크캠프를 가게 된다면 영어로 대화하면서 일상생활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터키로 갈 준비를 하였습니다. 모든 준비를 마친 후 7월, 드디어 출국 날이 다 되었습니다. 친구와 저는 떨린 마음을 부여잡고 서로 의지하며 이스탄불의 미팅포인트로 갔습니다. 미팅포인트에 가니 함께 가는 봉사자들 명단에서 봤던 이름들의 친구들을 만나니 떨리기도 했고, 영어로 대화 해야 한다는 것이 걱정되기도 했었습니다. 두루순베이로 떠나기 전 시간이 남아서 친구들과 다같이 리더를 따라서 이스탄불 구시가지를 구경했었습니다. 처음엔 어색한 사이로 이스탄불 구시가지를 구경했지만 구경하면서 점점 친해졌습니다. 구경을 다하고 밤이되어 친구들과 다같이 리더를 따라서 두루순베이로 떠났습니다. 야간버스는 처음 타 보는거라서 신기하기도 했고, 피곤하기도 했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두루순베이에 도착해서 우리 숙소로 갔습니다. 생각했던 것 보다 숙소가 너무 좋았습니다. 두루순베이에 있는 유일한 호텔이라고 했었습니다. 룸메이트를 정하고 방을 배정받았는데 친구와 룸메이트를 하고 싶었지만 폴란드에서 온 친구와 룸메이트가 되었습니다. (나중에 친구와 한 이야기자만 서로 룸메이트가 되지 않아 오히려 더 재밌는 에피소드 들이 많이 생겼고, 다른 친구들과 더 빨리 쉽게 친해진 것 같다고 이야기 했었습니다.) 우리는 자기소개를 다시 하기 위해 넓은 잔디밭으로 이동했습니다. 이름을 이야기하고, 나라, 나이, 각오등을 영어로 이야기 했었습니다. 터키사람 3명, 스페인사람 5명, 프랑스사람 1명, 폴란드사람 1명, 한국사람 3명, 대만사람 3명, 이탈리아사람 1명 총 17명의 봉사자들과 함께 했습니다. 연령대는 대부분 20대 초반이었고 리더는 터키사람으로 21살 그리고 제일 나이 많은 사람이 30살 스페인 언니였습니다. 리더가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어리숙한 부분들이 많이 보였지만 첫날이라서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갔었습니다. 우리가 자기소개를 하고 있는 동안 다른 터키 여자애도 왔습니다. 두루순베이에 사는 여학생이었고, 시장의 딸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두루순베이에 온 첫 외국인이고, 마을이 좁아서 우리가 봉사하러 온 것이 소문이 다 났다며 너무너무 반갑다고 환영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리더가 우리를 데리고 간 곳은 두루순베이에 있는 양로원 같은 곳 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라마단을 경험했습니다. 터키로 가기전에 우리가 하는 활동의 제목에 라마단이란 단어가 들어가서 친구와 함께 라마단에 대해서 공부하고 갔었습니다. 하지만 의미를 머리로 아는 것과 한번 짧게나마 경험해 보는 것은 많이 달랐습니다. 현지인들처럼 완전히 경험한건 아니지만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기도음성이 나오기 전까지 (오후 8시 45분쯤) 기다렸다가 기도를 짧게 하고 밥을 먹었습니다. 짧게 경험하면서 라마단을 지키는 사람들은 음식을 앞에 두고 기도음성을 기다려야 하는게 엄청 힘든일이겠구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외국인들이 왔다고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해주셨습니다. 그곳에서 아이란 이라는 음료를 처음 접했습니다. 아이란은 소금과 우유 그리고 물을 섞어서 마시는 음료인데 친구들 모두 처음에는 소금맛이 느껴져서 잘 못마시더니 봉사기간이 끝날 때 쯤엔 터키친구들 보다 우리가 더 아이란을 찾아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루순베이 신문사에서 외국인들이 두루순베이에 봉사활동을 하러 왔다고 외국인들을 신기해하는 두루순베이 사람들을 위해 우리 사진도 찍고, 인터뷰도 해서 신문에 실는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 신문은 시장의 딸이 봉사가 끝나는 마지막날 우리에게 선물로 한부씩 줬습니다.)
봉사활동으로는 사람들이 피크닉 장소로 사용하는 공터에 가서 돌맹이들을 줍고, 땅을 평평하게 가꾸어 벤치같은 식탁을 설치하고, 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도록 바비큐장소를 벽돌로 설치하는게 우리의 일이었습니다.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 친구들이 많이 요령피우고, 여자애들이 많아서 힘든 일은 그냥 모른척 하고 얌전 떨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완전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남자아이들 만큼 여자아이들도 열심히 일했고, 먼저 앞장서서 일을 하기도 했으며, 힘든일을 서로 하려고 하기도 했었습니다. 돌맹이를 줍는 일을 할할 때 끝이 없을 것 같았지만 하루하루 일을 해가면서 땅도 평평하게 만들고 돌맹이도 주워서 피크닉 장소가 깨끗해지는 모습을 볼 때 마다 우린 서로에게 칭찬을 하고 다들 뿌듯해 했었습니다. 마지막날에는 우리가 완성한 피크닉 장소에서 우리가 직접 바비큐를 해먹자고 다짐했었지만 시간상 하지 못해서 다들 아쉬워 했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다같이 돌을 줍고, 나무뿌리를 캐내고, 땅을 평평하게 만들면서 힘들다 힘들다 곡소리를 내지만 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했던 장면들입니다. 그리고 일 할 때 다같이 들었던 노래들은 한국에 와서도 가끔씩 찾아서 듣곤 하는데 그럴때마다 같이 봉사활동 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 노래를 들을 때 했던 일들도 떠오르기도 합니다.
봉사하는 중에는 주말이 한번 있었는데 토요일 오전까지 일을 한 뒤, 점심을 먹고 총 쏘는 걸 배우러 갔었고, 일요일에는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3시간 정도 달려 두루순베이 근처에 있는 해변에 놀러 갔었습니다. 다들 봉사활동 에서 벗어나 해수욕도 즐기고, 테닝도 하고, 비치발리볼도 하고 재밌게 보냈었습니다. 저희는 직접 운전을 하지 않고 시장님께서 저희를 위해 직접 버스도 대절해 주시고, 저희가 갈만한 해변도 알아봐주셨습니다. 저희가 첫 봉사자라서 그런지 두루순베이 내에서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저희는 편하게 봉사활동하고, 여행도 하고 왔었습니다.
앞에서도 계속 얘기했지만 두루순베이의 첫 외국인 이라서 저희가 호텔입구에 서있기만 해도 주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평소에는 저녁을 라마단 기간 동안 시에서 가난하거나, 저녁을 챙겨 줄 사람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제공해주는 밥을 먹으러 노란텐트로 갔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저녁을 먹으러 온 아이들부터 두루순베이 어른들까지 모두 저희만 쳐다봤었고, 저희와 사진을 찍기를 원하셨었습니다. 저희 리더는 저희들에게 항상 두루순베이 스타들이라며 웃음 놀려댔었고, 저희는 흡사 연예인마냥 저녁 먹을 때 마다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그분들께 터키어로 한마디라도 더 해드리기 위해서 터키봉사자들에게 터키어를 배워서 그분들께 짧은 터키어지만 말씀드리니 무척 좋아하셨고, 신기해 하셨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온 30살 언니가 한명 있었는데 식사하시러 오시는 어르신들이 그 언니가 현지인처럼 보였는지 계속 터키어로 말을 걸어온다며 저희에게 자기도 대화하고 싶지만 못 알아 듣겠다며 울상을 짓곤 하였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다들 보고싶고 기억에 남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친구가 두명 있습니다. 한명은 프랑스에서 온 친구이고, 다른 한명은 저의 룸메이트였던 폴란드 친구입니다. 이 두 친구 모두 아직 대학에 입학하지 않고 곧있으면 대학에 입학을 한다고 했었습니다. 아직 19살의 어린 친구들이지만 낯선나라에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혼자 온 것이 저에게는 너무나도 신기했고, 제가 본받아야 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온 친구는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시작 하는 일에는 항상 경계심을 가지고, 눈치를 살피고, 어렵다 싶으면 먼저 나서지 않는 반면, 프랑스 친구는 우선 한번 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항상 앞장서서 먼저하고, 어려운 일도 척척 해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저는 그 친구를 보며 나도 더 이상 뒤로 빠지지 않고 앞으로 나가서 모든 일이든 해봐야 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폴란드 친구는 두루순베이에서 사랑을 만들어 갔습니다. 처음에 시작하기 전 오리엔테이션때 센터 선생님께서 봉사자들끼리 사랑을 싹 틀 수 있다고 우스겟소리로 말씀 하셨었는데 이 친구는 실천을 했었습니다. 스페인에서 온 27살 봉사자와 서로 눈이 맞아 사랑에 빠졌습니다. 봉사가 끝나고 다들 헤어지는날 우리 모두 둘의 헤어짐을 함께 슬퍼했었습니다.
워크캠프에 참가 하고 난 후, 저는 영어회화를 좀 더 많이 공부해야 겠구나 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었습니다. 제가 영어를 잘 못한다고 생각하니 계속 주눅이 들고, 그리고 내 의견을 확실히 말 할 수 없었던 것이 가장 답답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영어학원을 등록해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걸 해도 괜찮을까? 항상 고민만 하다 끝난 일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먼저 해보자! 라는 마음이 생겨서 열심히 적극적으로 모든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터키 국제워크캠프에 참가 한 일은 ‘신의 한수’ 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일들에 스트레스 받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저에게 힘을 주었고, 방향을 제시해 준 것 같습니다.
봉사활동으로는 사람들이 피크닉 장소로 사용하는 공터에 가서 돌맹이들을 줍고, 땅을 평평하게 가꾸어 벤치같은 식탁을 설치하고, 바비큐를 해 먹을 수 있도록 바비큐장소를 벽돌로 설치하는게 우리의 일이었습니다.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 친구들이 많이 요령피우고, 여자애들이 많아서 힘든 일은 그냥 모른척 하고 얌전 떨 것 같다고 생각했었는데 제가 완전 잘못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남자아이들 만큼 여자아이들도 열심히 일했고, 먼저 앞장서서 일을 하기도 했으며, 힘든일을 서로 하려고 하기도 했었습니다. 돌맹이를 줍는 일을 할할 때 끝이 없을 것 같았지만 하루하루 일을 해가면서 땅도 평평하게 만들고 돌맹이도 주워서 피크닉 장소가 깨끗해지는 모습을 볼 때 마다 우린 서로에게 칭찬을 하고 다들 뿌듯해 했었습니다. 마지막날에는 우리가 완성한 피크닉 장소에서 우리가 직접 바비큐를 해먹자고 다짐했었지만 시간상 하지 못해서 다들 아쉬워 했었습니다. 지금도 생각해보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다같이 돌을 줍고, 나무뿌리를 캐내고, 땅을 평평하게 만들면서 힘들다 힘들다 곡소리를 내지만 땀을 흘려가며 열심히 했던 장면들입니다. 그리고 일 할 때 다같이 들었던 노래들은 한국에 와서도 가끔씩 찾아서 듣곤 하는데 그럴때마다 같이 봉사활동 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 노래를 들을 때 했던 일들도 떠오르기도 합니다.
봉사하는 중에는 주말이 한번 있었는데 토요일 오전까지 일을 한 뒤, 점심을 먹고 총 쏘는 걸 배우러 갔었고, 일요일에는 친구들과 함께 차를 타고 3시간 정도 달려 두루순베이 근처에 있는 해변에 놀러 갔었습니다. 다들 봉사활동 에서 벗어나 해수욕도 즐기고, 테닝도 하고, 비치발리볼도 하고 재밌게 보냈었습니다. 저희는 직접 운전을 하지 않고 시장님께서 저희를 위해 직접 버스도 대절해 주시고, 저희가 갈만한 해변도 알아봐주셨습니다. 저희가 첫 봉사자라서 그런지 두루순베이 내에서 신경을 많이 써주셔서 저희는 편하게 봉사활동하고, 여행도 하고 왔었습니다.
앞에서도 계속 얘기했지만 두루순베이의 첫 외국인 이라서 저희가 호텔입구에 서있기만 해도 주민들의 관심이 집중되었습니다. 평소에는 저녁을 라마단 기간 동안 시에서 가난하거나, 저녁을 챙겨 줄 사람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제공해주는 밥을 먹으러 노란텐트로 갔었습니다. 그곳에 가면 저녁을 먹으러 온 아이들부터 두루순베이 어른들까지 모두 저희만 쳐다봤었고, 저희와 사진을 찍기를 원하셨었습니다. 저희 리더는 저희들에게 항상 두루순베이 스타들이라며 웃음 놀려댔었고, 저희는 흡사 연예인마냥 저녁 먹을 때 마다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그분들께 터키어로 한마디라도 더 해드리기 위해서 터키봉사자들에게 터키어를 배워서 그분들께 짧은 터키어지만 말씀드리니 무척 좋아하셨고, 신기해 하셨었습니다. 그리고 스페인에서 온 30살 언니가 한명 있었는데 식사하시러 오시는 어르신들이 그 언니가 현지인처럼 보였는지 계속 터키어로 말을 걸어온다며 저희에게 자기도 대화하고 싶지만 못 알아 듣겠다며 울상을 짓곤 하였습니다.
다른 친구들도 다들 보고싶고 기억에 남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친구가 두명 있습니다. 한명은 프랑스에서 온 친구이고, 다른 한명은 저의 룸메이트였던 폴란드 친구입니다. 이 두 친구 모두 아직 대학에 입학하지 않고 곧있으면 대학에 입학을 한다고 했었습니다. 아직 19살의 어린 친구들이지만 낯선나라에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마음먹고 혼자 온 것이 저에게는 너무나도 신기했고, 제가 본받아야 겠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온 친구는 제가 가장 부러워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시작 하는 일에는 항상 경계심을 가지고, 눈치를 살피고, 어렵다 싶으면 먼저 나서지 않는 반면, 프랑스 친구는 우선 한번 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항상 앞장서서 먼저하고, 어려운 일도 척척 해내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저는 그 친구를 보며 나도 더 이상 뒤로 빠지지 않고 앞으로 나가서 모든 일이든 해봐야 겠다.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폴란드 친구는 두루순베이에서 사랑을 만들어 갔습니다. 처음에 시작하기 전 오리엔테이션때 센터 선생님께서 봉사자들끼리 사랑을 싹 틀 수 있다고 우스겟소리로 말씀 하셨었는데 이 친구는 실천을 했었습니다. 스페인에서 온 27살 봉사자와 서로 눈이 맞아 사랑에 빠졌습니다. 봉사가 끝나고 다들 헤어지는날 우리 모두 둘의 헤어짐을 함께 슬퍼했었습니다.
워크캠프에 참가 하고 난 후, 저는 영어회화를 좀 더 많이 공부해야 겠구나 라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었습니다. 제가 영어를 잘 못한다고 생각하니 계속 주눅이 들고, 그리고 내 의견을 확실히 말 할 수 없었던 것이 가장 답답했었습니다. 그래서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영어학원을 등록해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전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걸 해도 괜찮을까? 항상 고민만 하다 끝난 일들이 많았는데 이제는 먼저 해보자! 라는 마음이 생겨서 열심히 적극적으로 모든 일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터키 국제워크캠프에 참가 한 일은 ‘신의 한수’ 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일들에 스트레스 받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저에게 힘을 주었고, 방향을 제시해 준 것 같습니다.